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5. 천하 절색 식부인
초문왕, 아내를 얻다
다음날 초문왕은 답례했다는 명목으로 친히 관사에서 잔치를 베풀고 식후를 청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무장한 군사를 매복시켰다. 식후가 술이 얼큰히 취했을 때였다. 초문왕이 취한 체하면서 식후에게 주정했다.
"짐은 군후의 부인께 큰 공이 있으니 다시 한 번 군후의 부인이 짐을 위해 한 잔 술을 권하도록 하시오."
식후가 미안한 듯이 사양했다.
"원래 식국은 조그만 나라이므로 모든 상국(上國)의 분부를 일일이 받을 수 없는 형편입니다. 대왕께서는 이점 널리 양해하십시오."
초문왕이 주먹으로 술상을 치며 꾸짖었다.
"그대는 동서의 의리를 배반하고 감히 그런 말로 짐에게까지 거역하는가. 게 아무도 없느냐! 짐을 위해 이 필부를 끌어내어라."
식후가 변명할 여유도 없이 매복하고 있던 군사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초나라 장수 원장과 투단(鬪丹)이 대뜸 식후를 결박했다. 이렇게 한 후에 초문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궁으로 들어가서 식부인 규씨를 찾았다. 규씨는 변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듣고서 탄식했다.
"범을 방으로 끌어들였으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모두가 나의 불찰이구나."
규씨가 우물에 몸을 던지려는데 마침 달려온 초나라 장수 투단이 규씨의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부부가 다 함께 죽으려 하십니까?"
식부인 규씨는 이 말을 듣자 죽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투단은 규씨를 데리고 초문왕에게 갔다. 초문왕은 좋은 말로 규씨를 위로하고 식후를 결코 죽이지 않겠다는 것과 식나라 종묘(宗廟)의 신위(神位)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것을 왕명으로 다짐했다. 식부인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는 수 없이 초문왕을 따라 초나라로 가야했다. 미인 박명이라 했던가. 초문왕은 기분좋게 군중(軍中)에서 식부인 규씨를 자기 부인으로 삼고 수레에 싣고서 초나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규씨의 볼이 도화 같다 해서 그 후로 그녀를 도화 부인이라고 했다. 초문왕은 식후를 여수(汝水) 땅에다 안치(安置)시키고 겨우 십가지읍(十家之邑)을 봉해 주고 식나라 종묘와 신위를 지키게 했다. 그러니 식후가 어찌 견딜 것인가? 마침내 한 달도 채 안 되어 식후는 울화를 참지 못해서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규씨 부인의 미모 탓이라고도 하고, 식후가 제 죽을 꾀만 내었다고 한탄하기도 했지만 결국 초나라 왕이 식나라 땅과 절세 미인을 독차지하게 되어 버린 사건이었다. 관중은 이런 사실을 상인들에게서 듣고 알았다. 관중이 식부인을 위해 한 편의 시를 지었다. 그걸 보고 상인들은 관정승을 호색가라 부르기도 했다. 아무튼 관중은 상인들에게서 그 이외에도 많은 해외 정보를 듣고 있었다. (한편 오늘날도 한양부 성외에 가면 도화동이라는 곳이 있고 그 곳에 도화 부인의 묘가 있다. 바로 식부인 규씨를 모신 사당인 것이다. 그 사당을 세운 이들은 문사들이었다고 전한다. 절세의 미모를 타고 난 그녀이기에 더욱 정절을 지키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후세에 많은 남자들조차 그녀의 미모를 그리워한 것일까.)
제7장 춘추 제일의 패자
1. 맹주, 제환공의 첫걸음
북행 땅 첫 회합
주희왕(周僖王) 원년 봄 정월, 제환공은 조회(朝會)에서 모든 신하들로부터 신년 하례를 받고 나니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가 관중에게 물었다.
"중부(仲父)의 가르침을 받아 산동(山東)의 우리 제나라가 바야흐로 국정을 쇄신하고 군사와 군량도 충족해서 백성들이 다 예의를 알게 되었는바 이제 드높아진 기세를 몰아 천하를 위해 나서고자 하오.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과인을 깨우쳐 주시오."
관중이 대답했다.
"아직도 천하의 모든 제후 중에 우리 제(齊)보다 강한 나라가 많습니다. 남방에 초(楚)나라가 날로 강성해지고 있고, 서방(西方)에는 진(秦)나라와 진(晋)나라가 있어 각기 영웅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자(天子)이신 주왕(周王)을 받들고 모시지 않기 때문에 아직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왕실이 비록 제후를 호령할 힘은 없으나 아직은 천하의 주인임을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한 이래 모든 제후는 주왕실에 가서 조례하지 않고, 방물(方物)을 바치지 않고, 더구나 정백(鄭伯)은 활로 주환왕의 어깨를 쏘았으며, 위나라를 친 다섯 나라 제후들은 왕의 명령을 듣지 않음은 물론 왕군(王軍)을 격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제 모든 나라들로 하여금 신하의 도리조차 알아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는 초나라 웅통이 자신을 천자라 하고 스스로 왕이라 참칭하기까지 이르렀고 송, 정 나라는 임금을 죽이는 일을 밥먹듯 하건만 누구도 이를 토벌하여 그 죄를 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장왕께서 붕어하신 지 오래지 않고, 신왕이 즉위하시니 그 원년(元年)의 첫날이 오늘입니다. 마침 송나라는 최근에 남궁장만의 난을 겨우 수습하고 공자 어설을 군위에 세웠으나 아직 주왕실에 이 사실을 고하고 허락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주공께서 속히 사자를 주왕실에 보내어 조례하시고 천자의 뜻을 받들어 제후를 모으소서. 그리고 송나라 군후를 정해 주소서. 이후 안으로는 주왕실을 높이고 밖으론 사방(四方) 오랑캐를 물리치고, 모든 나라 중에서 약한 나라부터 도와 무법 횡포한 자를 누르고, 복종 않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모든 제후를 모아 징계하십시오. 그럴 때마다 주왕실의 뜻을 높인다면 모든 열국의 제후들은 우리 제나라가 사심이 없음을 알고, 반드시 우리를 지지하고 주공의 행동 하나하나를 칭송할 것입니다. 이것이 병차를 움직이는 수고를 하지 않고서도 천하의 마음을 얻고, 세상을 다스리는 길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제환공은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신년 하례를 마쳤다. 그리고 즉시 사자를 낙양으로 보내어 주희왕에게 조례토록 분부했다. 사자가 낙양의 조정에 가서 주희왕께 조례했다.
"우리 제나라 군후께서 이번에 왕명을 받들어 모든 제후와 회합(會合)하고 송나라 군위부터 정해 줄 생각입니다. 왕께서 이를 허락해 주십시오."
주희왕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제나라 백구(伯舅)가 왕실(王室)을 잊지 않고 이렇듯 사자를 보내어 예를 갖추니 짐은 진실로 크게 기쁘도다. 오직 제나라 백구만이 사방의 모든 제후를 다스릴 수 있은즉 이것이 어찌 짐에게 걱정이 될 것이겠느냐."
사자는 조례를 마치자 곧 제나라로 돌아가서 제환공에게 주희왕의 분부를 전했다. 이에 제환공은 주희왕의 명으로써 송 . 노 . 진 . 채 . 위. 정. 조(曹) . 주나라 등 각국에 사자를 보내어 3월 초하룻날 북행 땅에서 맹회를 열어 주왕실에 충성하고 각국 사이에 우호 친선을 맺자는 내용을 전하게 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제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이번 북행 땅 회합에는 우리 제나라가 얼마의 병차를 거느리고 가는 것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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