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5. 중원의 한복판에도 순풍이 불고(1/3)
제군, 돌을 돕다
"상군께서는 어찌 기쁜 표정이 아니십니까?"
영척의 물음에 관중이 영척을 맞이하며 말했다.
"그대도 아시겠지만, 주나라 왕실이 동쪽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중원 땅 여러 제후 가운데 정(鄭)나라가 단연 강국이었소이다. 그들은 동괵을 합병하여 그 곳에다 도읍을 정했는데 앞은 산이고 뒤는 하수(河水)며 좌우로 낙천(洛川), 제천(濟川)을 끼고 있어 험하고 튼튼하기로 세상에 유명합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에 정장공은 이를 믿고 이웃한 여러 나라를 치는가 하면 왕군과 싸워 천자에게 화살을 쏘는 짓도 서슴지 않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나라가 이제 초(楚)를 섬겨 그 일당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초나라는 자칭 왕이라고 하느니만큼 땅도 크고 군사는 강하고 한동 땅의 모든 나라들을 복속시켜 이제 주왕실과 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천하 패권을 잡으려면 초나라부터 쳐야 할 텐데 초를 치려면 앞서 정나라부터 우리 쪽으로 돌려놓아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이번 송나라 원정길에 정나라 근처까지 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하여 내 이렇듯 고심중이오."
영척이 웃으며 대답했다.
"상군께서는 염려 마십시오. 정나라는 제가 잘 압니다. 원래 세자 홀(忽)을 정소공으로 세웠다가 송나라 협박에 넘어가 공자 돌(突)을 세우고, 임금이 된 지 2년 만에 그를 쫓아낸 것은 제족의 농간이었습니다. 제족은 다시 공자 홀을 세웠습니다만 이번에는 고거미가 홀을 죽이고 공자 미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우리 선군께서 공자 미와 고거미를 죽이자, 제족은 공자 의(儀)를 임금으로 세웠습니다. 이렇듯 제족이란 자는 신하로서 임금을 추방하고 세우는 일을 밥먹듯 하는 죄 많은 여우 같은 놈입니다. 의도 동생으로서 형님의 자리를 빼앗은 자입니다. 이들은 모두 분수를 범하고 윤리를 거슬렀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죄를 밝히고 치십시오. 한편 공자 돌은 지금도 역 땅에 있으면서 언제라도 정나라 군위에 다시 오르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제족, 그 간사한 자가 평소에 인재를 기르지 않고 벼슬 자리만 탐하다가 최근에 죽었으니 정나라에는 묘책을 세울 인재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럴 때 우리 제나라가 한 장수를 보내어 공자 돌을 앞세우고 정성(鄭城)으로 쳐들어간다면 쉽게 공자 돌을 군위에 올려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우리 제나라의 은덕을 잊지 않고 초나라와 관계를 끊고 주왕실을 섬기며 중원의 여러 나라들처럼 우리와 맹약을 맺지 않겠습니까?"
"그 생각 정말 좋소이다."
관중이 무릎을 치면서 덧붙였다.
"이번에야말로 정나라는 꼼짝 못할 것이오."
관중은 서둘러 영척과 함께 궁으로 가서 제환공에게 이러 저러한 계책이 있음을 아뢰었다. 제환공은 정나라를 동맹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계책을 모두 듣자 귀가 번쩍 트였다.
"과인도 정나라가 중원 땅의 복판에 자리잡고 있어 항시 이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계책이 없었소."
제환공은 곧 일군을 모으게 지시하고는 물었다.
"그럼 누구를 대장으로 삼으면 좋겠소?"
관중이 대답했다.
"빈수무가 적합합니다. 그는 계책에 능하고, 공자 돌(突) 같이 꾀 많은 자를 능히 다룰 줄 압니다."
이리하여 빈수무는 병차 2백 승을 거느리고 정나라 땅을 향해 진발했다. 빈수무는 역 땅 20여 리를 남긴 곳에서 군사를 멈추고, 사람을 보내어 공자 돌에게 제환공의 뜻을 전했다. 이 때 정여공 돌은 먼저 제족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자 지체없이 심복 부하를 비밀리 세작으로 정성에 보내어 국내 소식을 염탐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열국의 맹주인 제환공이 군사를 보내어 자신의 입국을 돕겠다고 하니 바야흐로 귀국하여 군위에 오를 때가 왔다고 크게 기뻐했다. 그는 곧 제나라 군사들이 있는 곳까지 가서 크게 잔치를 베풀고 빈수무와 함께 속마음을 탁 터놓고 서로의 계책을 의논했다. 이 때 정성에 세작으로 밀파됐던 사람이 돌아왔다.
"제족이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 후임으로는 숙첨이 상대부가 되었습니다."
빈수무가 물었다.
"숙첨이란 어떤 인물입니까?"
정여공 돌이 대답했다.
"그는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이지만 장수가 될 만한 기백은 없는 사람이오."
그 때 염탐하러 갔던 사람이 직접 경험한 괴상한 일을 한 가지 보고했다.
"이번 정나라 성내에서 기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문 안에서 길이가 팔 척이나 되고 머리는 푸르고 꼬리는 황색인 큰 뱀이 나타났습니다. 또성문 밖에도 큰 뱀 한 마리가 나타났는데 길이는 장여(丈餘)나 되고 붉은 머리에 꼬리는 녹색이었습니다. 두 마리 뱀이 서문 앞에서 3일 동안 밤낮으로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걸 구경하는 백성들도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17일 만에 드디어 성 바깥편 뱀이 성 안쪽 뱀을 물어 죽이고 그 길로 성내로 들어가 태묘(太廟)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뱀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제나라 장수 빈수무가 정여공 돌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 찬탄해 마지않으며 높이 치하했다.
"장차 다시 정나라 군위에 오르실 좋은 징조입니다."
정여공 돌이 물었다.
"어찌 그러하오?"
빈수무가 대답했다.
"성 바깥에서 나타난 뱀은 바로 군후(君侯)를 뜻하니 길이가 장여나 된다는 것은 바로 형님뻘입니다. 성 안에서 나온 뱀은 바로 의(儀)니 길이가 팔 척밖에 안 되는 것은 동생뻘이기 때문입니다. 싸운 지 17일 만에 성 밖 뱀이 성 안의 뱀을 이기고 정성(鄭城) 안으로 들어간 것은 무엇인가 하면, 군후가 본국을 떠나 망명한 지 바로 17년을 뜻합니다. 성 안의 뱀이 죽은 것은 의가 군위를 잃을 징조이며, 성 바깥 뱀이 태묘로 들어간 것은 군후가 종사(宗祀)를 받들 징조입니다. 우리 주공께서 대의를 천하에 펴사 군후를 정나라 정위(正位)에 세우고자 하시니 이것은 모두 다 하늘의 정해진 뜻인가 하옵니다."
정여공 돌이 대답했다.
"장군 말대로 된다면 이 은덕을 결코 잊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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