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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장
작은 행복
4. 예기치 않은 유랑(3/4)
위환공을 모시고 왔던 신하들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지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주우 부중의 장사들이 행관을 에워싸고 반항하는 위환공의 시종 몇 명을 죽이자 모두 무릎을 꿇고 자기 살길만 도모하는 것이었다. 주우는 이렇게 한 후 즉시, 주공께서 급살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주우는 드디어 군위에 올랐다. 시간이 흐르자, 백성들은 주우가 한 일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주우가 석후와 짜고서 형을 살해하고 임금 자리를 강탈했다고 욕하기 시작했다.
"천하에 고약한 놈이로다."
임금 자리에 앉은 주우는 백성들의 인심이 잡히지 않았음을 알았다. 더욱이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자신이 형을 살해했다고 욕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주우가 심복들을 불러 모았다.
"민심이 흉흉한데 이럴 때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는 길밖에는 없다. 장차 어느 나라를 대상으로 삼았으면 좋겠는가?"
한 심복이 대답했다.
"우선 천하에 어진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소문을 내십시오. 그 후에 병사들을 모으고 전쟁할 준비를 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먼저 대부 석작을 모셔오십시오. 그는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습니다."
주우가 즉시 석후를 불렀다.
"경의 아비를 입조시켜 국사를 의논하려 하는데 어찌하면 좋겠는가? 과인이 직접 모시러 가볼까?"
석후가 대답했다.
"신의 아비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압니다. 주공께서 친히 가실지라도 만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신이 군명(君命)으로 만날까 합니다."
석후는 궁중에서 나와 오랜만에 집으로 가 부친의 얼굴을 뵈었다.
"새로 군위에 오르신 임금께서 아버지를 공경하며 사모하십니다."
백발이 성성한 석작이 아들에게 꾸짖듯이 물었다.
"내가 필요한 까닭이 있을 게 아니겠느냐? 말해 봐라!"
석후가 사실 그대로 말했다.
"아직 군위가 안정되지 못하였기에 부친을 모셔다가 백성에게 안심도 시켜 주고 지시도 받을까 함입니다."
석작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구나 군위에 오르면 조정에 가서 품하고 인증(認證)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새 주공이 낙양에 가서 천자를 뵈오면 왕은 보불(예복)과 면(모자)과 수레와 의복을 내줄 것이다. 그것을 받고 봉명하면 비로소 임금이 된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이 어찌 딴 소리를 하겠느냐."
"참으로 좋은 말씀이십니다."
석후는 머리를 조아리면서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까닭없이 임금이 바뀌었다고 직접 조정에 들어가면 왕이 필시 의심하리니, 어떤 방도를 찾아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교해 주십시오."
석작이 지시했다.
"지금 진후는 주왕에게 모든 충성을 바치고 있다. 그래서 주왕은 진후와 매사를 상의하고 있다. 그러니 새 주공은 우선 진나라에 가서 잘 말하고 진후로 하여금 다리를 놓아 조정에 들어간다면 무슨 난처할 것이 있겠느냐."
석후는 감탄하고 곧 주우에게 가서 아비의 생각을 전했다.주우는 크게 기뻐하고는 석후와 함께 예물을 준비한 후 진나라로 떠났다. 그날 밤 석작은 칼로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혈서를 한 통 썼다. 그리고 심복를 불렀다. 그에게 혈서를 내주며 신신 당부하며 간곡히 분부했다.
"네 지금 곧 진나라에 가서 이를 대부 자검께 드리되, '진환공에게 바쳐 주시오' 하고 아뢰어라. 이는 비밀리에 해야 하느니라. 조심해서 완수하여라."
이리하여 석작이 보낸 밀사가 주우보다 한발 앞서 진나라에 당도했다. 그 혈서의 내용은 이러했다.
"외신 석작(外臣 石斫)은 백 번 절하면서 진현후전하(陳賢侯殿下)께 아룁니다. 위(衛)는 보잘것 없는 작은 나라이지만, 불행하게도 임금을 죽이는 변란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반역한 공자 주우와 외신의 자식 석후가 높은 자리를 탐하여 일으킨 참변입니다. 이 두 역적놈을 죽이지 않으면 천하에 난신(亂臣) 적자(賊子)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외신은 늙고 병들어, 능히 그들을 제압하지 못했으니 그 죄(罪) 어찌 다 말로 할수 있겠습니까. 이제 두 역적이 나란히 수레를 타고 귀국에 입조할 것입니다. 그것은 외신이 계책을 세워 그리 한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귀국이 두 역적놈을 잡아서 죄를 다스린다면 이는 천하(天下)에 다시 없는 의(義)이며 어찌 위나라만의 행(幸)이라 하겠나이까. 외신 돈수 백배하여 현명하신 전하의 처분을 기다립니다."
진환공(陳桓公)은 석작의 혈서를 빠짐없이 다 읽고 대부 자검에게 방도를 물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자검이 아뢰었다.
"그런 놈들을 용서하면 우리 나라까지도 물듭니다. 이제 그 놈들이 진으로 오는 것은 죽을 자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어찌 놔둘 수 있겠습니까?"
진환공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미리 준비하여 두 놈을 사로잡도록 하여라."
자검은 즉시 계책을 세워 두었다. 이튿날 주우는 석후와 함께 진나라에 당도했다. 둘은 임금과 신하로서 자못 뽐냈다. 진환공은 전혀 내색을 않고 공자 타(咤)에게 분부했다.
"성 밖까지 나가서 그들을 성의껏 영접하고 객관에 머물러 있게 조치하여라."
성 밖까지 영접나간 공자 타가 주우에게 공손한 자세로 진후의 뜻을 전했다.
"우리 주공게서 내일 태묘(太廟)에서 귀후(貴侯)와 상견하시겠다고 하더이다."
주우는 진후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자못 은근한 걸 보고 매우 기뻐했다. 다음날, 진나라 태묘의 넓은 뜰에는 횃불까지 밝혀졌다. 진환공은 주인 자리에 앉고, 왼편에는 빈객을 영접하는 사람을 두고, 오른편에는 들어와 예(禮)를 고하는 사람을 서게 했다. 모든 법도는 정연했다. 이윽고 석후가 먼저 태묘에 이르렀다. 문 앞에 보니 큰 패가 서 있다. 그 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써 있었다.
:신하로서 충성치 못한 자와 자식으로서 불효한 자는 태묘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석후가 은근히 놀라면서 대부 자검에게 물었다.
"이 패를 세운 것은 무슨 뜻이오니까?"
자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것은 우리 선군께서 남기신 유훈(遺訓)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잊지 않고자 저희 주공께서 패를 세워 후인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석후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태묘 안으로 들어가 주우를 기다렸다. 조금 지나자, 이번에 주우의 법가가 당도했다. 석후는 법가에서 내리는 주우를 부축했다. 주우는 큰 띠에 구슬을 차고 진나라 태묘에 섰다. 바야흐로 국궁하고 예를 행할 차례가 되었다. 그 때까지 진환공 옆에 서 있던 자검이 문득 안색이 변하며 벽력 같은 소리로 외쳤다.
"이제 천자(天子)의 명을 받들어 임금을 죽인 역적 주우와 석후를 잡는다. 이 두 역적 외에 위나라에서 온 수행원들은 모두 안심하여라."
자검의 호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좌우에서 매복하고 있던 범 같은 무사들이 달려나왔다. 무사들은 단번에 주우부터 잡아 묶었다. 석후는 크게 당황하여 패검을 뽑으려 했으나 칼이 칼집에서 뽑히기도 전에 붙잡혔다. 주우와 석후를 따라온 위나라 병사들은 모두 태묘 밖에 있었다. 그들은 태묘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자검은 품 속에서 석 장의 혈서를 꺼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내용을 밝혔다. 위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그제서야 주우와 석후가 붙잡힌 걸 알았다. 그들은 빈손으로 위나라를 향해 돌아갔다. 진후는 곧 주우를 참하고 석후를 수감한 후 석작에게 통보했다. 석작은 가신(家臣) 누양견을 보내어 수감되어 있는 아들 석후의 목을 자르게 했다. 그후 석작은 대부들의 뜻을 모아 공자 진(晋)을 모셔다 군 위에 앉히기로 했다. 마침내 형(邢)나라에 도망가 있던 공자 진은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주우의 목을 무궁(武宮)에 바치고 선군의 원혼을 위로했다. 그리고 위환공을 위해 다시 발상한 뒤 즉위하였다. 그가 바로 위선공(衛宣公)이다.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 목록 | 바람의종 | 2007.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