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27. 이사열전 李斯列傳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때를 기다렸다가 진나라로 가서 그 뜻을 실천해 천하를 통일하게 했다. 이사는 그들 모사꾼들 중의 으뜸이었다. 그래서 제27에 <이사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이사(李斯)는 초(楚)의 상채(上蔡 : 河南省 上蔡縣) 사람이다. 청년 시절에는 군(郡)의 하급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의 변소를 드나들다가 하나의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그 참 이상한 일이 아닌가. 큰 창고 안에다 수만 섬 쌀을 쌓아 둔 곳에 살고 있는 쥐들은 사람을 멀거니 보고서도 도무지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는데, 측간(厠間)에 살며 더러운 것을 먹고 사는 쥐들은 개나 사람의 기척만 나도 혼비 백산하지 않는가. 그것은 왜 그런가...... 역시 인간의 현(賢), 불현(不賢)도 몸을 두는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쥐새끼의 처신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초라한 하급 관리직을 때려 치운 뒤 순경한테로 갔다. 그는 거기서 제왕(帝王)의 정치학을 열심히 배웠다. 공부를 마친 뒤 이사는 스승에게 떠나고자 하는 뜻을 비췄다. [무엇 때문에?] [때를 포착하면 일은 지체없이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어째서 그런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바야흐로 만승(萬乘)의 대제후(大諸侯)들이 상쟁하는 시대입니다. 유세(遊說)하는 논객들이 각국의 정사(政事)를 도맡아 보고 있습니다. 유세자에게는 둘도 없는 호기(好機)라고 봅니다. 비천한 지위에 있으면서 하등의 계획도 세우지 않는 자는 금수(禽獸)가 고기를 보고서도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 해서 탐욕을 억지로 참고 지나가 버리는 어리석은 동물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계속 말해 보게.] [인간 최대의 치욕은 비천한 것이며 최대의 비통은 곤궁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은 비천하고 곤궁한 위치에 있으며 청렴을 빙자하여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무위(無爲)의 경지가 최선의 안주처인 것처럼 가장하는 바는 위선이며 진정한 사인(士人)의 길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대의 열변이나 태도를 보니 말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구나. 기회를 얻거든 부디 좋은 정치를 구현하도록 부탁할 수밖에. 그런데 그대는 어디로 갈 작정인가?] [서쪽 진(秦)나라로 가서 기회를 엿보아 진왕에게 유세하려 합니다.] [굳이 진나라인가?] [여기 초나라의 왕은 섬길 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다른 여섯 나라 역시 빈약하여 제 몸을 두기는 싫습니다.] [그래서 강한 나라로 갈 것인가.] [강한 나라로 가서 큰 공을 세우고자 합니다.] [뜻이 원대하이...... 가 보게.] [몸이 높이 되더라도 곁에 두고 지켜야 하는 좌우명을 스승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내려 주십시오.] [지나치게 성대(盛大)한 것을 경계하라. 만물이 극도에 달하면 반드시 쇠(衰)하는 법.......] 이사가 진나라에 닿았을 때 때마침 장양왕이 죽었다. 곰곰 생각한 뒤에 진의 최고 실력자 승상 여불위의 가신이 되기로 했다. 해박한 지식에 달변인 이사가 여불위의 눈에 띄는 것은 그토록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대의 계획은 대단히 웅대하오. 내가 왕〔政〕께 천거할 것이니 부디 진나라를 위해 가지고 있는 지혜를 다해 주기 바라오.] [미력하나마 있는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대의 유세가 성공할지도 모르겠소.] [승상의 도움만 바랄 뿐입니다.] 이사가 젊은 왕 앞에서 자신의 웅대한 계획을 설파할 날이 왔다. 이사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왕께 달변의 대하(大河)를 늘어놓았다. [상대의 허점을 빤히 보고서도 파고 들지 않고 우물쭈물하면 기필코 실기해 버립니다. 큰일을 성취하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허점을 공격해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옛적 진의 목공은 패자가 되고서도 끝끝내 동쪽의 육국(六國)을 병합치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후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데다 아직까지는 주왕실(周王室)의 덕이 쇠퇴하지 않았던 까닭이었으며 따라서 자연히 오패(五패)가 차례로 일어나 번갈아가며 주왕실을 존중했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 점인가?] [진의 효공(孝公) 이후로는 주왕실이 쇠미해졌고 그러자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 서로 병탄을 일삼아 관동(關東: 函谷關 이동)은 여섯 나라로 줄어 버렸습니다.] [그대의 말은 사실이다.] [진나라가 상승세를 타고 제후들을 눌러온 지가 벌써 육세(六世:孝公.惠文王.武王.昭王.孝文王.莊襄王)나 됩니다. 진나라는 지금 여러 제후국들을 부리는 모양이 마치 진의 군현(郡縣) 다루듯 합니다.] [옳은지고!] [진의 강대함에다 대왕의 현명하심을 보탠다면 그까짓 제후국들을 멸망시키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솥 위에 앉은 먼지 훔쳐내듯 쓸어 내릴 수 있습니다.] [그대의 생각에 과인도 동감한다!] [만세에 한 번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나마도 화급히 성사시켜야 합니다. 제후국들이 다시 강대해져서 서로 모여 합종(合從)을 맹약해 버린다면 황제(黃帝)의 현명함이 있더라도 천하 병합은 불가능합니다. 부디 이 때를 틈타서 황제(黃帝)로서의 대업을 성취하십시오.] 젊은 왕의 기분은 좋았다. 그렇지 않아도 야망을 채우기 위해 속앓이를 하던 진왕의 귀에는 이사의 진언이 그토록 흔쾌할 수가 없었다. 왕은 당장 이사를 장사(長史: 비서실장)에 임명했다. [과인의 가까이에서 제후국들을 멸망시킬 계략을 구체적으로 은밀히 마련하오.] [우선 모사(謀士)들을 각국에 파견하십시오.] [모사들을?] [명민하고 말 잘 하는 세객(說客)들을 보냅니다.] [보내서는?] [황금과 보석을 주어 보내 뇌물을 써서 그쪽의 명망있고 권력있는 자들과 우선 결탁해야 합니다.] [후한 선물로 우리 편에 끌어들이자는 얘기요?] [그렇습니다. 삼십만 금만 쓰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군신(君臣)간에 이간질을 시킬 수 있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자들도 있을 텐데.] [반드시 세객 좌우에 자객(刺客)들을 딸려 보내야 합니다.] [그건 왜 그렇소?] [말을 듣지 않는 자는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계략이 들통나지 않습니다.] [그대로 하오.] [뿐만 아닙니다. 우수한 장군에게 군사를 비밀리에 주어 뒤따라 들이닥쳐 제후국을 쳐 없애는 겁니다.] [그대는 나의 훌륭한 객경(客卿)이오! 그렇다면...... 제후국들 중에서 어떤 나라를 제일 먼저 재물로 삼겠소?] [한(韓)이 좋겠습니다. 국경에 접해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약한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사의 승진이 일취월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악재(惡材)가 생겼던 것이다. 진의 동쪽 진출을 막기 위하여 한의 수공(水工: 治水作業 技術者)에 정국(鄭國)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규모 공사를 건의해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국의 관개(灌漑)용 운하 개착은 진나라 국내 교란용이다. 제후국에서 들어와 진을 섬기는 자들은 실상은 자국의 이익과 주군을 위할 뿐이다. 일체의 타국인을 추방해야 한다!]
이사의 발빠른 출세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던 진의 대신들과 왕족들은 정국의 내막이 폭로되는 것을 기화로 이사 추방의 기치를 들었다. 추방자 명단 선두에 이름이 적힌 이사는 가만히 물러나진 않았다. 장문의 글을 왕께 올렸다.
- 타국인 추방의 논의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옛적에 목공은 인재 유여(由余)를 서쪽 융(戎)에서 채용하고 백리해(百里奚)를 동쪽 원에서 구하였으며 건숙(蹇叔)을 송(宋)에서 맞고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를 진(晋)에서 오게 했습니다. 진(秦)국 출신이 아닌 이들 다섯 사람을 목공이 중용함으로써 이십 국을 병합하고 드디어 서융(西戎)에서 패자가 됐습니다. 효공은 위(衛)의 상앙(商앙)의 변법(變法)을 채용하여 풍속을 개량하니 백성은 번영하고 국가는 부강하며, 백성들은 공역(公役)에 사역되기를 즐겨하고 제후는 심복하며 초.위의 군사를 격파해 땅을 넓힌 것이 천여 리나 됩니다. 혜왕은 위(魏)의 장의(張儀)의 계략을 써서 삼천(三川)의 땅(地:伊水.洛水가 黃河로 흘러드는 지대)을 점령하고 파.촉(邑.蜀)을 병합하고 북쪽 상군(上郡: 魏地)을 거두고 남쪽 한중을 공략하고 구이(九夷: 楚에 속하는 東夷諸族)를 포섭하여 언(언).영(영)을 제어하고 동쪽으로 육국의 합종맹약을 흐뜨려 이들이 서면(西面)하여 진을 섬기게 했습니다. 소(昭) 왕은 위(魏)의 범수(범수)를 얻어 양후(穰侯)를 폐하고 화양군(華陽君)을 추방하여 진의 공실(公室)을 강화해 공족(公族)들과 대신들의 사세(私勢) 확대를 막았으며 제후의 영토를 잠식해 진으로 하여금 제업(帝業)을 성취케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씀드린 네 군주는 모두 타국인의 공로로 나라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타국의 사인(士人)들을 등용치 않았다면 국가는 부리(富利)의 실속이 없고 진은 강국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이사는 아는 것이 많구나.]
- 지금 폐하께서는 곤륜산의 명옥(名玉)을 손에 넣고 수씨(수氏)의 진주와 화씨(和氏)의 벽(壁)을 가지고 명월(明月)의 진주를 차고 태아(太阿)의 명검(名劍)을 패용(佩用)하고 섬리(纖離)의 준마를 타며 취봉(翠鳳)의 기(旗: 翠羽로 장식한 기)를 세우고 영타(靈타)의 고(鼓:악어 가죽으로 맨 북)를 비치하고 계시나 이런 수 많은 보물들이 진에서는 하나도 나지 않거늘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좋아하십니까. 반드시 진나라의 것으로만 한다면 조정(朝庭)을 야광(夜光)의 벽(壁)으로 장식할 수 없고 코뿔소의 뿔과 사아의 기구로 완롱(玩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鄭)과 위(衛)의 미인은 후궁에 들어올 수 없으며 준마인 결제는 마구간에 차지 않을 것이며 강남의 금(金)과 주석은 소용이 없을 것이며 서촉(西蜀)의 단청〔顔科〕으로는 채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목을 즐겁게 하고 심신을 기쁘게 하는데 반드시 진나라 것이어야 한다면 원주의 비녀〔원에서 난 진주로 만들 簪〕나 부기(傅璣)의 귀걸이(둥글지 않은 진주로 장식한 珥)나 아호(阿縞)의 의상〔齊의 東阿에서 나는 비단의복〕이나 금수(錦繡)의 장식도 폐하 앞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미인의 고장 조나라의 아름다운 여인은 폐하 곁에 시립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동이를 치고 부(陶器)를 치며 쟁(箏: 竹身의 현악기)을 탄주하며 넓적다리를 치면서 목청 돋우어 노래 불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참으로 진의 음악입니다. 정(鄭).위(衛: 亂世의 음악).상간(桑間: 亡國의 음악).소(昭).우(虞: 帝舜의 음악).무(武).상(象: 周 武王의 음악)은 타국의 음악입니다. 그런데 진의 진정한 음악들은 다 버리고 정.위의 음악을 연주하고 소.무의 음악만 받아들인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마음에 유쾌하며 보기에도 쾌적하기 때문입니다.
[옳거니!]
- 그런데 지금 인간을 채용하는데 있어 인물의 진위와 능력의 유무 등은 제쳐놓고 불문곡직 진나라 사람이 아니다 하여 추방하려 하니, 이는 여색(女色)이나 음악이나 주옥(珠玉)은 중히 여기되 인간은 가벼이 여기는바와 같으니 결코 제후를 지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저는 토지가 광활하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인구가 많으며 병력이 강대하며 전사(戰士)가 용감하다고 들었습니다. 표현을 달리하여, 태산(太山: 泰山)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아 저렇게 커졌으며 하해(河海)는 한 줄기 세류(細流)도 가리지 않아 저렇게 깊어졌습니다. 왕자(王者)는 어떤 백성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땅은 모두 옥토가 되어 사방의 차별이 없고 백성은 모두 왕신(王臣)이 되어 분열이 없어집니다. 춘하추동은 아름답게 순환하고 귀신은 복을 내립니다. 오제(五帝) 삼왕(三王)에게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에서는 인민을 버려 적국을 이롭게 하고 빈객을 물리쳐 제후국의 공업(功業)을 세우게 하고 천하의 인사를 물러가게 할 뿐더러 진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니 이른바, 도둑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양식을 공급하는 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사의 생각이 옳다.]
- 무릇 물자는 진에서 산출하지 않더라도 보배로운 것이 많으며 인재는 진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충성스런 인물이 많습니다. 차제에 타국인을 추방하여 적국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덜어 원수에게 보태 주며 스스로 공허함을 자초하여 많은 인사들의 원한을 사게 되니 이 어찌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사의 상소문을 읽은 진왕은 즉시 타국인 추방령을 취소하고 오히려 이사를 정위(廷尉: 最高 法官)에 임명했다. 그 후 20여 년 동안에 진나라는 마침내 천하를 병합하고 군주를 높여 황제(皇帝)라 칭했다.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이사는 군현(郡縣)의 성벽들을 파괴해 버렸다. 전쟁이 없었으므로 무기를 녹여 버려 다시는 사용하지 못한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또 진에서는 단 한 자의 토지라도 누구에게 주어 봉(封)할 수 없도록 했다. 황제의 자제이든 혁혁한 공신이든 이들을 왕이나 제후로 삼음으로써 훗날에 있을지도 모르는 내란의 우환을 미리 없애기 위함이었다.
시황제(始皇帝) 34년이었다. 함양궁에서 잔치가 베풀어졌다. 그 때 박사복야(帝室學士院長) 주청신(周靑臣) 등이 시황제의 권위와 덕망을 칭송했다. 그런데 그 자리를 빌려 제(齊)나라 출신 순우월(淳于越)이 나서서 황제에게 충고를 시작한 것이다. [신은 '은.주의 왕조가 천여 년이나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왕자.왕제(王弟).공신들을 제후로 봉해 왕실을 돕게 한는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제에.......] 그 즈음에 승상으로 있던 이사가 발끈하고 나섰다. [또다시 그 얘기를 들고 나오는 거요!] 순우월도 지지 않았다. [충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모조리 영유하고 계십니다만 비록 폐하의 혈육이 되신 황자(皇子)나 황제(皇弟)들은 무엇입니까. 한낱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오.] [우선 전상(田常)의 사건(자기 임금 簡公을 서주에서 죽이고 제나라를 뺏음, 공자가 전상을 치자고 청했으나 노나라 哀公은 듣지 않았음)을 기억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육경(六卿)의 사건(晋의 정권을 뒤흔들던 지씨.범씨.중항씨.한씨.위씨.조씨의 육경 중 나중에 한.위.조씨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땅을 三分했음) 역시 살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토록 진(晋)을 분할하는 경우 같은 불행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 우환이 만약에 생기는 경우 이를 제어하고 보필할 만한 신하가 없을 것이니 그 땐 무엇으로 국가를 구제할 수가 있겠습니까.] [천하가 통일된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우환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사가 맞받았다. [아닙니다. 매사에 옛것을 모범으로 삼지 않고서 장구하게 지속되었다는 예는 아직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주청신 등은 어전에서 아첨 발언을 하여 폐하의 영명하심을 어지럽게 하고 큰 과오를 거듭하도록 종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충신이 아닙니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시황은 자신이 서지 않았던지 다른 대신들을 돌아보았다. 이사가 나섰다. [옛날을 말해서 지금을 해롭게 하고 공허한 언사를 꾸며서 현실의 정책을 어지럽히는 발언을 용서해서는 아니됩니다.] [그것이 어째서 해롭고 공허한 언사라는 겁니까.] [경께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계시기에 그러합니다.] [무엇이라고요?] [은나라, 주나라 시대에는 분산 난립되어 있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천하가 통일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그것을 해낸 제왕이 없었기로 제후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의 언설은 허황됩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황제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통일의 대업 역시 폐하만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계시지 않을 경우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 지금 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배운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현 정부가 세운 바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폐하, 잘못된 정책은 비방받아도 마땅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가려내어 유일 절대의 존호(尊號: 皇帝)를 결정하신 분입니다. 때문에 선례를 들춘다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대체로 학문하는 자들이란 사사로운 이론을 내세워 이미 제국(帝國)이 정한 법률과 문교를 비방합니다. 이런 정령(政令)들을 누가 결정하셨습니까. 바로 주상 폐하께서 결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허튼 학설을 가지고 작금의 정책을 비방하는 것은 바로 폐하를 비방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폐하, 그것은 중상 모략입니다. 정책의 비판 없이 좋은 정사(政事)가 시행될 리가 없고 기왕의 정책이 반드시 좋을 수가 없으며 잘못되고 나쁜 정책을 깨달았으면 고치는 것이 만민을 위하는 일입니다.] 사태는 기묘하게 돌아갔다. 제도의 작은 개정을 주장하려던 무리에 대해 이사 등은 정책비판으로 빙자하여 그들을 시황제 비판의 무리로 몰아갔다. [폐하, 저자들은 이설(異說)을 내세우는 일을 명예로 생각하며 정책과 주상을 비방하는 일을 고상한 인품이라 생각하고 있는 무리들입니다. 이런 소행들을 금압(禁壓)치 않으면 위로는 주상의 권위가 실추되고 아래로는 민간에 당파가 조성될 것입니다. 정책 비판이 나쁘다기보다 비판 자체가 더욱 나쁜 영향과 결과를 유발 시킵니다.] 시황제는 이사의 반론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정책이 아무리 좋더라도 지속성이 없으면 오히려 해악이요. 왕족이나 공신을 제후로 봉하는 문제도 이미 거론되었거니와 통일 천하의 이 마당에서 그런 건의는 마땅치 않다고 보오.] 이사는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폐하, 청하옵건대 기왕에 태평천하의 정책을 펴시려거든 소신의 정책안을 들어 주십시오.] [묘안이 있겠소?] [여러 가지 문학과 <시경(詩經)><서경(書經)><제자백가>의 서적 따위들을 불에 태우십시오.] [그것은 왜 그러하오?] [그런 서적으로 배웠다는 자들이 저토록 폐하의 성지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정책이란 걸림돌이 없을수록 좋습니다.] [그렇다면 승상의 뜻대로 하오.] [금령이 하달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서적들을 폐기치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여 성단(城旦: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성을 쌓는 죄수)으로 삼겠습니다.] [법령 역시 그대들이 알아서 다루도록 하오.] [무릇 스승이란 배우고자 하는 자에게는 관리(官吏)가 스승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법령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다. 만일 의약(醫藥).점복(占卜).농예(農藝) 따위에 관한 서적 외의 것을 읽거나 소지하는 자가 있다면 사형에 처하고 옛것을 가려 현재를 비판하는 자가 있다면 일족을 멸하겠습니다.] 개혁 비판세력들의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붙인 꼴이었다. 어쨌든 분서(焚書)를 관철시킨 이사는 그로 인해 그 권세와 영화가 극에 달했다. 큰아들 유(由)는 삼천군(三川君: 洛陽 일대)의 태수가 되었으며, 아들들은 모두 진나라 시황제의 황녀들과 결혼하였고 딸들은 시황제의 여러 황자들에게 시집 보냈다.
이유가 휴가차 함양으로 돌아왔을 때 이사는 아들을 위하여 집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백관(百官)의 장(長)들이 모두 몰려와서 이사의 무병장수를 축복하였으며 그의 넓은 문전에 늘어선 거기(車騎)는 수천 대를 헤아렸다. 문득 스승 순자(荀子)께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성대한 것을 경계하라. 만물은 극도에 달하면 쇠하는 법이니. 나는 상채에서 태어난 일개 평민이다. 촌구석에서 자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런데 주상께서는 내가 둔하고 천한 것을 모르시고 이렇게까지 발탁해 주셨다. 지금 사람의 신하로서는 나보다 위에 있는 이가 없다. 부귀도 극도에 달했거늘 그런데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이사는 자신도 모르는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순자의 경고는 곧 잊어 버렸다. 어쨌든 법률과 제도를 밝히고 율령을 정한 것은 모두 시황제로 부터 출발됐다. 문자를 통일하고 천하 도처에 이궁(離宮)과 별장도 축조했다. 천하를 순행하고 그 사방의 만족(蠻族)들을 격퇴했다. 그러나 이 모든 대사업에 참여한 것은 이사였다. 시황제의 야심을 이루는데 없어서는 안 될 신하였다.
시황제 37년 시월이었다. 황제는 순행하여 회계산에서 노닐다가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낭야에 도착했다. 이사와 조고 등이 수행했다. 장자(長子) 부소(扶蘇)는 황제께 솔직한 말로 자주 간했으므로 황제는 귀찮게 여겨 상군(上郡)의 군단(軍團) 장군인 몽염(蒙염)을 감독하도록 밖으로 내보냈었다. 그런데 순행을 떠나오기 직전이었다. [이번 황제폐하의 순행길에는 작은 공자께서 꼭 수종하도록 하십시오.] 중거부령(中車府令: 宮中御車係長) 조고(趙高)가 말자(末子) 호해(胡亥)한테 심각한 표정으로 귓속말을 했다. [나를?] [폐하의 건강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토록 심각한 거요?] [형님〔扶蘇〕께서는 상군(上郡)의 군단(軍團)을 감독하러 나가 계십니다. 아들된 자가 아버지를 수행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호해는, 환관이며 부새령(符璽令: 割符.옥새를 다루는 관)을 겸무하고 있는 조고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락하실까?] [총애가 지극하시니 틀림없이 허락하실 겁니다.] 그래서 호해는 시황제한테 아뢰었다. [황제폐하, 이번 순유길에는 소자가 폐하를 수종할까 합니다.] [호해가 함께 가겠다고?] [수종토록 허락해 주십시오.] [기특하구나. 내 사랑하는 아들이 곁에서 수종하겠다니 마음 든든하다. 그렇게 하여라.] 그 때만 하여도 호해는 조고의 권유의 뜻을 확실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쨌든 호해만이 황제를 수행하는 행운을 잡았던 것이다. 그 해 7월이었다. 시황제가 사구(沙丘)에 이르러 병이 위독했다. 조고를 시켜 황자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쓰게 했다.
- 군단은 몽염에게 맡기고 부소는 함양으로 돌아가 나의 유해를 맞이하여 장례를 지내라.
편지는 봉해졌다. 그러나 부소에게 가는 편지가 채 사자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황제가 붕어했다. 그 편지와 옥새는 아직도 조고의 손에 있었다. 이사는 시황제가 여행 중에 붕어한데다 정식 황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몹시 신경이 쓰였다. 시황제의 유해는 온량거(창문을 여닫음으로 해서 溫冷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큰 수레)에 실려 급히 함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들 입조심하오. 황제폐하께서 국도(國都) 밖에서 갑자기 붕어하셨으니 각별히 비밀이 지켜지지 않으면 큰 변이 나오.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마당에서 여러 황자(皇子)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찌 되겠소. 반드시 천하에 변란이 일어날 거요!] 승상 이사는 전전긍긍했다. 실상 시황제의 붕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사, 호해, 조고 그리고 총애받던 내시 다섯 명뿐이었다. [그러하니 지금 이 상황에서 발상(發喪)도 할 수가 없소. 평소에 하던 대로 환관을 동승시켜 통과하는 곳마다 황제의 수라상을 올리고 문무백관이 주상(奏上)하는 바도 종전과 같이 하겠소. 주사(奏事)의 결재도 온량거 안에서 할 것이오. 이런 눈가림은 함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오.] 환관 하나가 물었다. [때마침 여름이라 유해의 부식이 빨라 악취가 심하게 날 것 같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다. 온량거 뒤에 소금에 절인 생선수레를 따르게 하라. 냄새를 구별 못 하게 말이다.] 이토록 승상 이사가 작은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동안 옥새가 눌려진 부소에게 갈 편지를 손에 쥔 조고는 밤을 틈타 호해 황자한테 조용히 찾아갔다. [주상폐하께서는 붕어하셨지만 상군에 계시는 부소 황자께 가는 서신은 아직 보내지 않았습니다. 옥새 또한 직책상 보관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장남한테만 편지를 내리셨소?] [물론입니다. 여러 공자들께 왕으로 봉한다는 조서도 없었으며 오로지 맏아들한테만 전하는 편지를 내렸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장자(長子)의 이름으로 발상하고 또 대위(大位)를 물려받아야 되겠지요.] [그와 함께 호해 공자께선 한 치의 땅도 얻어 가질 수가 없게 되지요.] 조고의 뜻하지 않았던 발설에 호해는 깜짝 놀라서 등촉 너머로 눈빛을 빛내고 있는 조고를 건너다보았다. [무슨 뜻이오?] [부소 황자께서는 이제 2세황제가 되실 것이며 호해 황자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당연한 이치를 어찌 새삼스레 거론하시오. 명군(名君)은 신하를 가장 잘 알며 현부(賢父)는 그 자식을 가장 잘 안다고 듣고 있소. 그러하니 아버님께서 기왕에 큰아들을 택하여 황제로 봉하려 하시는데 나로서 무슨 할말이 더 있겠소.]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전날 소신이 공자께 서(書)와 옥률(獄律)과 법령에 관하여 정성을 다한 강론을 펼쳐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거지요?] [모두 이유가 있어 미리 그렇게 준비시켜 드린 것이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결심 하나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날보고 어쩌란 거요?] [공자께선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차이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또 남을 다스리는 일과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그 엄청난 차이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꿈에서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소. 내가 알기로는 형을 제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고 아우가 즉위한다는 것은 불의(不義)요. 부제(父帝)의 조서를 받들지 않고 발각되어 처형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불효(不孝)요. 자신의 재능은 천박하면서 남의 공로에 의지해 성사하는 바는 불능(不能)이오. 이상의 세 가지는 역덕(逆德)이며 이를 억지로 이루려 하면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오. 몸은 위태로워지며 사직은 제사를 받지 않으려 할 것이오.] 그러나 조고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둠 속을 한 번 휘둘러본 뒤에 다시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는, '탕왕과 무왕이 각각 자기의 군주를 죽였으나 천하에서는 오히려 의롭다 하고 불충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며, 위(衛)의 군주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즉위했으나 위의 백성들은 그의 덕을 받들고, 공자(孔子)도 이 사건을 <춘추(春秋)>에 기록했으나 불효라고 하지는 않았다(衛에는 이런 사실이 없었음)'고 했습니다. 대체로 위대한 행위에는 소소한 근신(謹身)을 돌보지 않으며 성대한 덕의 소유자는 받아야할 것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향리(鄕里)마다 각각 제 나름대로의 좋은 점이 있으며 백관의 공과 임무도 다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일을 돌보다가 큰일을 잊어 버리면 뒤에 반드시 해가 있으며 호의(狐疑)하고 주저하다가는 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감행하면 귀신도 이것을 피하고 나중에는 성공만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이 일을 결행하십시오!] 조고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면서도 그래도 주저되어 탄식하듯이 내뱉었다. [지금 황제의 붕어도 발표되지 않았고 상례(喪禮)도 치르지 않았거늘 어찌 이런 일부터 거론한단 말씀이오!] [그렇지만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생각할 시간의 여유를 가진다는 것은 한 번밖에 없는 절호의 기회를 영영 놓친다는 뜻입니다. 양식을 지고 말을 달려도 차라리 늦어질까 두려운 지경입니다!] [그렇지만 승상이.......] [물론 승상과 의논하지 않으면 일이 성사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오나 그 점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공자를 위하여 제가 승상과 상의하겠습니다.] [모르겠소. 나로선 판단할 만한 지혜가 없소. 조중거부령께서 승상과 의논해 보시오.......] 호해의 말이 떨어지자 조고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바로 그 밤을 도와 승상 이사의 간이 숙소로 치달렸다. [야음한데 무슨 일이오?] 어사는 뜻밖이란 듯이 조고를 건너다보았다. [기밀한 의논을 드릴 일이 생겼습니다.] [기밀한 의논?] [황제폐하께서 붕어하시기 직전에 장자 부소에게 서신을 내려 함양에서 유해를 맞으라 하신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대가 귀띔하지 않았소. 짐작컨대 부소 황자를 후사로 책봉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소.] [하오나, 편지는 아직 보내지지 않았고 부절과 옥새는 호해 황자께서 지니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됐다는 얘기요?] 이사는 불쾌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호해 공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습니다.] [무어?] [실상 황태자를 누구로 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승상과 저한테 달려 있다고 보아집니다.] 일의 중차대함을 깨달은 이사는 낯빛이 변했다. [그 무슨 나라 망칠 말씀이오! 이런 일은 신하된 자들이 의논해서 될 일이 아니오!] 자세를 고쳐 앉은 조고는 호해한테 했던 바대로 다시 이사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몇 말씀 여쭙겠습니다. 지금 승상께서는 스스로 헤아려 몽염장군에 비해 어느 편이 능력이 낫다고 생각되십니까.] [내가 못 하오.] 이사는 잘라 말했다. [공훈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때 몽 장군과 어느 쪽이 낫습니까.] [몽 장군이 높으오.] [원대한 계략을 세워서 실수하지 않는 점에는 어떻습니까.] [그 역시 몽 장군이 낫소.] [천하 사람들의 원한을 사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어찌됩니까.] [물론 몽 장군의 인품이 나보다 나으니까.] [끝으로 여쭙겠습니다. 장자인 부소 황자께서 몽 장군과 승상을 비교해 오랫동안 사귀어 신뢰가 두터운 점에서는 어느 쪽이 낫습니까.] [물어 볼 필요도 없소. 말할 것도 없이 몽 장군 쪽이오. 헌데, 그대가 대체 무엇이길래 그런 걸 따져묻는단 말이오!] [결국 다섯 가지 중에서 승상은 단 한 가지도 몽 장군보다 나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질책하는 거요?] [아닙니다.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 중입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제 얘기를 들어 주십시오.] [듣기 싫소!] [싫으시더라도 잠시만 제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그런 후에 저를 처벌하시든 책망하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도대체 그대가 하고자 하는 얘기의 핵심이 뭐요?] [저는 본시 천역(賤役)이나 맡아보는 환관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다행히도 도필(刀筆: 竹簡의 오자를 깍는데 쓰는 칼이나 기록관)의 문재(文才)가 조금 있어 진궁(秦宮)으로 들어와 어언간 스무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저는 나름대로 관찰한 것이 있습니다. 무어냐 하면, 진나라에서 파면된 승상이나 공신으로서 봉토를 2대에 걸쳐서 보존한 분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 [봉토는 커녕 결국은 모조리 주살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소?] [시황제 폐하의 자식 스무여 황자들에 대해 승상께서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폐하의 총애가 두터우셨던 두 분 황자에 대에서만 말씀 올리겠습니다. 우선 장자인 부소 황자에 관해서입니다.] [옳게 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황제 위에 오르시게 되면 몽염 장군을 중용하실 것이며 아마 승상으로 기용하실 것이 명약관화합니다.] [그야......!] [변명의 여지도 없이 이 승상께서는 결국 열후의 인수를 풀어 놓고 패잔병 같이 낙향을 하셔야 될 터입니다.] [......!] [이번에는 호해 황자에 대해서 말씀올리겠습니다. 저는 칙명을 받고 호해 황자를 보육(輔育)하며 법률학을 지도하여 온 지가 벌써 수년 째나 됩니다만 신통하게도 아직까지 과실을 저지르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까이서 본 바로는 인자하시고 독실 온후하신 성품으로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인재를 둥히 여기시며 마음 속은 총명하거나 입으로는 굳이 눌변이시고 예의를 다하여 선비를 존경합니다. 진의 여러 황자들 중에서 그분만한 분은 아직 없습니다. 제 소견으로는 호해 황자께서 후사가 되셔야 승상과 같은 영명후덕하신 분을 오래 등용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승상께서는 심사숙고하셔서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사는 일개 필부 환관 주제인 조고의 열변에 마음이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짐짓 아닌 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체통이 설 것 같았다. [그대는 이제 그만 하고 자기 위치로 돌아가오. 나는 황제의 조칙을 받들고 하늘의 명에만 따를 뿐이오. 그밖에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소.] [안태(安泰)를 위험으로 돌릴 수도 있고 위험을 안태로 돌릴 수도 있는 게 세상 일인 줄 압니다. 다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위험 대신 안위를 결정하지 않으면 누가 무엇으로 승상을 성지(聖智)를 가지신 분으로 존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잘 들으시오. 나는 상채 마을의 일개 시골 평민이었으나 다행히도 주상께서 발탁해 주셔서 승상에까지 임명되었소. 뿐만 아니라 열후로 봉을 받고 자손까지도 모두 존위(尊位)와 중록(重祿)을 받은 터이오. 이는 주상 시황제께옵서 당초부터 국가의 존망과 황실의 안위를 나에게 부탁하려 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어떻게 폐하의 그 본래 뜻을 배반한단 말이오. 충신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딴 욕망을 가지지 않으며, 효자는 부지런히 부모를 섬겨 위태로운 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의 신하가 된 자는 각각 자기 직책이나 지킬 따름이오. 이상 더 말하지 마오. 그대는 정작 나한테 죄를 짓게 하려는가!] [제가 듣기로는 성인(聖人)은 때에 따라 변화하여 일정한 태도가 없으며 변화에 따르고 때에 응하며 끝을 보고 근본을 알며 지향하는 바를 보고 구차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사물(事物)이란 원래 이런 것으로 어떻게 영구히 변하지 않는 규범이라는 게 있겠습니까.] [스스로를 성인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소.] [방금 천하의 대권이 호해 황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시렵니까. 무릇 외부에서 내부를 제어하는 것을 혹(惑)이라 하고 하부(下部)에서 상부를 제어하는 것을 적(賊)이라 합니다.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초화(草花)는 조락하고 봄이 되어 얼음이 녹아 물이 흔들리면 만물이 생동하니 이것은 필연의 법칙입니다. 저는 이미 호해 황자의 심중을 파악했습니다. 힘의 흐름은 그분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도리를 모르십니까.] [나는 차라리 '진(晋)에서는 태자 신생(申生)을 폐지했다가 헌공(獻公).혜공(惠公).문공(文公) 3대에 걸쳐서 국가가 편안치 못했고 제나라 환공의 형제들은 위(位)를 다투다가 공자 규(糾)가 피살되고 은의 주왕은 친척을 죽이고 간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다가 나라는 폐허가 되고 끝내 사직을 위태롭게 했다'고 들었소. 지금 말한 세 사람은 천도를 거역하다가 종묘에 제사지낼 수도 없게 됐소. 나는 인도(人道)를 지키고 싶소. 어떻게 모략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무엇이 인도이며 무엇이 모략입니까. 폐하께서는 부소 황자께 장례를 치르라고만 하셨지 위를 넘긴다는 언질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것이 불의가 되고 부정이 될 턱이 없습니다. 이제는 좋은 것이 좋다고 말할 때입니다. 상하가 합심하면 장구히 번영을 누릴 수가 있으며 내(內: 趙高).외(外: 李斯)가 일치하면 표리가 없어집니다. 승상께서 저의 말을 들으셔야 오래도록 봉후(封侯)를 유지하여 자자손손 후(侯)라 칭하며 반드시 왕자교(王子喬)나 적송자(赤松子) 같은 장수를 누리며 공자와 묵자 같은 지혜를 가졌다 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지금 이것을 버리고 따르지 않으면 화가 자손에게 미쳐 한심스런 결과를 초래하고 맙니다. 선처하는 자는 화를 복으로 돌릴 수가 있습니다. 자, 저로서도 드릴 말씀 모두 올렸습니다. 승상께서는 이제 어떻게 처신하려 하십니까.] 이사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한숨을 토한 뒤 드디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아, 나 혼자 난세를 만나 죽지도 못하니, 내 목숨 어디에다 맡긴단 말인가!] 별수없이 이사는 조고의 의견에 동의하고 말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합석했다. [자, 이제 우리 세 사람은 생명이 끝나는 그 날까지 이 사실을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오. 문제는 유해가 함양에 도착하기 전에 몇 가지 처리해야 될 일이 있을 것 같은데.......] 호해와 조고를 둘러보며 이사가 물었다. [부소 황자와 몽 장군이 최대의 걸림돌입니다. 시황제 폐하의 어명을 빌려 처리합시다.] 조고가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했다. [만만치가 않소. 어떤 식으로 그들을 제거하지요?] 이사의 되물음에 조고가 품 속을 부시럭거리며 편지 한 장을 꺼내었다. [한 번 검토해 보시겠습니까. 두 분께서 이의가 없으시다면 곧 바로 황제의 옥새로 봉하고 빈객을 시켜 상군(上郡)의 부소에게 내리면 됩니다.]
- 짐이 천하를 순행하여 명산의 제신(諸神)께 제사 지내고 기도드려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지금 부소는 장군 몽염과 함께 군사 수십만을 이끌고 변경에 주둔한 지가 어언 10년이다. 그러나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사졸들만 많이 소모되어 나라에 한 치의 작은 공로도 이룬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상서(上書)로 직언하여 짐이 하는 일만 비방하였다. 그러면서도 군대 감독의 일을 그만두고 돌아와 태자가 되겠다고 보채며 짐을 원망만 하였다. 부소는 아들된 자로서 불효하다. 칼을 하사(下賜)하니 이것으로 자결하라. 장군 몽염은 부소와 함께밖에 있으면서 부소를 바로잡지 못했다. 응당 그 음모를 알고서도 모른 척했으니 신하된 자로서 불충하다. 죽음을 내리니 군사는 비장 왕이(王離)에게 맡긴다.
[어떻습니까?] [됐소. 호해 황자의 빈객을 시켜 즉시 상군으로 보내시오.] 한편, 황제의 칙서를 받아든 부소와 몽염은 청천의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소!] [어쩝니까. 황제폐하의 어명이어늘.......] 몽염은 분개하였고 부소는 울면서 자결하려고 준비하였다. [잠깐만 참으십시오. 아무래도 수상한 데가 있습니다.] [무엇이 수상합니까. 구차스런 목숨을 구걸하여 황제의 칙서를 의심하다니요.]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폐하께서는 도성(都城) 바깥에 계십니다. 태자 운운하셨는데 아직까지 태자를 책봉하셨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것이 이상하오?] [저에게는 30만 대군을 내맡겨 변경을 수호하게 하셨습니다. 더구나 황자를 시켜 대군을 감시케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천하의 중임입니다. 이런 저에게 한 자루의 칼로 간단하게 죽음을 내리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필시 여기에는 음모가 있을 듯합니다.] [음모가?] [비록 폐하의 옥새가 찍혔다 하나 그야 얼마든지 위조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더구나 칙서를 소지하고 온 사자는 폐하의 사자가 아니라 호해 황자의 빈객인 듯합니다. 한 번 더 확인한 뒤에.......] [부질없는 짓이오.] [용서라도 청해 본 뒤에 죽어도 늦지 않습니다. 더구나 폐하께서는 명산의 제신들에게 제사 지내고 기도드려 수명을 연장하신다는 말씀을 적으셨습니다. 이는 필시 신변에.......] 막사 바깥에서는 사자들의, 어명을 받들라는 호령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이것이 천명(天命)이라면 나로선 순응할 수밖에 없소......!] 부소는 칼을 받아들고 제 막사로 돌아가면서 마지막으로 몽염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죽음을 내린 이상 다시 용서를 청할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나 몽염은 달랐다. 장군의 위엄을 한껏 가누며 사자에게 소리쳤다. [믿을 수가 없소. 나는 자살하지 않겠소. 다시 한 번 더 명(命)을 내려 주시오!] 사자도 별수가 없었다. [그토록 원하시니 그렇게 해 보리다. 그러나 장군의 직위와 신병(身柄)은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소.] 그렇게 되어서 몽염은 장군의 인수를 빼앗겼고 일단 양주(陽周: 甘肅省 正寧縣의 북쪽)의 옥에 갇혔다. 사자는 돌아와 호해와 이사와 조고에게 보고했다. 서둘러 함양으로 돌아온 그들은 비로소 시황제의 붕어를 발표하고 호해는 즉시 즉위하여 2세황제가 되었다.
조고를 낭중령(郎中令: 九卿의 하나인 宮門을 맡아 보는 관)으로 삼아 황제의 측근에 두었으며 정권을 전단케 했다. 어느 날 백성들의 냉담함을 느낀 2세 호해 황제는 조고를 불러 말했다. [대신들이나 백성들이 아직 짐에게 승복하지 않는 것 같소. 하물며 그러하거늘 다른 황자들이야 어떻겠소.] [사실 그러합니다.] [무릇 인간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을 비유해 말하면 육두(六頭) 마차가 끄는 마차의 달리는 틈새로 내다보는 것처럼 지극히 짧은 것이오.] [분부대로입니다.] [짐은 이미 황제로 군림했소. 짐의 눈과 귀가 좋아하는 것은 빠짐없이 추구하고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철저히 추궁하고 싶은 거요.] [그것은 현명한 군주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한데, 이래가지고서야 쾌락은커녕 종묘를 안태케 하고 천하를 장구히 지배하며, 짐의 천수나마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 같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불가하다고?]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실은 사구(沙丘)에서의 모의에 관해서는 많은 황자들과 대신들은 물론 백성들이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더구나 황자들은 선제의 아들들이고 대신들의 선제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저는 전전긍긍 저들의 모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폐하께서는 기왕에 말씀하신 그런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처지가 못 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우선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선행해야 될 일이 무어란 말이오.] [선제의 대신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대대로 이름난 귀현(貴縣)들입니다. 공로를 쌓아 대대로 자손에게 그 영예가 전해지기 오래입니다. 그렇지만 저 조고는 미천한 출신이나 다행히 폐하께서 중용해 주셔서 궁중의 대소사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신들은 불쾌한 심정을 가누며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지만 내심 심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소?] [고로 폐하께서는 이번 기회에 군현(郡縣)의 수(守).위(尉)에 있는 자들을 조사해서 죄를 주면 폐하의 위세가 천하에 떨칠 듯 합니다.] [물갈이를 하란 뜻이오?] [폐하께서 저번 순행길에서 느꼈을 것입니다. 평소에 못된 신하라고 생각되던 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아닙니까. 지금은 문덕(文德)을 내세울 때가 아니라 무력(武力)을 가지고 만사를 결단할 시절입니다. 폐하께서는 이런 시세(時勢)를 명찰하셔서 군신들이 모의할 틈을 주지 마십시오.] [그럴 듯하오. 그 모반의 기미가 있는 자들의 명단을 낭중령이 작성해 오도록 하오.] [명주(明主)는 작금의 군신 외의 백성을 대거 중용하십시오. 천한 자를 귀하게 해 주고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해 주며 소원했던 자를 친근하게 해 주면 그 공평함으로 인하여 상하의 인심이 결집되고 국가는 안태하게 될 것입니다.] 대살육의 선풍이 불어 소신(小臣)과 삼랑(三郞: 中.外.散郞)의 거의를 연속 체포해 주살해 버렸기 때문에 조정에 시립해 설 수 있는 자가 드물었다. 조고의 진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폐하, 차제에 법을 엄히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며 죄 있는 자는 연좌제(連坐制)를 실시해 일족을 모조리 주살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무엇이오?] [폐하께 심복하지 않는 황자와 대신들을 제거하는 방편입니다. 폐하 골육(骨肉: 兄弟)의 모반을 경계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가난한 자가 부유하게 되고 천한 자가 높아지며 선제의 유신(遺臣)들이 제거되어 간사한 묘략이 방지되고 폐하의 은덕을 입지 않는 신하들이 없게 되며 숨은 덕이 폐하께로 모여 비로소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고 마음대로 즐기실 수가 있게 됩니다.] [그렇게 처리하오!] 법률은 조고가 제정했고 2세황제는 결제했다. 또다시 대검거의 선풍이 불었다. 대신인 몽의, 장군인 몽염 등이 죽은 후 황자 열두 명이 함양의 저자에서 몰살되었으며 열 명의 황녀(皇女)를 두(杜: 장안 근교)에서 책살(기둥에 묶어 세워 창으로 찔러 죽임)해 버렸다. 여기에 연루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다. 황자 고(高)는 망명을 고려하다가 일족이나 살려야 되겠다며 생각을 고쳐 먹고 황제에게 상소했다.
- 선제께서 건재하실 무렵 저는 궁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사받고 나갈 때는 수레를 태워 주시고 어부(御府)의 좋은 의복을 내려 주시고 어구(御廐: 황제의 마구간)의 보마(寶馬)를 내리셨습니다. 저는 마땅히 순사(殉死)했어야 했거늘 그렇지 못해 아들로서 불효하고 신하로서 불충하여 이 세상에 설 명분이 없습니다. 늦게나마 순사하려 하오니 원컨대 역산(始皇帝의 陵이 있는 곳) 기슭에 매장해 주십시오. 폐하께서 가엾게 여겨 제 소청을 들어 주신다면 이에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그런 소청서를 받아든 2세황제는 급히 조고를 불렀다. [이런 서찰이 올라왔소.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죽음의 근심만이 다급해 모반의 엄두는 감히 낼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는 법이 엄했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기뻐해 주십시오.] 2세황제는 그 뜻이 좋다하여 십만 전(錢)을 하사해 고의 소원대로 생매장해 주었다. 한편 황자 장려(將閭)의 형제 세 명은 내궁(內宮)에 갇힌 관계로 처형이 늦어지고 있었다. [장려를 살려 두시면 후환이 두렵습니다. 그는 덕망 있는 황자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살려 둘 수가 없지. 관리를 보내어 법대로 집행하라.] 집행관이 장려를 찾아와 불충한 신하로서의 사형을 통고했다. [불충한 신하?] 장려가 반발했다. [조정의 논의에 저는 참여한 바 없기로 오로지 조서를 받들 뿐입니다.] [나 장려는 조정의 예식(禮式)에서 아직 빈찬(賓贊: 의예관)의 지시를 어기는 실례를 한 번도 번한 적이 없다. 종묘의 석차에 있어서도 그 절도를 잃어 그 순서를 어지럽힌 적이 없다. 폐하의 명령을 받아 빈객을 접대하는 경우에도 나는 아직까지 실언(失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째서 내가 불충한 신하인지 그 이유를 말해 보라.] [그것은 제가 대답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원컨대 나의 진정한 죄과를 알고서나 죽을 길이 없을까?] [ 황자로 태어나신 게 죄인 듯합니다.] [옳은 말이다. 이는 천명(天命)일세. 그러나 나에게 죄는 없다!] 목숨을 부지해 물러설 길이 없다는 사실을 감지한 장려 형제들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 뒤 칼을 빼서 자살했다. 제실(帝室)의 일족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다. 군신 중에서 혹시 충간이라도 하는 자가 있으면 황제를 비방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여지없이 처형되었다. 대신들은 재산과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아부에 급급했다. 백성들도 이유 없는 불똥을 맞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법령과 주벌은 날로 가혹해지고 부세(賦稅)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렇지만 2세황제의 귀에는 천하의 신음 소리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선제께서는 함양의 조정이 협소하다 하시어 아방궁을 조영하고 궁전을 세우려 하셨으나 아직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붕어하셨소. 일시 아방궁 공사를 중지하고 역산능을 착공했으나 이미 역산능의 공사가 완성되었기로 다시 아방궁을 짓기로 하겠소. 만일 이 공사를 반대하는 신하가 있다면 이는 선제를 비방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엄벌을 내릴 것이오.] 무릇 이렇게 되니 그 앞에서 반대하는 자가 있을 수 없었다. 아방궁은 다시 조영되었다. 사방의 오랑캐를 막기 위해 장성의 축조도 다시 진행되었다. 신변의 안전을 위해 2세황제는 조고와 의논해 재사(材士 : 材官蹶張의 士. 강한 쇠뇌를 두 발로 벌릴 수 있는 용사) 오만 명을 징집해 수도방위를 감당케 했다. 그들 사수(射手) 외에도 개와 말 등 사육할 동물들이 많았으므로 그 식량 조달이 심각했다. 그래서 인근 군현에 하명해 콩 쌀 밀 등을 징발해 함양으로 수송하게 했다. 수도 삼백 리 이내의 농민들은 자신이 수확한 곡물을 먹을 수가 없었으며 심지어 곡물 수송관리들까지도 자신의 식량을 각자 지참하게 했다. 2세황제는 또 천자의 행차를 위한 전용도로 건설에도 착수했다. 이러니 부세는 더욱 무거워지고 변경수비나 노역의 징발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초(楚)의 수비병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 등이 반란을 일으켜 산동(山東)에서 봉기했고 호걸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스스로 후(侯)라 칭하며 진나라에 반역했다. 반란군들은 홍문(鴻門: 陜西省 臨潼縣 동쪽)까지 진격하다가 물러갈 정도로 사태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사는 승상의 몸으로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토록 급박한 사태를 황제께 알리고 진나라를 구하려고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2세황제가 한가한 틈을 타서 간하려고 했다. 그러나 황제는 간언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짜증을 내며 오히려 이사를 문책까지 하려 들었다. [짐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법이오. 한비자에서 들은 말이지만, '요 임금이 천하를 차지했을 때 당(堂)의 높이는 세 자〔尺〕이며 서까래는 통나무 그대로 깎지 않았으며 지붕은 참억새와 납가새〔茅茨〕로 덮은 이엉 끝을 가지런히 자르지 않아 여사(旅舍)라 할지라도 이보다 검소할 수가 없었소. 겨울에는 사슴가죽옷을 입고 여름에는 칡베옷을 입었으며 거친 현미밥을 질그릇에다 담아 먹고 명아주잎, 콩잎으로 끓인 국을 질그릇에 담아 마셨소. 문지기의 음식도 이보다 질박할 수는 없었소. 우 임금은 용문산(龍門山: 山西省)을 뚫고 대하천(大夏川)을 통하게 하여 구하(九河)를 소통 시켰으며, 구곡(九曲)의 둑을 쌓아 막혔던 물길을 터 주어 바다로 쏟아지게 했소. 우 임금은 이런 일을 하느라 넓적다리의 잔털이 닳아 없어졌으며, 종아리털까지 다 없어졌소. 손발에는 못이 박히고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소. 끝내 객사해 회계산에 묻혔소. 노예의 노고라 할지라도 이보다 심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이 무엇이오. 자기의 심신을 괴롭히고 자기 몸을 여인숙에 재우며 입으로는 문지기의 음식을 먹고 손으로는 노예 같은 일을 하기 위함인가. 이것은 못난 사람이 힘쓸 일이지 현명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오. 현명한 사람이란 천하를 소유했을 때 천하를 제마음대로 써서 자신을 쾌적하게 두는 사람이오. 그래서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오. 현명한 자야말로 천하를 안정시키고 만백성을 다스리오. 자기 한 몸도 이롭지 못하게 하는 자가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소. 고로, 짐은 마음먹은 대로 욕심을 채우며 장구히 천하를 향유해 재해만 없기를 바랄 뿐이오.]
더구나 기회는 더욱 나빴다. 아들 유가 삼천(三川)군의 태수였는데 떼도둑 오광 등이 삼천군의 서부를 공략해 지나갔을 때 그것을 막지 못했다. 진장(秦將) 장한(章한)이 오광 등의 군도들을 쫓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책임을 묻는 사자가 계속해서 삼천군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2세황제는 역시 이사에게 문책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래서 이사는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으면서 어째서 도둑들이 이토록 날뛰도록 놓아 두었는가 말이오!] 누군가가 와서 이사에게 귀띔했다. [폐하의 심기가 몹시 불편하십니다. 작록을 잃지 않으시려면 서둘러 폐하께 용서를 비는 글을 올리십시오. 헛된 간언은 드리지 마시고요.] 이사는 두려웠다. 그는 2세황제의 비위를 맞추는 상소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 무릇 현명한 군주는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신하의 책임을 따지고 형벌을 내립니다. 그럼으로써 신하들은 능력을 다하여 군주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신하와 군주의 본분이 정해지고 위아래의 의리가 밝혀지면 천하의 현자나 우자나 모두 힘을 합해 책임을 다하고 자기 군주를 따릅니다. 그러므로 군주 단 한 사람만 천하를 지배하며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즐거움의 극치를 맛봅니다. 이런 분이 현명한 군주입니다. 신자(申子:申不害)가 말했습니다. '천하를 차지하고서도 제맘대로 못하면 천하를 질곡(桎梏: 차꼬와 수갑)으로 삼는 데 불과하다'고 한 뜻은 응분의 처벌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도리어 자신의 몸을 괴롭힌 요.순과 같은 경우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신불해나 한비자의 법술을 배워 응분의 처벌을 내리는 방도를 실행해 오로지 천하를 자신에게 쾌적하게 만들 일이지 부질없이 노력해 제 몸을 괴롭히고 정신을 피로케 하여 몸소 백성에게 봉사한다는 것은 백성에게 사역(使役)되는 것이지 천하를 양육하는 군주는 아닙니다. 이래서야 어찌 존귀하다고 하겠습니까. 남을 나에게 따르게 하면 나는 존귀해지고 남은 하천해지며, 내가 남을 따르게 되면 내가 하천해지고 남은 존귀해집니다. 그러므로 남을 따르는 자는 하천하고 남을 따르게 하는 자는 존중합니다.
[그토록 잘 알면서 어찌 짐을 질타했는가!]
- 예부터 지금까지 그렇지 않은 경우란 없었습니다. 옛날에 현자(賢者)를 존중한 까닭은 그가 존귀하기 때문이며 불초한 자를 미워한 까닭은 그가 하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우 임금은 몸소 천하의 백성을 따랐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들을 존귀한다 한다면 역시 현자를 존중하는 명분이 없어집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질곡이라 말해도 당연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응분의 처벌을 신하에게 내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잘못을 일컬음입니다. 한비자가 말하기를,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으나 엄격한 가정에는 거역하는 종이 없다'고 했는데, 이는 주인의 명령을 거역하면 반드시 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옛날 상군(商君)의 법에서는 길에 재를 버리면 처벌했습니다. 대체로 재를 버린다는 것은 경죄(輕罪)이지만 형벌은 중했습니다. 오직 현명한 군주만이 가벼운 죄를 깊이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벼운 죄로 엄하게 다스렸으니 중한 죄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래서 백성들은 감히 죄를 짓지 못했습니다. 한비자는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하찮은 배 조각이나 비단 조각은 도둑 아닌 보통 사람도 가져가지만 백일(百鎰)의 좋은 황금은 도척(盜척)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보통 사람의 작은 이익을 중히 여기는 마음의 깊고 도척의 욕심이 얕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척의 행위가 백일이나 되는 대금(大金)을 가벼이 여겼다는 뜻도 아닙니다. 훔치면 반드시 값의 과다에 따라 처벌되기 때문에 도척도 백일의 대금을 훔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로, 처벌되지 않으면 보통 사람도 하찮은 것이라도 훔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벽의 높이가 오장(五丈: 1丈은 6尺)밖에 안 되더라도 누계(樓季 : 魏 文侯의 弟로 健脚으로 유명)가 가벼이 넘지 못하며 태산의 높이는 백인(百인: 1인은 8尺)이지만 절뚝발이 양치기도 그 정상에서 양을 먹입니다. 생각해 보면, 건각인 누계라도 5장의 한계를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절뚝발이 양치기는 백인의 높이를 쉽다고 할까요. 그것은 원래 직립해 있는 높이와 점차로 높아진 것과는 그 형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근원이 다르지.]
- 명군(明君).성왕(聖王)이 능히 오래도록 존위에 있으면서 중한 권세를 잡고 홀로 천하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혼자 결단을 내려 죄상을 세밀히 살펴 처벌할 때 반드시 가혹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에 힘쓰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그 아들을 망쳐 버리는 근원을 일삼는다면 이것 역시 성인의 길을 통찰하지 못한 것이 됩니다. 이제 폐하께서 성인의 길을 행하지 못하시면 이는 곧 자신을 버려서, 천하를 위해 사역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절약 검소하고 인의(仁義)로운 인사가 조정에 서게 되면 언행이 방자한 쾌락은 자취를 감추고, 간언이나 의리를 논하는 신하가 옆에서 발언하면 방만(放漫)한 의견이 물러가고, 열사(烈士)가 절개에 죽는 행위가 세상에 나타나면 음탕한 쾌락은 없어집니다. 그러하니 영명한 군주는 위의 세 부류 인사들을 멀리하고 제왕의 술책만을 조종해 말 잘 듣는 신하를 구사하면서 철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이 존중되고 권세는 무거워집니다. 대체로 현명한 군주는 반드시 세정(世情)을 거역하고 습속을 고쳐 미워하는 사항은 폐지하고 좋아하는 사항은 세우려 합니다. 이렇게 해서 생전에는 존귀하며 중한 권세를 누리고 사후에는 현명함을 칭송하는 시호를 드리게 됩니다. 따라서 명군은 독간으로 정치를 하는 까닭에 권력이 신하에게는 없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의(仁義)로의 길을 차단하고 이론가의 입을 막고 열사의 행위를 누르고 귀를 막고 눈을 가려 남의 언동을 무시하고 마음 속으로 혼자 보고 혼자 들을 수가 있습니다.
[옳거니!]
- 그래서 밖으로는 인의열사(仁義烈士)의 행위에도 군주의 마음을 기울이게 할 수 없고 안으로는 간쟁(諫諍)하는 변설도 군주의 마음을 뺏을 수 없어, 군주는 능히 초연하게 혼자서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도 감히 거역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라야 신불해.한비자의 학술을 실현하고 상군의 법학을 실천할 수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법학이 실천되고 학술을 실현하고서도 천하가 어지러워졌다고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왕자(王者)의 도는 간략하여 행하기 쉽다'지만 오직 명군만이 이것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신하의 잘못을 따져 벌 주면 신하에게 간사함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처벌이 성실하면 신하에게 사심이 없어지고 신하에게 사심이 없으면 천하는 평안합니다. 천하가 평안하면 군주는 존엄해집니다. 군주가 존엄하면 처벌은 반드시 실행되며 처벌이 실행되면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며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으면 국가가 부유해지며 국가가 부유해지면 쾌락이 풍부해집니다. 그러니 처벌의 법술이 실현되면 어떠한 욕망이라도 얻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며 뭇신하들과 백성들의 죄과를 벗어나기에 겨를이 없으니 어떻게 감히 모반을 꾸밀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제도(帝道)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군신의 도를 밝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불해.한비자가 재생한다 하여도 여기에 더 보탤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사의 글이 상주되자 그것을 받아 본 2세황제는 몹시 기뻐했다. 마음에 흡족하여 그대로 시행하리라 마음먹었다. 고로, 백성을 처벌하는 일이 더욱 엄격해지고 혹독해졌다. 세금의 독촉은 성화 같았고 잘 받아내는 관리를 명관리(名官吏)라 칭찬했다. [이런 관리야말로 이사가 지적한 것처럼 처벌을 잘 내리는 관리라 말할 만하다.] 어느 새 길을 걸어다니는 사람의 절반은 형벌을 받은 자들이었다. 차라리 벌받지 않은 사람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처형된 시체들이 날마다 시장 바닥에 쌓였다. 그렇지만 2세황제는 또 그렇게 말했다. [짐의 뜻에 따라 처벌이 가혹한 관리야말로 충신인 것이다.] 대신들 중에서도 조고의 실적은 월등했다. 전날 낭궁령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의법 처단한 일 외에 개인적인 원수를 갚은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그것이 걱정이었다. 대신들이 입조해 상주하다가 자칫 자기를 비방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고는 2세황제를 설득했다. [천자가 존귀한 이유는 뭇신하들이 다만 어성(御聲)만 들을 뿐 배안(拜顔)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천자는 짐(朕: 즉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의 朕으로 억지 해석한 것)이라 자칭합니다. 또 폐하께서는 연소하셔서 만사에 통달하시지는 못하십니다. 지금 조정에 나가시어 신하에 대한 견책이나 등용에 있어 혹시 부당하여 결점을 보여 주게 되는 경우 몹시 낭패스럽습니다. 이것은 폐하가 영명하심을 천하에 끼치는 일이 못 됩니다. 당분간 폐하께서는 궁중 깊은 곳에서 팔짱을 끼고 계시며 저처럼 법에 익숙한 시중(侍中)이 안건을 기다리다가 때마침 안건이 상주되면 그 때에 저희들과 상의하셔서 처리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대신들도 감히 의심스러운 안건을 상주하지 못할 것이며 천하는 폐하를 성주(聖主)라 칭송할 것입니다.] 막상 기뻐할 줄 알았던 2세황제는 웬지 머뭇거렸다. [근현(近縣)에까지 출몰한다는 적도(賊徒)들은 그 후 어찌 되었소?] 진승의 주장(周章)을 장군으로 해서 희 땅까지 수십만 대군이 육박했던 사건을 지칭하는 듯했다. 실상 당시에 2세황제는 대경실색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소부(小府: 山海.池澤의 稅를 주관하는 관) 장한(章한)이 황제에게 아뢰었다. [적도들은 임박하였고 숫자도 많으며 또한 강대합니다.] [어서 대책을 말해 보오!] [근현의 병사를 징발한다 하여도 이미 늦습니다. 괴롭지만 역산에서 복역 중인 도형수(徒刑囚)들이 수십만이오니 폐하께서 대사 면령을 내려 무기를 쥐어 주어 출격하게 하십시오.] [지체할 시각이 없다. 소부 장한을 장군으로 임명하니 그들을 데리고 나가 적도들을 격파하라!] 바로 그 사건이었다. 궁중 깊이 들어 앉아도 위험이 없겠는가 하는 2세황제의 반응이었다. 조고는 재빨리 아뢰었다. [그 역시 아무 근심 마십시오. 장한 장군이 적도들을 거의 소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2세황제는 궁중 깊이 들어 앉았다. 조정에 나아가 대신을 만날 일도 없었다. 동시에 모든 정사는 조고가 2세황제를 끼고 앉아 처리하였고 조고의 손으로 결정되었다. 승상 이사가 황제께 상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엉뚱한 말이라도 일러바치지 않을까 걱정한 조고는 먼저 이사를 찾아갔다. [승상, 큰일났습니다. 함곡관의 동쪽에 군도가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물론 익히 들었지요. 그 때문에 대책을 아뢰기 위해 지금 알현할 기회를 찾고 있소.] [아시겠지만 지금 상황은 급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상께서는 이런 위기를 외면하시어 부역(夫役)을 징발해 아방궁이나 조영하며 개나 말 같은 쓸데없는 금수나 모으고 계십니다.] [정말 큰일이오.] [제가 충고드리려 하나 그러기에는 제 지위가 너무도 하천합니다. 결국 이런 일은 승상 같으신 분이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러나 진작부터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요즘은 주상께서 도무지 조정으로 나오지 않고 궁중에만 깊이 계시니 도대체 상주할 기회가 없구려.] [결국은 궁중으로 들어가셔야 되겠습니다. 일이 다급한데 어쩝니까.] [그럴 듯한 방법이 있겠소?]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폐하의 측근에 있으니 곁에서 기분을 살펴 한가한 틈이라고 생각되는 기회에 승상께 슬쩍 알려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제발 그렇게만 해 주시요.] 며칠이 지나 궁중에서 사람이 왔다. [지금 폐하께서 한가하신 듯합니다. 서둘러 궁으로 드시지요.] 이사는 멋모르고 궁으로 갔다. 궁문 앞에서 얼마를 기다리고 있자 한 사람의 의랑(議郞)이 나와서 말했다. [오늘은 폐하의 심신이 번거로워 승상의 배알을 허락하실 수 없으시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무얼 하시고 계시오.] [기분을 푸시려고 주연을 베풀어 여인들을 앞에 놓고 즐기고 계십니다.] [알겠소.......] 이사는 쓴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그런 일이 세 차례나 계속되었다. 조고의 계략을 알 리가 없는 이사는 번번이 연락을 받고 왔다가 매번 허탕을 치고 돌아가야만 했다. 조고는 하필 황제의 주흥이 최고로 무르익을 때를 골라 이사를 들어오도록 했던 것이다. 한편 2세황제는 노했다. [그 참 귀찮은 사람이네. 허구한 날 짐이 한가로울 때는 한번도 찾아오질 않더니 승상은 꼭 짐이 연회로 즐기로 있을 때만 골라 찾아온단 말일세. 도대체 승상은 짐이 젊다 해서 깔보고 있다는 뜻인가!] 조고가 이런 기회를 옆에서 놓칠 리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위태로워집니다. 승상은 저 사구(沙丘)의 음모 때도 참여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일개의 황자에서 황제폐하가 되셨습니다만 승상의 지위는 그로부터 더 높아진 게 도무지 없습니다.] [그럼 승상은 내심 영토를 얻어 왕이 되기를 바란단 말이오?] [구태여 그러하다고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적으나마 그럴 듯한 기미는 있었던 듯합니다.] [그 기미란 게 무어요?] [승상의 큰아들 이유는 삼천군의 태수입니다. 그리고 초의 도둑 진승 등은 모두 승상의 고향 가까운 현 출신의 도배(徒輩)들입니다. 여기서 수상쩍었던 점은 초의 도둑들이 활개를 치며 삼천군을 통과해 빠져 나갔는데 무엇 때문인지 굳게 성(城)만 지켰을 뿐 적극 뛰쳐나가 도적들은 격멸하지 않았다는 소문입니다.] [무엇이!] [그들 사이에 나름의 맹약문서(盟約文書)가 오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확실한 물증을 잡을 수가 없기로 감히 폐하께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궁 밖에서는 승상의 권세가 폐하보다 무겁기로 그것이 두려워 소신을 위시해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것은 반역죄가 아닌가!] [그렇더라도 선제 때부터 나라에 끼친 공훈이 큽니다.] [역모엔 과거의 어떤 큰 공훈도 의미가 없다. 우선 가만히 사람을 시켜 삼천군의 태수가 도둑들과 내통한 사실이 있는가부터 염탐하라. 이런 죄상은 당연히 밝힐 일이다......!] 이사도 궁중에서의 그런 움직임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거 그냥 놓아 두어서는 아니 되겠다. 전부터 그 자의 수작질이 심상찮더니!] 이사는 탄식했다. 조고가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렸다. 그런 움직임을 감지하고부터 이사는 서둘러 2세황제를 만나 조고의 비위사실을 알릴 기회를 찾았으나 도무지 그럴 틈이 주어지지 않았다. 2세황제는 감천궁 깊숙히 틀어박혀 씨름이나 연극 따위를 감상하며 얼굴을 밖으로 내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별수가 없었다. 글을 올릴 도리밖에 없었다.
- 신이 듣기로는 '신하가 인군과 다를 바 없는 권력을 누릴 때는 위태로워지지 않는 나라가 없고, 아내가 그 지아비와 같은 세력을 휘둘러서 위태롭지 않은 집안이 없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 밑에서 폐하처럼 마음대로 남에게 권력을 주기도 하고 마음대로 남에게 해를 주기도 하는 대신이 있어 폐하의 권세와 다름없는 자가 있으니 이를 방치하는 일은 천부당 말부당한 일입니다. 사성(司城) 벼슬을 하던 자한(子罕)이 송나라 재상이 되어 형벌을 주관하며 잔뜩 권위로 행세하더니 드디어 일 년 만에 자기 임금을 위협하였습니다. 전상(田常)도 제나라 간공(簡公)의 신하가 되어 직위와 서열로는 국내에서 따를 자가 없고 사가(私家)의 부력(富力)은 제나라 공실(公室)과 같아졌습니다. 그러자 은혜를 펴고 덕을 베풀어 아래로는 민심을 얻고 위로는 여러 신하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그러더니 기어코 남몰래 제나라 국권을 탈취해 재여(宰予)를 뜰에서 죽이고 간공을 조정에서 죽인 다음 드디어 제나라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것을 천하가 분명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지금 조고가 사악한 뜻을 품고 위험한 반역을 진행하는 것은 마치 제나라에서의 전상과 같습니다. 전상과 자한이 저질렀던 반역의 수법을 지금 아울러 저지르며 폐하의 위신을 위협하려는 뜻이 마치 한기(韓玘)가 한왕(韓王) 안(安)의 재상이었을 때와 같습니다. 폐하께서 지금 처치하지 않으신다면 무슨 변이라도 그가 일으키지 않을까 몹시 두렵습니다.
이사의 상소문을 받아본 2세황제는 도리어 화를 내며 이사를 궁으로 들라하여 크게 꾸짖기까지 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오. 조고는 본시 미천한 환관이오. 짐이 알기로 조고는 제 몸이 안전하다고 해서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고 제 몸이 위태롭다고 해서 마음이 변치도 않았소. 오로지 행실을 깨끗이 하고 선행을 닦아서 자신의 노력으로 오늘의 지위에 이르렀소. 충성으로 승진할 수 있었고 신의로 제 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으니, 짐은 그를 참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하오. 그런 그를 그대가 의심하다니 말이나 되오. 게다가 짐은 연소하오. 부군(父君)을 잃고 지식도 적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도 서투르기 짝이 없소. 차제에 그대마저 판단력까지 흐려졌으니 짐은 과연 천하의 일과 동떨어져 있게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는 바요. 생각해 보시오. 짐으로서는 오래 전부터 짐을 가르친 조고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에게 맡기란 말이오. 그만 두시오. 조고의 사람됨은 청렴 부지런하며 아래로는 백성의 실정을 익히 알며 위로는 짐의 뜻에 몹시 합당하오. 그러니 아예 그를 의심할 생각일랑 마오.] 이사는 지지 않았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 조고라는 자는 본래가 미천한 출신이라서 도리를 알지 못하며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그치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며 위세는 주군의 다음이며 지금도 그는 무한한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를 위험한 인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승상은 그래서 그를 어떻게 조처하면 좋겠다는 거요?] [폐하의 현명을 어지럽힌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되옵니다.] [물러가 있으시오. 짐은 그의 처벌을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되겠소.] 이사를 내친 뒤 2세황제는 서둘러 조고를 불렀다. [여보게, 낭중령(朗中令). 승상이 그대를 모함했네.] [무엇이라고요?] 조고는 짐짓 눈을 크게 떴다. [눈에서 불을 뿜어내데 그려. 그대를 죽이려나 보아.] [승상의 두통거리는 오직 신 조고뿐입니다. 소신 조고만 죽고 나면 그뿐 아닙니까.] 조고는 머리를 조아리며 울기까지 했다. [근심할 거 없다. 짐이 그대를 보호하리.] [다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승상의 권력으로는 여기 조고쯤이야 언제라도 죽일 수가 있습니다. 제나라 전상이 나라를 빼앗은 것처럼 승상의 위세는 폐하의 권세에 버금갑니다. 소신은 그가 두렵습니다.] [언젠가 승상이 역모의 기미가 있다고 말했던가.] [기왕에 아뢴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죄를 왜 아무도 밝혀내지 않았는가?] [천하에 폐하말고는 승상을 심문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어명이다. 낭중령이 직접 이사를 심문 취조하라. 알겠는가. 그대가 그의 죄를 밝혀내지 못하면 승상으로 인해서 그대가 죽게 되리.] 조고는 어전에서 겉으로는 울고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일단 이사는 옥에 갇혔다. [아아, 슬프구나!]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하늘말고는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옆 감방에 역시 무실한 죄로 잡혀 들어온 인물이 있었다. 그는 이사를 알아보았다. [아니, 승상이 아니십니까. 이 어찌된 일이십니까?] 이사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젠 승상이 아닐세. 날개 꺾인 새요 다리 잘린 고양이일세.] [대체 천하의 승상께옵서 무슨 죄로 묶인 몸이 되셨습니까?] [그대는 무슨 죄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과중한 세금을 내지 못한 죄를 입었습니다.] [내지 않았는가 내지 못했는가.] [노모는 끼니를 거르시다 병이 드셨고 처자는 남의 집 허드렛 일이나마 해서 굶지 않으려고 뿔뿔이 흩어져 갔습니다. 무엇으로 세금을 내겠습니까.] [대책이 없도다.] [승상께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어찌하여 계책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계략이란 백성을 위한 군주의 계책이다. 고로 승상은 군주를 위한 계책이 필요했으나 폐하께서는 듣지 않으셨다. 생각해 보게. 무도한 군주를 위하여 무슨 계략을 세울 수 있겠는가.] [폐하께서는 검수가 빠진 도탄을 모르시고 계십니까?] [잘 듣게. 옛날 하의 걸왕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이고 은의 주왕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이고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들 신하는 결코 불충하지 않았으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충성을 받는 군주가 무도했기 때문이다.] [승상께서도 역시 그런 처지입니까?] [나의 지혜는 위의 세 사람만 못하고 황제의 무도함은 걸왕.주왕.무차보다 더하다. 내가 충성스러워도 죽게 되는 것이다. 어찌 내가 쉽사리 살아 남겠는가.] [승상께서도 하물며 그러하거늘 저희 같은 것들이야 삶을 바랄수가 있겠습니까.] [치세가 어지러우니 검수의 목숨을 어디에 가서 빌까. 황제는 자기 형제를 주살하여 제위에 오르고 충신을 죽이며 천한 자 조고 따위를 존중하고 아방궁을 축조해 중세(重稅)를 거두어들인다. 내가 충고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충고를 듣지 않았던 탓이다. 무릇 옛적 성왕은 음식에도 절도가 있고 수레나 기물(器物)에도 정수(定數)가 있으며 궁실에는 법도가 있어서 명령을 내린 사업에 장구히 편안하였다. 지금의 황제는 역악(逆惡)한 일을 형제에게 행하고도 그 허물을 반성할 줄 모르고 충신을 살해하고도 뒤따를 재앙을 생각지 않는다. 크게 궁실을 축조하고 중세를 천하에 부과하여 마음껏 낭비한다. 이 때문에 천하는 복종을 거부한다. 지금 반역자가 벌써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는데도 황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간신 조고를 보좌로 삼고 있으니 머잖아 도둑이 함양에 이르러 고라니와 사슴〔? 鹿〕같은 야수가 조정의 폐허에서 노는 꼴을 반드시 보게 되리라.......] [이제 승상께옵서는
List of Articles
번호 | 제목 |
글쓴이 | 조회 수 | 날짜 |
공지 |
∥…………………………………………………… 목록
|
바람의종 | 58,841 | 2007.01.24 |
840 |
단군신화
|
風磬 |
2,666 |
2006.10.25 |
839 |
동명왕(東明王)신화 - 주몽과 고구려의 건국
|
風磬 |
2,538 |
2006.10.26 |
838 |
쉴 때 생각하는 바가 맑으면 마음의 참모습이 보인다.
|
호단 |
2,982 |
2006.12.16 |
837 |
제 몸을 던져놓고 회의에 빠지면 제 뜻도 부끄러움을 당한다.
1
|
호단 |
2,615 |
2006.12.20 |
836 |
괴로운 가운데서도 즐기는 것이 마음의 참 기능이다.
|
호단 |
2,229 |
2006.12.19 |
835 |
마음이 움직이거든 그 즉시 깨닫고 깨달았으면 얼른 고쳐라.
1
|
호단 |
2,745 |
2006.12.16 |
834 |
남아 있는 양심
|
호단 |
2,265 |
2007.01.09 |
833 |
겸손의 중요성
|
호단 |
2,469 |
2007.01.09 |
832 |
군자가 변절하는 것은 소인이 회개하는 것만 못하다.
|
호단 |
2,267 |
2007.01.09 |
831 |
마음이 진실하면 여름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
|
호단 |
2,592 |
2007.01.16 |
830 |
老子 - 道德經 : 第一章
|
바람의종 |
2,557 |
2007.01.20 |
829 |
채근담 / 몸가짐이 가벼우면 흔들림이 많다
|
호단 |
2,003 |
2007.01.26 |
828 |
老子 - 道德經 : 第二十七章 (노자 - 도덕경 : 제27장)
|
바람의종 |
1,721 |
2007.02.18 |
827 |
老子 - 道德經 : 第二十八章 (노자 - 도덕경 : 제28장)
|
바람의종 |
1,746 |
2007.02.19 |
826 |
老子 - 道德經 : 第二十九章 (노자 - 도덕경 : 제29장)
|
바람의종 |
1,655 |
2007.02.20 |
825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章 (노자 - 도덕경 : 제30장)
|
바람의종 |
1,830 |
2007.02.21 |
824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一章 (노자 - 도덕경 : 제31장)
|
바람의종 |
1,775 |
2007.02.22 |
823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二章 (노자 - 도덕경 : 제32장)
|
바람의종 |
1,748 |
2007.02.26 |
822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三章 (노자 - 도덕경 : 제33장)
|
바람의종 |
1,878 |
2007.02.27 |
821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四章 (노자 - 도덕경 : 제34장)
|
바람의종 |
1,729 |
2007.02.28 |
820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五章 (노자 - 도덕경 : 제35장)
|
바람의종 |
1,786 |
2007.03.02 |
819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六章 (노자 - 도덕경 : 제36장)
|
바람의종 |
1,838 |
2007.03.03 |
818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七章 (노자 - 도덕경 : 제37장)
|
바람의종 |
1,770 |
2007.03.05 |
817 |
하편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八章 (노자 - 도덕경 : 제38장)
|
바람의종 |
1,734 |
2007.03.09 |
816 |
老子 - 道德經 : 第三十九章 (노자 - 도덕경 : 제39장)
|
바람의종 |
1,805 |
2007.03.10 |
815 |
老子 - 道德經 : 第四十章 (노자 - 도덕경 : 제40장)
|
바람의종 |
2,153 |
2007.03.12 |
814 |
老子 - 道德經 : 第四十一章 (노자 - 도덕경 : 제41장)
|
바람의종 |
1,768 |
2007.03.1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