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3 - 엄광용 엮음
호랑이 아가리 속에서 살아남는 법 <숙손통>
-2세황제는 30여 명의 유자들에게 기 땅에서 일어난 진승 일당들이 '반역'이냐 '좀도둑'이냐를 두고 각각의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반역'이라고 말한 자는 모두 파면시키고, '좀도둑'이라고 말한 자는 그대로 두었다.-
숙손통은 설 땅의 사람인데, 진나라 때 학문이 뛰어나다 하여 조정에서 불렀다. 이때 마침 진승이 반기를 들고일어나자 2세황제는 박사관들과 유자들을 불러 물었다.
"초의 수비병놈들이 기 땅을 공격하였다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것은 분명 반역입니다. 반역자들을 붙잡아들여 사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군사를 일으켜 그 반역자들을 치도록 하십시오."
2세황제는 '반역'이란 말에 화가 나서 얼굴빛이 변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진승 일당을 좀도둑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그것을 가지고 감히 '반역'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은 황제의 존엄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때 2세황제의 그런 심리를 꿰뚫어보고 있던 숙손통이 앞으로 나가 말하였다.
"대체로 진나라는 천하를 합쳐 한 집안으로 만들었으며, 군현의 성을 헐고 무기를 녹여, 다시는 그 무기를 쓸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감히 반역하는 자가 있다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기 땅에서 일어난 것은 좀도둑들에 불과할 것이니 폐하께서는 부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좀도둑들이 진현을 공격중이라고는 하나, 그곳 현령이 알아서 체포하여 논죄를 할 것입니다."
2세황제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짐의 생각도 바로 그렇다. 우리 시황제께서 천하를 통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 누가 감히 반역을 꿈꾸겠는가?"
곧 2세황제는 30여 명의 유자들에게 기 땅에서 일어난 진승 일당들이 '반역'이냐 '좀도둑'이냐를 두고 각각의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반역'이라고 말한 자는 모두 파면을 시키고, '좀도둑'이라고 말한 자는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숙손통에게는 비단 20필과 옷 한 벌을 내린 뒤 박사에 임명하였다. 숙손통이 숙사로 돌아오자, 유자들이 비웃으며 말하였다.
"선생은 어째서 그리 아첨을 잘 하십니까?"
숙손통이 대답하였다.
"공들은 모르고 하는 소리요. 공들도 내가 아니었으면 호랑이 아가리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오. 이곳이야말로 바로 호랑이 굴이오. 어서들 도망가시오."
숙손통은 곧 도망하여 설 땅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미 진나라의 패망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 땅에서 숙손통은 반란군 향량을 만나 종군하였으며, 향량이 죽자 초나라 회왕을 따랐다. 회왕이 의제가 된 뒤 항우에게 주살당하자, 그는 항왕을 섬겼다.
한나라 유방이 팽성에서 초나라 항왕의 군대를 크게 이겼을 때, 숙손통은 한왕에게 항복하였다. 이때 한왕이 유자의 복장을 싫어한다는 소문을 듣고, 숙손통은 초나라 풍의 짧은 옷으로 바꿔 입었다. 이것을 본 한왕은 매우 좋아하였다. 숙손통이 팽성에서 한왕에게 항복할 때, 그의 수하에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왕이 숙손통에게 인재를 추천하라고 하였을 때는 자기 제자들보다 도둑질이나 하던 힘깨나 쓰는 사람들만 추천하였다. 제자들은 이를 두고 불평하였다.
"우리가 선생을 수년 동안 섬겨왔는데, 어찌 제자들의 벼슬길을 열어주지 않는 것입니까?"
숙손통이 대답하였다.
"지금처럼 천하가 어지러울 때는 유생들보다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는 힘쓰는 자들이 필요하다. 그대들이 어찌 창을 들고 나가 싸우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선 적장을 베어 죽이고 적의 기를 빼앗아 오는 용사들을 추천한 것이다."
제자들은 숙손통의 말에 아무 소리도 못하였다. 한나라가 천하를 평정하자 숙손통은 한왕이 왕제의 제위에 오르는 모든 격식과 칭호 등을 정하였다.
"폐하! 대체로 장수는 전쟁에 필요하고 유자란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노나라에 가서 여러 학자들을 데리고 와서 제 수하의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식을 제정코자 합니다."
"좋은 생각이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고조는 곧 이를 수락하였다. 숙손통은 노나라로 가서 30여명의 유자들을 초청하였다. 그 중에 두 명이 거절을 하였다.
"공께서 지금까지 섬긴 군주는 열 사람에 가깝습니다. 공께서는 그들 군주에게 아첨하여 존귀해졌습니다. 지금 천하는 평정되었으나, 그로 인하여 죽은 자들을 모두 장사지내지 못했으며, 부상한 자들조차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악을 일으키고자 한다니 유자로서 양식을 가지고 하는 소립니까? 모름지기 예악을 일으키는 것은 천자가 덕을 쌓아 백 년이 된 뒤라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더 이상 나를 더럽히지 마시고, 공께서는 어서 가십시오."
그러자 숙손통이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정말 한심하고 고루한 선비구려. 그것은 옛시대의 이야기요. 지금 시대는 변천을 거듭하고 있소. 시대에 순응해야 한단 말이오."
숙손통은 30여 명의 유자들을 데리고 노나라에서 돌아와, 자신의 제자들 백여 명과 함께 궁중의 예법을 만들었다.
마침 한나라의 장락궁이 완성되어, 이 궁에서 숙손통이 만든 새로운 궁중 예법에 의해 첫 조회가 열렸다. 황제의 권위를 엄격하게 세운 의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조회가 끝나고 주연이 베풀어졌지만, 감히 누구 하나 무례하게 떠드는 자가 없었다.
"짐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황제가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노라!"
고조는 숙손통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고, 그에게 태상의 벼슬을 주었으며 황금 5백 근을 하사하였다. 이때 숙손통이 다음과 같이 소청하였다.
"이번에 저를 따라 고생한 제자들이 많습니다. 궁중 의례는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만든 것입니다."
"오, 짐이 잊을 뻔했구려!"
고조는 궁중 예법을 만드는 데 참여한 유자들에게 모두 낭관의 벼슬을 주었다. 숙손통은 고조에게서 물러나와, 노나라에서 데려온 30여 명의 유자들과 자신의 제자들에게 벼슬이 내려졌음을 알렸다. 그리고 황제에게 받은 5백 근의 황금을 풀어 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제자들이 모두 기뻐하며 입을 모아 말하였다.
"숙손 선생은 참으로 성인이십니다. 지금 이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두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적재적소 : 똑같은 물건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 말 역시 듣는 이의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시기와 상황, 조건에 따라 정확히 대응하는 것,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이 모두가 성공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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