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제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열번째 이야기 - 스님을 쫓아다닌 여인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아난은 걸식을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여인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때마침 갈증이 나서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다. 그 여인은 아난을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물을 주고 나서 아난의 뒤를 밟아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두었다. 그 일이 일어난 그날로 여인은 상사병으로 몸져 누워버렸다. 이에 어머니 마등은 딸에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머니, 오늘 우물가에서 아난이라는 스님을 만났는데 저는 그분에게 시집가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시집가지 않겠어요."
"아난은 스님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네 남편이 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딸은 계속 울기만 하다가 마침내 식음도 전폐했다. 그러자 마등은 주술을 사용해서 아난을 식사에 초대했다. 딸은 뛸 듯이 기뻐했다. 식사를 마치자 마등은 아난에게 물었다.
"제 딸년이 스님에게 시집가고자 하는데, 스님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저는 불제자로 계를 지키는 사람이라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제 딸은 스님에게 시집가지 못하면 자살하고 말겠다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저는 불제자라 여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등이 딸에게 가서 아난의 입장을 전하자 딸은 울면서 졸라댔다.
"그럼 문을 닫아걸고 아난을 나가지 못하게 하세요. 밤이 되면 제 남편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마등은 딸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겠기에 그녀의 말대로 문을 닫아걸고 주술을 써서 아난을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이윽고 저녁때가 되자 마등은 딸을 위해 신방을 차려주었다. 딸은 기뻐하며 몸치장을 했다. 그러나 아난은 절대로 신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마등은 뜰에 불을 피워놓고 아난의 옷을 끌어 당기며 협박했다.
"당신이 끝내 내 딸년의 소청을 들어주지 않겠다면, 당신을 저 불속에 집어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난은 그때부터 부처님께 기원하기 시작했다. 부처님은 곧 아난이 처한 위기를 파악하시고 신통력을 써서 아난을 구출해냈다. 아난은 부처님에게 전후사정을 자세히 알려드렸다. 아난이 탈출한 사실을 알게 된 마등의 딸이 다시 울어대자 마등이 말했다.
"그는 불제자라 나의 주술로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마등의 딸은 계속 아난만 생각하다가 급기야 아난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아난은 애써 피해다녔지만 그녀는 지칠 줄 모르고 따라다니기를 그치지 않았다. 아난이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돌아가버리자 그녀는 문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아난이 다시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자 그녀는 그제서야 울면서 자리를 떴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말했다.
"마등의 딸이 오늘 저를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등의 딸을 불러오게 해서 물었다.
"너는 왜 아난의 뒤를 따라다녔느냐?"
"저는 아난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아난은 사문이라 삭발을 했다. 너도 삭발을 한다면 아난을 남편으로 맞게 해주겠다."
"그렇다면 저도 머리를 깎겠습니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 네 어머니에게 알리고 삭발을 한 후 다시 오너라."
마등의 딸은 어머니에게 부처님이 한 말씀을 전했다. 이에 마등이 말했다.
"나는 너를 낳아 기른 어미다. 그런데 너는 스님의 아내가 되고자 삭발하고 속세와 인연을 끊을 참이냐? 마음을 고쳐먹고 성안의 큰 부자와 혼인을 하도록 하여라."
"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난의 아내가 되겠어요."
"너는 어찌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려고 하느냐?"
"어머니,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마등은 딸의 마음을 돌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출가를 허락하였다. 딸은 곧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와서 말했다.
"제가 머리를 자르고 왔습니다."
"너는 아난의 어디를 사랑하느냐?"
"저는 아난의 눈, 코, 입, 귀 그리고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사랑합니다."
"눈 속에는 눈물이 있고, 코 속에는 콧물이 있고, 입 속에는 침이 있다. 또 귀속에는 더러운 때가 들어 있으며 몸 속에는 오줌과 똥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들어 있다. 또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으면 자식을 보게 되고, 자식이 생기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슬픔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몸에 집착할 게 뭐가 있단 말이냐?"
마등의 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어 아라한의 도를 이루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아난이 있는 곳에 가보도록 하라."
그녀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리석은 탓에 앞 뒤 모르고 아난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열려 마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배를 타고 평안한 섬이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또 시각장애인이 부축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고, 노인이 지팡이를 얻게 된 것과도 같습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셔서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이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이 여인의 어머니는 주술을 행하는 사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 딸이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까?"
"비구들아, 마등의 딸은 오백세에 걸쳐 아난의 아내였다. 그들은 그 오백세 동안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부부였다. 그 인연으로 오늘 내 가르침 안에서 도를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옛날의 그 부부가 다시 만나 형제같이 되었으니, 이런 불도를 어찌 닦지 않겠느냐?"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모두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설마등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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