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아흔세번째 이야기 - 어리석은 고집
옛날에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사람은 똑똑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매우 우둔했다. 어느 날 똑똑한 친구가 우둔한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집이 가난하니 뭔가 할 일을 찾아보세.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함께 힘을 모아 일을 해보세. 먼저 산으로 가 들짐승이라도 잡아서 팔아보는 게 어떤가?"
의견이 일치한 두 사람은 성을 나와 돌아다니다가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 마을은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쓸 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고 길가에 약간의 황마만 널려 있었다. 똑똑한 이가 말했다.
"저 황마라도 서로 반씩 나누어 가지고 가세."
황마를 짊어진 두 사람은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또 다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마사가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똑똑한 이가 말했다.
"마사는 가볍고 가늘어서 휴대하기 편한 데다가 값어치도 황마보다 높네. 나는 황마를 버리고 마사를 가지고 갈 참이네."
그러자 우둔한 이가 말했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맸으니 버릴 생각이없네."
똑똑한 이는 황마를 버리고 마사를 매었다. 그리고 길을 계속 가다가 이번에는 마포를 보게 되었다. 다시 똑똑한 이가 말했다.
"마포는 바로 마사로 짠 것이네. 한 필의 마포를 만들자면 수많은 마사가 있어야 하네. 나는 마사를 버리고 마포를 갖고 갈 생각이네."
우둔한 이는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맸으니 그것을 버리고 마포를 챙길 생각이 없네."
똑똑한 이는 마사를 버리고 마포를 봇짐에 틀어매고는 계속해서 길을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면화를 보게 되었다. 그때 똑똑한 이가 말했다.
"면화는 마포보다 값이 더 나가고 휴대하기도 편하니 면화를 챙겨야겠네."
그러나 우둔한 이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맨 상태네. 게다가 그것을 들고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똑똑한 이가 우둔한 이가 말을 듣지 않자, 자기만 마포를 버리고 면화를 챙겼다. 그후에 그들은 면화사를 보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흰색 면포 그리고 계속해서 백동, 백은, 마지막으로 황금을 보게 되었다. 똑똑한 이는 무언가 보일 때마다 계속 바꾸어 짊어졌고, 우둔한 이는 시종일관 황마만을 고집하였다. 똑똑한이가 우둔한 이에게 말했다.
"황금이 없었더라면 나는 백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네. 만약 백은이 없었더라면 백동을 가지고 있었을 테지. 그리고 백동, 면호, 면화사, 면화, 마포가 없었더라면 마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네. 또 마사마저 없었더라면 황마를 가지고 있었을 테고. 그러나 지금 여기에 황금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황금의 가치가 가장 높지 않은가? 자네가 황마를 버리고 나도 백은을 버린다면 우리 둘 다 황금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네."
그래도 우둔한 이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맸고 또 그것을 가지고 먼 길을 왔으니 버리긴 싫다네. 자네는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나는 상관하지 않고 이 황마를 가지고 가겠네."
똑똑한 이는 백은을 버리고 황금을 갖고 돌아갔다. 집안 사람들은 그가 멀리서 오는 모습을 보고 모두 기뻐하며 뛰어나와 환영했다. 똑똑한 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우둔한 이는 황마를 가지고 집에 돌아갔다. 집안 사람들은 그를 보고서도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비웃기만 했다. 우둔한 이는 그제서야 후회막급한 심정이 되었다.
<장아함경>
아흔네번째 이야기 - 사막에서 물과 풀을 버리면
옛날에 두 사람의 상인이 각자 오백 명씩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 가려면 광활한 사막을 지나야 했으므로 함께 모여 떠나기로 했다. 그 동안의 경험에 따라 그들은 꽤 많은 양의 물과 풀을 준비하여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한 야차귀가 대상의 무리를 발견하고 미모의 소녀로 둔갑했다. 그녀는 화려한 옷을 걸치고 머리에 현란한 장신구를 단 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대상의 무리가 다가오자 그녀는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먼 길을 가시느라 피곤하시죠? 그런데 그 많은 물과 풀을 지니고 있다니요? 이 근처에 물과 풀이 아주 많은 곳이 있으니, 이젠 필요없을 거예요. 그러니 그것들을 버리고 저를 따라 물과 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게 어때요."
그 말을 듣고 한 우두머리 상인이 수하들에게 물과 풀을 모두 버리게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우두머리 상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생각에 잠겼다. '사막에서 물과 풀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한 사람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는 없다. 게다가 저 미모의 소녀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잖는가?' 물과 풀을 버린 우두머리 상인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소녀를 따라 반나절쯤 갔지만, 물과 풀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막 물어보려고 하는데, 이미 그 소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그들 모두는 사막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물과 풀을 버리지 않은 우두머리 상인과 그 수하들은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서 장사를 잘할 수 있었다.
<잡보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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