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2장
관포지교
1. 포숙아와의 만남
소년 명궁, 관중
(영상 땅에서 농부로서 일생을 마친 좌붕 노인이나 이후 위나라에 당도한 이오 소년과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사료(史料)나 일화(逸話)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이오 소년, 즉 관중(管仲)과 그의 어머니 두 사람만이 다시 제나라로 돌아와 도읍인 임치성 저잣거리에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루어 보면 그의 아버지나 의형제라고 한 사내는 위나라에서 주우의 변란중에 죽은 듯하다. 그리고 관중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고향인 영상 땅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임치성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듯하다.
후대에 두보(杜甫)가 말했다.
-그대는 아는가. 관중과 포숙아의 참된 우정을.......
당(唐)나라가 크게 번성하여 흥청거리던 시절, 의리(義理)니 우정(友情)이니 하는 덕목(德目)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니, 덕목을 지키는 사람은 바보나 천치처럼 오히려 따돌림을 당했다. 돈을 가진 자들과 권력을 지닌 자들의 사치와 방종과 뇌물과 야합이 마치 일상의 다반사처럼 되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시인의 마음은 한없이 아프고 쓰라렸다. 그는 더럽혀진 세상을 염려하면서 저 옛날 춘추 시대의 관중과 포숙아가 지녔던 참다운 우정과 인간미를 상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관포지교(管理之交). 타락해 가는 세상을 향해 시인의 뜨거운 육성(肉聲)은 메아리쳤다. 관중과 포숙아의 그 진실한 우정을 되새겨 보자고......
관중과 포숙아가 제나라 임치성에서 처음 만난 것은 주환왕이 등극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제희공이 나라를 다스리던 때였다. 두 사람 모두 10대 초반이었다. 임치성 남문(南門) 밖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 곳에서는 평상시에 마차 경주와 활쏘기 대회가 자주 열렸다. 공자(公子)나 대부(大夫), 장군(將軍) 등 귀족들은 마차 경주를 즐겨했고, 일반 백성들은 활쏘기 대회에 참가하거나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특히 활쏘기는 검술(劍術)과 더불어 나라의 정책적인 후원을 받고 있었다. 임금인 제희공(齊僖公)이 직접 -평상시(平常時)에는 부담없이 행하고 즐기면서 심신을 단련하는 운동으로, 전쟁시(戰爭時)에는 적(敵)을 무찌르고 목숨을 보호하는 호신무술(護身武術)로 활쏘기와 검술을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라- 는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당시 제나라의 활쏘기 대회는 특이했다. 짚으로 만든 큰 동물을 밧줄로 끌어당기거나 밀었다 하는 동안에 아홉 개의 화살을 쏘아 많이 맞추는 쪽이 승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홉 개의 화살로 시합을 하게 한 까닭은 '영웅신 예'가 태양을 향해 쏜 아홉 개의 화살과 연관이 있었다. 관중은 이 활쏘기 대회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부터 그는 활쏘기에 능했다. 몇 차례의 대회를 눈여겨본 관중이 활쏘기 대회에 참가하여 곧 두각을 나타냈다. "열 다섯 살 소년이 백발 백중이다!" 관중이 대회에 참가한 후부터 소문이 임치성 내에 퍼졌다. 바로 관중의 활 솜씨가 발휘된 것이다.
어린 가장의 포부
어느 날 관중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오늘은 참 재미나는 활쏘기를 하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바느질을 계속하면서 물었다. "어떤 활쏘기인데 그렇게 재미가 있더냐?" "나무로 큰 말을 만들고 그 위에 짚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밧줄을 걸어 놓고 끌어당겼다 밀었다 합니다. 그러면 궁사(弓士)들이 각기 편한 위치에서 아홉 개의 화살을 쏘아 말에다 많이 맞추면 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등을 하면 상품을 줍니다." 관중은 상품으로 받은 대나무 쟁반을 어머니 앞으로 밀어 놓았다. "웬 쟁반이냐?" "오늘 활쏘기 대회에서 일등한 상(賞)입니다." 어머니는 말이 없다. 칭찬을 해 주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야 관중을 슬쩍 바라보고는 한마디를 했다. "간혹 활쏘기도 좋겠다만....... 학문도 익혀야 되지 않겠느냐." 관중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거역하기 어려운 말씀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관중이 말을 머뭇거리자 어머니가 대답을 재촉했다. "말하려므나." "저는 우선 재물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관중을 바라보았다. "......." 관중은 덥석 어머니의 손을 감싸쥐며 결연한 목소리로 다짐하듯이 말했다. "저는 이 집안의 가장(家長)입니다. 제 나이 벌써 열 다섯이니 마땅히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은 이르다." 어머니도 결연한 음성이나, 자신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늦은 감이 듭니다." 모자(母子)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관중이 차근차근 다시 말했다. "어머님, 지금 우리는 너무나 가난합니다. 어머님이 밤을 새워 일하셔도 몇 전 모이지 않습니다. 이래가지고는 평생 동안 집 한칸 마련할 수 없습니다. 또 제가 벼슬길에 나아가고자 할 때 쓸 재물도 없습니다." 어머니도 잘 안다. 지금 고향에서 수백 리 떨어진 객지에 두 모자만이 의지할 일가 친척 하나 없이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재산이라고는 나무 궤짝 하나 없다는 것을. 더구나 당시 벼슬길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천거해 주는 사람을 찾기 위해 상당한 재물을 써야 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미로서 충실한 힘이 없고, 또한 부친마저 없는 신세이니 네 생각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구나. 다만 신의를 저버려서 사람을 잃지 말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져 몹쓸 죄를 짓는 일은 없어야겠다. 알겠느냐?" 관중은 그제서야 얼굴을 활짝 펴고 다짐하듯 대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어머님. 결코 남의 것을 훔친다거나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또 왕법(王法)에 어긋나는 일은 목숨이 걸린 일일지라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양심에 비추어 행동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그날 밤 모자는 신비스럽게도 모두 좌붕 노인의 꿈을 꾸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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