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4. 북방 원정에 나서다
연나라를 구원하다
마침내 제환공은 연나라를 구원하기 위하여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제환공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제수(濟水)를 건넜다. 제수 건너편 언덕에는 노장공이 영접차 나와 있었다. 제환공은 노장공에게 산융을 토벌하러 북방 원정을 간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노장공이 청했다.
"군후(君侯)께선 앞으로 표랑(豹狼) 같은 오랑캐를 무찌르고 북방을 평정할 것인즉, 우리 나라도 연나라처럼 군후의 은혜를 받아야겠습니다. 그러니 과인도 이번에 국력을 기울여 병사를 이끌고 군후를 따라 종군하겠습니다."
제환공이 대답했다.
"북방은 멀고도 험한 곳이오. 과인은 군후에게 이 어려운 고생을 시킬 순 없구려. 만일 이번 거사가 성공하면 이는 군후가 염려해 주신 덕택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뜻대로 북방 정벌의 일이 되지 않으면 그 때 가서 다시 군후께 군사를 청하겠으니 물리치지 마시고 과인을 도와 줘도 결코 늦지 않으리이다."
노장공은 허리를 굽히며 만일 기별만 하면 언제든지 가서 도와 드리겠다고 쾌락했다. 이에 제환공은 노장공과 작별하고 서북쪽을 향해 떠나갔다. 한편 오랑캐 두목은 그 이름이 밀로(密盧)였다. 그가 연나라 경계를 유린한 지도 이미 두 달이 지났다. 그가 연나라 사람과 여자를 약탈한 것만 해도 일일이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산융은 제군이 구원왔다는 걸 알자 연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달아났다. 제환공이 계문관에 이르렀을 때다. 연장공(燕莊公)이 영접을 나왔다.
"먼 이 곳까지 친히 병사를 이끌고 구원와 주셔서 그 은혜가 참으로 망극합니다."
곁에서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산융이 지금까지 득의하고 달아났으니, 아직 그들의 병력에 손상이 없을 것인즉, 우리가 물러가면 그들은 반드시 또 연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러니 이 기회에 그들을 무찔러 북쪽 우환을 아주 덜어 버리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제환공은 즉시 쾌락하고 산융의 본거지를 치기로 작정했다. 이에 연장공이 청했다.
"원컨대 본국군이 전대(前隊)가 되어 앞길을 열겠습니다."
제환공이 은근히 대답했다.
"귀국은 지금까지 오랑캐와 싸우기에 피곤하였을 터인즉, 어찌 또 앞장을 설 수 있으리오. 군후는 후군이 되시오. 과인의 군사만으로도 족할 줄 아오."
그러자 연장공이 천거했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80리를 가면 무종(無終)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산융처럼 오랑캐 족속이기는 하지만 뜻이 산융과 맞지 않습니다. 그들을 초청해서 길 안내를 받는다면 좋을까 합니다."
연장공의 말에 제환공은 공손 습붕에게 많은 황금과 비단을 주어 그들을 청해 오라 일렀다. 이리하여 무종에선 대장 호아반(虎兒班)이 기병 2천을 이끌고 오니,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많은 물품을 하사하고 그들을 전대(前隊)로 삼았다. 대군은 열을 지어 전진했다. 그들이 2백 리쯤 갔을 때 갑자기 길은 좁아지고 산이 첩첩으로 치솟은 험한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제환공이 연장공에게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이 곳은 규자(葵玆)란 곳입니다. 바로 북융으로 드나드는 길입니다."
관중과 상의한 제환공은 물자와 군량 저장소를 규자에 두기로 하고 나무를 베고 흙을 쌓아 관(關)을 만들었다. 포숙아(鮑叔牙)가 이 곳을 맡아 경비를 하는 동시에 필요에 따라 물자와 군량을 보급하기로 했다. 3일 동안 군사들을 쉬게 한 제환공은 약하고 병든 군사를 골라 이 곳에 남기고는 대열을 정비해 다시 전진했다.
밀로의 도주
한편 밀로는 제군이 공격해 온다는 보고를 받고 장수 속매(速買)를 불러 대책을 논의하니 속매가 아뢰었다.
"제나라 군은 멀리 오느라 많이 지쳤을 것입니다. 그들이 병영을 세우고 안정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기습 공격을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속매의 말을 들은 밀로는 3천 기를 속매에게 내주니 속매는 산속 여기저기에 병사들을 매복시키고 제나라 군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길 안내를 맡은 제군의 전대(前隊) 호아반은 앞장서 갔다. 속매는 이를 보자 즉시 1백여 기를 거느리고 전대로 오는 호아반에게 달려들었다. 호아반은 적을 보자 공을 세우고자 용기 분발하여 자루가 달린 철조추를 높이 들어 속매의 머리를 내리쳤다. 속매는 말고삐를 젖히며 재빨리 몸을 피한 후 긴 장검을 빼어 들고 달려들었다. 그들이 어우러져 몇 합을 싸웠을 때였다. 속매는 거짓 패한 척하고 호아반을 숲속으로 유인했다. 호아반은 급히 속매를 추격했다. 그러자 속매는 슬쩍 손을 들어 신호했다. 그러자 사방 곳곳에서 산융의 매복병들이 쏟아져 나와 호아반을 앞뒤에서 공격했다. 호아반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말이 화살에 맞아 뛰지를 못하는 바람에 차츰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호아반은 죽기를 각오하고 몰려오는 적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이미 패배는 확실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였던 것이었다. 그 때였다. 관중이 이끄는 본대가 당도했다. 이에 왕자 성부(成父)는 크게 신용(神勇)을 발휘하여 속매의 군사를 무찌르고 선발대인 호아반을 구출했다. 속매는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많은 군사를 잃은 호아반은 관중 앞에 와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관중은 부드러이 웃으며 말하고 도리어 그에게 준마(駿馬)까지 선물했다.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은 늘 있는 일이오. 장군은 너무 개의치 마시오."
호아반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다시 제나라 대군은 동으로 30리를 갔다. 그 곳 지명은 복룡산(伏龍山)이었다. 제환공은 연장공에게 청하여 함께 산 위에 하채했다. 왕자 성부와 빈수무는 산 밑에 하채했다. 그리고 큰 수레를 서로 연결시켜 성 모양으로 주위에 둘러 놓고, 군사들은 순시하면서 경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이튿날이었다. 영지의 밀로는 친히 속매를 대동하고 기병 만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싸움을 걸었다. 그들은 거듭거듭 제영(齊營)을 쳤다. 그러나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수레를 뚫고 쳐들어가진 못했다. 이러는 동안에 어느덧 오후가 됐다. 관중은 산 위로 올라가 사방을 굽어봤다. 웬일인지 산융군은 점점 그 수가 줄었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드러누워 제군 진영을 향하여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관중이 호아반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장군이 설치(雪恥)할 때요."
호아반은 즉시 응낙하고 수레로 둘러놓은 성을 열고 군사를 거느리고서 나는 듯이 나갔다. 이를 보자 습붕이 크게 놀라 관중에게 물었다.
"적의 계책에 빠져드는 것이나 아닙니까?"
"나에게 이미 요량하는 바가 있소."
관중은 웃으며 말하고는 곧 왕자 성부를 불러 일지군을 거느리고 왼편으로 나아가라 명하고, 또 빈수무를 불러 역시 일지군을 거느리고 오른편으로 나아가 서로 접응하도록 명령했다.
"혹 적의 복병이 있거든 닥치는 대로 죽이고 오라."
원래 산융이 전문으로 하는 계책이란 군사를 매복시키고 적군을 유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산융은 제군이 굳게 지킬 뿐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산골에다 군사를 매복시켜 놓고 나머지 몇몇 군사만 있는 것처럼 꾸미고는 말에서 내려 갖은 욕설을 퍼부어 제군을 영채에서 끌어내려고 한 것이었다. 그들은 호아반이 군사를 거느리고 성문을 나와 선두로 달려오는 걸 보자 이젠 계략대로 됐다 생각하고는 모두 말을 버리고 일제히 달아나기 시작했다. 호아반은 즉시 군사를 독려해 달아나는 산융의 뒤를 쫓아가 무찌르려 하는데, 바로 이 때 문득 대채에서 회군하라는 금(金) 소리가 일어났다. 호아반은 하는 수 없이 추격을 단념하고 말고삐를 돌려 본채로 돌아갔다. 밀로는 호아반이 더 뒤쫓아오지 않고 자기 영채로 돌아가는 걸 보고서 곧 기(旗)를 휘둘러 산골짜기에 매복시켜 둔 복병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복병들은 왕자 성부와 빈수무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해서 흩어져 달아나기 바쁜 지경이었으니 밀로의 명령은 하등 소용없게 되었다. 마침내 산융은 많은 군마를 잃고 대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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