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7. 주나라의 내란
관중의 심모 원려
초문왕이 죽고 그의 어린 아들 웅간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이제 초나라의 군위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고, 듣자하니 육권이라는 자가 자결하는 등 내부 기강이 흐트러진 듯하오. 이제 대군을 일으켜 초를 친다면 천하 패권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소. 중부의 뜻은 어떠하오?"
관중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초나라는 먼 남방에 있습니다. 그들은 땅도 넓고 군사도 강합니다. 충분한 군비를 갖추지 않고는 싸우기가 몹시 난처한 상대입니다. 그리고 새로 임금이 된 웅간은 동생 웅운에 비해 덕이 부족하다는 소문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그들 형제끼리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초나라가 혼란스럽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공격해 가면 오히려 초나라 조야가 임금으로 있는 웅간을 중심으로 굳게 뭉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입니다."
제환공이 다시 물었다.
"초나라에 복종한 정(鄭)을 쳐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는 게 어떻겠소?"
관중이 또 대답했다.
"지금은 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우리 제나라는 화살 한 대 쏘지 않고 맹주의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자칫 군사를 일으켰다가 실수하는 날에는 모든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더욱 나라 살림을 알뜰하게 하고 병사를 기르고 조련해야 합니다. 웬만한 일에는 간섭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맹주로서 권위도 있고 좋을 듯싶습니다."
제환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인은 중부의 뜻을 따르겠소."
제환공은 역아와 수작을 불러 음식을 장만하라 이르고 수레를 타고 야외로 놀러 나갔다.마침 곁에 있던 영척이 말했다.
"상군께서 살피기에 초나라에 변고가 있을 듯합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문부인이 낳은 두 아들 웅간과 웅운은 친형제의 우애가 없어 서로를 시샘하고 다툰다고 합니다. 멀지 않아 골육상쟁이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정나라를 쳐서 정여공의 배신을 단단히 벌하고, 다시는 초나라를 섬기지 못하도록 다짐을 받아 둘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관중은 영척의 표정이 하도 진지한지라 그간의 일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대부께서 이리도 진심을 보이시니 내 어찌 이대로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앞서 정나라가 초나라에 조공을 보냈다가 제환공의 질책을 받자 숙첨을 보내어 사죄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제환공은 변명하는 숙첨이 보기 싫어 군부에 가두도록 엄명했다. 그날 밤 관중이 은밀히 제환공을 찾아가 계책을 아뢰고 허락을 받은 후 심복을 시켜 숙첨을 도망칠 수 있게 안배를 해 줬다. 관중은 사람을 시켜 숙첨에게 전했다.
"타인의 힘에 의존해서는 영원히 굴욕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귀국은 초나라와 우리 제나라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근심이 높아지면 높아졌지 줄어들지는 절대로 않을 것입니다. 대부께서도 아시다시피 정나라는 오래 전부터 주왕실을 받들고 대대로 경사의 벼슬을 해왔습니다. 앞으로 주왕실과 더욱 가깝게 지내도록 힘쓰십시오. 내가 여러모로 지원하리다. 그리하시면 어찌 정나라와 같은 대국이 세상의 비웃음을 받겠습니까. 장차 주나라 왕실에도 대(代) 물림을 앞세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듯합니다. 그 때가 되면 정나라가 옛 경사 벼슬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대부께서는 오늘밤 북쪽문으로 도망쳐 귀국하십시오. 이후 중원의 평화를 위해 많은 공적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관중이 이렇게 해서 숙첨을 도망치게 했다. 그 일을 말하자 영척이 찬탄했다.
"상군의 원모(遠謀)가 이토록 비상할 줄 천하에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리오. 참으로 다른 나라와 우리 제나라 사이에 우호를 다지게 하고 주공께서도 천하의 맹주로서 떳떳이 세상을 대하게 하니 그저 존경스럽습니다."
영척은 자기 부중으로 돌아가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더욱더 찬탄해 마지 않았다.
"상군께서는 실로 성인(聖人)이시도다. 실로 성인이라 아니할 수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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