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일흔네번째 이야기 - 착한 사람
아주 오랜 옛날 범마달이라는 왕이 바라나국을 다스릴 때의 일이다. 그 나라에는 마음씨 착한 늑나사야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숲속을 산책하다가 한 사내가 비통하게 울면서 나무에 목을 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늑나사야는 재빨리 달려가 그 사내를 말리며 물었다.
"도대체 왜 죽으려 드는 것이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다니..."
늑나사야는 좋은 말로 그 사내를 달래며 새끼줄을 버리게 해다. 그러자 그 사내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한탄했다.
"내가 지지리도 복이 없어 가난하게 살다보니, 어느덧 태산 같은 빚을 지게 되었다오. 쥐구멍에 볕 들 날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복 없는 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가 보오. 빚쟁이들이 밤낮없이 찾아와 괴롭히니 잠시라도 편안한 날이 없다오. 세상이 넓다 해도 변변히 의지할 곳도 없으니 이 한 목숨 끊어 빚쟁이들이 없는 저 세상으로 가려하오. 당신이 날 말리는 것은 고마우나 나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소."
그 사내의 말을 듣고 동정심을 느낀 늑나사야는 그만 착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죽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당신이 진 빚을 대신 갚아드리리다."
사내는 만면에 함박 웃음을 띠고 좋아라 하면서 늑나사야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빚쟁이들을 모두 오라했고, 늑나사야는 가산을 털어 그 사내의 빚을 갚아주었다. 그러나 빚쟁이들이 끝없이 찾아오는 바람에 늑나사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런 늑나사야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어 길에 나앉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늑나사야의 친척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늑나사야가 미쳤구먼.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가산을 탕진하다니..."
그때 늑나사야의 자애로움에 감동한 한 상인이 그에게 같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 장사를 하자고 권했다 .그러자 늑나사야가 말했다.
"당신 말대로 하자면 장사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난 한푼도 없는 거지꼴이오. 그러니 어떻게 당신을 따라갈 수 있단 말이오?"
상인은 늑나사야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말했다.
"이번에 장사하러 같이 갈 사람은 무려 오백 명이나 되오. 내가 그들에게 부탁해서 모든 돈을 당신에게 빌려주도록 하겠소."
이렇게 해서 삼천 냥을 빌린 늑나사야는 천 냥은 가족들에게 생활비로 주고, 나머지 돈으로는 외국에 가지고 가서 팔 물건을 구입했다. 그리고 늑나사야는 뱃사람 다섯 명을 모아 여러 상인들과 함께 커다란 상선에 올랐다. 상선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다가 어느 날 그만 폭풍우에 휘말리고 말았다. 집채만한 파도에 마치 장난감처럼 기우뚱거리던 상선은 이윽고 암초에 걸려 부서졌다. 다행히 부낭을 챙겼던 사람들은 살아 남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다가 물에 빠져죽어갔다. 늑나사야 역시 부낭이 없는 바람에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그가 고용했던 뱃사람 다섯 명이 헤엄쳐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만 믿고 배를 탔는데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늑나사야는 뱃사람들의 말에 죄책감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음씨 착한 늑나사야는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바다는 시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해변으로 밀어낸다고 하오. 이제 여러분들은 내 몸을 꼭 잡고 있으시오. 내가 당신들을 구해주리다."
말을 마친 늑나사야는 다른 사람들이 말릴 틈도 주지 않고 혀를 깨물어 자결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해신은 늑나사야의 자비심에 감동되어 바람을 일으켜 시신을 해변으로 떠밀었다. 그 바람에 늑나사야의 시신을 꼭 잡고 있던 뱃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현우경>
일흔다섯번째 이야기 - 생사의 비유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그때 부처님은 설법을 듣는 무리들 가운데에 있던 승광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잘 들으시오. 이제 대왕을 위해 생사가 도대체 무엇인지 비유를 들어 간략하게 설명해드리리다. 아주 오랜 옛날 한 사람이 들에 놀러 나갔다가 그만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기게 되었소. 겁에 질린 그 사람이 정신없이 뛰다가 보니 우물 하나가 있고 그 옆에 나무 뿌리가 드리워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소. 그 사람은 다급한 나머지 나무 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오. 그런데 검은 쥐 한 마리와 흰 쥐 한 마리가 나타나 나무 뿌리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겠소? 게다가 우물 속 사방에는 독사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그 사내를 물려고 들었소. 또 아래를 내려다 보니 독룡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오. 혀를 낼름거리는 뱀도 무서웠지만 나무 뿌리가 끊어지면 독룡의 밥이 되리라 생각한 그 사내는 두려워서 넋이 빠질 정도였소. 그런데 그때 나무 위에 있던 벌집에서 흘러나온 벌꿀 다섯 방울이 뿌리를 타고 그 사람 입으로 흘러드는 것이었소. 또 그 사람이 나무 뿌리를 잡고 매달려 있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자 벌들이 날아와 사정없이 그 사람을 쏘았소. 설상가상으로 들에 불이 나 그 나무마저 태우고 있었다오."
부처님이 말한 생사의 비유를 들은 승광왕이 입을 열었다.
"부처님, 그 사람은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꿀 맛을 탐할 수 있었을까요?"
"대왕이여, 그 이야기 속의 들이란 길고도 긴 무명의 밤을 뜻하고 우물에 빠진 사람은 바로 중생을 가리킨다오. 또 코끼리는 무상이고, 우물은 생사를 비유한 것이오. 나무 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검고 흰 두 마리의 쥐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오. 그 쥐들이 나무 뿌리를 갉아먹는다는 것은 바로 순간순간 사람의 수명이 줄어드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며, 네 마리 독사는 지, 수, 화, 풍의 사대를 뜻하는 것이오. 그리고 다섯 방울의 벌꿀은 다섯 가지 쾌락의 비유요, 사정없이 쏘아대는 벌은 사견을 가리킨다오. 마지막으로 독룡은 바로 죽음을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생로병사가 얼마나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를 마땅히 알아야 하오. 항상 그것을 명심하고 오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오."
승광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생사에 대해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 합장하며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위해 미묘한 설법을 해주셨으니 저는 정성을 다해 그 가르침을 지키겠습니다."
<불설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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