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군주가 알아주지 않으면 인재는 그 곁을 떠난다 - 상앙
"대왕께서 상앙을 중히 쓰지 않으신다면, 그가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 전에 잡아죽이십시오. 만약 그를 살려 다른 나라로 가게 한다면 장차 위나라에 큰 걱정거리를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상앙은 위나라의 여러 첩들이 낳은 공자들 중의 한명이었다. 성은 공손 씨이며, 그의 조상은 본래 희성이었다. 젊어서부터 형명의 학을 익힌 상앙은 위나라 재상 공숙좌를 섬겼으며, 중서자란 낮은 벼슬자리에 있었다. 공숙좌는 상앙이 매우 현명하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았으나, 나중에 그를 크게 쓰기 위해 아껴두고 있었다. 그런데 공숙좌는 상앙을 왕에게 추천도 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병들어 버리고 말았다. 위나라 혜왕이 친히 공숙좌를 문병하고 나서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대의 병이 악화되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될까봐 큰 걱정이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장차 나라일을 누구에게 맡겼으면 좋겠소?"
공숙좌가 말하였다.
"제가 거두고 있는 사람 중에 중서자로 있는 상앙이 적격입니다. 그는 아직 젊어 연륜은 적으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대왕께서 그를 중용하여 이 나라의 일을 의논하면 능히 해낼만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혜왕은 공숙좌의 말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상앙이란 인물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혜왕이 일어서려하자, 공숙좌가 말하였다.
"대왕! 잠시 주위를 물리시고 제 말씀을 더 들어주십시오."
혜왕이 좌우를 물리고 나서 물었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있소?"
"네, 이것은 반드시 지키셔야 할 일입니다. 대왕께서 상앙을 중히 쓰지 않으시겠다면, 그가 다른 나라로 도망가기 전에 잡아죽이십시오. 만약 그를 살려 다른 나라로 가게 한다면 장차 위나라에 큰 걱정거리를 만드는 일이 될 것입니다."
혜왕은 공숙좌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였다. 공숙좌는 혜왕이 가고 나자 곧 상앙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조금 전에 대왕이 내게 정승을 삼아 국정을 논의할만한 인물을 천거하라고 해서 자네를 추천하였네. 그랬더니 대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네. 자네를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지. 미안한 얘기네만, 선비는 자신이 섬기는 군주를 먼저 생각하고, 신하를 나중에 생각하는 법이네. 그래서 나는 대왕께 '상앙을 등용치 않을 생각이시면 마땅히 그를 죽여야 한다'고 말씀드렸네. 대왕께서도 그러겠다고 하셨네. 대왕은 그대를 등용치 않을 것이 분명하니, 자네의 목숨이 위태롭네. 어서 다른 나라로 도망치게나."
상앙이 말하였다.
"대왕께서 승상의 말씀을 듣고도 저를 등용치 않을 눈치였다면, 저를 죽이라고 한 승상의 그 말씀 또한 듣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한편 혜왕은 궁궐로 돌아와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숙좌의 병이 매우 위독하니, 슬픈 일이로다. 과인에게 상앙을 추천하면서, 나라 일을 그와 의논하라 하니 제 정신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병이 깊어 공숙좌의 정신이 흐려지지 않고서야 어찌 과인에게 그런 인물을 추천할 수 있겠는가?"
혜왕은 공숙좌가 노망했다고 여긴 것이었다. 드디어 공숙좌가 죽었다. 위나라 혜왕은 그후에도 상앙을 부르지 않았다. 때마침 진나라 효공이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인재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상앙은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버렸다. 진나라로 간 상앙은 효공의 총애를 받고 있는 경감을 만났다.
"대왕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경감은 곧 상앙에게 효공을 만날 수 있게 주선하였다. 효공을 만난 상앙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열심히 설파하였다. 그러나 효공은 꾸벅꾸벅 졸기만 하였다. 상앙이 물러가고 나서 경감이 효공에게 물었다.
"상앙이란 자의 인물됨됨이가 어떠합니까?"
"그저 허망한 말만 지껄이길 좋아하는 사람이오.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겠소?"
경감이 상앙을 만나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효공의 반응이 그 정도냐고 책망하였다. 그러자 상앙이 말하였다.
"내가 5제시대 제왕의 도를 이야기하였지만, 대왕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만나게 해주십시오."
경감은 다시 주선하여 상앙을 효공에게 안내하였다. 효공은 상앙과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상앙에게서 큰 호감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효공은 경감을 불러 어찌 그런 인물을 소개하냐고 책망하였다. 경감이 상앙을 만나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내가 하, 은, 주 3대 성왕들의 예를 들어 왕도에 대해 이야기하였더니, 아직 대왕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시 만나게 해주십시오."
세 번째 만나고 나서 효공은 비로소 상앙이 인재임을 알게되었다. 효공은 상앙을 내보낸 후 경감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가 추천한 상앙이란 자는 좋은 사람이오. 과인이 함께 이야기할 만한 상대요."
경감은 상앙을 만나 효공의 뜻을 전했다.
"내가 대왕께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는 패도에 대해 이야기하였더니 몹시 관심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대왕을 다시 한 번 만나게 해주십시오. 나는 이제 대왕의 뜻을 알고 있습니다."
상앙이 네 번째 효공을 만났다. 효공은 자신의 무릎이 상앙 쪽으로 점점 다가들고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 수일에 걸쳐 계속되었는데, 효공은 결코 지루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효공에게서 물러나온 상앙에게 경감이 물었다.
"그대는 대체 무슨 이야기로 대왕을 저토록 기쁘게 할 수 있었소?"
상앙이 말하였다.
"대왕께 제왕의 도를 시행하면 하, 은, 주 3대의 태평성대에 비길만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러한 업적을 당대에 이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효공은 곧 상앙을 등용하였다. 위나라에서 버림받은 상앙이 진나라에 와서 드디어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었다.
설득 : 설득을 하는 데는 단계가 있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노인에게 죽을 먹이듯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설득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성급히 결론을 내세워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 입장에 서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설득의 지혜다.
법을 세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다.
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자 진나라 백성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고, 산적이나 좀도둑이 없어졌으며, 집안은 풍족하고 모두가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진나라 효공에 의해 등용된 상앙은 부국 강병의 방책으로 법을 고치려고 하였다. 그러나 효공은 다른 신하들이 비방할 것을 두려워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의심하면서 시행하면 그 일을 결코 성공시킬 수 없습니다. 대체로 남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본래부터 세상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고, 홀로 아는 지혜를 지닌 사람은 백성들의 경멸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우매한 사람은 일의 성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을 하지 못하며, 지혜 있는 사람은 일의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예견을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이나 함께 일을 계획할 수는 없으나, 함께 일의 성과를 즐길 수는 있습니다. 지고한 덕을 지닌 사람은 속설을 따르지 아니하며, 큰 공을 성취하는 사람은 여러 사람과 모의해서 일을 결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인은 진실로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일이면 그 옛것을 법으로 지키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예를 따르지 않습니다."
상앙의 이같은 말을 듣고서야 효공은 결단을 내렸다.
"좋소! 그대의 생각대로 진행하시오."
이때 감룡과 두지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상앙은 백성들의 풍습을 바꾸는 것을 옳지 않다는 감룡의 말을 '통속적'이라고 맹렬히 비판하였으며, 옛것을 따라야 한다는 두지의 주장에 대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공박하였다. 그러면서 상앙은 옛날 성군들의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은 옛 제도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왕자가 되었으며,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은 예를 바꾸지 않았으나 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옛 제도에 상반된다고 하여 비난할 것도 아니고, 옛것을 좇는다 하여 칭찬할 것도 못됩니다."
"그 말이 옳다!"
효공은 상앙의 말을 지지하였다. 효공은 곧 상앙을 좌서장으로 삼고, 그로 하여금 법을 변경하도록 하였다. 상앙이 새롭게 만든 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 백성으로 하여금 열 집 또는 다섯 집으로 통, 반을 구성하여 서로 죄를 적발하고, 그 죄에 연좌되게 한다. 그리하여 죄를 지은 것을 고발하지 않는 자는 허리를 베는 형벌을 주고, 고발한 자에게는 적의 머리를 베어오는 자와 같은 상을 주며, 죄를 숨긴 자는 적에게 항복한 자와 같은 벌을 주게 한다.
둘째, 백성으로서 아들 두 사람을 두고 분가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 세금을 배로 올린다.
셋째, 군공이 있는 자는 그 공의 비율에 따라 상등의 벼슬을 주고, 사사로운 싸움을 한 자는 각각 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받는다.
넷째, 어른이나 아이나 다 힘을 모아 농사를 짓고 길쌈을 하며, 곡식과 피륙을 많이 바친 자는 부역을 면제케 한다.
다섯째, 상공업을 일삼아 이익만 추구하는 자와 게으른 자는 모두 잡아들여 노예로 만든다.
여섯째, 종실일지라도 군공이 있지 않으면 심사하여 공족의 족보에서 제외시킨다.
일곱째, 높고 낮은 신분의 등급을 분명히 하여, 그 점유하는 전택과 신첩과 의복의 제도를 그 집의 신분 등급에 따라 차등을 둔다.
여덟째, 공이 없는 자는 부유하여도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없게 한다.
상앙은 이러한 법령을 제정한 다음 시행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시험을 하였다. 우선 상앙은 세 길이 되는 나무를 남문에 세워놓은 다음, 백성들을 불러 모아 그 나무를 능히 북문으로 옮겨놓는 자에게는 10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백성들이 의심스러워 감히 나무를 옮기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영을 내려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놓는 자에게는 50금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것을 옮겨 놓았다. 그는 즉석에서 그 사람에게 50금을 주어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서 마침내 상앙은 새로운 법령을 공포하였다. 법령을 공포한 지 1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 이때 마침 태자가 법을 어겼다.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입니다."
상앙은 태자를 법대로 처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태자라는 특별한 신분 때문에 감히 처벌할 수 없어, 태자의 보좌관인 공자 건과 스승 공손가에게 그 죄를 물어 경형에 처하였다. 경형은 바늘로 얼굴과 몸을 찔러 먹물로 죄명을 새겨넣는 형벌이었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법의 무서움을 알고 모두들 새 법령에 따랐다. 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지나자 진나라 백성들은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고, 산적이나 좀도둑이 없어졌으며, 집안은 풍족하고 모두가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또한 백성들은 국가를 위한 싸움에 용감하게 나섰으며, 사사로운 싸움을 피하였다. 그 전에 법령이 불편하다고 말하던 자들이 이제는 법령이 편하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도 법령의 교화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상앙은 법령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자들을 변방의 성으로 내쫓았다. 그후부터 아무도 법령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상앙은 대량조로 승격되었다. 이후에도 상앙은 계속 개혁 정치를 펴서 토목 공사를 일으키고, 농지를 개간하였으며, 부세를 공평하게 하는 한편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그로부터 4년 후 공자 건이 법을 어겼다. 전에 태자를 대신하여 경형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상앙은 용서하지 않고 코를 베는 의형에 처하였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나자 진나라는 부강해졌다. 주나라 천자가 종묘의 제사에 쓴 고기를 진나라 효공에게 보내니, 제후들이 모두 축하해 마지않았다.
규율 : 개인이나 국가나 스스로 필요에 의해 규율을 정할 때는 엄격히 집행되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외를 용납하다보면 규율은 유명무실해진다. 엄격한 규율집행만이 목적한 바를 계획대로 이룰 수 있는 지름길임을 명심하라.
인심을 잃는 자는 결국 망한다.
"시경에는 또한 '인심을 얻은 자는 흥하고, 인심을 잃어버린 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승상께서는 법을 세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지만, 그대신 인심을 잃었습니다."
제나라가 위나라의 군사를 마릉에서 깨뜨리고 태자 신을 사로잡았다. 두다리가 잘린 손빈이 동문수학한 친구이자 원수인 방연을 '솥자리 옮기기' 전술로 무찌른 바로 그 유명한 전투였다. 그 다음 해에 상앙은 진나라 효공을 설득하였다.
"지금 진나라와 위나라를 비유한다면 사람의 뱃속에 병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위나라가 진나라를 병합하지 않으면, 진나라가 곧 위나라를 병합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기느냐 지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왜냐하면 위나라는 험준한 산령의 서쪽에 위치해있어 안읍에 수도를 정하였고, 진나라는 황하를 경계로 하여 산동의 이권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위나라가 생각할 때 유리하면 서쪽의 진나라를 칠 것이고, 불리하다 생각하면 동쪽을 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진나라는 대왕의 위광에 힘입어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위나라는 작년에 제나라에게 마릉에서 대패하여 힘이 쇠하였고, 제후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습니다. 위나라를 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약 위나라를 제압한다면 진나라는 천연의 요새인 산하를 거느려, 동쪽의 제후들을 굴복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왕께서 꿈꾸어오신, 제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효공은 상앙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즉시 상앙을 장군으로 삼아 위나라를 치게 하였다.
한편 위나라에서는 공자 앙을 장군으로 삼아 진나라 군대와 맞서 싸우게 하였다. 두 나라 군대가 대치하였을 때, 상앙은 위나라 공자 앙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옛날에 공자와 서로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제 함께 두 나라의 장군이 되었으나 차마 서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공자와 함께 서로 낯을 대해보고 맹약을 한 뒤, 즐겨 술이나 마시면서 전쟁을 중지하여 진나라와 위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위나라의 공자 앙도 그렇게 생각하였다. 곧 상앙은 공자 앙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때 상앙은 무사를 곁에 숨겨두고 있다가 위나라 공자 앙을 사로잡았으며, 그 길로 공격 명령을 내려 지휘하는 장군을 잃은 위나라 군대를 무참하게 짓밟았다. 위나라 혜왕은 진나라와 화친을 맺기 위해 하서의 땅을 베어 바치고, 수도를 안읍에서 대량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서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일찍이 공숙좌의 진언을 들어 상앙을 채용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에 와 생각하니 후회막급이로다."
상앙이 위나라를 깨뜨리고 돌아오자, 진나라 효공은 그를 상 땅의 15읍에 봉하고 '상군'이라 불렀다.
상앙이 진나라 재상이 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진나라의 종실과 외척들 중에서는 그를 원망하는 자들이 많았다. 상앙은 법을 세워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지만, 너무 법을 앞세워 가차없는 형벌을 가했기 때문에 인심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 더구나 위나라 공자 앙을 속여 전쟁에서 이긴 것은 그에게 오히려 큰 흠으로 작용하였다. 어느 날 상앙은 군자로 소문난 조량을 만나 다음과 같이 청하였다.
"맹란고의 소개로 선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선생과 사귀기를 청합니다."
이때 조량이 냉담하게 말하였다.
"저는 싫습니다. 공자의 말씀에 '어진이를 천거하여 받들어 모시는 이는 진취하고, 부정한 자들을 모아 왕노릇을 하는 자는 몰락한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옛말에 '자기가 있을 만한 지위가 아닌 데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지위를 탐한다고 하고, 자기가 누릴 수 있는 명성이 아닌 것을 누리는 것을 이름을 탐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만약 승상의 호의를 받아들여 친교를 맺는다면 저는 지위를 탐하고 이름을 탐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상앙은 매우 불쾌하였다. 조량이 스스로를 낮추는 듯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선생은 내가 진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천 장의 양가죽은 한 장의 여우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의 '네 그렇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는 말은 한 선비가 '아닙니다'하고 부정하는 것만 못합니다. 은나라 주왕은 신하들의 말을 봉쇄하여 멸망하였고, 주나라의 무왕은 신하들의 직언을 받아들여 번창하였습니다. 만약 승상께서 무왕을 그르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저를 주살하지 않으신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바른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량이 이와 같이 나오자, 상앙이 화를 억누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말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겉으로 꾸미는 말은 아름답고, 지극한 말은 절실하며, 충고하는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병이 된다고 합니다. 선생께서 과연 하루 종일 바른 말 하시기를 즐겨하신다면, 저에게는 그것이 아주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상앙은 예의를 다하여 대답했지만, 그 말과 억양 속에는 상대에 대한 비웃음이 곁들여 있었다. 그러나 조량은 서슴없이 상앙의 잘못을 지적하였다. 태자의 죄를 물어 공자 건과 스승 공손가에게 경형을 가한 것이며, 법을 어긴 백성들에게 엄중한 죄를 묻고, 법령에 대해 의견을 말한 사람을 변방의 성으로 내쫓은 것 등을 열거하였다. 그리고 나서 "시경"에 나오는 말을 예로 들어 상앙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시경에 말하기를 '쥐를 보아도 몸이 있건만 사람으로서 예 없을까. 사람으로서 예 없으면 어찌 빨리 죽지 않을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를 가지고 본다면 승상께서는 장수를 누릴 수 없습니다. 지금 공자 건은 경형에다 코를 베는 형벌까지 받아 문을 닫고 밖에 나오지 않은 지가 8년이 넘었습니다. 시경에는 또한 '인심을 얻은 자는 흥하고, 인심을 잃어버린 자는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승상께서는 법을 세워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지만, 그대신 인심을 잃었습니다. 서경에는 '모든 일에 덕을 근본으로 삼는 자는 영달하고, 힘을 근본으로 삼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승상의 위태로움은 아침 이슬과 같습니다. 어째서 봉지로 받은 상 땅의 15읍을 나라에 돌려주고, 시골에 돌아가서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으십니까?"
상앙은 이와 같은 조량의 말을 끝내 듣지 않았다.
그 뒤 불과 다섯 달만에 진나라 효공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여 혜왕이 되었다. 상앙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무리들은 새로 즉위한 왕에게 고하였다.
"상앙이 지금 군사를 모아 모반을 꾀하려 하고 있습니다."
혜왕은 즉시 상앙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상앙은 시급히 변복을 하고 도망쳤다. 그가 함곡관에 이르러 어느 여관에 묵으려 할 때였다. 상앙의 얼굴을 모르는 여관의 여주인은 여행 증명서를 내보이라고 하였다. 급하게 도망쳤기 때문에 상앙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상앙 어른이 정하신 법에 의하면 여행 증명서가 없는 자를 유숙시킬 경우 처벌을 받게 됩니다."
여관에서 쫓겨난 상앙은 스스로 탄식하였다.
"아아, 내가 만든 법에 내가 걸려들었구나!"
상앙은 진나라 국경을 넘어 위나라로 갔다. 그러나 위나라 백성들은 공자 앙을 속여 위나라 군대를 격파시킨 상앙을 원수처럼 여기고 있었다. 상앙은 다시 다른 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아니된다. 상앙은 강국인 진나라의 적이므로 받아들였다가는 진나라의 미움을 살 수 있다."
나라마다 이렇게 나오니 상앙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상앙은 몰래 진나라로 되돌아와 그의 일족과 상읍의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는 곧 군대를 출동시켜 정나라의 민지에서 상앙을 사로잡아 죽였다. 그의 일족들도 몰살당하였다.
인심 :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존재할 수 없다. 타인의 생각은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올바름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올바르다고 해도 결국 주위에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인심을 잃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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