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열일곱번째 이야기 - 공양의 진실
깊은 산속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벗삼아 수도에 정진하고 있던 한 보살이 있었다. 그는 대자대비심으로 일체중생의 생사고뇌를 해결하고자 밤낮없이 깨달음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보살의 수도를 방해하는 한 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한 마리 '이'였다. 이는 보살의 옷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보살은 이가 배고플 때마다 피를 빠는 통에 부동심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보살은 그 놈의 이를 잡기로 작정했다. 옷을 한참 뒤져 결국 이를 붙잡은 보살은 그 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보살은 차마 이를 죽이지 못하고 썩은 뼈다귀 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그 뼈다귀에 붙어 있는 살점에서 남은 피를 빨아먹으며 칠일을 살았으나,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자 결국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생사의 바다를 전전하였다. 보살은 뼈를 깎는 수도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설이 길을 덮어버려 사람들이 나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때 한 부자가 선근을 심고자 하는 뜻에서 부처님과 수천 명의 제자들을 초청해 칠일 동안 정성을 다해 공양을 베풀었다. 그런데 칠일이 지나도 폭설이 그치지 않아 길은 여전히 사람들이 나다니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부처님은 아난과 기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그러자 아난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말했다.
"그 부자가 정성을 다해 칠일 동안 부처님과 저희들에게 공양을 했으니, 며칠 더 공양을 베풀어달라고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눈이 갈수록 많이 오니, 이대로 사원으로 돌아간다면 당분간은 걸식할 곳도 없을 듯합니다."
"그 부자는 이제 더 이상의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는 우리에게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마친 부처님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원으로 돌아가셨다. 다음날 부처님은 아난을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네가 그 부잣집에 가서 걸식을 해보도록 하라."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에 따라 그 부잣집 앞에 가서 발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문지기는 아난이 걸식하러 온 모습을 보고서도 주인에게 가서 알리지도 않고,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아난은 잠시 기다렸다가 그 부자가 보시를 베풀 뜻이 없음을 알고 사원으로 돌아와 전후의 사정을 부처님에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어떻게 어제와 오늘의 태도가 그렇게 확연하게 다를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먼 과거세에 자신이 보살로 수행하고 있을 때 한 마리 이와 있었던 인연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난아, 나는 자비심에서 그 이의 목숨을 구해주고 썩은 뼈다귀 위에 놓아주었다. 그 이는 그 때문에 칠일 동안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그 이가 이번 세상에서 부자로 환생하여 그때의 인연을 내게 칠일 동안 각종 산해진미로 공양해 갚은 것이다. 이제 칠일이 지났으니, 그 부자의 정성도 다했으리라. 이제 그 이유를 알겠느냐?"
<육도집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