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5. 중원의 한복판에도 순풍이 불고(2/3)
숙첨의 배신
드디어 돌과 빈수무는 대릉(大陵) 땅을 야습했다. 이에 정나라에선 부하(傅瑕)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왔다. 양편은 서로 크게 싸웠다. 부하는 도저히 힘으로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제군에게 항복했다. 정여공 돌은 부하를 보자 17년 동안이나 자기에게 항거한 부하에 대해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속히 부하를 참하도록 호령했다. 부하가 끌려나가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주공은 정나라로 돌아가 군위에 오르실 생각이 없단 말입니까.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고만 하십니까?"
정여공 돌은 이 말을 듣고 형의 집행을 잠시 미루었다. 이어 부하를 불러들이고는 물었다.
"어찌 군위를 들먹이느냐. 너는 그 동안 과인의 입국을 방해만 하지 않았더냐?"
부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이제부터 주공으로 모시고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우선 저를 풀어 주시면 지금 곧 성 안으로 달려가 지금의 임금 목을 끊어 바치겠습니다."
정여공 돌이 다시 물었다.
"네가 무슨 계책이 있기에 능히 의(儀)의 목을 잘라 오겠다고 하느냐. 거짓말로 과인을 속이고 이 곳을 벗어나려는 얕은 죄로다. 아니 그러하냐?"
부하가 열심히 말했다.
"지금 정나라의 정사(政事)는 숙첨이 맡아 보고 있습니다. 신은 원래부터 숙첨과 절친한 사이입니다. 주공께서 신을 용서해 주시면 곧 몰래 정성으로 돌아가서 숙첨과 상의하여 지금의 임금 대신에 주공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겠습니까. 굽어 살피소서."
정여공 돌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었다.
"이 노옴! 네 어찌 감히 과인을 속이려 드느냐. 과인이 너를 풀어 주면 곧 성으로 들어가서 숙첨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과인에게 또다시 항거할 것이 뻔한 놈이 거짓말을 잘도 하는구나. 이 놈, 날 속이려거든 입술에 침이라도 바르고 하거라 알겠느냐!"
곁에 있던 빈수무가 말했다.
"지금 부하의 처자(妻子)가 대릉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선 그 가족을 볼모로 잡아 놓고 부하의 하는 행동을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부하가 거듭 아뢰었다.
"만일 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거든 신의 처자를 죽이십시오. 하늘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정여공 돌은 부하를 풀어 주도록 했다. 부하는 즉시 밤을 도와 정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남의 눈을 피하여 숙첨의 부중으로 갔다. 숙첨이 부하를 보더니 질겁하여 크게 놀랐다.
"그대는 대릉 땅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이 야심한 시각에 어인 일로 여기에 찾아왔단 말이오?"
부하가 좌우를 물리치게 하고는 은근한 말씨로 숙첨에게 겁을 주었다.
"제나라에서 우리 군위를 바로잡으려고 대장 빈수무에게 대군을 거느리게 하고 공자 돌을 지원하여 귀국시키려 하였기 때문에 이미 제가 지키던 대릉은 함락되었소이다. 나는 겨우 포위망을 뚫고 야밤을 이용해 도망쳐 이 곳까지 왔으나 조만간에 그들이 이 곳까지 밀려올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지금의 임금을 폐하고 성문을 열어 공자 돌을 다시 군위에 세운다면 부귀를 보전하는 동시에 또한 백성들을 가난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복이 재앙으로 바뀌어 이 곳이 시산혈해(屍山血海)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때는 지금인즉 시기를 놓치어 나중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숙첨이 한참 만에 물었다.
"옛날에 나는 옛 주공을 임금으로 세우고자 상주하다가 제족에게 제지를 당했었소. 이제 제족이 죽고 없으나 지금 임금이 있는지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그리고 세상 일이란 하늘의 뜻을 어기면 죄를 짓는 법이오. 그러나 마땅한 계책이 서지 않는구려."
부하가 속삭였다.
"속히 역성으로 밀서를 보내어 여공으로 하여금 쳐들어오게 하는 동시 그대는 성 밖에 나가서 거짓으로 항거하는 체 하시오. 그러면 의가 반드시 성 위에 올라가 싸움을 볼 것이오. 내 그때 기회를 보아 그 자를 죽이겠소이다. 그러면 그대는 옛 임금을 영접하여 모시고 들어오면 될 일이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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