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4. 북방 원정에 나서다
고죽국의 답리가
마침내 관중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일제히 흙이 가득 든 가마니를 등에다 짊어지고 수레를 따라 출발했다. 그 때 군사들에 앞서서 빈 수레 2백 승이 갔다. 빈 수레가 가다가 적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기만 하면 즉각 군사들은 흙이 든 가마니로 함정을 메웠다. 이렇게 하여 제군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빠지면 메우고, 길을 트며 산곡 입구에 도달했다. 이번에는 길을 가로막아 놓은 수목과 바위들을 치웠다. 마침내 길이 뚫리자 제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산곡 안으로 쳐들어 갔다. 한편 밀로는 산곡 입구에다 나무와 돌을 쌓아놓고 일단 안심을 했다. 이제부터는 산곡 안 본거지에서 제군의 식량이 떨어져 스스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그날도 밀로는 천하 태평으로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군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는 지마령 쪽 서로(西路)에서 올라온 빈수무와 호아반의 군대였다. 밀로는 기겁하여 말에 올라타고 산곡 쪽으로 달아나려 하는데 그쪽에서는 제나라 본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마침내 함성이 지척간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속매는 밀로를 보호하며 동남쪽을 향해 달아나 버렸다. 드디어 제군은 영지국(令支國)을 점령했다. 마필과 병기, 우양장막(牛羊帳幕) 등속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지난날에 납치되어 갔던 연나라 여자와 남자들만 해도 부지기수였다. 영지국의 백성들은 제군을 보자 크게 놀랐다. 대오가 정연하고 기세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렇게 강한 군대는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나와서 제나라 군사를 열렬히 환영했다. 제환공은 일단 영지 백성들을 위로하고 삼군(三軍)에 영을 내렸다.
"항복한 산융인을 살해하는 자는 극형에 처한다. 그리고 재물을 빼앗지 말라."
이 명령을 들은 영지국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다. 제환공은 항복한 융인을 불렀다.
"네 주인은 어느 나라로 갔느냐?"
융인이 아뢰었다.
"우리 나라는 고죽국과 이웃해서 서로 친한 사이라 얼마전 고죽국에 원병을 청했는데 아직까지 그들이 오지 않았으므로 고죽국으로 갔을 것입니다."
"그러면 고죽국은 얼마나 강하며, 고죽국까지의 거리와 길은 어떤가 말해 보라."
"예, 고죽국은 동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상나라 때부터 성곽이 있던 곳으로 거리는 약 1백여 리 정도이며, 도중에 비이계(鼻耳溪)란 시내가 있는데 거기를 건너면 바로 고죽국입니다. 하오나 산길이 매우 험해서 가시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이 말을 들은 제환공은 삼군에 영을 내렸다.
"고죽국이 산융과 동맹하였고 난폭하기도 하니 이 곳까지 와서 그들을 그냥 둘 수 없다. 그러니 전군은 대오를 정비하여 고죽국을 칠지니라!"
때마침 포숙아로부터 아장 고흑(高黑)이 건량(乾糧) 50수레를 싣고 왔다. 제환공은 고흑을 보내지 않고 군무를 보게 하고, 항복한 산융군 중 씩씩한 자 천 명을 골라 호아반 막하에 편입시켜 이번 싸움에 손실된 군사를 보충했다. 3일간 휴식을 취한 제군은 제환공을 옹위해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한편 제군에게 참패하고 도망친 밀로 일행은 고죽국의 주장(主長) 답리가(答里呵) 앞에 나가 통곡을 했다.
"제후가 힘을 앞세워 우리 영지국을 점령하고 빼앗았소이다. 바라건대 우리 원수를 갚아 주오."
답리가가 밀로를 위로했다.
"내 일찍이 군사를 일으켜 그대를 돕고자 계획했었으나 갑자기 몸에 병이 생겨 수일 늦어지는 탓에 그만 시기를 잃고 말았소. 그런데 그대가 이렇듯이 대패하여 도망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소이다. 그리고 제군이 아무리 용맹 무쌍하다 한들 비이계가 있는데 쉽게 건너오지 못할 것이오. 내 군사를 시켜 계변에 있는 모든 뗏목들을 모아 산골에 들여놓게 하겠소. 어찌 제군이 꼼짝이나 하겠소? 그러니 일단 이 곳에서 쉬면서 그들을 무찌를 준비를 해두고 있으면 기회가 올 것이오. 제군이 물러날 때를 기다려 우리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시살해 간다면 그대는 즉시 나라를 회복할 것이온즉 조급히 굴지 마시오."
그 때 곁에 있던 고죽국의 병권을 쥐고 있는 대장 황화원수(黃花元帥)가 아뢰었다.
"혹 제나라 군대가 뗏목을 만들어서 비이계를 건너올지 모릅니다. 마땅히 군사를 보내어 비이계 입구를 지키게 하고 주야로 순번을 감시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답리가는 비웃듯이 황화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제군이 뗏목을 만든다면 내 어찌 그런 일을 미리 눈치채지 못할 리 있으리오."
관중의 상산가와 하산가
한편 제환공은 군사를 거느리고 앞으로 진군할수록 산골은 험해지고 괴석 더미와 잡초, 대나무가 무성하여 길을 제대로 분별할 수조차 없었다. 이에 관중이 군사들에게 유황과 불에 잘 타는 염초를 수목 사이에 뿌리게 하고는 일제히 불을 질렀다. 맹렬한 불길이 일어났다. 불길은 온 산을 핥듯이 퍼져나가 요란스레 타올라 닷새 동안을 온통 화광으로 덮었다. 그러고 나자 온 산에 초목은 뿌리도 없이 타버렸고 여우와 토끼의 자취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관중은 산을 깎아 길을 내게 했다. 병사들이 불평했다.
"이렇듯 산은 높고 험해 사람 가기도 어려운데 병차까지 가게 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 아닙니까?"
관중이 이들에게 설명하여 대답했다.
"오랑캐의 말은 달리기를 잘하니 오직 병차가 있어야만 그들을 누를 수 있도다."
그러고는 힘들어하는 병사들에게 상산 하산(上山下山)이란 노래를 가르쳤다. 오를 때는 상산가, 언덕을 내려갈 때는 하산가였다.
산은 우뚝우뚝 솟고 길은 꼬불꼬불하고
초목없는 산길에는 돌난간뿐이로구나
구름은 흐릿흐릿한데 날씨는 쌀쌀하고
수레를 이끌어 험난한 산을 오르는도다
바람이 밀어 주고 등산의 신까지 도와 주도다
저 산으로 오르는 게 별로 어렵지 않구나
이렇듯 상산가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니 그들은 노래에 맞춰 가며 병차를 끌고, 뒤에서는 밀어올리며 호홉을 맞춰 험난한 산길을 올라갔다.
산에 오르기는 어려우나 내려가는 건 쉽구나
수레바퀴가 잘 구르고 말굽은 떨어질 듯이
떼굴떼굴 소리에 사람은 숨을 헐떡이도다
몇 번 넘어지니 경각간에 평지에 이르도다
오랑캐를 무찌르니 봉화불은 꺼버릴거나
고죽을 제압하고 공로 세워 억만세 누리도다
이렇게 하산가를 부르며 산길을 내려갔다. 제환공과 관중은 그 때 비이산 위에 올라가서 병차가 산길을 올라왔다가 내려가고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진군해 가는 형세를 내리굽어보았다.
'역시 관중이로고.......'
제환공이 찬탄했다.
"과인은 오늘날에야 노래로써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소이다."
관중이 지난날을 말했다.
"지난날 신이 함거(檻車) 속에 잡혔을 때 노나라의 추격을 벗어나기 위해서 그 때 노래를 지어 군부(軍夫)들로 하여금 부르게 한 일이 있습니다. 군부들은 즐거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에 피로를 잊고 평상시의 배나 빠른 속도로 수레를 몰았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능률이 나게 되오?"
"사람은 육체를 과도히 부리면 그 정신이 피곤해지며, 심신이 즐거우면 그 육체의 피로를 잊게 됩니다.:"
제환공이 이 말을 듣고 거듭 감탄했다.
"중부(仲父)는 참으로 인간의 마음에 통달하셨도다."
이에 모든 군사는 수레를 몰아 산을 넘고 다시 대열을 정돈한 후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무난히 여러 산을 지났건만 또 앞에 산이 나타났다. 앞서 가던 대소의 수레들이 갑자기 멈춰서 버렸다. 좌우가 옹색해서 도저히 빠져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군사들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양편이 다 깎아세운 석벽이며, 그 사이에 조그마한 길은 있으나 겨우 혼자서 말이나 타고 지나갈 만합니다. 수레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제환공은 자못 두려워하며 관중에게 말했다.
"이 곳에 만일 적의 복병이 있다면 내 반드시 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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