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2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부자로 얽매이느니 빈자로 자유롭게 살겠다<노중련>
-"주나라 포초는 혼탁한 세상이 싫어 벼슬도 하지 않고 굶주리다가 나무를 안고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포용하면서 살지 않고 성급하게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그의 본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노중련은 제나라 사람으로 기발한 책략가이다. 그러나 그는 벼슬을 싫어하였으며, 차라리 높은 절의를 지키며 살기를 원하였다.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한단을 포위하였을 때, 위나라 안희왕은 장군 진비를 시켜 조나라를 구원케 하려고 군사를 출병시켰으나, 진나라 군사가 두려워 국경에 머물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안희왕은 장군 신원연을 시켜 몰래 한단으로 들어가 평원군을 통해 조나라 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하였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친 것은 한단을 삼키려는 게 아닙니다. 조나라에서 진나라 소왕에게 사자를 보내 제라 칭하기만 하면 곧 군사를 거두어 물러갈 것입니다."
평원군은 당시 조나라에 머물고 있는 노중련을 청하여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하고 물었다.
"어떻습니까? 우리 조나라가 진나라 소왕에게 제라고 칭해야 하겠습니까?"
"그 신원연이란 자는 어디 있습니까?"
"객사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리로 불러오십시오."
노중련의 말에 평원군은 곧 사람을 시켜 위나라에서 온 신원연을 불러들였다. 평원군이 두 사람을 소개하기도 전에, 신원연이 대뜸 입을 열어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 노중련 선생은 제나라의 고귀한 선비라 들었습니다. 지금 제가 위나라 사신으로 온 것은 선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입니다."
그 말을 듣고 노중련은 반쯤 돌아앉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가 이미 노중련 선생께 진나라에 관한 일을 말씀을 드렸으니 어쩌겠습니까?"
평원군이 말하였다.
"이곳 승상댁을 찾는 사람들은 다 무언가를 밟고 오는데, 노중련 선생은 제가 보기에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까?"
신원연이 노중련을 향해 말하였다.
그러자 노중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옛날 주나라의 포초는 혼탁한 세상이 싫어 벼슬도 하지 않고 굶주리다가 나무를 안고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포용하면서 살지 않고 성급하게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포초의 본심을 사람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예의를 저버리고 적의 목을 베어오는 것을 가장 큰 공적으로 여기며, 백성들을 함부로 노예처럼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진나라의 왕을 제로 칭하여 잘못된 정치를 천하에 펴게 한다면, 저는 동해에 몸을 던져 죽을 것입니다. 진나라 소왕의 백성이 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지요. 만약 진나라가 제를 칭하게 될 경우, 제후들에 대한 요구는 주왕실보다 훨씬 심할 것입니다."
신원연이 노중련을 노려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선생께서는 하인들이 하는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열사람의 하인이 한 사람의 주인을 모십니다. 그것은 주인보다 힘이 없고 지혜가 없어서 그러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주인이 두렵기 때문에 시중을 드는 것입니다."
"장군은 양나라 사람으로 위나라에 와서 벼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양나라나 위나라는 진나라의 하인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장차 진나라 왕으로 하여금 양나라나 위나라 왕을 가마솥에 삶거나 소금에 절이게 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노중련의 말에 신원연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건 너무 지나친 말씀입니다."
그러나 노중련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옛날 이야기를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옛날 구후와 악후, 그리고 주나라 문왕은 은나라 주왕을 섬겼습니다. 구후는 예쁜 딸을 주왕에게 바쳤는데, 주왕은 그 딸이 못났다고 하여 구후를 죽여 소금에 절였습니다. 악후가 그 사실을 강력하게 비판하자, 주왕은 악후를 죽여 포를 떴습니다. 문왕은 그 말을 듣고 '아아!'하고 다만 크게 탄식하였을 뿐인데, 주왕은 문왕을 백일 동안 창고 속에 가두었습니다."
그제서야 신원연은 노중련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를 고쳐 앉으며 노중련에게 절을 하고 말하였다.
"이제 저는 이곳을 나서는 순간부터 진나라 왕을 제로 칭하자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겠습니다."
한단을 포위하고 있던 진나라 장군은 노중련의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위나라 공자인 무기, 즉 신릉군이 진비의 군사를 탈취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러오자, 진나라 군사는 포위망을 풀고 퇴각하였다. 평원군은 조나라 왕에게 노중련을 천거하여 벼슬을 내리도록 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중련은 단 한 마디로 거절하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 제나라로 돌아간 노중련은 초야에 묻혀 살았다. 그런데 연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여 요성을 빼앗았다. 연나라 조정에서는 어떤 자가 요성을 점령한 장군을 참소하였고, 따라서 그 장군은 주살될 것이 두려워 연나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요성만 굳게 지켰다.
제나라 장군 전단이 1년 이상 요성을 공격했으나, 연나라 장군이 굳게 성을 지키고 있어서 쉽게 공략하지 못하였다. 이때 노중련이 편지를 써서 화살에 묶어 성안으로 쏘아 보냈다. 연나라 장군은 노중련의 편지를 읽고 설득당하여, 사흘 동안 고심하였다. 편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연나라로 돌아가도 죽을 것이고, 제나라에 항복해도 죽을 것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연나라 장군은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남의 칼에 죽느니 차라리 내 스스로 죽는 것이 낫겠다."
연나라 장군은 자결하였다. 제나라 장군 전단은 곧 장군이 죽어 혼란에 빠진 요성을 공격하여 힘 안 들이고 탈취하였다. 제나라 왕은 노중련의 공훈을 높이 사서 벼슬을 주려 하였다. 그러나 노중련은 바닷가로 도망을 가서 숨어살았다.
"내가 부귀하여 남에게 굽히기보다는, 차라리 빈천하여 세상을 가볍게 여기며 자유롭게 살리라."
노중련이 바닷가로 도망가면서 한 말이었다.
선택 : 버리면 가볍고 가지면 무거워지는 것이 재물과 권력이다. 따라서 정신적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버리는 것'을 택하고, 물질적 풍요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가지는 것'을 택한다. 어느 것이 자기 인생을 값지게 하는 것인지는 선택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여하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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