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4장
보수적 전통주의자인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사람인가?
이처럼 공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상은 성스러운 의식과 예식이라는 이미지에 의해 명백히 나타난다. 의식과 예식들이야말로 그 나름대로 다른 그 어느 것보다 더 오랜 옛날 전통에 뿌리를 둔 행위의 형식들이다. 어떤 형태의 행위나 제스처가 도무지 생경하고, 인위적 조작 또는 실리 타산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한 그런 행위나 제스처의 형태에는, 말하자면 예식을 올릴 때 가질 수 있는 궁국적 엄숙성, 또는 예식을 통해서만 인간의 영혼 속에 촉발될 수 있는 그런 깊고 고풍적인 (심리적, 감동적)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궁국적으로 심리학이나 도 다른 어떤 학문을 통해서도 모두 설명 가능한 것이다. 비록 복잡한 예식을 (간소하게) 수정하는 일이 가끔씩 일어난다 해도, 적어도 예식의 재료나 그 구성 요소들은 전통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명시적으로든 묵시적으로든 공자의 사상에 영향을 기쳤을 많은 생각들 중에서, 공자는 인간의 독특한 본성을 예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데 그의 본질적인 세속관이 드러난다고 하겠다.
(당대에 새롭게 형성되는) 거대한 문명의 통합은 구성원들의 합의나 명령보다는 우선적으로 전통에 근거하는 것으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물론 (백성들의) 사회적인 합의 또는 군주나 하늘의 명령이라는 관념들은 문화를 규정하는 전통들을 합리화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공자의 사상 속에서 무시 못할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공자에게 있어서 사회적 합의나 천명의 역할은 결국(전통이 갖는 절대적인 중요성에 비해) 부차적인 것이며 별로 다듬어져 논의되고 있지 않다. 예식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상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예에 대한 핵심적 강조는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또는 종교적인 면에서 아무리 상이한 그 어떤 틀이 가미된다 할지라도 예를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도덕적, 정감적인 권위, 즉 전통에로 곧바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위대한 통찰력이 공자의 사상 속에는 혼합되어 있다. 정치가로서의 공자는 당시 사회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서는 문명화된 정치적, 사회적 통일의 근본적 토대로서 문화적 통합이 요구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철학적 인간학자로서의 공자는 진정한 에식 행위의 이미지 속에 구현된 삶이 진정한 인간서의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라고 확신하였다. 상호 연관되어 있는 이들 주제의 의미 함축은 곧 정치적, 사회적 통일이 바로 예식적인 것이 될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전통 지향적 문화를 바로 예식이 자양분을 공급받는 핵심적인 터전으로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공자는 다음과 같은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통을 그들 자신의 고유하고도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이상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런 전통들이란 (한 개인의 흥미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선택되거나 새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선대에는 합당했었지만 이제 소홀하게 된 전통을 단지 다시 확정짓고 그것에 호소함으로써 새로운 이상을 나타낼 방도는 분명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물론 공자와 같은 시대와 환경 속에 살았던 어떤 사상가는 공자와 전혀 다르게, 즉 전통 지향적이 아닌 다른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이런 (비전통주의적) 대안은 이른바 법가 및 다른-이미 공자 시대에 그들의 철학적 이념들이 정립되어 틀림없이 공자 그 자신에게도 알려졌을-사상가인 제자백가들에 의하여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피력되었다. 예를 들면 법가는 상과 벌이라는 두 계기에 의해 강압적으로 통제되는 사회를 제창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공자의 관심이, 단순히 사회 공동체의 질서 확립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간 존엄, 즉 인간 존재의 분명한 차원을 아름답고 고상하고 거룩한 존재로 보려는 의미에 바탕을 둔 문화의 창달에 있었음을 아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문화의 통합은 인간성 실현의 극치이어야 했지, 결코 사람의 모습을 지닌 (온순한) 양떼를 (공권력을 통해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질서 유지일 수 없었다. 공자의 새로운 이상 구현에 있어서 두번째의 기본적인 요소 (즉 만백성의 합의의 문제), 말하자면 만인이 공유하는 관례들에 기반을 둔 보편적 공동체라는 이상 실현의 문제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 공자가 제안한 내용은 전통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동체를 건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이러한 이념을 보급 확산시킬 수 있는 매우 적합하고 강력한 논의 형식을 이미 치지 냈다고 생각했다. 실로 그는 인류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를 내림 논의 형식, 즉 이야기 특히 고대의 신화나 일화 이야기를 이용하였다.
모든 사회는 추상적인, 특히 정신적인 문제들을 명료하게 규정짓는 그들 나름의 특징적인 방식에 있어서 서로 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 중 하나의 방법, 즉 이야기의 사용은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며 또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야기들에 <역사>, <신화>, <전설>등 여러 가지 명칭을 붙인다. 이들 이야기 형식들에서, 예를 들면 (한 위대한 인물의) 탄생이 갖는 도덕적, 법적, 정신적, 심리적 측면은 추상적 개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탄생신화-즉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이야기-의 맥락에서 제시된다. 이야기는 말로도, 몸짓으로도, 또는 문자로도 나타날 수 있다. 사망, 혼례, 치적, 인간 관계,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 등의 문제들은 모든 사회에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몇몇 문화권 즉 유럽, 인도, 중국 문명에서 우리는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적용된 추상적, 이론적 교설이나 분석을 찾아볼 수 있다.
삶의 외형적 실상보다는 그 의미를 포착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삶에 대한 추상적 개념의 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삶과 대비(대칭)되는 사건들의 이야기 형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칭의 세계는-우리의 현세와 경쟁 대립되지만-다른 영역(하늘이나 올림푸스 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어질 수 있다. 또는 이런 대비적 세계는 지상에 있는 바로 우리집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의 이야기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이야기에 나오는 시대는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보다 훨씬 옛날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옛날 다른 곳에서 발생한 사건의 이야기라는 형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다른 시기나 장소로 옮겨서 말하거나, 인물들이 가진 능력들이나 품행을 이상적(또는 극단적)으로 규정해서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식은, 최근의 진짜 인물이나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기억과 꼭 합치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의 단점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 (이야기라는) <다른>세게와 우리 자신의 (현실) 세계 사이의 이런 작용은 우리 인생의 의미가 매일매일의 일상적 삶의 사건들을 초월하기도 하고 동시에 정말 그 속에 구현되기도 하는 (삶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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