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6장 제우스의 아들과 딸
9. 아테나
그리스의 아테나(Athena, Minerva)여신을 로마인은 이탈리아의 수공예 여신 미네르바와 동일시한다. 아테나는 제우스와 메티스의 딸인데 메티스가 임신하여 분만일이 다가오자 제우스는 그녀를 삼켜 버렸다.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말이 아들을 낳으면 신권을 찬탈할 것이고, 딸을 낳으면 외손자가 생겨 제우스를 천상에서 추방할 것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제우스는 심한 두통을 느끼고 헤파이스토스에게 도끼를 가져와 머리에 일격을 가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거기서 창과 방패 등으로 완전 무장한 낭자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그녀는 함성을 질러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 낭자가 바로 아테나로, 리비아의 트리토니스 호반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트리토게네이아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어린 아테나는 트리톤이 길렀으며 트리톤의 딸 팔라스와 사이좋게 지냈으나 전쟁놀이를 하다 팔라스를 죽게 하였다. 이에 아테나는 팔라스를 신상으로 조각하여 신통력을 지니게 하였는데 이 신상이 트로이 시의 방어신인 팔라디움이다. 또한 그녀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계승하여 팔라스 아테나라고 하였다. 거인족과 신족 간의 격전에서 팔라스 아테나는 거인족의 괴물 팔라스(트리톤의 딸과 동명이인)와 엔켈라도스를 처치하였다. 처치한 팔라스의 가죽을 벗겨 자신의 가슴받이로 하고 엔켈라도스는 멀리 시칠리아까지 추격하여 에트나 화산으로 덮쳐 묻어 버렸다. '일리아드'에서는 아카이아(그리스) 쪽에 서서 싸우고 있는데, 이다 산의 미의 경연에서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내린 판가름에 한을 품고 트로이에 적개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중에 여신은 디오메데스, 오듀세우스, 아킬레스 및 메넬라오스를 비호하였다. 마찬가지로 헤라클레스도 비호하였는데 특히 어려운 노역을 하게 되자 그를 무장시켰고 또 놋쇠징을 주어 스튬팔로스 호수의 새떼인 스튬팔리데스를 놀라게 해 활로 쏘아 떨어뜨리기 쉽게 해 주었다. 이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노역을 마친 후 에우류스테우스에게서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를 돌려받아 아테나에게 주었으며 거인족과의 싸움에서는 아테나를 도왔다.
아테나는 인간 중에서는 오듀세우스를 가장 아꼈다. 오듀세우스의 이타카 귀향을 도와주기 위해 표류중에 어려 모양의 인간으로 변장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였으며, 파이아키아 왕의 딸 나우시카에게는 꿈을 통해 왕궁의 빨래를 나귀에 싣고 궁녀들과 바닷가로 향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여기에서 난파당한 오듀세우스를 만나 구조케 하고 자비심을 발휘케 하여 귀중한 배 한 척을 내 주어 고향으로 떠날 수 있게 하였다. 오듀세우스가 오규기아 섬에서 난파당하였을 때는 요정 칼륨소로부터 후대를 받고 함께 산다면 불사신으로 화신하게 해 주겠다는 제의를 받아 7년간이나 체류하였으나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오듀세우스를 고향으로 보내는 것이 본인의 의사이며 도리라고 하여 결국 놓아주게 만들었다. 당시 오듀세우스는 칼륨소와의 사이에 나우시투스와 나우시누스라는 아들을 두었다고도 전한다.
아테나는 그리스 세계에서 자신에 대산 숭배가 지배적이었던 도시 아테네를 매우 아꼈다. 이성, 입법, 예술, 문예를 꽃피게 한 아테나 여신은 음악의 신으로도 추앙받았으나 실질적으로 시문과 음악보다는 철학에 더 긴밀한 연계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기능공의 여신으로 직물, 자수 수공예를 발달시켰으며 그에 대한 자부심 또한 컸다. 그래서 직물자수에 능한 아라크네라는 한 낭자가 우쭐하여 아테나도 자신을 따를 수 없다고 한 말에 그녀와 경연을 벌인 끝에 억지로 이기고 그녀를 거미로 화신시켜 버린 일도 있었다. 아테나의 천성을 전투정신에 연결시켜 4필의 말이 이끄는 전차, 2륜 전차를 발명하였다고 하기도 하며 거대한 아르고 호의 건립도 지휘한 것으로도 추앙하였다. 한편 아테나의 천성을 평화의 기량으로 추앙하여 아티카에 올리브 나무 재배와 올리브유를 발견한 여신으로도 숭배하였다. 즉 아티카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포세이돈과 갈등이 생겼을 때 두 신 중 아티카에 최고의 선물을 한 신에게 그 권한을 부여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에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아크로폴리스에 소금물 샘이 솟아오르게 하고 아테나는 이 언덕에 올리브 나무를 자라게 하였다. 올림포스 주신은 올리브 나무가 더 귀중하다고 판정을 내렸고 이후 아티카는 아테나의 관할권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아테네의 아크로 폴리스 언덕에 서 있는 장엄하고 우아한 파르테논은 바로 이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신전이다.
[그리스 고고학 박물관 : 방패(아에기스[이지스]Aegis)를 든 아테나 여신상]
이 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아테나 여신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떠 받들어졌다. 아테네에서 멀리 떨어진 스파르타, 메가라, 아르고스 및 그 외 나라 성체에서 여신의 신전을 봉현하였다. 트로이에서도 옛 팔라디움 성상을 모시고 숭배하였으며 팔라디움이 있는 한 트로이 시는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졌다. 그래서 디오메데스와 오듀세우스가 야밤에 트로이 시에 잠입하여 이 성상을 몰래 들고 나와 도시 수호의 상징을 없앴던 것이다. 역사시대에 와서는 로마의 베스타 사원에 모신 팔라디움이 바로 그 성체이며 로마시 수호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아테나는 처녀성을 자부하고 순결을 지키는 신으로 되어 있는데 일설에는 아들이 있다고 한다. 즉 어느 날 아테나가 갑옷을 부탁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 대장간에 들렀는데 때마침 아프로디테에게 배신당한 헤파이스토스가 아테나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이에 기겁한 아테나는 그를 피해 도망쳤으나 결국 헤파이스토스에게 붙잡혀 포옹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이상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헤파이스토스의 열정의 흔적인 정액이 아테나의 다리에 묻게 되었다. 불쾌히 여긴 그녀는 털헝겊으로 이를 닦아 땅에 내던졌다. 이것이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 수정되는 바람에 에릭토니오스가 태어났는데 이는 털(erion)과 땅(chthon)의 합성어다. 아이를 받은 아테나는 그를 자기 아들로 삼기로 마음먹고 다른 신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길렀다. 아이를 불사신으로 만들고자 바구니에 넣어 뱀에게 감시하게 하고, 아테네 왕의 공주 아글라우로스에게 극비로 양육할 것을 위탁하였다. 그런데 공주의 자매들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바구니를 열어보았다가 아기와 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실성, 아크로폴리스에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에릭토니오스는 신성한 경내로 옮겨져 후에 아테네의 왕이 되었다.
아테나의 상징은 창, 헬멧 및 양가죽 방패이며 제우스와 같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페르세우스가 여신에게 선사한 고르곤족 메두사의 머리를 방패에 달았다. 비록 잘린 머리지만 메두사의 눈은 이를 쳐다보는 모든 인간을 돌로 화신시키는 괴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식물은 올리브 나무고 새는 부엉이다. 아테나가 '부엉이 눈을 한'이라는 뜻의 별칭 글란코피스로 불리는 것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다'나 '사족을 붙이다'는 뜻의 영어속담 'Bring owls to Athens'가 생긴 것은 모두 이 부엉이와 연관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테나는 크지만 조용한 자세로 부드럽고 기품을 풍기는 여신으로 전해진다. 시문에서는 맑고 아름다운 눈의 여신이라 하고 심리학에서는 지혜와 진실의 여신으로서 정신적 투쟁을 상징한다.
니케
니케(Nike)는 승리의 뜻을 의인화한 여신신으로 로마인은 빅토리아라 하며 날개가 있고 빠른 속도로 난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티탄족인 팔라스와 스튝스의 딸이며 그녀에게는 젤로스, 크라토스 및 비아라는 자매가 있다고 한다. 올림포스 신들 편에 서서 티탄족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제우스의 찬양을 받은 니케는 경기에서는 승리의 여신이며, 그리스가 페리시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급격히 각광을 받아 군대의 여신으로 아테나 여신과 대응하는 여신이 되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는 니케 신전(아테나 니케 신전이라고도 한다)이 있으며 그 외 그리스 각지에 신전이 있다. 로마에는 팔리티네 언덕에 여신의 신전이 있다. 올림피아 출토 여신상과 사모트로라케 여신상이 유명하다.
팔라스 팔라스(Pallas)는 티탄족의 한 명으로 크레이오스와 에우류비아(폰토스의 딸)의 아들이며 아스트라이오스와 페르세스와 형제간이다. 스튝스를 아내로 맞이 하여 네케, 젤로스, 크라토스 및 비아라는 네 딸을 두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팔라스는 기간테스와 올림포스 신족 간의 전재에서 아테네에게 살해당한 거인이다. 아테나는 이 거인의 껍질을 벗겨 갑옷으로 만들고 그 날개를 발에 부착하였다. 일설에는 아테나 여신의 아비였는데 딸을 범하려다 죽임을 당하였다 한다. 또 같은 이름을 가진 것으로 어려서 아테나 여신과 함께 자란 트리톤의 딸이 있는데, 아테나와 전쟁놀이를 하다 잘못하여 죽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비통해한 아테나는 그녀의 목상을 파서 갑옷을 입히고 신상으로 하였다. 이 신상을 팔라디움이라 하며 이것을 소유하는 도시를 수호해 주는 영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 후 아테나는 자신의 이름을 팔라스 아테나라고 부르게 되었다.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1480년경) -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
[미술 평론가 이구열 님의 평]
도끼 모양의 기다란 창을 손에 가진 지혜와 전쟁의 여신 팔라스가 화살집을 둘러메고 오른손에 활을 쥐고 있는 폭력과 무지를 상징하는 반인 반마 (半人半馬)인 켄타우로스의 머리털을 부드럽게 거머잡고 있는 광경이다. 팔라스는 뭔가 생각에 잠긴 우아한 표정을 짓고 있고, 그녀의 옷에는 메디치 가문이 사용한 다이아몬드 문양이 들어 있으며 감람나무 가지가 얽혀 있다. 반면, 켄타우로스는 슬픈 표정에다 겁을 집어먹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디 피에르 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려진 것으로 말해지고 있고, 19세기 중엽에 피티궁에 들어갔다가 1922년 이래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왔다. 제작 연도는 로렌초가 나폴리 왕으로 하여금 피렌체 시민에게 적대하지 않도록 설득에 성공한 뒤,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귀국한 1480년 설과 메디치 가문이 더욱 확고한 정치적 기 반을 굳히는 1486년 설이 있다. 그러나 작품 양식으로 미루어, 이 화가가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를 그린 뒤에 로마에서 피렌체로 돌아간 직후인 1482~83년 무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앞에서 언급한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숭리의 상징설 외에 이성(理性 : 팔라스)이 본능(本能 : 켄타우로스)을 제어한다는 도덕적 내면이 상징되어 있다는 해석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