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15장 점술자와 예언자
1. 멜람포스 멜람포스(Melampus)는 '검은 발'이라는 의미로, 어미가 아들을 낳아 그늘에 누여 놓았는데 발에 햇볕이 낳다 다리만 검게 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아뮤타온과 에이도메네의 아들로, 크레테우스와 튜로의 손자이다. 어릴 때 펠로폰네소스 퓰로스의 집 마당에 한 그루의 떡갈나무 고목이 있었는데 그 밑둥 동굴은 뱀의 보금자리였다. 하루는 하인들이 늙은 뱀들을 죽여 새끼 뱀만 남게 되었다. 멜람포스는 어린 마음에도 가엾게 여겨 나뭇가지로 대를 만들어 죽은 뱀을 화장시키고 새끼들은 우유를 먹여 양육하였다. 어느 날 떡갈나무 아래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몸 위로 뱀들이 올라와 마치 자기들의 은인을 알아보는 양 멜람포스의 두 귀를 부드럽게 핥았다. 잠에서 깨자 멜람포스는 자신의 청력이 바뀐 것에 깜짝 놀랐다.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으며 야생 동물, 심지어는 벌레들의 단편적인 언어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앞일을 정확히 예견하는 초자연적 능력까지 지니게 된다. 거기에다 알페오스 강에서 만난 아폴론으로부터는 의술과 약초의 지식도 전수받았다.
멜람포스의 형제인 비아스는 숙부인 퓰로스 왕의 매력적인 딸 페로를 사랑하였는데 경쟁자가 많았다. 왕은 딸과의 혼인조건으로 퓰라코스의 소문난 우량 소떼를 내걸었는데, 결혼예물로서는 어마어마한 요구라 모든 경쟁자들이 실망하고 물러섰다. 단지 비아스만 미련을 못 버리고 멜람포스에게 협조를 구하니, 둘이서 소를 훔치러 나섰다. 멜람포스는 1년간의 옥살이를 한 다음에야 소를 얻을 수 있음을 예견하였다. 과연 소떼를 훔치는 현장을 목장의 사나운 맹견에 의해 발각당하는 바람에 옥에 갇혔다. 그리고 옥살이를 한 지 거의 1년이 되었을 무렵 천장 대들보 속에 사는 벌레들이 밤중에 속삭이는 말이, 이제 거의 다 파먹어 껍데기만 남고 곧 지붕이 내려앉겠다는 것이었다. 새벽이 되자 방을 당장 옮겨 주기를 간청하고 자기를 감금한 자들에게도 주의하라고 전해주었다. 과연 방을 옮기자 잠시 후 천장이 무너졌다. 이 일을 전해 들은 퓰라코스는 멜람포스가 예사롭지 않은 예언자임을 알게 되어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다.
당시 퓰라코스는 이피클로스에게서 소산이 없어 걱정이었다. 멜람포스에게 손자를 갖게 되는 방법을 알려 달라 하니 멜람포스는 소떼를 받는 조건으로 응낙하였다. 우선 멜람포스는 수소 두 마리를 희생시킨 후 고기를 잘게 저며 새들이 모여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고기를 찾아 날아든 독수리에게 물어 보니, 오래 전 퓰라코스가 숫양을 거세한 후 피묻은 칼을 아무 생각 없이 어린 이피클로스 옆에 놓았다가 아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는데 그 직후 이 칼을 성스러운 떡갈나무에 꽂아 놓고는 까맣게 잊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나무껍질에 둘러 싸여 감추어진 이 칼을 찾아 녹을 긁어서 10일간 이피클로스에게 마시게 하면 아이가 생길 것이라 하였다. 칼을 찾아 그대로 하니 과연 이피클로스는 아들 포다르케스를 얻게 되었고, 그 대가로 멜람포스는 소떼를 받았다. 멜람포스는 소떼를 비아스에게 주어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페로를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 다른 설에는 소떼를 훔치려다 발각된 멜람포스는 큰 자물쇠가 달린 감옥에 갇혀 굶어죽도록 방치되었다 한다. 그런데 그 해가 지나 감옥을 열어 보니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멜람포스는 그간 꿀벌을 불러들여 이 벌들이 자물쇠 구멍으로 날라온 꿀로 생명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한편 아르고스 여인들이 디오뉴소스 숭배에 광신적인 상태가 되어 실성하였는데 그 중에는 아르고스의 왕 프로이토스의 딸들도 끼여 있었다. 멜람포스가 왕의 요청으로 여인들을 박새풀(나리와 독초)로 완치시켜 주자 왕은 그 대가로 맏딸과 결혼시키고 영토도 나누어 주어 자리를 잡게 하였다. 그 후손들은 6대에 걸쳐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멜람포스는 그리스 세계의 최초의 예언자라 하며 사후에는 신으로 추앙되어 신전이 건립되고 숭배되었다.
2. 글라우코스 글라우코스(Glaucus)는 트로이의 안테노르와 테아노의 아들로, 파리스가 헬레나를 납치하는 것을 도왔다. 이로 인해서 그는 아비로부터 집에서 쫓겨났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트로이의 한 용사로 그리스군과 싸우던 중 아가멤논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다. 그러나 보다 보편적 설에 따르면 오듀세우스와 메넬라오스가 구하여 서로 굳은 우정을 맺었다 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글라우코스는 히폴로코스의 아들로 리시아 왕국의 태조가 되었다. 용감하고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으며 사촌인 사르페돈이 이끄는 트로이의 동맹군 리시아 장병과 함께 출전하였다. 한 번은 트로이 성 밖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그리스의 아킬레스 다음으로 젊고 용맹한 디오메데스와 미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자신들의 집안이 조상 때부터 친밀한 관계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력을 보면, 히폴로코스의 아들 클라우코스는 벨레로폰의 손자가 되며 디오메데스의 조부 오이네우스는 벨레로폰의 왕실에 초대하여 환대를 해주었다. 겸하여 우정의 증표로 오이네우스는 왕의 휘장을 단 쪽색 어깨띠를, 벨레로폰은 황금잔을 선물로 교환하고 그 후 후손도 계속해서 선물을 주고받으며 우의를 돈독히 하였다. 이에 디오메데스는 글라우코스에게 청동투구를, 글라우코스는 자신의 황금투구를 주고받은 후 자기 진영으로 되돌아갔다.
글라우코스는 그 후 용전하였고 사르페돈이 쓰러지자 달려가서 구하던 중 테우케르의 저지 공격에 부상을 당하여 전투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간절한 그의 기원으로 아폴론이 그를 곧 낮게 해주니 다시 달려가 사르페돈의 몸체를 구출하였으나 그리스 병사가 갑주를 벗겨 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 후 헥토르가 방금 쓰러뜨린 아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놓고 양측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헥토르에 가세한 글라우코스는 텔라몬의 아들 아옉스의 칼에 살해되었다. 시신은 아폴론의 명령으로 바람신이 리시아로 이송하고 그의 묘역에는 같은 이름의 개울이 흐르게 되었다.
또 다른 글라우코스는 시슈포스와 메로페의 아들 에퓨라(후에는 코린트로 개칭)라는 도시를 창건하여 왕이 되었다. 니소스의 딸 에우류메네와 결혼하여 아들 벨레로폰을 두었다. 그는 죽음 때문에 특히 유명한데, 즉 펠리아스 장례 기념 경기에 참가하였다가 이피클레스의 아들 이올라오스가 이끄는 4필 기마경기에서 진 후 자기의 포트니아이 목장 암말에게 산 채로 잡아먹혀 버린 것이다. 이는 그가 망아지에게 사람고기를 주어 키웠기 때문에 죽은 자의 망령이 말에 붙은데다 말을 용맹하게 할 의도로 발정기의 망아지가 교합하는 것을 하락하지 않아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 한다. 일설에는 망아지에게 무심코 흥분 성분을 가진 독초 양귀비 또는 동물을 실성시키는 포트니아이의 샘물을 부주의하게 마시게 하여 일어난 참사라고도 한다. 딴 전승에 의하면, 어느 날 글라우코스가 한 샘물을 마셨는데 그 샘은 불사의 삶을 주는 샘물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믿어 주지 않자 이를 입증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바다에 던져 해신이 되었고, 그 후부터 글라우코스를 바다에서 본 뱃사람은 틀림없이 죽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이름을 가진 네 번째 글라우코스는 보이오티아 안테돈 마을의 어부로, 도시를 창건하고 안테돈과 알큐온스의 아들, 혹은 포세이돈과 개울의 요정 사이에서 난 아들인데 태어났을 때는 인간이었으나 우연히 영초를 먹고 난 후 불사의 몸이 되어 해신이 되었다. 불사의 몸이 될 때 바다의 요정이 몰려와 그에게서 인간의 죽음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냈고, 어깨는 넓어지고 하체는 힘찬 고기의 꼬리로 변하였으며 윤기 있는 옅은 동록색을 띤 턱수염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겸해서 예언술을 부여받았는데 마음 내키는 대로 변덕이 심한 예언을 내렸다. 베르길리우스에 따르면, 그는 쿠마이의 여성 예언자 시뷸레의 아비이기도 하다. 메넬라오스는 귀환하던 길에 들른 말레아 곶에서 글라우코스를 만나 그로부터 형제 아가멤논의 참사를 알게 되었다. 딴 전승에는 그는 아르고 호의 건립에 관여하고 항해에도 동반하여 아르고 호 선원이 파도와 싸울 때 도움을 주었다고도 한다. 그가 일방적으로 열애한 대상으로는 요정 스큘라(포르큐스의 딸)가 있다. 그는 스큘라의 사랑을 얻고자 마술사 키르케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오히려 키르케가 글라우코스에게 반하게 되었다. 그러나 글라우코스가 자신을 외면하자 요정 스큘라를 징그러운 괴물로 변신시켜 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연정이 사그러들지 않자 심사가 난 키르케는 스큘라가 자주 유영하는 물에 독을 타서 여신으로 변신케 하였다고 한다. 글라우코스는 또한 테세우스가 낙소스 해변에 버린 미노스 왕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환심을 사고자 애썼으나 실패하고 디오뉴소스가 공주를 차지하였다.
마지막 글라우코스는 미노스 왕과 파시파에의 아들로, 어릴 때 쥐를 쫓아다니다 큰 꿀독에 빠져 실신하여 생명을 잃었다. 미노스는 행방이 묘연한 아들을 찾아 대대적인 수색을 펼쳤으나 소용이 없자 점술사 혹은 직접 아폴론의 신탁에 의뢰하였다. 그랬더니 미노스가 소유하고 있는 소들 중에 흰색, 빨간색, 검은색의 세 가지 색으로 변하는 암소 한 마리가 있는데 이 색의 변화를 가장 잘 해명하는 사람이 어린이를 찾아 되살릴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많은 점술사를 모아 물어보니 코이라노스의 아들 폴류에이도스의 해설이 가장 적절하였다. 코이라노스는 멜람포스의 증손이고 그 아비 클레이토스는 여신 에오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아 불사의 몸으로 변신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탁월한 가계에서 태어난 폴류에이도스는 암소를 변색하면서 익어가는 뽕나무 열매 오디에 비유하여 처음에는 희고 다음에는 빨개지며 마지막에는 까매진다고 설명하였다. 이는 정국에 가까운 설명임이 인정되어 왕은 그에게 글라우코스를 꼭 찾아 데려올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홀로 포도주 광에 들어가 궁리하던 폴류에이도스는 꿀벌을 쫓아 나타난 올빼미의 뒤를 밟아 꿀 항아리가 있는 데로 가게 되고 거기에서 꿀항아리에 빠진 어린아이를 찾아내었다. 그러나 미노스는 아이를 살려내야 한다고 우기며 그를 어린이와 같이 가두어 버렸다. 난감한 처지에 빠져 있는데 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린아이에게로 다가왔다. 그나마 아이가 해를 받게 되면 영영 자신이 살아날 길이 막힐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 폴류에이도스는 돌을 들어 뱀을 죽여 버렸다. 그런데 또 한 마리의 뱀이 나타나 풀잎을 가져다가 죽은 뱀 위에 덮자 다시 살아나서 두 마리가 같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것을 지켜본 폴류에이도스가 같은 풀잎을 따다가 어린아이에게 덮어 놓자 어린아이는 거짓말처럼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이번에는 자기 아들에게 점술을 가르쳐 주기 전에는 아르고스 귀향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였다. 별 수 없이 소년에게 점술을 가르쳐 놓고 고향으로 출범하는데, 전송 나온 소년에게 폴류에도스는 자신의 입 속에 침을 뱉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글라우코스는 그간 배운 것을 모두 잊고 말았다. 일설에는 글라우코스를 살린 사람은 아스클레피오스라고 한다.
3. 티레시아스 티레시아스(Tiresias)는 테베의 고명한 예언자로, 스파르토이족 우데오스(카드모스가 용의 이빨을 땅에 뿌렸을 때 솟아나와 대항한 병사의 한 명)의 후손인 에베레스와 요정 카리클로의 아들이다. 카리클로는 여신 아테나와 수레를 빈번히 같이 타는 친숙한 사이였다. 하루는 둘이서 헬리콘 산의 히포크레테(말의 샘)로 목욕을 갔는데 근처에서 사냥하던 카리클로의 아들 티레시아스가 우연히 벌거벗은 아테타 여신의 나체를 보게 되었다. 그러자 아테나는 그의 눈을 손으로 덮어 맹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카리클로는 이를 잔인한 짓이라고 비난하였다. 아테나는 불사신이 아닌 인간이 신을 본 죄로 시력을 잃게 된 것이라 하며 그 대신 티레시아스에게 층층나무 지팡이와 새의 소리까지 알아들을 수 있는 기막힌 청력과 예언 능력까지 주었다. 그러나 보다 더 유명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하루는 티레시아스가 큘레네(혹은 키타이론) 산에서 두 마리 뱀이 교미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막대기로 떼어 놓고 암놈에게 상처를 입혔다(혹은 죽였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여성으로 변해 버렸다. 세월이 흘러 7년 후 다시 같은 장소를 지나는데 공교롭게도 또 교미하고 있는 뱀을 만났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똑같이 개입하니 이번에는 남성으로 전환되어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당시 그는 여성으로 지내면서 이미 결혼생활까지 한 상태였기 때문에 양성을 경험한 셈이 되었다.
하루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남녀간의 사랑의 교합으로 느끼는 쾌락이 어느 쪽이 더 강하느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해결이 나지 않자 양성 모두 경험이 있는 티레시아스에게 묻기로 하였다. 티레시아스를 불러 물으니 그는 거침없이 교합의 기쁨을 10이라 하면 여자가 9를, 남자는 1을 차지할 뿐이라 대답하였다. 헤라는 자신의 사랑의 비밀을 폭로한 것에 격분하여 티레시아스의 시력을 없애 버렸다. 이에 제우스는 티레시아스의 봉변을 보상하기 위하여 예언술과 장생의 혜택을 주어 인간의 명으로 보면 7대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살 수 있게 하였다. 티레시아스는 테베에서 많은 예언을 행하였다. 예컨대 암피트류온에게는 알크메네의 사랑의 경쟁자를 밝혀 주고, 오이디푸스에게는 본의 아니게 죄지은 것을 밝혔으며, 크레온에게는 오이디푸스를 왕위에서 쫓아내야 병마에 신음하는 테베 사람들의 재난을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7인의 맹장이 테베를 침범했을 때는 크레온의 아들 메노이케오스를 희생으로 바쳐야 아레스 신의 노여움을 풀고 멸망을 면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테베를 침공한 에피고노이의 대학살을 모면하려면 그들과 휴전하고 야밤에 도시를 극비로 빠져 나가야 한다고 예언하였다.
그리스 및 로마의 시문에서는 티레시아스를 테베의 유명한 예언자로서 어디서나 등장시키고 있다. 왕 펜테우스에게는 보이오티아에서의 디오뉴소스 숭배를 반대하지 말도록 충언하고, 요정 에코는 변형되고 운명적인 울림만 남을 것이며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고향으로 귀환하던 도중 1년간이나 키르케의 품 안에 있던 오듀세우스는 키르케의 충고를 받아들여 하데스나라로 티레시아스를 찾아와 상의를 하기도 하였다. 제우스는 티레시아스에게 사후에도 예언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선물을 주었다. 즉, 그에게 예언능력을 가진 딸 만토를 낳게 하였는데 이 딸이 바로 예언자 몹소스의 어머니다. 티레시아스의 죽음은 에피고노이의 테베 점령과 관련되어 있다. 즉 테베 피난민에 섞여 탈출한 티레시아스는 어느 날 아침 텔푸사 샘 근처에서 쉬게 되었는데 목이 말라 마신 샘물이 어찌나 찬지 결국은 죽게 되었다. 다른 설에서는 티레시아스는 피난을 가지 않고 딸과 함께 도시에 남아 침략자의 포로가 되었으며 에피고노이가 신으로 모시는 아폴론의 성직자로서 델포이로 보내져 봉사하다 여기에서 생을 마쳤다 한다.
4. 칼카스
테스토르의 아들인 칼카스(Calchas)는 고명한 예언자로 주로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예언을 하였다. 트로이 원정에는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직접 찾아와서 동반을 종용하였다. 그는 트로이 전쟁 10년 전에 이미 아킬레스와 필로테테스 없이는 트로이 시를 함락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또한 아울리스에 원정군이 집합하여 아폴론 신에게 공양을 올릴 때 제단에서 큰 뱀이 나오더니 나무 위의 새둥지로 올라가 둥지에 있는 8마리의 새끼새와 어미새를 삼키고는 돌로 변하는 이변을 보고 9년이 지나야 트로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점쳤다. 트로이 전쟁 막바지에는 크류세이스를 그 아비에게 돌려주지 않는 한 그리스 군에 퍼지는 병을 막을 수 없다고 하였으며 그밖에 행한 여러 예언이 모두 들어맞았다. 칼카스는 아폴론에게서 그 신통력을 전수받았으며 자신의 신통력을 능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자신이 멸망한다는 신탁도 받았다. 트로이 전쟁 후 콜로폰 근처에서 이 신탁이 실현되었다. 즉 칼카스는 한 무화과 나무에 열린 열매의 수를 맞추지 못한 데 반해 몹소스(만토와 아폴론의 아들)가 이를 정확히 맞추자 깊은 시름에 빠져 죽었다 한다. 그러나 후대의 이야기는 리시아왕의 원정을 둘러싸고 몹소스와 칼카스가 정반대되는 예언을 한 적이 있었는 데 몹소스의 말대로 되자 비관하여 죽었다고 한다.
5. 라오콘
라오콘(Laocoon)은 트로이 튬브라의 아폴론 신전 신관으로 프리아모스의 둘째부인 헤쿠바의 아들, 혹은 안테노르의 아들이라 하는데 후자의 이야기가 더 유력하다. 안티오페와 결혼하여 두 아들 에트론과 멜란토스를 두었다. 두 아들은 안티파스 및 튬브라이오스라고도 부른다. 트로이 전쟁 막판에 그리스군은 위장 철수하고 해변에 거대한 목마를 남겨 놓았다. 목마는 그리스인이 아테나 여신에게 봉헌한 것이지만, 라오콘은 이 목마가 트로이에게는 재난이 될 수 있다며 성 안으로 들이는 데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목마의 옆구리에 창을 던져 불경한 행위를 저질렀다. 한편 트로이에서는 라오콘에게 해신 포세이돈에 희생공양을 올려 적군의 귀향에 폭풍과 격랑을 일으켜 주도록 기원하였다. 막 황소를 희생공양할 때 아폴론 신이 보낸 두 마리의 큰 바다뱀이 나타나더니 신관 라오콘과 두 아들을 휘감고 서로 엉키고 조여 세 부자를 박살내고 성채 사원에 있는 아테나 여신상앞에 또아리를 틀고 앉았다. 전설에 따르면 두 뱀의 이름은 포르케 및 카리보이아라 한다. 어쨌든 트로이 사람들은 라오콘의 목마에 대한 행위가 아폴론 신을 화나게 했음을 알아차리고 화급히 목마를 아폴론에 바쳤다. 그러나 신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아 마침내 트로이 시는 파멸하였다. 라오콘의 죽음을 둘러싼 다른 설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 라오콘이 결혼 첫날밤 신성한 신전에서 동침하는 모독을 저질러 아폴론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대리석상 라오콘(바티칸 소장)은 로도스의 유명한 세 조각가(하게산드로스.폴류도로스.아테나도로스)의 작품이라 하나 복제 전문가의 작품이라는 견해도 있다.
6. 프로테실라오스
프로테실라오스(Protesilaus)는 테살리아 파가사이 만 서쪽 도시의 영주 퓰라케 왕의 아들로 라오다메이아를 신부로 맞이하였으나 제대로 혼인 축하연도 못 열고 서둘러 트로이 원정에 가담하기 위하여 자신의 나라와 인근 도시의 군선 40척을 이끌고 출정하였다. 그런데 그리스인에게는 트로이 땅을 첫 번째로 밟는 자가 제일 먼저 죽는다는 신탁이 있었기 때문에 트로아스 해안에 닿은 그리스군은 트로이 왕자 헥토르와 인근 도시 콜로나이 왕 큑노스가 이끄는 무사와 마주쳐도 상륙을 머뭇거렸다. 이에 프로테실라오스가 솔선하여 해안으로 뛰어내려 공격을 가해 트로이 병사 여럿을 죽였다. 그러나 결국 헥토르와 트로이군의 칼에 쓰러지고 말았고 그 후 형제인 포다르케스가 파견함대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프로테실라오스의 시신은 헬레스폰트 건너 트라키아 케르소네소스에 매장되었으며 영웅으로 칭송하여 세스토스 근처 엘라이오스에 훌륭한 사당을 봉헌하였다. 신부 라오다메이아는 남편의 죽음을 너무나 애타게 슬퍼하였기 때문에 프로테실라오스가 잠시 명계에서 나와 신부를 위무하였으나 끊임없이 슬퍼하고 신랑을 그리워한 나머지 자진 목숨을 끊고 명계로 따라갔다. 그 외 이야기로는 첫 원정 때 트로이로 잘못 알고 뮤시아를 공격할 때 프로테실라오스는 뛰어난 역할을 하여 왕 텔레포스의 방패를 탈취하였고, 이 때문에 아킬레스는 텔레포스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한다. 또한 플리니우스에 의하면 프로테실라오스의 무덤 주위에는 매우 높이 빨리 자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트로이 쪽에서 보일 정도로 자라면 갑자기 시들어 썩어버리고, 다시 자라서 먼저와 같이 거목이 된 후 또 같은 변천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그 후 몇 대가 지나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때 케르소네소스가 페르시아인 차하에 들어가게 되고, 세르토스는 욕심 많은 총독 아르타육테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총독은 프로테실라오스 사당의 보물을 탐내어 노략질을 하고자 하였으나 크세르크세스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이에 총독은 꾀를 내어 거짓 증언으로 반항한 그리스인을 처치하고 본보기로 이들 그리스인의 가옥을 군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락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왕의 재가가 떨어지자 총독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당을 덮쳐 보물을 노략질하고는 전에 그리스인이 소아시아에서 약탈한 보물을 다시 찾았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당 성역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게 하였으며 사당에는 창녀를 두었다. 이러한 신성모독에 격분한 아테네군은 응징에 나서서 세스토스를 다시 점령하고 총독과 그 아들을 포로로 삼았다. 전하는 이야기에는 포로를 지키는 그리스인 감시원이 말린 어물을 요리하고 있었는데 마른고기가 강판에서 뛰어 올랐다고 한다. 이에 총독 아르타육테스는 프로테실라오스의 몸이 비록 건어나 다를 바 없이 쪼그리고 있어도 복수의 힘은 아직 남아 있음을 깨닫고, 두려움에 떨며 훔친 사당의 보물을 모두 되돌려 주고 또한 자신과 아들의 몸값으로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장군 크산티포스(페리클레스의 아버지)는 이 감언에 동하지 않고 총독을 십자가로 못박고 그의 아들 눈앞에서 돌로 쳐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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