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아흔일곱번째 이야기 - 거문고와 거문고 소리
옛날에 한 국왕이 국정을 돌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감동한 국왕은 좌우의 대신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이길래 이렇게 아름다운가?"
"대왕이시여, 거문고 소리입니다."
"네가 가서 그 소리를 찾아와라."
국왕이 한 대신에게 명령했다. 얼마 후 그 대신은 거문고 하나를 들고 와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거문고입니다. 방금 전의 소리는 바로 이 악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국왕은 거문고를 받아들고 그것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방금 전의 그 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시 한 번 나에게 그 소리를 들려다오."
그러나 거문고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국왕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너에게 거문고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져오라고 한 것은 방금 전의 그 아름다운 소리란 말이다."
거문고를 가져온 대신이 황급히 꿇어앉으면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거문고는 여러 가지 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손잡이이고, 저것은 몸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줄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사람이 이것을 연주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법입니다. 거문고를 타지 않고서는 소리가 날 수 없습니다. 방금 전에 국왕이 들은 아름다운 소리는 이미 사라져버렸는데, 신이 어찌 그것을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 소리의 허무함이 이와 같은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이것에 정신을 팔게 되는구나. 이건 사용해서는 안 될 거짓된 물건이로구나."
말을 마치자 국왕은 거문고를 던져 산산조각 내버렸다.
<잡아함경>
아흔여덟번째이야기 - 못된 장난
한 바라문이 광야에 우물을 파고 토기로 된 두레박을 걸어두어 목동과 행인들이 사용하기 편리하게끔 만들어놓았다. 어느 날 저녁 한 무리의 여우가 우물 근처에 나타나 땅바닥에 괴어 있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여우왕만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두레박 속에 있는 물을 마셨다. 물을 다 마신 여우왕이 두레박 속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자 두레박은 깨지고말았다. 나머지 여우들은 여우왕이 저지른 일에 화를 내며 따졌다.
"이 두레박은 행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렇게 부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여우왕이 대답했다.
"재미로 그랬다, 왜? 나만 기분 좋으면 되지, 다른 일은 내 알 바 아니다."
다음날 한 행인이 두레박이 깨져 있는 것을 보고 바라문에게 알렸다. 바라문은 곧 새 두레박을 달아놓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여우왕이 그것을 깨버렸다. 그러기를 십여 차례 계속하는 동안 여우들은 여우왕을 그때마다 말렸으나, 여우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두레박이 며칠 못 가서 자꾸 깨지자 바라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런일이 생기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 동안 바라문이 숨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 결과 여우가 못된 장난을 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우물을파서 행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여우가 자꾸 못된 장난을 하다니... 이번에는 아예 깨지지않는 단단한 나무로 두레박을 만들어놓자.' 바라문이 만든 나무 두레박은 단단할 뿐만 아니라 여우가 고개를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빼기는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었다. 바라문은 여우를 혼내주기위해 나무 두레박을 우물 옆에 두고 그 근처에서 방망이를 든 채 숨어 있었다. 행인들이 물을 마시고 난 후, 여우왕이 몰래와서 나무 두레박에 고개를 들이밀고 또 그것을 부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레박이 움직이지도 않고 고개도 빠지지않았다. 이때 숨어 있던 바라문이 뛰어나와 방망이를 인정사정없이 휘두르자 여우왕은 그만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법원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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