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세속에 몸담그고 금마문 안으로 숨어드니 <동방삭>
- 사람들은 "논어"에 나오는 말을 빌어 동박삭을 평하였다. "흔히 '새가 죽을 때는 그 우는 소리가 매우 애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하는 말이 선하다'고 하더니 동방삭이 죽으려고 그런 말을 했구나." -
제나라 태생인 동방삭은 한나라 무제를 섬겼다. 그는 경학을 탐독하였으며, 제자백가의 서적에 통달하였다. 그는 처음 장안으로 와서 무제에게 상소문을 올릴 때 죽간, 즉 대나무쪽에 3천 매에 이르는 방대한 글을 지어 바쳤다. 관리 2명이 겨우 들고 갈 정도의 무게였다고 한다. 무제는 이 상소문을 2개월에 걸쳐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으며, 당장에 동방삭을 불러들여 낭중의 벼슬에 앉혔다. 박학다식한 동방삭을 상대로 무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때로는 식사를 같이할 때도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동방삭은 먹고 남은 생선을 품 속에 넣어 집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그의 옷에서는 자주 생선 냄새가 났다. 무제는 가끔 동방삭에게 새 옷을 지어입으라고 비단을 주기도 했는데, 그는 아무렇게나 비단을 어깨에 걸치고 집으로 갔다. 동방삭은 특히 미녀들을 좋아하여, 돈이나 비단을 모두 여자들에게 갖다 바쳤다. 사귀던 여자도 1년이 지나 시들해지면 바꿔치기 하기가 일쑤였다. 그는 늘 많은 여자들에게 돈과 비단을 갖다 바쳤기 때문에 재산이 별로 모이지 않았다. 궁궐 내의 사람들은 모두들 그런 동방삭을 비웃었다. 무제가 그 소리를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런 소리 말라. 그대들은 동방삭의 발목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는 일을 시키면 무엇이고 어김없이 해낸다."
어느 날 동방삭이 궁전 안을 거닐고 있을 때 낭관 한 명이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래, 난 미쳤어."
"네에?"
의외의 대답에 낭관은 눈을 크게 떴다.
"옛사람들은 속세가 싫어서 산속으로 들어갔다지만, 나는 이렇게 미쳐 있으니 여기가 곧 산속이나 다름없다네. 그대들에겐 이곳이 근심걱정 가득한 속세지만, 나에겐 속세가 없으니 근심걱정 또한 안 해도 된다네."
동방삭의 엉뚱한 말에 그 뜻을 모르는 낭관들은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이처럼 동방삭은 매사 엉뚱한 데가 많았다. 그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곧잘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세상에 피할데가
깊은 산속 우거진 숲뿐이랴
세속에 몸 담그고
금마문 안으로 숨어드니,
매우 고귀한 분이 사는
궁중 안이야말로 정말 좋다.
금마문은 내시들이 드나드는 관청의 문을 말한다. 어느 날 건장궁 후문의 이중 난간 속에서 기괴한 동물이 나타났다. 모습은 큰 노루와 비슷했는데, 누구도 아는 자가 없었다. 무제가 만물박사인 동방삭을 불러 물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먼저 제게 최고의 술과 식사를 내려주셔야 가르쳐 드릴 수 있습니다."
워낙 엉뚱한 동방삭이라, 무제는 곧 훌륭한 술과 식사를 대접하였다.
"그래 이 동물의 이름이 무엇이오?"
마침내 무제가 물었다.
"추아라고 합니다. 이것이 나타나면 머지 않은 장래에 어느 먼 곳에 있는 나라에서 귀순해 오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동방삭의 말대로 흉노의 홍야왕이 10만의 부하들을 이끌고 한나라로 귀순해 왔다. 그래서 동방삭은 무제로부터 막대한 상금을 하사받았다. 동방삭이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멀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문득 무제에게 나가 이렇게 간언하였다.
"이런 노래가 "시경"에 나옵니다. '윙윙거리는 청파리, 무리져 잡목 울타리위로 날도다. 자비심 깊은 군자여, 믿지 말지어다, 그들의 참언을. 참언은 그칠 줄 모르고, 나라와 나라를 어지럽히나니.' 그러니 부디 폐하께서는 아첨하는 무리들을 멀리 하시어 참소하는 말을 물리치십시오."
이렇게 말하는 동방삭의 얼굴은 여느 때같지 않고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요즘 와서 동방삭이 착한 소리만 하니 웬일일까?"
무제는 그것을 괴이쩍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동방삭은 얼마 가지 않아 병들어 죽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논어"의 '태백편'에 나오는 말을 빌어 동방삭을 평하였다.
"흔히 '새가 죽을 때는 그 우는 소리가 매우 애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하는 말이 선하다'고 하더니, 동방삭이 결국 죽으려고 그런 말을 했구나."
만족 : 생각을 바꾸면 속세의 생활도 신선놀음이 될 수 있다. 속세가 고달픈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의 마음이 고달픈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천국이면 세상이 즐거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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