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철학 - H.핑가레트
제1장
정확하고 올바른 언어는 단순히 유용한 첨가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예식을 실행시키는 핵심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우리는, 공자의 유명한 정명론이 단순히 낱말-묘술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라거나 전통을 가르치려는 관심에서 나온 공자의 현학적인 노력의 표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또한 <실체>론-또는 플라톤의 이데아, 혹은 그와 유사한 신유학적 개념-을 읽어야 할 어떤 이유를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논어>는 그런 원리에 대한 어떤 암시도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대적 철학 원리를 고전의 가르침에서 읽어내는 일에매우 조심해야만 한다. 그러나 글자나 정신 면에서 <논어> 원전은 인간을 예식적존재로 보는 우리 자신들의 최근년에 등장한 관점을 지지하며 풍부하게 해주고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식의 작용과 연관하여 공자는 단순히 현저하게 인간적인 성격을 또한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는 이제 공자가 신성한 예식을 형성화하여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을 통합하고 그것을 구석구석까지 주입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그 사실을 밝히는 것에 우리 분석의 초점을 맞추어야만 한다. 아마도 현대의 서구인이라면, <몸으로 비워 익힌 관습과 언어를 이지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일>을 말하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지적 실천은 (서구적) 시속에 맞는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고리(한계)를 가지게 된다. 사실 현대 분석 철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즉 가치 중립적, 과학적으로) 말을 하여 상식을 지키며 (그 이상의 언급은) 삼가는 편이다. 그러나 이럽게 해서는 공자의 중추적 이미지가 성취했던 그런 것을 얻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거룩한 예를 인간 존재의 비유로 형상화시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 존재 속의 신성한 차원에 눈을 돌리게 된다. 거룩한 예가 그 거룩함의 절정에 달해서는 여러가지 차원을 갖게 된다. 예는 사회적 형식의 조화와 아름다움, 인간 상호 관계의 내재적이고 궁극적인 존엄성만을 강하게 나타내어 주는 것만은 아니다. 예식은 또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타인과 함께 예 안에서 (무리와 충돌 없이) 자유스럽게 공동 참여(활동)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함축되는 도덕의 완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좀더 나아가 말하자면, 예식을 따라 하는 행위는 타인(또는 그것을 바라보는 상대방)에게도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식은 공개적이고, 공동 참여적이며, (따라서 누구에게나) 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식과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비밀스럽고, 요령 부득이하고 정도에서 벗어난 것이거나, 아니면 독재적 폭력에 의한 강제성을 띤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자기와 같은 타인(상대방)들과 함께 어울려 이러한 예식에 아름답고 근엄한 공개적인 참여릎 통하여 인간은 자기 인격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완전한 공동 생활-그리스도교의 형제애와 유사한 유교적 대비-은 신성존경과 불가분한 한 부분이라는 주요한 면모, 다시 말해 예수 가르침의 중추적 계율과 맞먹는 유사성을 다시금 갖게 되었다.
좁은 근원적 의미에서 신성한 예식은 인간의 현세 ㅅ활 밖에 있는 정신적 존재(혼령)들을 전적으로 신비스럽게 위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공자는, 당연한 추론이지만, 우리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였다. 정신은 더 이상 예식에 의해 감응을 받은 외재적 존재가 아니다. 정신은 예식 안에서 표현되며 그 안에서 가장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이다. 인간의 현세 영역에서 다른 초월적 세계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시키지 않고서, (인간은 누구나 공개적으로 거룩한 예식을 올림으로써) 그 거룩함의 내용을 참된 인간 존재의 차원으로 표현하며 (동시에 그 참된 인간 존재의차원에 몸소) 참여한다는 양방면에서 바로 공개적인 거룩한 예식은 (인간 존재의) 중추적 상징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명백히 거룩한 예는 이렇게 도를 인간 문명 속에, 보다 포괄적이고 이상적이며 전면적인 예식의 조화를 통하여, 완전하게 체현해 내는 찬란한 중심점이 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은 그 전체면에 있어서 마침내 하나의 광대하고, 자발적이며 거룩한 예, 즉 (신성스런 예식에 공동 참여를 통하여 사람들과 사람들이 서로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융합해 나가는) 인간의 공동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궁극적인 관심>이었다. (원자적으로 각기 고립되고 자기 완결적인) 개개 인간들의 삶 자체보다 더 문제가 되는 유일한 것이 바로 이 점이라고 공자께서는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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