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여든일곱번째 이야기 - 들개
옛날에 먹는 것에 유난히 욕심이 많은 들개가 있었다. 그 들개는 항상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들개가 염색공장에 들어갔다가 그만 남색 물감통에 빠지고 말았다. 들개를 발견한 염색공장 주인이 화가 나 들개를 끄집어내 밖으로 집어던져버렸다. 땅바닥에 패대기쳐진 들개의 몸에는 온통 흙먼지가 묻게 되었다. 들개는 더럽혀진 몸을 씻기 위해 강으로 가 목욕을 한 후 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들개의 털은 여전히 남색을 띤 채 빛났다. 다른 들개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여겨 다가와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제석천왕이 보낸 사자다. 천왕께서는 나를 백수의 왕으로 임명하셨다."
남색을 띤 들개는 술술 거짓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에 여러 들개들은 생각했다.
'모습은 들개가 분명한데, 털은 우리와 다르단 말이야.'
들개들은 사자에게 가서 자기들이 들은 이야기를 보고했다. 사자는 또 사자왕을 찾아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사자왕은 부하를 보내 사실 여부를 알아보게 했다. 사자왕의 부하가 가서 보니 남색 들개가 커다란 흰 코끼리 위에 앉아있고 뭇 짐승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백수의 왕을 시봉하는 것 같았다. 부하는 사자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본 광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보고를 들은 사자왕은 자신의 여러 부하들을 이끌고 뭇 짐승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랬더니 소위 '들개왕'이 흰 코끼리를 타고 있고 그 주위에 여러 들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게다가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들도 그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새끼 들개들은 멀리 한쪽 편에 물러서 있었다. 사자왕은 몹시 기분이 나빠 이 들개의 진상을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자왕은 들개 무리 중에서 한 마리 들개를 뽑아 들개왕의 어머니를 불러오게 했다 들개왕의 어머니가 물었다.
"내 아들이 그곳에서 어떤 동물들과 함께 있느냐?"
"아드님 주변에는 사자와 호랑이, 코끼리 등이 있습니다. 저는 멀리서서 바라만 볼 뿐입니다."
"네가 가면 분명히 내 아들을 해치고 말겠구나."
들개왕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산 속에 사는 것이 너무 즐겁다네
마음대로 물도 마시고 쉬기도 한다네
네가 들개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내 아들은 코끼리등 위에 있는 한 아무 일 없으리."
들개왕의 어머니를 만나고 온 들개는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 녀석은 백수의 왕이 아니라 바로 들개라구. 나는 내 눈으로 산 속에 있는 저 녀석의 어머니를 직접 봤단 말이야."
그러자 동료들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들이 시험해보자."
그들은 '백수의 왕'으로 자칭하는 들개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들개에게는 그들만의 특이한 전설이 있었다. 만일 한 들개가 울었는데도 다른 들개가 따라 울지 않으면 그 들개의 털이 모두 빠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들개왕'을 시험해보고자 들개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고, 뒤이어 나머지 들개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이에 들개왕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따라 울지 않는다면 털이 몽땅 빠지고 말텐데... 그렇다고 코끼리 등에서 내려가 운다면 내가 들개인 줄 알고 분명히 다른 짐승들이 나를 죽이고 말 거야. 차라리 여기 코끼리 등위에서 우는 게 낫겠다.' 그래서 들개왕은 코끼리 등위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코끼리는 등위에 있는 녀석이 평범한 들개임을 알아채고 곧장 코로 등위에 있는 들개를 붙잡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 후 밟아 죽여버렸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여든여덟번째 이야기 - 부자와 악사
아름다운 곡만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한 악사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어느 부잣집에 가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 부자는 악사의 재능을 인정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악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소 한 마리를 선물로 달라고 했다. 부자는 악사의 연주는 높이 샀지만 소를 주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 년간 음악을 연주한다면 소를 주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음악을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악사는 신이 나서 정성을 다해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음악을 연주했다. 부자는 밤낮없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그만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결국 부자는 하인에게 소를 끌고 오라고 해서 악사에게 줘버렸다.
<잡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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