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읽는 사마천 사기 1 - 엄광용 엮음
(세상과 나를 바꾸는 지혜 명인 40인의 성공처세학)
폭군의 녹봉을 받느니 고사리나 캐먹고 살겠다 - 백이, 숙제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쳐서 천하를 평정하였다.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한 무왕은 폭군이다. 내 어찌 주나라의 녹봉을 받아먹으며 목숨을 연명하리." 백이와 숙제는 이렇게 한탄하였다.
백이, 숙제의 아버지 묵태초는 은나라 사람으로 고죽국의 군주였다. 군주인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두 아들은 서로 왕위를 양보하였다. 아우인 숙제가 먼저 형 백이에게 말하였다.
"아버님의 뒤를 이어 마땅히 장자이신 형님께서 즉위하셔야 합니다."
백이가 펄쩍 뛰었다.
"아버님께서는 평소 숙제, 너에게 양위하려고 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아버님 의 뜻대로 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백이는 자신이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숙제가 계속 고집을 부려 왕위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몰래 도망을 쳤다. 그러자 숙제도 형 백이를 따라 도망쳤다. 고죽국에서는 할수 없이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왕자를 뽑았다.
"형님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백이를 만난 숙제가 물었다.
"너도 왕이 되기 싫어 도망쳤구나?"
"형님이 마땅히 왕위에 오르셔야 하는데 제가 어찌 그 자리를 탐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형님을 따라가렵니다."
"소문을 들으니 서백인 창이 노인을 잘 모신다고 하더라. 그 사람에게 가서 의탁하련다."
'서백'은 서방의 제후를 뜻하며, '창' 은 주나라 문왕의 이름이다.
"저도 들었습니다. 주나라 문왕은 강가에서 낚시질하던 태공망 여상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태자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하여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문왕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미 문왕은 죽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여 무왕이 되었다. 무왕은 그 때 아버지의 나무신주를 수레에 싣고 '문왕'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동방에 있는 은나라의 주왕을 치려고 하였다. 당시 주왕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을 뿐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는데, 그 기회를 노려 주나라 무왕은 군사를 일으켜 은나라를 정복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들고 간청하였다.
"부왕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이웃 나라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과인은 지금 이렇게 부왕의 신주를 모시고 가는 거요. 즉 부왕이 직접 군사를 일으킨 것이며, 과인은 마땅히 신하로서 장군이 되어 군대를 이끌고 있을 뿐이오. 따라서 전쟁에 이기고 돌아온 후에 부왕의 장례를 치러야 마땅하다는 것이 과인의 생각이오. 그런데 그것이 대체 뭐가 잘못됐단 말입니까?"
무왕이 진노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더구나 신하인 제후로서 감히 천자를 시해하려 한다면 그것을 어찌 어진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백이가 말하였다.
"지금 은나라 주왕은 천자입니다. 대왕은 부왕의 위패를 받들어 모시고, 스스로를 '무왕' 이라 칭하면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대왕은 제후로서 은나라 주왕의 신하에 불과할 뿐입니다."
숙제도 당당하게 말하였다.
"무엇이라고? 이런 무엄할 데가 있나? 여봐라! 당장 이 자들을 끌어다 목을 베도록 하라!"
무왕의 명령이 떨어지자 곁에 있던 무사들이 칼을 빼어들고 백이와 숙제에게 달려들었다.
"잠깐 멈추시오!"
그때 이렇게 소리친 것은 무왕의 스승 태공망이었다.
"아니, 왜 그러시오? 이 자들은 겁도 없이 과인을 능멸하려 들었소."
무왕이 태공망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입니다."
태공망은 무왕에게 백이와 숙제를 마땅히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상보께서 말리시니 과인이 참겠소. 저들을 풀어줘라!"
무왕은 자기 스승을 아버지처럼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태공망에게 '사상보' 라는 존칭을 쓰고 있었다.
아무튼 백이와 숙제는 태공망 덕분에 겨우 목숨을 부지할수 있었다. 결국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를 쳐서 천하를 평정하였다. 그러자 온 천하가 전에 은나라에게 하던 것처럼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받들었다.
"이제 주나라 세상이 되었구나.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한 무왕은 폭군이다. 내 어찌 주나라의 녹봉을 받아먹으며 목숨을 연명하리."
백이가 이렇게 한탄하였다.
"형님! 이제 어찌하시렵니까?"
숙제가 물었다.
"주나라 곡식을 먹느니 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나 캐먹고 사는 게 낫겠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여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숨어살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부르며 끝내 굶어죽었다.
'저 서산에 올라가
고사리를 캐네.
무왕은 포악한 방법으로
결국 주왕의 포악함에 맞섰으나
그 잘못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네.
이제 신농과 순, 우의 시절은
홀연히 사라졌으니
내 어디로 가서 몸을 의탁할 것인가.
아아, 죽는 것이 낫겠구나,
우리의 목숨도 이제 그 운명을 다하였나니.'
신의 :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의다. 장사를 하든, 사업을 하든 신의가 없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 백이, 숙제는 죽음으로써 오늘까지 우리에게 신의라는 화두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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