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6장 포숙아, 관중을 추천하다
동평 고을의 조궤
한편 노나라는 제나라를 치기 위해서 병차를 모으고 있었는데 제나라에서 먼저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노장공이 시백을 불러 물었다.
"제나라가 먼저 쳐들어온다 하니 이를 어찌 막으면 좋겠는가? 좋은 방도를 아뢰어라."
시백이 아뢰었다.
"신이 한 사람을 추천하겠습니다. 그 사람이면 능히 제군을 물리칠 것입니다"
"경이 추천하려는 이가 누구요?"
"그의 성은 조(曺)이며, 이름은 궤라고 합니다. 지금 동평(東平)이란 시골에서 농사짓고 있습니다만 큰 인물입니다. 부르시어 대임(大任)을 맡기십시오."
노장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백에게 어서 그를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이에 시백은 곧 동평 땅으로 가서 조궤를 찾아보고 벼슬살기를 청했다. 이 말을 듣고 조궤가 웃었다.
"고기 먹는 사람도 계책이 없어서 이렇듯 나물 먹는 사람에게까지 와서 벼슬을 권하는가?"
시백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물 먹는 사람이라야 능히 계책도 있고 또 고기도 먹을 수 있지 않겠소."
그들은 서로 웃으며 수레를 타고 동평 땅을 떠나 도성으로 향했다. 그들이 함께 궁으로 가서 노장공을 뵙자, 노장공이 조궤에게 물었다.
"지금 제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니 이를 어찌 당적할 것인지 그대는 마땅한 계책이 있소?"
조궤가 대답했다.
"군사란 그때그때 형편에 맞도록 전략을 써서 승리를 노릴 뿐입니다. 어찌 싸움터에 가서 보지도 않고 미리 방책을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신에게 탈 것을 주시면 싸움터로 가는 동안에 제군(齊軍)을 물리칠 계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노장공은 조궤와 함께 병차를 타고 군사를 이끌고 바로 장작 땅을 향해 갔다.
한편 포숙아는 노장공이 친히 장수가 되어 병차를 거느리고 장작 땅으로 온다는 보고를 받자, 즉시 진을 단속하고 진격하라는 북소리 한 번에 노나라를 무찔러 위용을 과시하고 자 대기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장공이 장작 땅에 이르러 곧 진을 치고 제나라 군대와 대치했다. 포숙아는 노장공과 그의 군대를 처음부터 깔보고 있었다. 그래서 곧 부하 장졸에게 명령했다.
"북을 울리고 즉시 진격하라. 먼저 적진을 돌파하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릴 것이로다."
노장공은 진동하는 제나라 군대의 북소리를 듣자, 노나라 군사들에게도 북을 울려 맞대응하라고 지시하는데 곁에 있던 조궤가 이를 말렸다.
"제나라 군세가 바야흐로 매우 날카롭습니다. 이럴 때는 조용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고는 즉시 명령했다.
"누구든지 명령을 받지 않고 싸우자고 선동하거나, 경거 망동하는 자가 있으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참하겠다. 모두들 조심하여라!"
이 때 제군은 노진(魯陣)을 공격했다. 그러나 노진은 고요할 뿐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요새 같았다. 결국 제군은 노진을 무찌르지 못하고 물러갔다. 조금 지난 후 제군은 다시 북을 울리면서 노진을 향해 공격해 왔다. 그러나 노군은 역시 조금도 꼼짝하지 않았다. 포숙아가 말했다.
"이건 노나라 군사가 우리를 무서워해서 꼼짝않고 있는 것이다. 한 번만 더 북을 울리면 그들은 질겁해서 반드시 도망칠 것이다."
제군은 또 일제히 북을 울렸다. 그 세 번째 북소리를 듣고서야 조궤가 노장공에게, 아뢰었다. "이제야 제군이 패할 때가 왔습니다."
조궤가 단호하게 하령(下令)했다.
"북을 울려라."
노군은 북을 울렸다. 제군은 두 번이나 공격해도 싸움에 응하지 않는 걸 보고 노군을 업신여겼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방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소리를 단 한 번 울리고서 노군이 일시에 벌떼처럼 공세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노도와 같이 쳐들어오는 노군은 닥치는 대로 치면서 빗발처럼 활을 쏘아대지 않는가. 노군의 형세는 그야말로 맹수들의 질주 같았다. 제군은 이리 거꾸러지고 저리 쓰러지며 패주하기 시작했다. 장공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즉시 추격하려는데 또다시 조궤가 말렸다.
"잠시만 계십시오. 신이 제나라 진지를 살펴본 뒤에 추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십시오."
조궤는 곧 제군이 진을 쳤던 곳으로 가서 그들이 머물렀던 모습을 세세히 살펴보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멀리 제군의 도망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는 마음놓고 추격할 만합니다."
이에 노장공은 급히 병차를 휘몰아 도망치는 제군의 뒤를 쫓았다. 제군은 정신없이 달아났다. 노장공은 30여 리나 뒤쫓다가 돌아왔다. 노획한 무기와 군수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포숙아의 절치부심
노장공은 제나라 군사에게 크게 이겼다. 건시 땅에서의 패배를 설욕한 것이다. 노장공은 기뻐하며 조궤에게 물었다.
"경은 세 번이나 북을 울린 제군을 한 번 북을 울려 단번에 물리쳤으니 이 어인 까닭이오?"
조궤가 대답했다.
"무릇 싸움은 기운을 주로 삼습니다. 기운이 씩씩하면 이기며, 기운이 쇠하면 집니다. 북을 울리는 것은 기운을 돋우기 위한 것이온데 한 번 울리면 기운이 일어나고, 두 번 울리면 기운이 쇠하고, 세 번 울리면 기운이 끝납니다. 신은 처음부터 북을 울리지 않고 우리 노군(魯軍)의 기운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군은 북을 세 번 울려 기운이 끝났기에 신은 북소리 한 번으로 우리 군대의 기운을 일으켰습니다. 즉 솟아오르는 기운으로 쇠진해지는 기운을 누른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일어나는 우리 노군이 끝나가는 제군에게 이기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노장공이 다시 물었다.
"제나라 군사가 패해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 경은 어찌하여 즉시 추격하지 않고 그들의 진지를 유심히 살폈는가?"
조궤가 대답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예전부터 잔꾀가 많습니다. 혹 신은 복병이 있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달아나는 제군을 추격하지 않고 그들이 머물렀던 진지를 직접 가서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병차의 바퀴 자국이 종횡으로 산란하게 엉켜 있었습니다. 이는 제군이 얼마나 당황해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도망치는 그들의 후미를 바라보니 정기(旌旗)가 정연하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신은 그들이 계책을 세워 놓고 우리를 유인하기 위하여 도망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삼군에게 추격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노장공은 얼굴 가득히 웃으며 연신 찬탄했다.
"참으로 뛰어나구려. 그대야말로 병법의 참뜻을 아는 장수로다."
이에 노장공은 조궤에게 대부 벼슬을 내리고 조궤를 추천한 시백에게도 크게 상을 내렸다.
한편 제나라 군사는 크게 패하여 힘없이 돌아왔다. 제환공은 몹시 화가 났다.
"군사가 싸움터에 나아가 작은 노나라에도 공(功)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천하의 제후를 거느리고 호령할 수 있겠소."
포숙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제와 노는 군사에 있어서 같이 천승(千乘)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병세에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지난날 건시 땅에서 싸웠을 때 우리가 이긴 것은 우리가 주인이었고 노나라가 객의 입장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장작 싸움에서는 우리가 객의 처지가 되었고 그들이 주인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패했습니다. 비슷한 힘으로 객이 주인을 당적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그러나 노나라에 패한 것은 정말로 참을 수 없는 수치입니다. 이제 신은 주공의 명으로써 송(宋)나라에 원조를 청하고 양국이 힘을 합치고 연합군을 편성하여 노를 쳐서 이 수치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공께서는 이를 허락해 주소서."
제환공은 허락하고 송나라로 사신을 보내어 함께 노나라를 치자고 청했다. 이 때가 주장왕 30년 되는 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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