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4장
3. 노나라의 세 가지 수치
관중의 폭로 작전
제양공은 팽생을 죽임으로써 세상에 자기 죄상을 모두 폭로한 셈이 되었다. -여동생과 관계를 맺고, 매부를 죽인 놈. 백성들은 손가락질하며 은밀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포숙아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 제양공의 시대도 얼마 남지 않았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 있었다. 어떻게 하여 노나라에서 공자 팽생의 비밀을 그렇게 빨리 알아낼 수 있었느냐는 점이었다. '누군가 귀뜸해 주었음이 틀림없다.' 포숙아는 이렇게 단정했다. '누굴까? 팽생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 인물이.......' 관중을 만났을 때 포숙아는 이 궁금증부터 풀고자 했다.
"자네도 아다시피 팽생을 죽인 자는 제후이지만, 누군가 노나라에 귀뜸해 주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는가? 난 그런 생각이 드는데 자넨 어떤가?"
관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듯하군. 아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지."
포숙아가 진지하게 물었다.
"자네 생각도 그렇다면...... 누구 심중에 잡히는 인물이 있지 않겠는가?"
"제양공을 임금 자리에서 몰아내려는 사람 가운데 하나겠지 누구겠나?"
관중의 말에 포숙아는 잠시 말이 막혔다. 순간 포숙아의 뇌리에 번개처럼 반짝하고 스쳐가는 하나의 예감이 있었다.
"혹시 자네가......."
관중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 신수의 집에 내 먼 친척되시는 어른이 가신으로 있네. 그분에게 부탁했었네."
포숙아는 밝은 표정으로 감탄했다.
"제후가 무도하다는 걸 여실히 밝힌 쾌거일세."
관중은 고개를 흔들었다.
"약간의 상처 정도를 낸 셈이지. 생각보다는 효과가 크지 못하단 말일세. 노나라 쪽에서도 팽생을 죽인 것으로 더 이상의 문제를 삼지 않으려는 듯하고, 주왕실이나 다른 나라 군후들도 별다른 반응이 없거든."
"아닐세. 지금 백성들 사이에서는 제양공을 배척하는 흐름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네."
"그런 정도로는 강태공 이래 13대가 계속되어 온 제나라 군위(君位)가 흔들리지는 않지. 그동안 역대 군후들이 쌓아온 적공(積功)이 그 얼마인가!"
"노나라가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을까?"
포숙아의 물음에 관중이 대답했다.
"새로 군위에 오른 노장공은 문강의 아들인데, 이복형이 있고 해서 나라 안이 그렇게 안정되어 있지는 않다네. 그리고 그는 모친에 대한 효도가 깊다고 하더군. 그래서 문강도 귀국조차 않고 있는 거라네. 제양공과 문강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정도에서 두 나라 사이의 일이 매듭지어질 것 같네."
수치를 면하는 방법
사실 관중의 추측처럼 노나라에서는 새로 신하들의 벼슬을 정하고, 서출의 공자 경부와 노장공의 친동생 계우(季友) 등이 국정에 참여하는 등 공자들을 발탁하는 내정 쇄신(內政刷新)으로 난국을 돌파하고자 했다. 새로 신하들의 벼슬을 정하는 등 조정의 기강을 세운 노장공이 신하들과 상의했다.
"제양공은 장차 왕희(王姬)와 결혼한다. 우리는 그 혼사를 주관하려다 선군을 잃게 되었다. 그러니 제양공과 왕희의 혼사를 돌봐 줄 수도 없고, 또 모른 척하는 것도 주왕실의 권위를 생각할 때 곤란하다. 어찌하면 좋겠소?"
시백이 아뢰었다.
"우리 노나라에 세 가지 수치가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이를 아시나이까?"
노장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세 가지 수치라니...... 그게 뭐란 말이오?"
시백이 차근차근 아뢰었다.
"선군이 비록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난 날에 형님을 죽이고 군위에 올랐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이에 대해서 좋게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수치입니다. 다음은 지금 선군(先君) 부인께서 국모(國母)이신데 귀국하지 않으시고 제나라에 머물고 계십니다. 주공의 입장에서는 모친이 외국땅에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수치입니다. 이제 제나라 양공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주공께서 상주의 몸으로 그의 혼사를 돌봐 주어야 합니다. 모른 척하면 왕명을 거역하는 게 되고 왕명에 따르면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수치입니다."
노장공이 놀라 앞으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 세 가지 수치를 어찌하면 면할 수 있겠는가? 계책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오."
시백이 아뢰었다.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아름다운 일을 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 면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스스로 믿어야 합니다. 선군께서는 군위에 계시는 동안 천자의 인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주공께서는 왕에게 청하여 선군의 군위를 정식으로 인정받으십시오. 그러면 한 가지 수치가 덜어집니다. 다음은 지금 제나라에 계신 국모를 모셔오는데 사람을 보내어 국모에 대한 예의를 다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시면 두 번째 수치가 덜어집니다. 그 후에 왕희의 혼사를 주관하는 일인데 먼저 왕희를 위해 관사를 지으십시오. 그리고 주나라에 가서 왕희를 출행(出行)시켜 그 곳으로 모신 후 그 다음에 제나라로 전송해 보내십시오. 주공께서는 상주의 몸이라 바깥 출입을 못하는 중이라 이렇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됩니다. 결코 예의에 어긋나지 않고 세상의 비웃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노장공이 크게 찬탄했다.
"과연 그대의 지혜는 무궁무진이로다."
마침내 노장공은 시백이 시킨 그대로 했다. 우선 노나라 사자는 주나라에 가서 주장왕을 뵙고 왕희를 모시러 왔다고 하고는 겸해서 청했다.
"세상을 떠난 저희 선군께서 저 세상에서나마 영화롭도록 제후의 복식과 비품을 내려 주소서."
주장왕은 이를 허락하고 죽은 노환공을 제후로 추증해 주는 한편 노장공을 정식으로 제후의 반열에 임명해 준 후 왕희를 내줬다. 노나라 사신은 백배 사은하고 나서, 왕희를 모시고 우선 노나라 행관으로 와서는 일박한 후 제나라까지 바래다 줬다. 그는 제나라에서 선군의 부인 문강을 모시고 본국으로 돌아와야 할 사명까지 띠고 있었다. 마침내 제양공은 왕희와 혼례를 치뤘다. 그런데도 제양공은 문강을 곁에 두고 싶었다. 문강도 마찬가지로 제나라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의 공론(公論)이 무서웠다. 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문강을 실은 수레가 제나라를 떠났다. 그러나 문강은 아직도 제양공을 잊을 수 없었다. 이제는 남편마저 없는 과부 처지이니 더욱 그랬다. 그리고 노나라로 돌아가 자식을 대하기가 부끄러웠다. 자신이 음탕하여 남편을 죽게했다는 자책도 마음 한편에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쉴 줄 모르고 달리기만 하는 수레가 문강에게는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어느덧 수레가 작 땅에 이르렀다. 문강은 수레 밖을 내다보다가 길가에 서 있는 한 깨끗한 행관(行館)을 보고 달리는 수레를 멈추게 했다. 그러고는 수행원들을 불렀다.
"너희들은 돌아가 노후에게 전하거라. 이 미망인은 이 곳에서 살다가 죽으련다. 여기는 노나라도 아니고 제나라도 아니니 바로 내가 살 곳이다."
사신은 그대로 돌아가 노장공에게 문강의 말을 전했다. 노장공은 자기 어머니가 돌아올 면목이 없어 그러는 줄 눈치채고 축구(祝邱) 땅에다 좋은 저택을 짓고, 문강을 영접하여 그 곳에서 살도록 했다. 이에 문강은 제나라와 노나라를 왕래하며 그 곳에서 세월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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