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5. 천하 절색 식부인
채애공의 실수
관중이 국내 정치에 있어서 경제를 우선하여 산업 부흥 시책을 펼쳤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관중의 부중에는 각국에서 제나라로 오는 무역 상인(商人)들이 특히 많이 드나들었다.
"정승의 부중에 대부들보다 장사치들이 더 많이 찾아오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관중은 이런 이야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아니면 아예 무시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관중은 특히 남방에서 오는 상인들을 만나기 좋아했다. 웬만큼 바쁜 일이 있어도 남방에서 온 상인이라고 하면 우선적으로 만나는 그였다. 이런저런 장사 이야기나 각 나라마다의 제후들 식성(食性)을 묻는가 하면, 경제 사정이나 백성들의 생활 모습 하나하나에 대해서까지 세세히 물어봐서 알아두곤 했다.
-제나라 관정승은 호색가(好色家).
이런 소문이 각국에 돌았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들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관중이 슬쩍슬쩍 규방의 일을 적당히 재미있게 꾸며 말하곤 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기도 했다.
"채나라 채애공(蔡哀公)도 상당한 호색가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관중이 상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던 사실이었다.
"식나라의 식후(息侯) 부인 규씨는 천하 절색이다."
이 이야기도 이들 남방에서 온 상인들이 관중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마침내 초나라 임금이 규씨 부인을 탐내어 식나라로 쳐들어갔다는 소문도 상인들이 관중에게 먼저 전해 줄 정도였다.
-초 임금의 식나라 침공.
그 전말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채나라 임금인 애공 헌무(獻舞)는 원래 진후(陳侯)의 장녀와 혼인을 했고, 식나라 임금인 식후(息侯)는 진후의 차녀, 그러니까 그 동생과 혼인했다. 따라서 채애공과 식후는 서로 동서지간이었다. 그런데 식후의 부인인 규씨는 천하 절색으로 그 명성이 사방에 널리 퍼져 있었다. 채애공은 평소에도 이것이 항상 속으로 불만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언니가 시집가면 동생이 잉첩으로 따라가는 습속도 있었으므로 동생까지 데려왔다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한번은 식후의 부인 규씨가 친정인 진나라로 근친을 가게 되었다. 규씨 부인은 친정으로 가는 길에 이웃한 채나라에 들러 언니를 만나보고 갈 생각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채애공은 속으로 몹시 기뻐했다. '천하 절색 처제가 이번에 우리 나라에 온다 하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대한 잔치를 열고 손목이라도 한번 잡아 봐야 되겠도다.' 그는 즉시 국경 부근까지 안내하는 사람을 보내어 식부인(息夫人)을 영접하게 하는가 하면, 별궁에다 그녀를 위해 크게 잔칫상을 차리도록 지시했다.
마침내 식부인이 왔다. 아름다운 처제를 보자 채애공은 그만 넋이 나가 어쩔 줄 모르더니 점차 흑심을 품었다. 그는 식부인을 끔찍이 환대하고 서로 마주 앉아 친절히 굴었다. 식부인은 곧 언니를 만나게 해주려니 하고 형부 채애공의 환대를 고맙게 받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채애공은 형부로서의 체통을 잃고 농지거리를 서슴치 않는 언동을 보였다. 은근히 음담 패설을 놓아서 식부인에게 추파를 던지고 부끄러움을 자극했다. 식부인은 마침내 화가 폭발했다. 그녀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수행원들과 함께 채나라를 떠나 버렸다. 그런데도 채애공은 반성하는 태도가 아니라 마치 잡았던 물고기를 놓친 듯이 애석해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처제가 근친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다시 한 번 수작을 부려 볼 기회가 있으려니 하고 기다렸다. 참으로 채애공의 음욕은 끝이 없었다. 그 후 식부인 규씨는 친정인 진나라에서 근친을 마치고 식국으로 돌아갈 때 아예 채나라를 거치지 않고 먼길을 돌아 자기 나라로 갔다.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가자 남편인 식후에게 채애공의 무례함을 일일이 고했다.
식후의 고자질
식후는 채애공이 자기 부인을 모욕한 데 대해서 장차 앙갚음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초나라로 사자를 보내고 조공을 바치는 동시에 초문왕(楚文王)에게 비밀리에 고자질을 했다.
"채후(蔡侯)가 제국 힘을 믿고 기꺼이 초나라를 섬겨 대왕께 조공을 바치지 않건만 어찌하여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만일에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키시어 이를 징벌하실 의향이 계시다면 제가 기꺼이 앞장을 서겠습니다. 방법으로 좋은 게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대왕께서 병사를 일으켜 우리 식국을 치는 척하시면 우리는 즉시 채나라에 구원병을 청하겠습니다. 원래 채후는 경망하기 때문에 반드시 구원병을 이끌고 달려올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나라와 초군이 합세하여 도리어 채군을 포위한다면 그까짓 채후쯤이야 어디로 도망쳐 달아나겠습니까. 손쉽게 사로잡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하면 어찌 대왕께서 채나라 때문에 노심 초사 근심할 일이 있으리오. 모든 나라가 대왕의 뜻을 높이 받들 것입니다."
'바라던 바로다!' 초문왕 웅자는 이 서찰을 받자 크게 기뻐했다. 사실 그 동안 초나라는 한동(漢東)의 모든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고 있었다. 다만 채나라만이 여식(女息)을 제환공의 셋째 부인으로 들여 보내고 그 위세를 빌어 초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있어 마치 앓던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 앓던 이를 빼내게 되었으니 초문왕은 신바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초나라 군사는 계책대로 식국으로 쳐들어가고 이에 식국은 채나라에 구원병을 청했다. 과연 채애공은 식부인 생각이 나서 멋도 모르고 병차를 일으켜 식국을 도우러 갔다. 그러나 채군은 영채를 세우고 휴식할 여가도 없이 초나라 복병에게 공격을 당했다. 채애공은 급히 식성(息城)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식후는 성문을 굳게 닫고 채군을 영접해 들이지 않았다. 이에 채군은 크게 패해서 달아나고 초군은 그 뒤를 추격했다. 채애공은 달아나다가 기진맥진해서 드디어 초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에 식후는 초문왕의 승전을 축하하며 부고를 열어 뇌물을 바친 후 초군을 배불리 먹이고 초문왕이 회군(回軍)할 때 국경까지 가서 전송했다. 채애공은 그제야 식후의 속임수에 빠져 이런 처지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포로가 된 채애공에게 식후에 대한 원한은 뼈에 사무칠 정도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편 초문왕은 귀국하자 즉시 분부했다.
"채후를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라. 그 고기를 태묘(太廟)에 바치겠노라."
초나라 대부 육권이 곁에서 간했다.
"왕은 고정하십시오. 만일 채후를 지금 죽이면 이 소문을 들은 모든 나라 제후는 다 우리를 겁내고 두려워하여 마음속으로 멀리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돌려보냄으로써 모든 제후에게 우리의 덕을 보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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