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질도>
- 사람들은 질도를 보고 '보라매'라고 불렀다. 이것은 당시 '융통성이 없는 가혹한 관리'를 빗대어 쓰는 용어였다. 매사를 엄혹하게 법에 따라 처리하였으므로, 그는 황실이나 고귀한 신분 따위를 결코 따지지 않았다.-
질도는 양나라 사람으로 한나라 문제 때 낭관으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경제 때는 낭관의 장인 중랑장이 되었는데, 그는 일을 할 때 정면으로 중신들을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제에게도 거침없이 의견을 말하였다. 어느 날 경제가 상림원에 행차하였을 때였다. 마침 황제의 총애를 받던 가부인이 뒷간에 갔을 때, 갑자기 숲속에서 나타난 멧돼지가 그곳으로 뛰어든 일이 있었다. 이때 경제는 질도에게 가부인을 구하라고 명령을 하였으나, 질도는 몸으로 황제를 막아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에 경제는 다급한 나머지 자신이 무기를 들고 가부인을 구하기 위해 뒷간으로 뛰어들려고 하였다. 그러자 급히 질도가 경제 앞에 엎드리며 말하였다.
"폐하! 안 됩니다. 지금 부인을 잃는다 해도 새로 맞이하면 됩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거동하시다 만일의 변을 당하신다면 종묘사직을 어떻게 지킬 것이며, 태후께는 무슨 면목으로 대하겠습니까?"
경제는 멈칫하였다. 다행히도 가부인은 안전하였고, 멧돼지는 다른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 소문을 들은 경제의 어머니 두태후는 질도에게 금 백 근을 내렸다. 아무튼 질도는 그 사건으로 인하여 경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 무렵 제남군에서 호족인 간씨들이 불법을 저지르며 천하를 멋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조정에서 여러 번 제남군에 태수를 보냈지만, 아무도 간씨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였다. 경제는 질도를 제남의 태수로 보냈다. 제남 태수가 된 질도는 임지에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로 간씨의 우두머리를 붙잡아다 사형에 처해 버렸다. 법에 조금이라도 저촉되는 행위를 한 자들에게는 중형의 벌을 주었다. 이렇게 1년이 되자 감히 반항하는 간씨 세력들이 한 명도 없었으며, 다른 범죄조차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길을 택한 사람이다. 그러니 직무에 충실히 몸을 바치고 직무를 위해 죽는 것만이 나의 소망이다."
질도는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공무에 관하여 엄정하였으며, 촌지를 받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그는 공무에 너무 열중하여 처자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질도를 보고 '보라매'라고 불렀다. 이것은 당시 '융통성이 없는 가혹한 관리'를 빗대어 쓰는 용어였다. 매사를 엄혹하게 법에 따라 처리하였으므로, 그는 황실이나 고귀한 신분 따위를 결코 따지지 않았다. 경제의 아들인 임강왕이 죄를 저질러 소환되었을 때였다. 마침 그때 질도는 중위부의 책임자로 있었는데, 임강왕의 취조를 중위부가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 임강왕은 아버지 경제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서신을 작성하였는데, 잘못 쓴 글자가 있어 질도의 부하에게 글씨를 도려낼 수 있는 칼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것을 본 질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칼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았다. 이때 임강왕의 교육을 담당한 적이 있던 위기후 두영이 질도 몰래 칼을 넣어주었다. 그런데 임강왕은 경제에게 보내는 서신을 다 쓴 후 그 칼로 자살해 버렸다. 두영은 두태후의 조카였다. 그는 두태후에게 가서 질도의 각박함을 일러바쳤다. 화가 난 두태후는 질도에게 거짓 죄를 뒤집어 씌워 면직시켜 버렸다. 질도가 면직되어 집으로 돌아갈 때, 경제는 급히 사자에게 부절을 들려보내 그를 안문군 태수로 임명하였다. 두태후의 노여움을 고려하여 조정으로 들지 않고 곧바로 현지로 가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안문군은 변방으로 호시탐탐 흉노들이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는 곳이었다. 질도가 태수로 부임하자, 소문을 들어 그의 강박함을 익히 알고 있는 흉노들은 군사를 거두어 북쪽으로 철수해 버렸다. 당시 흉노군들이 얼마나 질도를 두려워했는지, 질도 형상의 인형을 만들어 말을 달리며 활로 그것을 쏘는데 아무도 맞히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한편 두태후는 경제에게 질도를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였다.
"질도는 충의가 있는 신하입니다."
경제가 질도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러면 임강왕은 충의가 없었단 말이오?"
두태후의 노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경제도 더 이상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질도는 참형에 처해졌다.
융통성 : 원칙에 엄격하면 적이 많고, 융통성이 지나치면 불의와 타협하게 된다. 그러나 원칙과 융통성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 놓인 것이 아니다. 적절히 융통성을 활용하면 원칙과 규범에 생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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