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3. 관중의 경제 정책
관중에 대한 신임
한편 제환공은 나라의 대소사를 모두 정승인 관중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간혹 나랏일을 아뢰는 자가 있으면 제환공이 서슴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왜, 중부(仲父)께 고하지 않고 과인에게 왔는가?"
이렇듯이 일체를 관중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관중을 굳게 신임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 제나라 궁중에 수작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수작은 임금의 시중을 드는 미동(美童)이었다. 수작은 붙임성이 있어 제환공을 잘 따랐고 제환공도 소년을 매우 총애하여 항시 자기 옆에 있게 했다. 이 수작에게 요리 잘하는 사내가 매우 아첨하였다. 그 사내의 이름은 역아(易牙)라고 했다. 수작은 제환공에게 요리 잘하는 역아를 소개했다. 제환공이 역아에게 물었다.
"네 능히 맛나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제환공이 역아에게 농조로 말했다.
"과인은 일찍이 하늘을 나는 날짐승과 네 발 가진 뭍짐승과 모든 생선의 맛을 다 보았느니라. 그런데 사람 맛은 모르겠다. 너는 그 맛을 아느냐?"
"......."
역아는 아무 대답없이 물러났다. 그 날 점심때였다. 역아는 점심상에 찐 고기 한 쟁반을 바쳤다. 그 고기는 매우 연하고 맛이 좋았다. 제환공은 어찌나 맛있던지 먹고 난 후에 역아를 불렀다.
"무슨 고기인데 이렇게 맛있느냐?"
역아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그것은 사람 고기입니다."
그제야 제환공은 크게 놀랐다.
"사람 고기라면 도대체 그걸 어디서 구했느냐?"
역아가 태연히 답했다.
"신의 자식이 세 살입니다. 듣건대 임금께 충성하는 자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공께서 아직 사람 고기를 맛보지 못하셨다기에 신은 즉시 자식을 죽여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서 제환공은 한참 있다가 분부했다.
"물러 가거라."
그런 뒤에 제환공은 역아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여 갸륵하게 여기게 되었다. 또 수작 역시 기회만 있으면 제환공에게 극구 역아를 칭찬했다. 마침내 제환공과 역아, 수작, 이들 세 사람은 함께 즐기며 노는, 마치 놀이패 같은 사이가 되었다. 이들은 때로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기도 했다. 역아는 원래 음식 솜씨도 뛰어났지만 권모술수 또한 비상하게 남다른 자였다. 어느 날 그가 수작과 함께 제환공을 부추겼다.
"대저 나라의 일이란 임금이 명령을 내리면 모든 신하는 그 명령을 받들어 행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제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중부가 다 합니다. 마치 임금은 없고 정승만 자리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제환공이 답변을 못하고 쩔쩔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환공은 의외로 명쾌하게 두 사람을 힐책하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중부는 과인의 수족(手足)과 같다. 팔다리가 있어야 몸이 완전하게 되듯이 중부가 있어야만 과인이 온전히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도다. 그러하거늘 어찌 너희 같은 소인들이 중부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느냐."
수작과 역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
철 . 소금 . 황금
관중은 제환공의 이런 신임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정책을 착실히 시행해 나갔다.
1. 농업은 국가의 기본 산업이다. 적극 보호 장려하여 식량을 생산하고 백성을 굶지 않게 하라.
2. 소금 . 철 . 금 이밖의 중요 산업에 있어서는 생산과 저장을 틀림없도록 하라.
3. 국고의 지출과 세금의 수입을 맞추어라. 세수(稅收)보다 많은 지출은 용납이 안 된다.
4. 물자의 유통을 위해 창고를 많이 지어라.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장려하라.
5. 백성들에게서 걷는 세금을 원성없게 하여라. 병역의 부담도 균등하게 하여라.
관중은 철저한 경제 우선주의자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먼저 백성을 부(富)하게 하는 데에 있다. 백성이 가난해지면 다스리기 어렵다."
"우선 물자가 풍부해야 한다. 먹고 살기가 힘든 사람에게 예의를 말해 보아야 소용이 없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 도덕 의식은 저절로 높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대부들부터 경제를 중요시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형벌 같은 것은 나중의 일이다. 계절에 따른 생산과 유통을 원활히 전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관중이 정승의 위에 오른 후 첫 번째로 바닷가 지방 순시를 나섰던 이유는 소금 생산을 확대시켜 중계 무역을 하고자 하는 그의 계산된 의도에서였다.
소금과 철과 황금.
관중은 이 세 가지를 전략 물자로서 중요시 여겼다. 그런데 철이나 황금 등은 광산을 개발해야 하는 난점이 있었던 반면에 소금은 바닷물을 원료로 하여 만들 수 있었기에 제나라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유리했다.
"바닷가 백성들은 모두 소금을 생산하라. 생산된 소금은 전량 나라에서 사들이겠다."
이것이 공식적인 소금 전매 사업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관중은 저장과 유통, 그리고 정 . 조 . 위 . 송 . 노나라 등 내륙 국가에 수출할 것까지 미리 예측하여 운송하기가 편리한 제수(濟水)에 거대한 창고와 선착장을 만들어 하운(河運)을 개설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처음 3년간 소금을 팔아 모은 황금이 1만 근이 넘었고, 이후 제나라에서는 기근이니 아사니 하는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사기의 기록을 살펴보겠다.
'원래가 바닷가에 면한 제나라는 땅덩이에 비해서 국력이 보잘것 없었다. 쓸모없는 땅이 많았고 그 주민은 적었다. 그래서 태공망 이래 부녀자의 일을 장려하고 공예의 기술을 다 하게 하고 또 각지에 생선과 소금을 옮겨내어, 있고 없는 것을 서로 유통케 했다. 그 뒤 제나라는 쇠해졌으나 관중이 나라의 정치를 맡으면서 경중 . 구부를 설치하여 크게 번영하게 되었다. 특히 바닷가에 생산과 수출에 따른 부(富)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서민의 의향을 정책에 반영하는 시작이었다. 관중은 정책을 실시할 경우 서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고, 스스로 서민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에 역점을 두어 살폈다. 일찍이 생산자로서 서민 대중이 갖는 의무는 많았으나 특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관중이라고 하는 서민 출신의 정치가는 그들에게 생산자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었다. 서민의 집 곳간에도 양식이 쌓이고 그들도 예의 범절, 염치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철의 생산에도 진력하여 광산을 개발하고 양질의 철광을 외국에서 사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장간 등에 상당한 혜택을 주어 농기구나 무기의 생산을 적극 장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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