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5장
4. 새 임금이 누구냐
6. 관중의 구사일생
관중의 탈출
노장공은 곧 함거를 호송하는 대장을 불러 성 밖으로 나가면 곧 함거를 부수고 관중의 목을 베어 제나라 사신에게 넘겨 주라는 분부를 했다. 시백은 참으로 현명한 처사라고 노장공에게 극구 거듭 치사하고 궁에서 물러났다. 한편 습붕은 궁으로 오다가 노나라가 직접 관중을 죽이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황급히 노장공에게 달려가 말했다.
"지난날 관중은 우리 임금을 죽이려고 독화살을 쏘았습니다. 그것이 다행스럽게도 허리띠 갈고리에 맞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임금께 관중은 철천지 원수입니다. 지금 만약 손수 관중의 목을 참하여 관중의 목을 보낸다면 우리 임금은 원수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를 살려서 내어 주십시오. 그래야 우리 임금께 원수를 데려갈 수 있습니다."
노장공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보검을 내밀며 분부했다.
"이 검을 내보이면 호송대장이 함거를 내줄 것이오.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제후에게 과인의 안부를 전해 주시오."
습붕은 노장공에게 숙배하고 보검을 받아쥔 채 곧바로 함거 뒤를 뒤쫓았다. 벌써 함거는 성 밖으로 나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아차, 늦은 게 아닌가?'
습붕은 기겁하고 놀라 달려나갔다. 그 때였다. 멀리 함거가 보였다. 함거는 멈춰 서 있고 벌써 죄인의 목을 베려고 하고 있었다.
"멈추시오. 군명(君命)이오!"
습붕이 보검을 흔들며 달려가자 노나라 군사들은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이 검을 내리시며 전하라 하셨소. 함거를 제나라 사신에게 넘기라고 말이오."
병사들은 보검을 확인하자 함거를 내줬다. 습붕은 함거를 인수받자 곧 제나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함거 속에서 관중은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질기도다. 관중의 목이여!' 관중은 달리는 함거 속에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만감에 젖어 있었다. '시백은 뛰어난 인물이다. 그가 과연 이대로 나를 내보네 줄까? 이 노나라에서...... 그가 다시 병사를 보내 나를 해치고자 한다면 그 때는 살아날 길이 없구나.' 생각할수록 답답해지고, 달리는 말은 왜 이리 늦는지.......관중은 곧 노래를 하나 지어 함거를 모는 일행에게 가르쳤다.
노란 따옥새여, 노란 따옥새여
왜 날개를 접고 가만히 있나
발이 비트러 매어 있기 때문이다.
날지도 울지도 못해 새장 속에 엎드려
높은 하늘 보며 쭈그리고 있으니
땅은 두터운데 왜 누워 있는 거냐
불행히도 액년을 맞아
목을 뽑고 길게 부름이여
마침내는 울음으로 바뀌는도다.
노란 따옥새여, 노란 따옥새여
하늘이 날개를 주셨기에 능히 날며
하늘이 발을 주셨기에 능히 달리는도다
액난에 사로잡혀 있음에 누가 구할까
하루아침에 울을 부수고 나감이여
내 어떻게 여기서 벗어나야 할지
슬프다, 저 새잡는 사냥꾼이 따라오도다.
함거를 끄는 수행인들은 이 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어느새 신바람이 나서 박차를 가했다. 박자에 맞추어 흥얼대다 보니 피로한 줄도 몰랐다. 꼬박 이틀이 걸릴 노정이 단 하루로 단 축되었다. 그렇게 달려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수(汶水)를 넘어 문양 땅으로 가는 관도에 들어섰을 때였다. 멀리 뒤에서 먼지 구름이 산처럼 피어올랐다. 노나라의 추격병이었다.
관중과 포숙아의 재회
관중이 걱정한 것처럼 시백이 관중을 살려준 사실을 알았다. 시백은 곧 궁으로 달려가 노장공에게 관중을 도로 잡아오든가 아니면 처치하라고 간했다. 노장공은 더럭 의심이 났다. 습붕의 태도가 어딘지 어색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당장 공자 언을 불러 분부했다.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라. 관중에게 죄를 씌워서 잡아와라. 만일 관중을 다시 데려올 수 있다면 몰라도 여의치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여라."
습붕은 뒤따라오는 먼지 구름을 보고 상황을 눈치챘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 추격병에 잡힐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함거를 부수고 관중을 끌어내서는 자신들의 날쌘 수레에 태우고 급히 속도를 더해 도망쳤다. 노나라 추격병이 달려와 깨어진 함거를 발견했을 때, 관중을 실은 수레는 다행히도 습붕을 마중나온 포숙아의 진영에 때 맞춰 당도할 수 있었다. 포숙아가 관중을 맞이했다.
"자네를 영 못 보는 게 아닌가 염려했는데 하늘이 도와 이렇듯 만나는구려."
포숙아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이렇듯 초라한 몰골로 잡혀온 것이 부끄럽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는가? 천하를 품에 안아도 시원찮을 그대가......."
"내 원래 공자 규를 받들었으나 임금 자리에 올려 모시지 못했고, 소홀처럼 능히 신하된 자의 절개를 지켜 죽지 못했으니 어찌 할 일을 다했다고 할 것인가? 그러니 자네의 대접을 받을 분수가 되겠는가. 그저 하늘 향해 쳐다보기가 부끄럽고 친구 보기가 민망하고 쑥스러울 뿐이네."
포숙아가 달랬다.
"큰일을 하는 자는 작은 일에 결코 구애받지 않으며, 큰 공을 세우기 위해서는 작은 절개에 절대로 연연하지 말라고 내게 말한 것은 자네일세. 더구나 그대는 천하를 다스릴 영걸이라, 누가 제나라 임금이 되든 자네의 재주가 우리 제나라에 절실히 필요하네. 그대는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말게."
관중은 포숙아의 위로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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