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열다섯번째 이야기 - 호리병 속의 미녀
옛날에 궁중의 여자들을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는 한 국왕이 있었다. 어느날 정부인이 태자에게 말했다.
"나는 네 어머니잖니? 그런데 나는 일생동안 궁궐 밖을 나가보지 못했단다. 이제는 세상 구경도 좀 하고 싶으니 네가 부왕에게 말해주렴."
정부인이 세 번 말하고 태자가 부왕에게 세 번 간청한 다음에야 국왕은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렇게해서 왕자가 직접 마차를 몰고 외출하게 되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환송했다. 정부인은 손으로 마차의 휘장을 걷어 뭇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태자는 모친의 행동에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궁궐로 돌아와버렸다. 그러자 정부인이 말했다.
"궁 밖에 나가자마자 돌아왔으니, 재미있는 것은 하나도 못 보았구나."
그 말을 들은 태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정부인임에도 이러한데, 나머지 궁녀들이 밖에 나간다면 화를 불러일으킬 게 별을 보듯 뻔하구나.' 태자는 밤이 되자 궁궐을 나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 산 속에 난 오솔길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맑은 샘물이 흘렀다. 태자는 한 수행자가 오는 모습을 보고 그 나무 위로 올라갔다. 수행자가 샘물로 세수를 한 후 음식을 풀어놓고 도술을 부리자 입에서 호리병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호리병속에서 한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무를 병풍삼아 마치 방안에 있는 것처럼 함께 드러누웠다. 잠시후, 수행자가 잠이 들자 그 여인은 도술을 부려 입에서 호리병을 토해냈는데, 그 안에서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여인은 그 젊은 남자와 함께 즐기다가 다시 호리병 속에 그 남자가 들어가게 한 다음 호리병을 삼켜버렸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수행자는 그 여인을 호리병 속에 들어가게 한 다음 호리병을 삼키고선 지팡이를 들고 길을 떠났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태자는 궁궐로 돌아와서 국왕에게 말했다.
"수행자를 초대해서 공양하고자 하니 음식 삼인분을 차리도록 해주십시오."
초대를 받고 온 수행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한 사람을 초대해놓고 음식은 삼인분을 차리다니..."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수행자여, 당신 호리병 속에 있는 그 미녀를 불러내셔야죠."
수행자는 할 수 없이 호리병 속의 미녀를 불러냈다. 태자는 또 그 미녀에게 말했다.
"당신 호리병 속에 있는 젊은 남자도 불러내서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하죠."
미녀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호리병 속에 있는 그 젊은 남자를 불러냈다. 그들이 공양을 끝내고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국왕이 태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수행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느냐?"
"어머니가 외출하실 때 제가 직접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마차의 휘장을 걷어 뭇 사람들에게 얼굴을 내보였습니다. 저는 여인들이란 호기심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궁궐로 돌아와버렸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아까 그 수행자가 호리병 속에서 미녀를 불러내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수행자가 잠이 들자 미녀 또한 젊은 남자를 호리병 속에서 불러내 정을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아하니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인가 보옵니다. 원컨대 부왕께서는 궁녀들에게 관대함을 베풀어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태자의 말을 듣고난 국왕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궁녀들이 자기 뜻에 따라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허락했다고 한다.
<구잡비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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