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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요록
제1장
작은 행복
3. 시류를 타고 흐르고 흘러
7년 만의 소식
"의형께서는 지금 위나라의 벼슬을 살고 있습니다."
사내는 말하면서 위세라도 하듯이 가슴을 젖혔다.
"위나라에서?"
좌붕 노인은 다소 의아해 했다. 그들이 처음에 떠날 때 정(鄭)나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의 눈치는 빨랐다.
"처음에는 정나라로 갔었지요."
그가 의형과 함께 정성(鄭城)으로 갔을 때 정나라는 임금인 정장공(鄭莊公)과 동생인 태숙 단(太叔 段) 사이에 큰 암투가 일어나고 있었다. 암투의 전말은 이랬다. 암투는 원래 그 어머니 강씨(姜氏)의 잘못 때문이었다. 강씨 부인에게 소생이 둘 있었다. 장자의 이름은 오생(寤生)이며, 다음 아들의 이름은 단(段)이었다. 큰아들의 이름이 하필 잠깰 오(寤)자 태어날 생(生)자로 정한 데에 는 이유가 있었다. 강씨는 큰아들을 낳을 적에 해산 자리에 앉아 보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강씨는 깊은 잠을 자면서 자기가 해산하는 꿈을 꾸었다. 문득 잠을 깼을 때에는 이미 어린것이 태어나 울고 있었다. 강씨는 매우 놀랐다. 그래서 '깨어나 보니(寤) 태어나 있더라(生)'고 오생이라 했다. 강씨는 이 일을 두고두고 불쾌하게 여겼다. 그 뒤에 낳은 다음 아들 단(段)은 자랄수록 영특했다. 단의 얼굴은 분을 바른 듯이 관옥 같고, 입술은 유난히 붉고, 또 힘이 세고, 활을 잘 쏘았다. 강씨는 이 둘째 아들이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남편인 정무공(鄭武公)에게 단이 어질다고 극구 칭찬했다. 은근히 정나라 다음 군위(君位)가 둘째 아들 단에게 이어졌으면 하고 뜻을 비친 것이다. 그러나 정무공은 점잖게 대답했다.
"자고로 장유(長幼)에는 질서가 있소. 일을 문란스레 하지 마시오. 더구나 오생에게는 아무 허물이 없소. 어찌 장자를 폐하고 차자를 임금으로 세울 수 있으리오."
이래서 오생이 세자가 되었다. 정무공은 단에게는 식읍(食邑)으로 조그만 공성(共城)이 있는 땅을 내주었다. 강씨는 남편 정무공의 이런 처사가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다. 특히 단에게 식읍으로 작은 땅밖에 내주지 않은 것이 속상했다. 이러는 중에 정무공이 죽고 세자 오생이 군위를 이으니 그가 정장공(鄭莊公)이다. 이 때 강씨 부인은 정장공을 보고 탄식했다.
"너는 부친의 군위를 계승하고 물려받은 땅만으로도 수백 리가 넘는다. 그런데 한 배에서 태어난 동생은 궁벽한 곳에서 운신하기조차 어렵다니 참으로 속상하구나."
정장공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모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왜 단에게 제읍(制邑)을 봉하지 않느냐?"
정장공은 난처했다.
"제읍은 가장 험한 지대로 이름난 곳입니다. 선군(先君)께서 그 곳만은 나누어 봉하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기셨습니다. 제읍 이외의 말씀이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강씨가 서슴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경성(京城)을 주면 어떨까?"
정장공은 어이가 없어서 말도 못했다. 강씨가 또 새침해지면서 투덜거렸다.
"그것도 안 되면 차라리 그 애를 다른 나라로 멀리 추방하여라. 타국에 가서 벼슬이라도 하면 입에 풀칠은 하고 살 테니까."
정장공은 모친의 분노를 두려워해서 황망히 그만 수락하고 말았다.
"그럴 것까지 없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튿날 조회 시간에 정장공이 분부를 내렸다.
"단에게 경성을 식읍으로 봉하노라."
신하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놀랐다. 특히 대부 제족(大夫 祭足)은 크게 놀라서 간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으며 한 백성에게 임금이 둘일 수 없습니다. 경성은 이 곳 형앙과 마찬가지로 도성이라 할 만큼 큰 성입니다. 더구나 모부인(母夫人)께서 아끼시는 분이 경성의 주인이 된다면 이는 장차 군위와 맞물린 후환이 두렵습니다."
정장공이 힘없이 말했다.
"이는 모친의 엄한 분부시라 과인이 아들된 입장에서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오."
이리하여 단은 경성을 식읍으로 받았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그를 경성 태숙(京城 太叔)이라고 불렀다. 한편, 경성에 이른 태숙은 부문(府門)을 열고 잔치를 열었다. 서비(西鄙)와 북비(北鄙)의 관장(管長)들이 함께 와서 축하했다. 잔치가 무르익자 태숙 단이 두 관장에게 분부했다.
"지금 너희들이 맡은 바 땅도 내 봉토(封土)의 소속이다. 앞으로 내게 세(稅)를 바쳐라. 그리고 군사와 병차(兵車)도 내 허락없이는 징집하거나 조발할 수 없다. 앞으로 각별히 명심하여 어긋남이 없게 하여라."
두 관장은 오래 전부터 태숙이 국모(國母)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란 것과 장차 정나라 군위를 노리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들은 태숙에 대해서 많이 듣고 있었지만 얼굴을 맞대면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끈하고 잘생긴 얼굴에 출중한 분위기, 그들은 태숙에게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이날 이후부터 태숙은 날마다 사냥했다는 핑계로 성 밖에 나가서 군사와 병졸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또 먼 곳으로 사냥간다 하고서는 병차를 이끌고 마침내 언 땅과 늠연 땅까지 진출하여 두 지역의 관장들에게 주인(主人)과 신하(臣下)의 예로 복종을 요구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를 섬겨라."
두 관장은 마지못해 응낙하는 척하고는 그날 밤 정성(鄭城)으로 도망쳤다. 그들은 정장공에게 호소했다.
"태숙께서 병사를 이끌고 와 저희 고을을 점령한 후, 이제부터는 태숙을 섬기라 했습니다."
정장공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때 신하 가운데 한 명이 나서더니 매우 강경하게 부르짖었다.
"태숙 단을 죽여야 합니다."
상경(上卿) 벼슬의 공자 여(公子 呂)였다. 정장공이 물었다.
"상경은 무슨 좋은 의견이라도 있느냐?"
공자 여가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신하된 자는 임금의 허락없이 결코 군사를 거느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허락없이 군사를 기르고 거느리는 자는 그가 누구든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이제 태숙이 군사를 기르면서 안으로는 모부인(母夫人)의 총애를 믿고, 밖으로는 지방 고을을 빼앗으니 이는 군위를 찬탈할 욕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니 주공께서 상대를 속여 군사를 보내 단을 결박케 해 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장공이 천천히 대답했다.
"단에게 이렇다 할 죄가 없거늘 어찌 그를 죽일 수 있으리오. 그리고 과인의 사랑하는 동생이라......."
공자 여는 물러서지 않았다.
"신은 주공께서 이리도 사태를 달리 보시려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만일 이렇게 있다가 태숙의 세력이 강성해지면 모든 인심이 관망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칫 심해지면 두 마음을 품은 자까지 생겨날 것입니다. 오늘날 주공께서는 태숙을 용납하시지만 다음날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모부인의 태도마저 분명치 않을 때 태숙이 주공을 용납할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됩니다."
정장공이 태연히 대답했다.
"그만두시오. 과인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그날의 조회는 흐지부지 되었다. 공자 여는 밖으로 나가면서 제족(祭足)에게 푸념을 늘어 놓았다.
"주공은 필히 골육의 사정(私情)에 얽매여 사직을 소홀히 하고 있소."
제족이 조용히 대답했다.
"주공은 재주와 지혜를 겸전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일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속뜻을 보이지 않으시려 짐짓 다른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남이 없을 때 가셔서 여쭈어 보시오. 아마 주공께서 결정한 뜻을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공자 여는 제족의 말을 듣고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발길을 돌려 다시 궁 문으로 들어섰다. 들어오는 공자 여를 보고 정장공이 물었다.
"과인을 다시 찾아온 뜻이 무엇이냐?"
공자 여는 조용히 아뢰었다.
"주공이 군위에 계시건만 모부인께서 아직도 태숙 단을 더 좋아하십니다. 이럴 때 안으로는 모부인이 나서고 밖에서 태숙이 호응하면 이 정나라는 주공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신은 잠자리에 들거나 식사를 하거나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듭 뵙고저 들어왔습니다."
정장공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 일은 국모와 관련되지 않는가?"
공자 여가 다시 아뢰었다.
"옛날 주공(周公)께서도 간악한 관, 채(그들은 주무왕의 동생들이었다)를 죽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습니다. 마땅히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나중에 도리어 그 재난을 받게 됩니다. 바라건대 속히 주공께서는 태숙 단을 물리칠 만반의 계책을 세우소서."
그제야 정장공이 살며시 말했다.
"과인은 이미 계책을 세웠도다. 다만 죄를 밝힐 만한 확고한 증거가 없어 기다리는 중이니라. 태숙이 반역해야 내 그의 죄를 밝히고 다스릴 것 아니냐. 그 때가 되어야 국모도 신하들도 다른 소리를 못할 것이로다."
공자 여는 크게 감탄하고 물러나왔다.
정나라의 내분
그런 때에 관씨 의형제 두 사람이 정나라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낮은 벼슬 자리라도 찾아 보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벼슬자리는 커녕 잠자는 일조차 여의치 못했다. 마침내 그들은 정나라 땅에서 문전 걸식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러다가 거렁뱅이 신세가 되는 게 아닐까?"
두 사람은 정성(鄭城)을 떠나 경성(京城)으로 갔다. 당시 경성에서는 병졸을 모아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병졸이 되기를 자청했다.
'적어도 헐벗고 굶주리지는 않을 게 아닌가.'
그 때 징병관의 하나가 두 사람을 눈여겨보았다.
"그대들은 병졸이 될 상(相)이 아닌 데......."
"저희들은 멀리 남쪽에서 왔습니다. 먼저 정성에 가서 낮은 벼슬 자리라도 있을까 하여 동분 서주 해보았지만 여비도 바닥나고 거렁뱅이 신세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성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헐벗고 굶주릴 수가 없었습니다. 병졸이라도 된다면 먹여 주고 재워 줄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렇게 자청하여 병졸이 되려고 합니다."
징병관은 두 사람을 태숙의 아들인 공자 활(滑) 휘하에 넣어 주었다. 그들은 먼저 부중의 집사가 되었다. 이를테면 공자의 신변 잡역을 맡아 보는 비서의 수행원 같은 직책이었다. 먼 남쪽에서 온 의지할 곳도 마땅치 않은 30줄의 사내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대접이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매우 감격하여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맡은 일을 했다. 얼마후 그들은 집사장이 되어 다섯 명의 집사를 거느리는 신분이 되었다. 한바탕 세상이 뒤집혀야 득 볼 가능성 있는 곳에서는 신분이나 가문이나 하는 것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거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중용되기 마련이다. 당시 경성의 분위기는 그랬다.
어느덧 춘삼월이 되었다. 국모인 강씨가 은밀히 태숙에게 일봉 서신을 보내 군사를 일으키라는 분부를 내렸다는 소문이 경성 내에 돌았다. 한편 성(城) 안에서는 크고 작은 공사가 많이 벌어졌다. 곳곳에 큰 건물이 신축되기 시작했고 길가에는 하수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태숙이 곧 정나라 군위에 오르고 도읍은 경성이 된다.> 하는 소문을 뒷받침하듯 대대적인 토목 공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성의 정장공은 5월이 되면 낙양으로 가서 조정의 일을 보게 된다고 했다. 그 사이에 태숙은 국모의 지원을 받아 정성을 점령했다는 것이 소문의 내용이었다. 한편 정장공은 벌써부터 모친 강씨와 태숙 사이에 오고 갈 밀서(密書)에 대비해 두었다. 요긴한 길목마다 심복(心腹)하는 사람을 배치해 두고 있었던 것이다. 밀서를 가지고 가던 자는 도중에 그만 사로잡혔다. 이리하여 강씨의 밀서는 도리어 정장공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정장공은 밀서를 다 보고 나서 전처럼 굳게 봉했다. 그리고 심복을 마치 강씨의 밀사처럼 가장해 밀서를 내주고 이렇게 시켰다.
"네 본색이 탄로나지 않도록 가서 이 밀서를 태숙에게 전하고 반드시 답장을 받아오너라."
강씨의 밀사로 가장하고 경성으로 간 심복은 얼마 후 과연 태숙의 답장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내용인즉, 정장공이 낙양으로 떠난 후 오월 초오일(初五日)에 군사를 일으켜 정성(鄭城)을 점령하러 가겠으니 그 때 성루에다 횐 깃발을 세워 내응하는 장소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정장공은 그 답장을 보고 기뻐했다.
'이제야 단의 죄목과 그를 다스릴 증거가 생겼다. 이제 모친인들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러고 나서 정장공은 내궁으로 들어가 강씨에게 하직 인사를 올렸다.
"주(周)에 가서 조정 일을 도울까 합니다. 이번에 가면 서너 달은 족히 지체될 것 같습니다."
강씨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야 단이 군위에 오를 수 있게 되는구나.'
"그럼 못 뵙는 동안에 건강하십시오."
정장공은 공손히 절하고 내궁에서 물러나온 후 곧 주나라를 향해 떠났다. 그 때 공자 여는 이미 약조한 대로 병차 2백 승을 거느리고 경성 부근 숲 속에 매복하고 있었고, 주나라를 향해 떠난 정장공은 정성에서 얼마쯤 가자 곧 방향을 바꿔 늠연 땅을 향해 갔다. 한편 태숙은 모부인 강씨에게 답장을 보낸 후 아들 공자 활과 함께 앞일을 상의했다. 태숙이 아들 공자 활에게 분부했다.
"너는 위나라에 가서 병력을 빌어오되 성사가 될 만큼 많은 보물을 가지고 가거라."
태숙의 죽음
공자 활은 수레에다 금, 은과 비단을 가득 싣고 청병(請兵)을 하기 위해 위나라로 떠났다. 그 공자 활의 수행원 속에 관씨 의형제 두 사람이 속해 있었음은 물론이다. 공자 활을 위나라로 보낸 태숙은 곧 군사를 소집하고 사냥 간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 경성 소속의 성(城)들에서도 군사를 내어 모조리 참가하라고 일렀다. 많은 병사들이 모여들었다. 태숙은 또 거짓말을 했다.
"정백(鄭佰)이 주(周)나라로 가면서 나에게 부탁하기를 몇 달만이라도 나라를 보살피라고 하기에, 사냥을 잠시 중단하고 정성으로 가야겠다. 정성에 가면 후히 대접하겠다."
태숙은 밥을 짓고 짐승을 잡아 군사들을 배불리 먹인 후 경성을 출발했다. 태숙이 군사를 거느리고 경성을 떠난 뒤였다. 멀리 숲 속에 매복하고 있던 공자 여는 병차 10여 승을 풀었다. 그 군사들은 마치 장사꾼처럼 모양새를 꾸미고 경성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그들은 경성 안을 은밀히 염탐했다. 태숙의 군대는 모조리 떠나고 약간의 경비병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지체없이 성루에다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경성의 성루는 일시에 검은 연기를 뿜으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공자 여는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나서야 병차를 이끌고 경성으로 나아갔다. 장사꾼으로 가장하고 성 안에 잠입했던 병사들이 곧 성문을 열어 공자 여를 영접해 들이니 그는 피 한 방을 안 흘리고 경성을 점령했다. 성을 점령한 즉시 공자 여는 방문을 거리에 내걸고 불안히 하는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방문에는, 정장공이 형제간에 우애가 깊고 효성이 지극하다는 것과 그래서 경성을 동생인 태숙에게 식읍으로 내주었다는 것, 그런데 태숙은 배은 망덕하게도 모반하는 일을 꾸몄다는 것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경성의 백성들은 그제서야 방문에 적힌 내용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태숙이 반역을 꾀하다니...... 참으로 형제간에 못할 짓을 하는구나."
이후 아무도 정장공을 그르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태숙은 군사를 이끌고 호호 탕탕 앞으로 나아가다가 청천 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경성이 함락되었다는 것이었다. 태숙은 황망히 군사를 돌려 경성으로 회군했다. 그는 경성 밖에 당도하자, 성 밖에다 영채를 세우고 공격 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성 안에다 자신이 돌아왔다고 알렸다. 그런데 태숙의 수하 군사들이 차츰 진상을 눈치챘다. 서로가 은밀히 속삭이더니 하나둘씩 슬며시 뒤꽁무니로 빠지는 병사가 늘어났다. '아무래도 태숙이 반란을 일으킨 듯하다. 정장공은 후덕하고 태숙은 거짓말로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다.' 한 사람이 열 사람에게 이 말을 하자 열 사람은 백 사람에게 이 말을 전했다. 삽시에 병사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 도망치는 병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태숙이 멋도 모르고 병사를 점호했을 때에는 이미 병사의 절반이상이 도망친 후였다. 태숙은 그제서야 인심이 바뀐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군사를 모으고 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고자 언읍 땅으로 달아났다. 그 때 이미 정장공은 늠연 땅에서 군사를 일으켜 언읍 땅에 진출해 있었다. 태숙은 달아나다가 도중에 이 소식을 듣고 다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침내 예전의 식읍이었던 공성으로 향하는데 추격병이 쫓아왔다. 정장공의 추격대였다. 태숙은 한참 도망치다 보니 단신이었다. 모두가 그를 떠난 것이다. 태숙은 혼자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모친이 내 앞길을 망치고 말았구나. 내 무슨 낯으로 세상을 살아가리오."
한동안 울부짖던 태숙은 마침내 스스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었다. 한편 많은 뇌물을 바치고 위나라 군사를 빌어 오던 공자 활은 도중에 부친 태숙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공성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세가 뒤집혔음을 알고, 그는 다시 발길을 돌려 위나라로 달아났다. 위환공은 도망쳐 온 공자 활을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그의 수행원들에게도 각각 벼슬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공지 | isGranted() && $use_category_update" class="cate"> | ∥…………………………………………………… 목록 | 바람의종 | 2007.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