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9. 소진열전 蘇秦列傳
천하 열국이 진(秦)과의 연횡(連衡)을 경게한 것은 진의 그칠 줄 모르는 침략의도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진은 열국을 존속시키고 합종(合從)을 맹약케 하여 탐욕스런 강대국 진을 눌렀다. 그래서 제9에<소진열전>을 서술했다. <太史公自序>
소진은 동주(東周)의 낙양(洛陽) 사람이다. 동쪽 제나라로 가서 스승을 찾아 귀곡 선생(鬼谷先生: 鬼谷子라고도 하여 蘇秦.張儀의 스승이며 縱橫家의 조상으로 알려졌다. 고향.성명 모두 미상이나 귀곡<鬼谷: 河南省 登封縣의 남동>에 살았으므로 귀곡 선생이라 한다. <귀곡자>라는 저서 3권이 있음)한테서 학문을 배웠다. 본국을 떠나 유학하는 수년 동안 소진은 많은 곤궁을 겪고 돌아왔다. 누더기 옷에 초라한 몰골로 돌아오자 형제.형수.누이.아내.첩조차도 그를 비웃으며 냉대했다. "주나라 풍속으로는 농사를 짓든가 상공업에 힘써 2할의 이익을 보는 것을 본무로 여깁니다. 그런데, 당신이란 사람은 본업은 팽개치고 매일 그 쓸데없는 혀끝이나 놀리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그런 입에 밥술이나 들어가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소진은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했다. 그러던 중 장서 중에서 <주서(周書)>의 <음부(陰符: 太公望 呂尙의 兵法書)>가 손에 잡혔다. 정신없이 탐독하다 보니 한 해가 휙 지났다. 그 때 그는 깨달았다. "도대체 선비라는 자가 머리 숙여 가며 남에게서 글을 배워 놓고도 영화로울 수가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됐다, 가자. 나는 이 책으로 취마(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아는 것)의 비법을 깨달았다. 이것으로 당대의 군주들을 설득해야지."
소진은 우선 가까운 주나라 현왕(顯王: B.C.368-321 在位)를 뵈려고 했다. "만나 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 자는 미친 자입니다." 소진을 잘 안다던 왕의 측근으로 인해 그는 배알조차 못 하고 물러나왔다. 할 수 없이 소진은 서쪽 진나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효공이 죽고 그 아들 혜왕이 등위했다. 소진이 혜왕을 설득했다. "진은 사방이 험준하고 견고한 산하로 둘러싸인 요새입니다. 위수(渭水)가 띠를 두른 듯 흐르고 있고 동쪽에난 함곡관과 황하가 있으며 서쪽에는 한중(漢中)이 있고 남쪽에는 파.촉(巴.蜀)이 있고 북쪽에는 대군(代郡)과 마읍(馬邑: 山西省 북쪽)이 있어 천연적인 곳집(府庫)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나라의 많은 선비들과 백성들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면 천하를 병탄해 황제라 일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듣고 난 진왕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새라도 날개가 다 자라기 전에는 하늘 높이 날 수가 없는 법이오. 우리 진나라는 아직 정교(政敎)가 정된되지 못했으니 더구나 남의 나라를 병탄한다는 일은 무리요. 어서 가 보시오." 하필 그 때는 진왕이 상앙을 막 죽인 뒤였으므로 유세객을 몹시 미워했던 혜왕으로서는 소진을 등용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소진은 지치지 않고 이번에는 동쪽으로 조(趙)나라를 찾아갔다. 조의 숙후(肅侯:B.C.349-326 在位)는 아우인 성(成)을 재상으로 삼아 봉양군(奉陽君)이라 불렀는데 유달리 봉양군은 소진의 언설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서 다른 나라로 가 보시오." 소진은 조나라에서도 버림받는 신세가 되어 이번에는 연(燕)나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그러나 소진이 연의 문후(文侯: B.C.361-333 在位)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도착 1년 뒤였다. "연은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에는 임호(林胡).누번(樓煩)이라는 두 호국(胡國)이 있고 서쪽으로는 운중(雲中).구원(九原: 모두 山西省 북쪽 綵遠地方)의 땅이 있고 남으로는 호타수(호타水).역수(易水)의 두 강물이 있습니다." "제대로 보았소." "국토는 사방 2천여 리, 갑사(甲士: 무장병) 수십 만, 전차 6백 대, 군마 6천 필, 곡식은 수년을 견딜 수 있습니다." "연의 내용을 그토록 소상히 아는 그대는 놀랍소." "어디 그뿐입니까. 남쪽으로는 갈석(碣石: 渤海沿岸).안문(안門: 山西省서북부)의 풍요한 물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이 나옵니다. 백성이 밭 갈지 않고도 넉넉한 식량이 됩니다. 이것은 이른바 하늘이 준 보고가 아니겠습니까. 대개 열국을 훑어보니 생활이 안락하고 무사하여 전쟁에 패하여 장군이 전사한 적이 없는 나라는 연나라밖에는 없었다는 겁니다. 대왕께서는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모르오. 그 역시 하늘의 축복이 아니겠소." "외구의 침범도 없고 병사가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은 남쪽을 조나라가 막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나라가?" "진과 조가 다섯 차례나 싸운 사실을 알고 계시겠지요." "진이 두 번 이겼고 조가 세 번 이겼소." "그러나 피폐해지기는 두 나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연나라는 침략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소?" "폐하께선 온전한 연나라로써 그들의 후방을 은연중에 제압하고 있었던 게 그 이유입니다. 또 있습니다. 만일 조나라가 연을 공격해오려면 운중과 구원을 넘어 대.상곡(代.上谷: 山西省 북동에서부터 河北省 서쪽)을 통과하여 수천 리를 행군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설사 진이 연의 성을 수중에 넣는다 해도 어떤 계책으로도 이를 지켜낼 도리가 없지요. 그래서 진은 연을 침해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대의 언설은 기묘하오." "그런데 말씀입니다. 만일 조가 연을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실상은 그것이 걱정이오." "아마 조군이 호령을 내린 지 열흘이 못 되어 수십만 군이 동원(東垣:趙의 동쪽 邑. 河北省 正定縣)에 포진하고 호타수를 곧바로 건너 역수까지 뛰어넘어 불과 4,5일이면 연의 국토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오." "진이 연을 치는 일은 천 리 밖에서 싸우는 일과 같고, 조가 연을 치면 백리 안에서 싸우는 것과 같은 사정이 됩니다. 따라서 백 리안의 근심인 조를 생각지 않고 천리밖의 진을 근심한다는건 분명한 실책이지요." "그대의 생각에 동감이오. 묘책이 없겠소?" "조와 합종(合從: 趙.韓.魏.燕 .楚.齊 6국이 세로[縱]로 벌려져 있어 6국이 힘을 합해 秦에 대항하자는 소진의 계책) 하십시오. 천하가 종(縱)으로 하나가 되기만 하면 연나라에는 아무 우환이 없어집니다." "아직은 우리 연나라에 우환은 없으나 서쪽의 조와 남쪽의 제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이오. 더구나 우리는 소국이고 제와 조는 강국들이 아니겠소. 만일 그대가 합종을 성립시켜 연을 편안케만 해 줄 수 있다면 나라를 들어 그대를 좇겠소" "제가 조나라에 다녀오지요."
문후는 소진에게 거마와 황금과 비단을 후히 주어 조나라로 가게 했다. 때마침 재상 봉양군은 죽고 없었다.그래서 소진은 곧바로 조의 숙후를 설득할 수 있었다. "소신 소진은 천하의 경.재상.신하들이 혹은 무명의 선비들까지도 대왕의 의행(義行)이 고결 현명하시다는 소문을 듣고 그 가르침을 받자와 진작에 어전에 들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봉양군께서 현사(賢士)를 질투하시어 충성스런 의견을 아뢸 길이 없었던 바입니다." "내가 국정을 몸소 맡지 않고 보니 의견을 개진하는 빈객과 유세객이 그 동안 없었던가 보구려." "봉양군은 작고하시고 차제에 대왕께서 사민(士民)들과 다시 가깝게 지내시려 하시니 우견이나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만." "어서 말씀해 보오." "왕의 처지로서는 백성을 안정시키고 무사하게 하는 일보다 천하에 더 좋은 일이 없을 듯합니다. 엉뚱한 사단을 일으켜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하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제하는 나라를 잘 선택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택에 따라 백성들이 편안하냐 혼란스러우냐가 결정됩니다." "어떤 나라와 교제해야 조나라가 편안하다고 생각되오?" "잘 살펴보십시오. 조나라가 제.진 양국과 적대관계에 있게 되면 조의 백성들은 안정될 수 없습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진의 편을 들어 제를 쳐서도, 제의 편을 들어 진을 공격해도 백성들은 안정될 수 없습니다. 고로 다른 나라의 임금을 꾀어 다른 나라를 치게 해야 우환이 없겠는데 이런 경우에는 대왕께선 항상 말조심을 하셔야 합니다. 자칫 하다간 국교가 끊어지게 마련입니다." "어떤 조심을 해야 한단 말이오?" "우선 흑과 백, 음과 양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십시오. 이해가 상반되는 두 개의 정책을 말하는데 바로 합종과 연횡(連衡: 齊.楚.燕.魏.韓.趙 6국이 옆[橫.衡]으로 연결해 秦에 복종시키려 했던 張儀의 政策)을 이름입니다. 대왕께서 제 의견을 들어주시면, 연나라는 모직물. 갖옷 . 개 . 말이 나는 땅을 드릴 것이고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이 나오는 해변 땅을 드릴 것이고 초는 귤과 유자가 나는 동산을 바칠 것이고 한.위.중산(中山)은 모두 휴양에 필요한 탕목(湯木)의 땅(이곳 수입을 목욕비용으로 쓴다)을 드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왕의 인척과 귀족들은 모두 제후에 봉해질 수 있습니다." "그 모두가 탐나는 땅이구려." "대체로 남의 땅을 빼앗아 이익을 차지하는 일은 오백(五伯:五覇)이 적군을 깨뜨리고 적장을 사로잡으면서까지 구하던 일이고, 왕족을 제후에 봉하는 일은 탕왕과 무왕이 천자를 쫓아내든가 죽이면서까지 다투던 일입니다." "그대의 의견은 나더러 합종하라는 거요?" "그렇습니다." "만일 그대의 뜻대로 하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되오?" "가령 대왕이 진나라의 편을 들면 진은 반드시 한.위를 약화시킵니다." "제에 가담하면?" "제나라는 초와 위를 약화시키겠지요. 위가 약화되면 황하 서쪽의 땅을 갈라 진에 바칠 것이며, 한이 약화되어 의양(宜陽: 河南省 宜陽縣 북동)의 땅을 갈라 진에 바치게 되고, 의양이 진에 귀속되면 바로 조나라 상군(上郡: 陝西成 북쪽)에 이르는 길이 끊어지고, 위가 황하 서쪽의 땅을 갈라주어도 길이 끊어집니다. 초가 약화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나라는 고립무원을 면치 못할 겁니다." "그 세 가지 계책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료." "그렇습니다. 우선 진이 지도(지道: 長安의 남동. 陝西省 咸陽縣 북동)에서 남하해 오면 남양(南陽: 韓의 邑. 河南省 南陽縣)이 위태롭게 됩니다. 나아가 진이 조를 위협하며 주(周)를 포위하면 조나라는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또 진이 위(衛)를 근거로 권(卷: 魏의 邑. 河南省 原武縣)을 점령할 때도 문제가 생깁니다." "제나라는 진에 입조하게 되오?" "틀림없습니다. 진이 산동의 땅을 얻으려 한다면 반드시 병사를 일으켜 조나라로 향할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얘기요?" "진나라 군대가 황하를 건너고 장수(장水)를 넘어 파오(番吾: 河北省남쪽)를 점령할 때가 문제지요." "그 땐 우리 조나라가 수도 한단(邯鄲)성 밑에서 진군을 맞아 싸운다는 얘기 아니오?" "제가 우려하는 바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산동의 여러나라 가운데서 조나라보다 강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렇소. 사방 2천 리의 국토에 무장병 수십 만, 전차 1천 대, 군마 1만필, 식량은 몇 년을 견딜 수가 있소."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서쪽에 상산(常山)이 있고 남쪽에 황하.장수가 있고 동쪽에 청하(淸河: 濟水)가 있고 북쪽에 연(燕)이 막고 있습니다." "연은 약한 나라요." "그러니까 진나라가 천하에서 적대시할 나라는 조나라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진이 감히 기병해서 조나라를 치지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오?" "그야 뻔하지요. 한.위(魏) 두 나라가 합심해서 진의 배후를 찔러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그렇지요." "그렇다면 한.위는 조나라 남쪽의 방벽이군." "그렇더라도 한.위는 높은 산이나 큰 강이 없으므로 진이 쉽게 먹어 들어갈 수가 있다는 얘깁니다. 결국 두 나라가 진을 섬기게 될 때 그 화는 조나라로 집중될 것입니다." "음...... 그것이야말로 우려되는 바요." "제가 듣기로는, 요임금은 농부 세 사람 몫의 밭뙈기도 없었고[즉 田地 3백 묘(묘)] 순임금은 지척(咫尺: 咫는 8寸, 尺은 10寸)의 땅도 없었으나 천하를 차지하였다고 합니다. 또 우임금은 백 사람이 모여사는 촌락도 없었지만 제후들의 임금이 되었고, 은의 탕왕이나 주의 무왕은 3천 명도 못 되는 무사에 전차 3백 대, 병졸 3만에 지나지 않았으나 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왕자(王者)로서의 덕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고로 명군(明君)은 밖으로 적의 강약을 헤아리고 안으로 사졸의 우열을 헤아려 양군의 충돌을 기다리지 않고, 승패와 존망의 기운이 가슴에 떠오르도록 하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옳은 말이오." "제가 가만히 천하의 형세를 살펴보니 제후들의 땅은 진나라의 다섯 배가 되며 제후들의 병사는 진의 열 배가 됩니다. 제후 6국이 하나가 되어 힘을 합해 서쪽을 치면 진은 반드시 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가 못하고 강한 진을 겁내어 진을 섬긴다면 진의 신하가 되는 것이지요.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은 엄청난 차이지요." "한 가지 물어봅시다. 저들 연횡론자(連衡論子)들의 의도는 무엇이오?" "좋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여섯 제후국들을 공갈쳐서 진나라에 땅을 베어 주라는 것이지요." "그럴 경우 연횡을 유세하는 자들은 어떤 은혜를 입소?" "빤하지 않습니까. 누대를 높이 올리고 궁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피리와 거문고를 즐기겠지요. 앞에는 누문(樓門)과 헌원(軒轅: 대부 이상이 타는 수레)이 있고 뒤에는 아름다운 계집애들을 가지겠지요. 자기의 고국이야 진나라에 망하든 말든 전연 근심하지 않으며 사욕을 계속 채우기 위해 제후국들을 더욱 위협해서 땅을 베어 진에 바치도록 윽박지르겠지요." "됐소, 잘 들었소. 그러니 그대의 주장인즉슨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진을 배척하는 계책을 사용하라는 뜻이겠구려." "그러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오?" "우선 한.위.제.초.연.조의 장군과 재상들을 원수(洹水: 河南省 安陽市 동북의 江) 가에 모으십시오." "그래서는?" "볼모를 교환하고 백마를 죽여 그 피를 입에 발라 맹세하고 굳게 약속하기를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진이 초를 치면 제.위의 정예 군사가 곧 출동해 초를 돕고 한은 진의 양도(糧道)를 끊고 조는 황하와 장수를 건너고 연은 상산의 북쪽을 지킨다고 하십시오." "만일 진이 한.위를 치면 어떻게 되오?" "초는 그 후방을 끊고 제는 즉각 정예병을 출동시키며 조나라는 황하와 장수를 건너고 연은 윤중을 지키면 됩니다." "진이 제를 칠 수도 있겠는데?" "그 땐 초가 그 배후를 끊고, 한이 성고(城고: 河南省 氾水縣)를 지키고, 위는 그 길을 막고 조는 황하.장수를 건너 박관(博關: 山洞省 博平縣 북서)으로 가고, 연은 정예병을 내어 제를 돕는다고 하십시오." "진이 연을 치면 어떻게 되오?" "조가 상산을 지키고, 초는 무관(武關: 陝西省 商縣 동쪽)에 출병하고, 제는 발해를 건너고, 한.위는 역시 정병을 내어 이를 도우면 됩니다." "이제 진이 조나라를 공격해 올 경우가 남았구려." "한은 의양에 포진하라고 하십시오. 초는 무관으로 출병하고, 위는 황하 서쪽에 포진하고, 제는 청하를 건너고, 연은 정병을 내어 조를 도우면 됩니다." "맹약을 어기는 자가 있을 텐데." "간단합니다. 다른 5국의 병력으로 이를 응징하십시오." "그렇겠구려. 만약 합종이 성공만 한다면 진나라도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침범하지 못하겠구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대왕께서는 마침내 패왕의 위업도 이루게 되지요." 조왕은 그제서야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은 나이도 젊고 왕위에 오른 지도 얼마 안 되어 아직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들어볼 만한 시간이 없었소. 그런데 지금 그대가 사직을 보존케 하고 제후를 안정시키며 천하가 보존되는 계책을 주었으니 기쁘기 그지없소. 삼가 나라를 들어 그대가 말한 대로 하리다." 이에 조왕은 마차 1백 대, 황금 1천 일(鎰: 약 380킬로그램), 백벽(白璧) 1백 쌍, 비단 천 돈(돈: 묶음, 필)을 갖추어 소진에게 주어 제후들과 합종의 맹약을 맺고 오도록 보냈다.
그 즈음에 주의 천자가 조상인 문.무왕을 제사지내고 남은 고기를 진의 혜왕에게 하사했다. 때맞춰 진의 혜왕은 서수(犀首)로 하여금 위를 치게 하여 장군 용가(龍賈)를 사로잡고, 위의 조음(雕陰: 陝西省 甘泉縣 남쪽)까지 점령한 후에 다시 동으로 이동하려 하고 있었다. 소진은 덜컥 겁이 났다. 합종의 대업을 이루기도 전에 진이 조를 침략할 것 같았다. 이에 장의를 격노시켜[소진이 동문수학한 장의를 고의적으로 모욕하여 그를 격노케 함으로써 스스로 분발케 만들고 진나라로 들어가게 했으며, 그 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어 장의의 여비와 모든 편의를 제공해 그가 출세했을 때 감격시키게 만든 일. 제10권 <장의열전> 참고] 진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런 후, 소진은 서둘러 동쪽으로 한의 선혜왕(宣惠王: B.C.332-312 在位)에게 갔다. "조왕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그대를 나한테 보냈소?" "들어 보십시오. 한나라는 북쪽으로 공락(鞏洛)과 성고라는 견고한 두 요새가 있고 서쪽에는 의양.상판(商阪: 陝西省 商縣 동쪽)의 요해처가 있으며 동으로는 원(宛: 河南省 南陽市).양(穰: 河南省 鄧縣 남동)의 두 읍과 또 유수(洧水)가 있고 남쪽에는 경산(경山: 河南省 新鄭縣 남쪽)이 있습니다. 국토는 사방 9백 리, 무장 병사는 수십만, 천하의 강한 활과 굳센 쇠뇌가 모조리 다 한나라에서만 나옵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게요?" "계자(谿子: 南蠻의 나라, 良弩을 생산했고 한은 이것을 모방)에서 만든 산뽕나무 쇠뇌와 소부(小府)에서 만든 시력(時力), 거래(距來)는 모두 6백 보의 원거리를 쏠 수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오." "한나라 병사가 발을 뻗디디고 쏘면 백 발이 연속해서 발사됩니다. 멀리서 맞으면 화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슴 깊이 박히며 가까운 데서 맞으면 화살 밑뿌리가 가슴을 덮습니다. 한나라 병사들의 칼이나 창은 모두 명산(冥山: 山西省 朔縣 북쪽)에서 만들어지며, 당계(棠谿).묵양(墨陽).합부(合賻).등사(鄧師).원풍(宛馮).용연(龍淵).태아 (太阿) 등의 명검들로써, 땅에서는 한칼에 마소를 베며 물에서는 단칼에 고니와 기러기를 벱니다. 적병의 단단한 갑옷과 쇠방패도 단번에 쪼개 버리지요. 한나라에서는 갖춰지지 않은 군장비가 없지요. 더구나 한나라 군사는 용감해서 단단한 갑옷을 입고 굳센 쇠뇌를 밟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나서면 가히 일당 백이지요." "대체 무슨 말을 하실 참이오?" "이토록 강한 군대와 군주의 현명하심을 가지고도 진나라를 섬기시겠다 하시니 그것이 부끄러워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에는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없을 겝니다. 대왕께서 진나라에 복종하시는 순간 아마 진에서는 당장 의양과 성고의 땅을 달라고 요구할걸요. 내년엔 도 다른 땅을 달라 할 것이고 계속 주려니 줄 땅은 없고 주지 않겠다면 얻은 공은 잊어버리고 대왕께선 결국 화만 당하게 되겠지요. 대왕의 땅은 한정이 있지만 진왕의 욕심은 한정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한정 있는 땅을 가지고 한정없는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른바 원수를 사서 우환을 키운다는 뜻입니다. 싸움 한 번 못 해 보고 땅덩이는 모조리 깎여 나갈 테지요." "진나라는 워낙 강국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소."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망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말. 어쩌시렵니까?"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한왕은 갑자기 안색이 달라지더니 눈을 부라리며 칼을 빼어 들었다. "단연코 진을 섬길 수는 없소!"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나 비록 불초하나 쇠꼬리는 되지 않겠소. 그대가 와서 조나라 왕의 가르침을 전해 주어 감사하오. 삼가 나라를 받들어 그 말을 좇겠소."
소진은 다시 수레를 몰아 위(魏)나라로 달려갔다. 위에는 양왕(襄王: B.C.334-319 在位)이 있었다. "진을 섬기자는 연횡론이 우세하오. 대부분의 신하들도 그걸 원하고 있소." "들어 보십시오. 대왕의 국토는 남으로 홍구(鴻溝).진(陳).여남(汝南).허(許).언(언).곤양(昆陽).소릉(召陵).무양(舞陽).신도(新都).신처(新처: 河南省 남동에서 安徽省 북쪽에 걸친 지역)가 있고, 동쪽으로는 회수(淮水).영수(潁水).자조(자棗: 山東省 棗澤縣서쪽).무서(無胥)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장성(長城)이 경계하고 있고 북쪽으로는 황화 남쪽 지역에 권(卷).연(衍).산조(酸棗: 河南省 중부지방)등이 있습니다. 땅은 비록 사방 천리나 민가가 밀집해 있고 목축을 할 수 없을 만큼 빈 땅이 없습니다." "백성이 많고 수레와 말이 많아 밤낮으로 왕래하는 인파 때문에 마치 삼군이 행진하는 것 같지요." "그렇습니다. 때문에 위나라는 초나라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계속해 보오." "그런데도 대왕께선 연횡론자들의 말만 듣고 강포하기가 이리나 호랑이 같은 진과 사귀며, 진을 도와 천하를 침략하게 함으로써 결국 위나라로 진의 침략을 받게 되는 근심을 자초하려고 하십니까." "위가 진의 침략을 받아?" "위는 천하의 강국이며 대왕께선 천하의 현군이십니다. 그런 대왕께서 서면(西面)하여 진을 섬기고 동쪽의 울타리가 되어 진왕의 순수(巡狩)따위에나 대비해 제궁(帝宮)이나 신축하고 의관과 속대(束帶)도 진나라법을 따르고 봄.가을의 제사를 받들어 진나라 종묘나 도우려 하고 계시니 신은 대왕을 위하여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대서 약한 위나라로선 다른 방법이 없지 않소." "월왕 구천은 지친 군사 3천으로 오왕 부차를 간수(干遂)에서 사로잡았고 무왕은 군사 3천에 전차 3백 대를 가지고 은의 주왕(紂王)을 목야(牧野)에서 제압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승리가 어찌 그 병사의 많음에 있었겠습니까." "그야......." "제가 듣기로는 대왕의 병사는 무사 20만, 창두(蒼頭: 靑巾을 쓴 잡병) 20만, 분격(奮擊: 정예병)도 20만에 시도(시徒: 잡역부)까지 10만이며, 병기가 6백 대, 군마 5천 필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어찌 저 월왕 구천이나 무왕이 가졌던 병력보다 보잘것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렇더라도......." "지금 대왕께선 신하들의 말만 듣고 진을 섬기려 하시지만 무릇 진을 섬기려면 반드시 땅을 쪼개 바치는 성의표시는 해야 합니다. 싸움도 하기 전에 영토의 결손을 보게 되니 그런 간언을 한 신하는 충신이 아니고 간신입니다. 어찌 신하된 자로서 인군의 땅을 떼어 바치는 외교를 하는 자를 충신이라 부르겠습니까. 그자들은 강국과 교제를 맺어 짐짓 국내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나중에 닥쳐올 환란에 대해서는 조금도 책임지지 않을 자들입니다. 즉 공가(公家)를 파괴하여 사가(私家)의 성공을 꾀하는 자들이며 바깥의 강한 진나라 권세를 빌어 안으로 자기 군주를 위협해 땅을 팔아먹는 행위입니다." "그럴 듯한 말이지만......." "<주서(周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싹 때 끊지 않고서, 덩굴 길게 얽혔을 때 어찌할거나, 작을 때 베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써야 하리.' 대왕, 재빠른 사리판단을 하십시오. 장차 큰 근심이 되고 나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게 됩니다." "그대는 6국이 합종하라는 뜻이오?" "그러합니다. 뜻을 하나로 뭉치면 강한 진나라의 우환을 해소시킬 수 있습니다. 조왕께옵서 저를 시켜 우계(愚計)를 대왕께 올려 맹약을 받아오도록 명하셨습니다. 부디 대왕의 밝은 분부 계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위왕은 분연히 말했다. "좋소. 과인이 불민한 탓으로 이제까지 이토록 밝은 가르침은 듣지를 못했소. 이제 그대를 통해 조왕의 권고를 들은 이상 나라를 들어 그대의 말을 좇겠소."
위왕을 설득시킨 소진은 이번에는 동쪽으로 더 나아가 제나라로 갔다. 제에는 선왕(宣王: B.C.342-324 在位)이 있었다. "어떤 좋은 방법이라도 없겠소?" 마침 제왕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우선 제나라의 국세(國勢)부터 말씀드리지요. 남쪽에는 태산이 있고 동쪽에는 낭아산(낭야山: 山東省 諸城縣 남동)이 우뚝 솟아있지 않습니까. 또 서쪽에는 청하(淸河)가 있고 북쪽에는 발해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이른바 사새(四塞: 四方要塞)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시오?" "물론입니다. 게다가 제의 국토는 사방 2천여 리, 무장군대 수십 만에, 양곡은 산더미 같고, 3군의 정예부대와 오가(五家: 일찍이 管仲이 만든 제의 軍制. 五人 즉 五家를 軌라 하고 10궤(50人)를 里, 4里(2백人)를 連,10연(2천人)를 鄕, 5향(1萬人)에 한 사람의 師를 두어 이것을 1軍을 편성했다)의 민병들이 전진하면 그 빠르기가 봉시(鋒矢: 빠른 小矢) 같고 싸우면 우뢰처럼 위력적이며 해산할 때는 비바람처럼 신속합니다." "문제는 그런 병력을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점이오." "만약 전시가 되어 징병하는 경우에도 태산을 남쪽으로 넘거나 청하를 건너거나 발해를 건너서까지 먼 지방으로 출병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건 어째서 그렇소?" "임치(臨치)에만도 7만 호가 있어 대략 계산해 보아도 한 집에 남자 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21만 명이 되지 않습니까. 먼 고을로부터 징발하지 않고 임치의 병사만으로도 나라를 방위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계책이구려." "더구나 임치는 부유하고 여유가 있어 그 백성들 치고 피리를 못 불거나 비파를 못 뜯거나 거문고를 못 타거나 아쟁(筑)를 켜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닭싸움을 즐기고 개를 경주시키는 놀이를 즐기며 윷놀이.공차기도 즐기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임치의 길은 수레바퀴통끼리 부딛치고 사람의 어깨끼리 비비게 되며 옷자락이 서로 이어져 휘장이 되고 소매를 들면 장막이 되며 땀을 뿌리면 비가 됩니다. 집집이 번창하고 사람마다 만족해 하며 사기는 한없이 드높아 있습니다." "임치는 그렇소!" "그러하니 대왕의 현명함과 제의 강대함을 천하에서 능히 당할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제 서쪽을 향해 진을 섬긴다니 소신은 대왕을 위하여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제나라만으로는 진에 맞서기가 힘겨워서 그렇소." "잘 보십시오. 한과 위가 진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그야 진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 "그렇습니다. 만약 진이 출병해 접전을 하게 되면 열흘이 못 돼 승패와 존망이 결정될 것입니다. 설사 한.위가 싸워서 이긴다 하더라도 병력의 절반은 꺾였을 테니 사방의 국경을 지킬 수가 없게 됩니다. 더더구나 싸워서 졌을 때는 국운이 쇠퇴해 멸먕이 뒤따를 것은 필시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위가 진과 싸울 수가 없어 진을 섬기려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제나라 경우는 전연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단 말이오?" "진이 제를 치려면 한.위의 땅을 등지고 위(衛)의 양진(陽晋: 山東省 曹縣)의 길을 지나 강보(亢父: 山東省 濟寧縣 남쪽)의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 부근은 두 수레가 병행할 수가 없으며 쌍두의 기마가 병행할 수 없을 만큼 길이 좁고 험해 백 명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이라도 돌파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진이 제에 깊이 침투하고 싶어도 이리가 언제나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는 것처럼 한.위가 진의 뒤쪽을 위협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의 행동은 허세요?" "바로 그렇습니다. 속으로는 두렵고 의심스러우니까 밖으로 공갈치고 거만스럽게 굴면서도 감히 전진해 오지 못합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사실이 그렇다고 믿으십시오. 진은 결코 제를 침략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정을 깊이 생각지도 못하고 진을 섬기려는 계략을 쓰는 못된 신하들에 있습니다." "과인이 민첩치 못해 신하들의 계략을 사용할 뻔하였소." "이제 진을 섬긴다는 오명을 쓰느냐, 아니면 나라를 부강케 하는 실리를 얻느냐, 대왕께선 양단간에 결단을 내리셔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잘 들었소. 제나라는 멀고 바다에 지우친 땅이며 더 갈 데도 없는 동쪽 변경의 나라라 지금까지 그대 같은 고견은 아직 한 마디도 들을 기회가 없었서. 지금에서 그대가 조왕의 가르침을 전하니 삼가 나라를 들어 거기에 따르겠소."
소진은 제왕에게 합종의 계략을 쓰기로 약속을 받아낸 후 다시 서둘러 초(楚)나라로 향했다. 남서쪽의 초에는 위왕(威王: B.C.339-329 在位)이 있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합종책을 쓰느냐 연횡책을 쓰느냐 고민중에 있었다. "초나라는 서쪽으로 진과 접경하고 있소. 진은 파(巴)와 촉(蜀)을 탈취하여 한중(漢中)을 병탄할 야심을 가지고 있소." "그렇습니다." "진은 호랑이 같은 나라라 초로선 친근할 수도 없소. 그런데 말이오. 한.위는 진의 우환이 절박하여 심원한 계략을 상의할 겨를조차 없는 것 같소. 아마 그쪽은 설사 상의를 한다 하더라도 이쪽을 배반하고 진에 붙을 게 실상이오. 또 초나라 단독으로 진에 부딛쳐 보아야 승산이 없을 뿐 아니라 우리 신하들과 상의해 보아도 묘책이 나오지 않소그려. 그래서 과인은 잠자리에 누워도 편안치가 않으며 식사를 해도 맛이 있을 리가 없소. 마음은 마치 높이 걸린 깃발처럼 흔들려서 안정될 때가 도무지 없구려." "그렇다면 대왕께서 쉽게 결단을 내리실 수 있는 계책을 말씀드리지요. 초나라는 일단 천하의 강국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대왕께선 천하의 현왕(賢王)이십니다. 서쪽에는 검중(黔中: 湖南省 서쪽 沅陵 일대).무군(巫郡: 四川省 동쪽 巫山縣 일대)이 있고, 동쪽에는 하주(夏州:武漢市 부근).해양(海陽)이 있고, 남쪽에는 동정호(洞庭湖).창오(蒼梧:湖南省 남서에서 廣西省에 이름)가 있고, 북에는 형새(형塞: 河南省 新鄭縣남서).순양(순陽: 陝西省 순陽縣)이 있으며, 국토는 사방 5천 리에 갑병1백 만, 전차 1천 대, 군미 1천 필, 양곡은 10년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내 밑천이오." "이토록 강한 초나라가 더구나 현명함을 지니신 대왕께서 서면하여 진을 섬겨 보십시오. 천하의 제후들 모두가 진의 장대(章臺: 秦의 都 咸陽에 있는 臺名) 밑으로 줄줄이 따라서 입조할 것입니다. 진나라에서 볼 때는 초나라만큼 방해되는 나라가 없습니다. 초나라가 강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결국은 초나라가 강해지면 진나라가 약해지고 진이 강해지면 초가 약해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두 양웅이 한 하늘 밑에 설 수 없다는 법칙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그 대책을 어서 말해 보오." "쉽게 말씀드려 여섯 나라가 합종하여 진나라를 고립시키는 계략을 채택하도록 권고드리고 싶습니다." "과인이 만일 합종책을 사용하지 않으면 진나라는 어떻게 나올것 같소." "어김없이 두 갈래 군사를 일으켜 1군은 무관으로 출격해 올 것이고 다른 1군은 검중으로 내려오겠지요. 그렇게 되면 언.영(언.영: 모두 楚의 國都)이 동요될 것이 필시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모든 일은 어지러워지기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아직 일어나기 전에 대처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환이 닥친 후에야 이것을 근심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왕께서는 속히 숙고하셔서 결단을 내려 주십시오." "합종책을 썼을 때 나한테 돌아오는 이익은 뭐가 있겠소?" "제가 산동의 여러 나라를 시켜 춘하추동의 공물을 초에 바치도록 하고 대왕의 명령에 복종토록 하며 사직과 종묘를 초에 위존케 만들며 각국의 병사들을 대왕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한.위(魏).제.연.조.위(衛)의 절묘한 음악과 미인들은 반드시 초의 후공에 가득 차고 연.대(代)에서 나는 낙타와 양마(良馬)는 필히 궁중의 마굿간에 가득 찰 것입니다. 결국은 합종의 친교가 이루어지면 초는 천하의 왕국이 될 것이고 연횡이 이루어지면 진이 천하의 제왕국이 될 것입니다." "연황론자들의 주장도 일리는 있소?" "그건 '원수를 길러서 원수에게 바친다'는 꼴이지요. 무릇 사람의 신하가 되어 그 인군의 땅을 쪼개어 바깥의 강포한 호랑이나 늑대 같은 진과 교섭해 진이 천하를 욕심내는 길을 터 주게 하는 자, 그런 대역불충한 신하일수록 자기 고국인 초가 전화를 입는 우환이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제 대왕의 현명한 응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잠깐 생각에 잠기던 초왕이 흔연히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좋소. 그대의 말대로 하겠소. 그대가 천하 제후를 하나로 집결시켜 위기에 처한 나라들을 안전하게 존속시키려는 대의명분이 마음에 들었소. 과인은 나라를 받들어 그 계책을 좇겠소."
결국 소진 혼자서 6국을 합종의 맹약을 시켜 힘을 합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로 인해 소진은 합종 맹약의 장(長)이 되었고 6국의 재상을 겸임했다. 북쪽으로 조왕에게 경과를 보고하기 위하여 가는 중에 낙양을 통과하게 되었다. 소진을 따르는 마차와 화물을 비롯해 제후들이 사신을 보내 내린 선물들이 많아서 그 행렬은 임금의 그것보다 훨씬 엄청났다.
주나라 현왕(顯王)은 소문을 듣고 두려운 나머지 도로를 청소하게 하고 사자를 직접 교외에까지 보내어 소진을 위로하게 했다. 그가 집에 들렀을 때 소진의 형제.처.형수 등은 곁눈으로 볼 뿐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소진의 식사 시중만 들고 있었다. 소진은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형수를 불렀다. "전날 그토록 나를 박대하더니 갑자기 이게 웬 일이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형수는 넓죽 땅에 엎드리며 말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계자(季子: 소진의 字)의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을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냥 한 몸인데 빈천하면 업신여기고 부귀하면 일가친척까지도 두려워하고 공경하니 하물며 남들이야 따져 무얼 하리. 내게 낙양성 부근에 두 마지기의 밭만 있었더라도 내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관인을 찰 수 있었겠나." 그렇지만 소진은 1천 금을 내어 가족과 벗들에게 뿌렸다. 처음에 소진이 연나라로 갈 때 백전(百錢)을 꾸어 노자로 삼았는데 부귀해 진 후에 백금(百金)으로 이것을 갚았다. 그리고 이때까지 여러 가지로 은혜 입은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사례를 했다. "주인님, 저는 아직 아무 사례도 받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소진을 모시던 종자 하나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보답이 없자 스스로 나서서 손을 벌렸다. "이보게. 내가 자네를 잊고 있었던 게 아니네. 기억하는가? 내가 자네와 함께 연으로 갈 때 세 번씩이나 나를 역수 가에다 버리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자네를 속으로 원망만 했지. 너무도 자신이 처량한 터라 나는 아무 대꾸도 못 했었네. 그래서 일부러 은상을 뒤로 미루고 있었지만......자네에게도 그만한 보상은 주어야겠지."
소진이 조나라로 돌아오자 숙후는 소진을 무안군(武安君)으로 봉했다. 그리고 6국이 합종한 맹약서를 진에 통고했다. 그로부터 진의 병사가 감히 함곡관 동쪽을 엿보지 못한 것이 15년이었다. 그런데 그후 진이 제.위(魏)를 속여 서수를 시켜 조나라를 쳤다. 제.위가 맹약을 깨뜨린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오!" 조왕이 소진에게 책임을 추궁했다. 소진은 다급했다. "사신으로 소신을 연나라로 보내주십시오." "합종의 맹약도 아주 해소되고 말았는데 연으로 가서 무얼 하겠단 말이오?" "제를 쳐서 보복하도록 만들지요." 그 즈음에 천하 정세는 아주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진의 혜왕이 그의 딸을 연나라 태자비로 주어 보냈다. 이 해에 연의 문후가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역왕(易王: B.C.332-321 在位)이다. 역왕이 즉위했을 무렵 제나라 선왕(宣王)이 연이 상중(喪中)임을 틈타 연을 쳐서 10개 성을 탈취해 버렸다. 연의 역왕은 소진이 도착하자 반 협박 반 호소조로 말했다. "왕년에 선생이 연으로 와서 선왕(先王: 亡父)께서 선생에게 자금을 도와주어 조에 가게 하여 6국의 맹약을 성사시키도록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제나라가 조를 치더니 연으로까지 진격했소. 선생 덕분에 연나라는 천하의 조소거리가 되었소. 지금 와서 어떻게 할 참이오?" "맹약을 깨뜨린 자가 나쁘지요. 연나라도 그 일단의 책임은 있습니다. 좌우지간 소신이 제나라로 찾아가 보지요. 빼앗긴 땅을 찾을 방도가 없잖아 있을 듯합니다." 소진은 서둘러 제나라로 가서 제왕을 만났다. 소진은 다짜고짜 두 번 엎드려 절한 뒤 경축하는 말에 이어 몸을 뒤로 뻗뻗이 젖힌 뒤 조위(弔慰)까지 표했다. 제왕은 이상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무슨 짓이오? 경축한다더니 갑자기 조위를 표하는 건 또 뭐란 말이오?" "대왕께선 오훼(烏喙: 바곳, 즉 毒草)를 삼키셨습니다." "내가?" "오훼는 당장에 배를 채우는 데는 괜찮지만 결국은 굶어 죽게 되는 독초입니다. 어서 토해 내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무슨 뜻이오?" "연나라가 약소국이라고는 하나 그 뒤에 버티고 선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입니까. 바로 호랑이 같고 늑대 같은 맹수의 나라가 아닙니까." "진나라!" "연은 진나라의 사위나라입니다. 대왕께서 연의 10성을 실없이 먹어 삼키셨으니 진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금세 천하의 정예대군이 제나라로 들이닥칠 텐데, 그것이 바로 대왕께서 오훼를 삼키신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소신은 그래서 대왕의 죽음을 슬퍼하여 미리 조의를 표시했던 것입니다." 제왕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더럭 겁이 났다.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구려.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옳겠소?" "일을 잘 처리하면 화를 돌려서 복으로 삼고, 실패를 밑천으로 하여 성공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빼앗은 열 성을 연에 돌려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후환이 없겠소?" "연은 이유없이 10성을 돌려받았으니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진나라 역시 자신의 위력으로 연이 10성을 되찾았다고 알게 되면 역시 기뻐해 마지 않을 것입니다. 덤으로 제나라가 얻는 이익도 있습니다. 이른바 '원수를 풀고 굳은 친교를 맺는다'는 경우지요. 연과 진이 함께 제나라를 섬기게 됩니다. 대왕께선 빈 말로써 진나라를 따르게 하고 열 성으로 천하를 취하게 되는 형편이니 이게 바로 패왕의 위업이 아니겠습니까." 제왕은 얼굴이 밝아지더니 무릎을 탁 쳤다. "좋소. 성을 돌려주겠소."
얼마 뒤에 소진을 참언하는 자가 있었다. "그 자는 한 나라를 좌로 팔았다가 우로 파는 반복이 무상한 간신입니다. 충분히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자입니다." 소진도 그런 소문을 들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죄 입을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소진은 서둘러 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연왕은 도무지 그를 복직시켜 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소진은 연왕에게 따지러 갔다. "신은 동주의 비천한 사람입니다. 조그마한 공도 없었는데도 선왕께서는 종묘에서 저에게 관직을 주시고 조정에서 예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왕을 위하여 제나라 군사를 물러가게 하고 10개의 성을 돌려받는 공을 세웠는데도 전날의 관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압니다. 저를 불충한 자라 하여 참언한 자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대왕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저를 불신하는 것이 도리어 대왕의행복이라는 것을." "그건 또 무슨 얘기요?" "충신은 자기를 위한 행위이며 진취(進取)는 남을 위한 행위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제나라 왕을 설득한 것이었지 속인 것은 아닙니다. 제가 노모를 동주에 버려 두고 연나라로 온 것은 진실로 자신을 위해 충신스럽게 행동하기를 포기하고 남을 위해 진취적으로 행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증삼(曾參)과 같은 효자와 백이(伯夷)와 같은 청렴한 인물과 미생(尾生)과 같은 신의 있는 인물이 있어 이 세 사람을 얻어 대왕을 섬기게 한다면 대왕께선 만족해 하시겠습니까?" "대단히 만족하겠소." "그렇지만 증삼과 같이 효성이 지극한 인물은 도리상 부모를 떠나 단 하루도 외박을 안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인물로 하여금 왕께서는 천 리 밖의 약한 연나라를 도우러 보낼 수 있겠습니까. 청렴한 백이는 의리를 지켜 고죽국의 후사(後嗣)가 되지 않고 무왕의 신하 되기도 싫어하고 제후로 봉해지는 것도 사양해 수양산 기슭에서 굶어 죽었습니다. 대왕께서는 이런 인물을 천 리 밖에 내보내 제에서 진취한 활동을 하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또 신의로 유명한 미생은 한 여자와 다리 밑에서 밀회를 약속하고 여자가 오지 않자 밀물이 밀려와도 물러가지 않고 다리 기둥을 껴안은 채로 익사했습니다. 이렇게 신의 있는 인물을 왕께선 천 리 밖으로 보내어 제나라 강병을 물리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저는 충신이기 때문에 죄를 얻은 것입니다." "그대는 충신스럽지 않았소. 어찌 충신스럽다고 해서 죄를 입는단 말이오."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관리가 멀리 출장간 사이에 아내가 딴 남자와 사통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온다고 하므로 사통하고 있던 남자가 걱정했더니 아내가 '근심할 것 없습니다. 독약 탄 술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흘 후 남편은 과연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첩을 시켜 독주를 부어 남편에게 권하게 했습니다. 첩은 주인에게 그것을 귀띔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주부가 쫓겨날 것이고 말하지 않자니 주인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고심 끝에 일부러 쓰러지는 척하면서 술을 뒤엎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주인이 채찍으로 첩을 쉰 대나 때렸습니다. 첩은 넘어지며 술을 엎질러 주인을 살아남게 하고 주부를 쫓겨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첩 자신은 채찍을 맞는 일을 면치 못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저의 잘못은 여기 나오는 첩의 신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연왕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불쑥 말했다. "과인이 잘못했소. 선생은 다시 본래의 관직에 복직하시오." 소진은 그후로 더욱 후한 대접을 받았다.
연나라 역왕의 모친은 아버지 문후의 부인인데 소진과 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모친의 외로운 처지를 생각한 역왕은 그들의 통정을 모른 체하고 소진을 더욱우대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소진의 생각은 달랐다. "대왕께서 감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수하가 귀띔해 주었으므로 소진은 더럭 겁이 났다. "아니 되겠다. 피살될지도 모르니 연나라에서 떠나 있어야 되겠구나." 그래서 소진은 짐짓 연왕을 설득했다. "제나라로 갈까 합니다." "제에는 무슨 일로?" "소신이 연나라에 있으므로 해서 연의 국제적 지위를 높일 수가 없습니다." "제나라에 있으면 연을 무게 있게 만들 수 있겠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좋을 대로 해 보시오." "그 대신 한 가지 계책을 꾸며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계책을?" "소신이 연나라에서 죄를 짓고 제나라로 도망친 것처럼 꾸며 주십시오." "그 역시 좋도록 하시오." 그런 후에 소진은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선왕은 그를 흔쾌히 객경(客卿: 外國出身의 大臣)으로 삼았다. 제의 선왕이 죽고 민왕(민王:B.C.323-304 在位)이 들어서자 소진은 연나라를 위하여 그제서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선왕을 후히 장례 지내십시오. 그래야만 천하에 효도를 밝히게 됩니다." "그럴까 하오." "뿐만 아니라 새 왕으로서 위엄을 천하에 높여야 합니다." "불민하여 그것을 모르오. 어떻게 하여야 천하에 위엄을 떨칠 수가 있게 되겠소?" "궁전을 높고도 화려하게 지으십시오. 또한 새와 짐승을 기르는 동산을 넓혀서 이제 제나라가 융성했다는 사실을 짐짓 과시해야 합니다." 소진은 그렇게 함으로써 제를 내부적으로 피폐케 만들고 연에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한편 연에서는 역왕이 죽고 왕자 쾌(쾌: B.C.320-312在位)가 왕이 됐다. 그 후 소진은 제나라에서 새 왕의 총애를 받으려고대부들과 많은 갈등을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반대파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소진은 즉사는 면했으나 중상을당했다. 제왕은 관졸들을 시켜 소진을 찌른 자객을 잡으려 했으니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소진은 그 때 입은 열상으로 상처가 도져 죽게 되었다. "대왕, 소신은 이제 죽게 되었는데 한 가지 소청이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오. 그대의 소청이 무언지 말해 보오." "신이 죽으면 시체를 거열형(車裂刑)에 처하여 시중에 조리 돌리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렇게 하셔야만 소인을 찌른 자를 체포하실 수가 있습니다." "......원수를 갚아달라는 뜻이겠구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하여 제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키려다 발각되었다고 하셔야 범인이 나타날 것입니다." 소진이 죽자 제왕이 그대로 했더니 과연 소진을 찌른 자객이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다. 제왕은 자객을 주살하고 소진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 사실을 두고 연나라에는 소문이 구구했다. "소진은 제나라에 충성을 다한 모양이지. 소진을 위해 제나라가 저토록 가혹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원수를 갚아 주려 했으니!"
그러나 언제고 진실은 밝혀지는 모양이었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하여 끊임없이 제나라를 피폐케 해 왔다는 정책이 탄로났다. "무어라고? 죽은 자야 그렇더라도 그 자를 보낸 연나라는 용서할 수 없다. 어디 두고 보자!" 제왕이 원망하고 화를 냈다는 소문을 들은 연나라는 몹시 두려워했다. 소진에게는 두 아우가 있었는데 대(代)와 여(여)라고 이름했다. 두 동생들도 형이 어떻게 출세하는지를 옆에서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유세술을 열심히 공부했다. 소진이 죽은 뒤 소대는 형이 하던 일을 물려받으려고 연왕을 찾아갔다. "저는 동주(東周)의 비천한 사람입니다. 대왕께서는 의리가 매우 높다고 들었기에 불민한 재주지만 호미와 괭이를 내던지고 대왕을 섬기려 나섰습니다. 실은 처음에 한단으로 갔습니다만, 동주에서 듣던 것보다 못해 적이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연나라 조정에 이르러서 보니 대왕께옵서는 과연 천하의 명군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연왕은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그대가 말한 명군이란 무슨 뜻이오?" "명군은 자기의 잘못을 듣기에 힘쓰고 자기가 잘한 일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과인이 잘못을 잘 알아듣는다는 뜻이오?" "그러니까 명군이십니다." "어디 그러면 과인의 잘못을 지적해 보오." "대체로 제나라와 조나라는 연의 원수이고 한나라와 위(魏)나라는 연의 우호국입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원수의 뜻을 받들어 우호국을 치고 계십니다. 그것은 연나라에게 아무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잘못된 계략이라는 얘기요?" "그 점을 상주치 않은 신하는 충신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소. 실상 제나라는 과인의 원수요. 치고자 하는 생각이 꿀떡같지만 우리가 많이 피폐해 있어 힘이 부침을 근심할 따름이오. 그대 생각으로 연약한 연이 제를 쳐서 이길 수 있는 비책이라도 있단 말이오?" "천하에 전력(戰力)을 제대로 갖춘 나라가 일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연은 약소국이라 단독으로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실 그렇소." "그 대신 연이 한나라에 붙으면 한나라가 무거워지고 남쪽의 초에 붙으면 초가 무거워집니다. 서쪽의 진에 붙게 되면 진나라가 무거워지며 중원의 한.위에 붙으면 반드시 한.위가 무거워집니다." "연나라가 가서 붙는 나라가 무게 있게 되면 과인도 무겁게 되겠구려." "그렇습니다." "문제는 제나라요. 제를 어떻게 보고 있소?" "제나라가 비록 지금 우두머리 제후국으로 멋대로 날뛰고 있으나 속으로는 피폐해 있습니다. 그들은 남쪽으로 초나라를 치면서 5년 만에 저축했던 물자가 다해 버리고 서쪽의 진과 교전하더니 3년 만에 사졸이 피로해졌는데도, 비록 연의 두 장수를 사로잡아 갔습니다만 3만 군을 격멸하느라 힘이 빠졌습니다. 그런데도 남은 병력을 5천 대의 전차를 가진 송나라를 남으로 치고 열두 제후를 병합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군주의 욕망이 충족되었을 지는 몰라도 그 백성의 힘을 탕진한 것이 되어 도무지 취할 만한 짓거리가 아닐 것입니다. 자주 싸우면 백성이 지치고 오래 싸워도 병사가 지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과인이 들은 바로는 제나라에는 맑은 제수(濟水)와 흐린 황하가 있어 저절로 나라가 방어되며 장성(長城)과 거방(鉅防: 거대한 토벽)이 있어 요새가 된다고 하지 않았소." "천시(天時)가 돕지 않으면 제아무리 제수.황하가 있은들 무슨 방어 구실을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제나라가 제서(濟西: 濟水 서쪽, 山東省荷澤.군城.長壽 일대)에서 징병하지 않은 것은 조나라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고 하북(河北)에서 징병하지 않은 것은 연에 대비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서.하북에서도 병역을 감당케 함으로써 그쪽도 피폐해져 버렸습니다. 교만한 군주는 이(利)를 좋아하고, 망해 가는 나라의 신하는 재물을 탐낸다고 하더니 제나라는 바로 그 꼴이 되어 있습니다." "좋소. 그럼 제나라에는 어떤 계략을 써야 격멸할 수 있겠소." "조카나 아우를 인질로 보내고 보주(寶珠)와 옥백(玉帛)으로 제왕 측근 신하들의 비위를 우선 맞추시지요." "그렇게 하면?" "제나라는 연나라를 좋게 보고 안심하겠지요. 그런 연후에 제는 송나라를 격멸하려 들 것입니다. 제가 송과 싸워 완전히 피례해졌을 때라야 제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인이 그대 덕분에 패왕이 되는 천명을 받았구려." 연에서는 즉시 아들 하나를 제나라로 들려 보냈다. 인질은 소려(蘇려)가 데리고 갔다. 그런데 제왕은 소진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진의 둘째 아우인 소려를 체포하려고 했다. 이 때 볼모로 들어간 질자(質子: 燕王의 王子)가 사과하는 한편 가지고 간 예물을 드림으로써 간신히 용서받을 수가 있었다. 어쨌건 소려는 제의 신하가 될 수 있었다.
한편 연나라의 재상 자지(子之)는 뜻한 바가 있어 소대와 통혼해 인척관계를 맺었다. 연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계략의 일단계였다. 그런 후 소대를 우선 제나라로 보내 질자를 섬기게 했다. "제나라 왕은 그대를 반드시 연나라로 되돌려 보낼 것이오. 그땐 그대는 우리 대왕께 이렇게 복명하시오......." 소대가 제나라로 가자 제왕은 자지의 생각대로 소대를 연으로 되돌려 보냈다. 연왕 쾌(쾌)는 소대에게 제의 사정을 물었다. "제나라 왕은 천하의 패자가 될 만한 인물이었소?" "틀렸습니다." "어째서 그렇소?" "신하를 신용하지 않더군요." 자지가 지시한 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연왕은 안심하고 그 때부터 모든 정사를 자지에게 일임해 버렸다. 조금 후에는 왕위까지 자지에게 물려 준 꼴이 되어서는 연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제나라는 연의 혼란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삽시에 연을 덥쳐서는 쾌와 자지까지 죽여 버렸다. 연에서는 간신히 사태를 수습한 뒤 소왕(昭王)을 임금으로 삼았다. 소대와 소려는 감히 연나라로 돌아갈 수가 없어 제나라에 눌러앉았는데 다행히도 제나라에서는 그들을 잘 대해 주었다. 소대가 위나라를 지나갈 때였다. 위에서는 연나라를 위한답시고 소대를 체포해 버렸다. 제나라에서는 사람을 보내 위왕에게 모른 척 설득하도록 했다. "제나라가 송나라를 쳐서 경양군(涇陽君: 秦 昭王의 아우)을 봉하려 해도 진은 반드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진이 제와 우호하여 송의 땅을 얻는 일이 불리하다고 생각되어서가 아니라 제왕과 소대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와 위가 합류하지나 않을까 의심하는 까닭이지요. 지금 제와 위가 이렇게까지 불화가 심하면 제가 진을 속이지 않으며 진도 제를 믿게 될 것입니다. 제와 진이 화합하고 경양군이 송의 땅을 보유하게 되면 위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왕은 소대를 제로 돌려 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진이 반드시 제를 의심하고 소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와 진이 화합하지 않으면 진이 침략하는 따위의 천하 변고는 없을 것이고, 때를 기다리면 위가 제를 칠 수 있는 형편이 마련될 것입니다." 위왕은 옳게 생각하고 마침내 소대를 풀어 주었다.
소대가 송나라로 가자 송에서는 그를 잘 대우해 주었다. 얼마 후 제나라가 송을 치러 온다는 소문이 들렸다. 송은 다급했다. 이 때 소대가 나서서 연의 소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연나라가 나란히 만승(萬乘: 전차 1만 대)의 반열에 있으면서 제나라에 인질을 보낸 일은 명예를 더럽히고 권위를 손상시킨 일입니다. 게다가 제를 도와 송을 친다면 백성은 지치고 재물은 탕진됩니다. 또 송을 깨뜨리고 초의 회북(淮北: 淮水 이북)의 땅을 침략해 제를 비대하게 하는 것은 연나라에게는 원수가 강대하게 되어 자국에 해가 되는 일로써 이 세 가지 정책은 큰 실패라 생각합니다.
"이것 봐라?"
-그런데 대왕께서 장차 이렇게 하시려는 것은 제나라에 신임을 얻기 위한 술책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그러나 그것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는 더욱 대왕을 믿지 않을 것이며 연을 꺼려함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만일 송에다가 회북의 땅을 보태준다면 강대한 만승의 대국이 됩니다. 그 대신 제나라가 이것을 병합하면 제나라 하나를 더해 주는 결과가 됩니다. 북쪽 오랑캐의 땅이 사방 7백 리인데 여기에다 노.위(衛)까지 보태게 되면 천하에 가장 강력한 대국이 됩니다. 두 개의 제나라를 보태는 결과가 되지요. 지금 저 강대한 제나라 하나만 가지고도 연은 겁먹은 이리처럼 쩔쩔매는데 세 개의 제가 연을 덮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리가 있다."
-그렇더라도 지혜로운 자는 화를 계기로 복을 만들고 실패를 돌려서 성공으로 이끈답니다. 예를 들면 제의 특산물인 자색 비단은 조악한 흰 비단을 염색한 것이지만 가격은 10배나 비쌉니다. 월왕 구천이 회계산으로 몰렸으니 다시 강대한 오나라를 깨뜨리고 천하의 패자가 됐습니다. 이것이 모두 화로 인하여 복을 이루고 실패를 돌려서 성공으로 이끈 일입니다. 만일 대왕께서 그렇게 하고 싶으시다면 자진해서 제나라를 패자로 떠받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긴가?"
-그러시려면 우선 사자를 주실(周室)로 보내어 제를 맹주로 받든다는 것을 맹세하고 그런 후 진나라와의 서약서를 불태우며 이렇게 말하도록 하십시오. 최상의 계략은 진을 깨뜨리는 것이고, 차선의 계략은 장기에 걸쳐 진을 서쪽으로 물리치는 것이라고. 진을 배척해 그 파멸을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주면 진왕은 반드시 근심에 싸일 것입니다. 진나라는 5대에 걸쳐 제후들을 쳤지만 지금은 제나라 밑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은 어떻게 해서든지 제나라를 궁지로 몰아넣을 수만 있다면 진왕은 온 나라의 힘을 기울여서라도 성과를 서두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변사(辯士)를 보내 이런 논법으로 진왕을 설득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연나라와 조나라가 송나라를 깨뜨려 제나라를 살찌게 하고 제나라를 높여 스스로 그 아래에 서고자 함은 연.조가 그런 행동을 이롭게 여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연나라나 조나라가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사세가 그렇게 된 까닭은 진왕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임금께선 어째서 연나라나 조나라가 믿을 만한 사람을 내세워 그 두 나라를 한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으십니까. 왜 대왕의 아우인 경양군이나 고릉군(高陵君)을 먼저 연나라라 조나라로 보내지 않으십니까. 진나라가 변할 경우에는 그들을 볼모로 잡으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연나라나 조나라도 진나라를 믿을 것입니다. 진나라는 서쪽의 제왕이 되고, 연나라는 북쪽의 제왕이 되며 조나라는 중원의 제왕이 되어 세 제왕이 들어서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한나라나 위(魏)나라가 그 호령을 듣지 않으면 진나라가 그들을 정벌하고 제나라가 듣지 않으면 연.조가 제를 정벌합니다. 그렇게 하면 천하가 복종하지요. 천하가 복종하면 한.위를 시켜 제를 치고 '반드시 송의 땅을 돌려 줘라. 초의 회북 땅을 돌려줘라'고 하십시오. 제가 송의 땅을 돌려 주고 초의 회북을 돌려 주는 것은 연.조에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또 3제가 병립하는 것은 연.조가 바라는 바입니다. 실제로 이로운 것을 얻고 존대받는 신분도 원하는 대로 얻는다면 연.조가 제를 버리는 것은 짚신 벗어 던지는 것과 같이 할 것입니다. 지금 진이 연.조를 이쪽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제의 패업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제후가 제를 돕는 데도 대왕이 좇지 않는다면 진이 제후에게 정벌될 것입니다. 제후가 제를 돕고 대왕께서도 제를 좇는다면 진의 명성은 떨어질 것입니다. 지금 연.조를 끌어들이면 국가는 안정되고 명성이 높아질 것이나, 연.조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국가는 위태롭고 명성도 떨어질 것입니다. 무릇 높아지는 것과 안정되는 것을 버리고 위태롭고 낮아지는 것을 택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자가 하지 않는 법이라고 설득하십시오. 진왕이 이런 말을 들으면 반드시 칼날로 가슴을 찔린 것처럼 절감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진은 반드시 이쪽 편이 되고 제는 반드시 정벌될 것입니다. 진을 끌어들이려면 중후한 외교가 필요하고 제를 치는 것은 정당한 이득이 됩니다. 훌륭한 외교를 존중하고 정당한 이익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성왕(聖王)의 사업이지요.
"절묘한 계략이다! 돌아가신 선왕께선 소진의 덕을 입었으나 소대와 소려는 자지의 난 때문에 연나라를 떠났다. 아무래도 연이 제를 보복하려면 소대 아니고서는 방법이 없다. 어서 그를 불러들여라." 그렇게 되어 연에서는 다시 소대를 불러들여 후대하였다. 소대는 제를 칠 계책을 세웠다. 그리하여 얼마 후 제나를 쳐부수었다. 제의 민왕은 쫓겨 국외로 달아났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진왕이 연왕을 초대했다. 연왕이 떠나려고 하자 소대가 황급히 나섰다. "초나라는 지(枳: 四川省 배陵縣 서쪽) 땅을 얻어 나라가 망하고 제나라는 송을 얻어 나라가 망했습니다. 초.제가 지.송을 보유함으로써 진을 섬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진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공을 세운 자가 바로 가장 경계해야 할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이 천하를 취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을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소?" "진나라가 무력을 행사할 때에는 반드시 공공연하게 천하에다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초나라에 대한 경고를 기억하십니까. '촉(蜀)의 군대가 배를 타고 민강(汶江: 揚子江 지류)에 떠서 여름에 물이 불었을 때를 타면 단 닷새 만에 영(영)에 도착한다. 한중(漢中: 秦에 속함)의 병사를 태우고 파수(巴水: 揚子江 지류)를 떠나 여름 물이 불었을 때를 타서 한수(漢水)를 내려가면 나흘만에 오저(五渚: 楚의 땅)에 도달할 것이다. 원(宛)에서 군대를 싣고 동쪽의 수(隨: 湖北省 隨縣)에 집결하면 그땐 나라 어떤 슬기로운 자도 대책을 세울 겨를이 없고 어떤 용맹한 자도 성내며 맞설 틈이 없을 것이다. 과인은 새매처럼 날쌔고 확실하게 귀국을 덮칠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 초왕은 천하 제후가 함곡관을 치는 것을 기다려 함께 진을 치려고 하니 실로 아득하고 한가로운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비웃었습니다. 초왕은 그 말이 두려워 17년 간이나 진을 섬겼습니다." "기억하고 있소." "한나라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내 군사가 소곡(少曲:河南省 河陽縣 북서)에서 행동을 일으키면 하루에 태행산(太行山: 韓上黨의 통로)의 통로를 차단할 것이다. 내 군사가 의양(宜陽)을 출발해 평양(平陽:韓의 墳墓地) 산서성에 가볍게 부딛치면 한의 전토는 단 이틀에 쑥밭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내 군사가 양주(兩周: 東.西周)를 거쳐 정나라에 닿으면 닷새 만에 한은 멸망할 것이다'라고 협박했으며 한나라는 그 위협을 인정하고 진나라를 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정하오." "위(魏) 나라에 대해서는 또 어떤 경고를 했습니까. '내 군사가 안읍(安邑)을 함락시키고 여극(女戟: 太行山 서쪽)을 차단하면 한의 태원(太原)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내 군사가 지도(지道).남양(南陽).봉릉(封陵: 둘 다 河南省).기읍(冀邑: 山西省)으로 내려와 동주와 서주를 포위하고 여름 물이 불었을 때 가벼운 배를 띄워 강한 쇠뇌를 앞세워 예리한 창을 뒤에 세우면서 형택(滎澤: 河南省 滎澤縣)의 물목을 터놓고 그 어귀의 제방을 깨뜨리면 대량(大梁)은 물바다가 될 것이다. 또 백마(白馬: 河南省)의 물목을 터놓으면 위나라 외황(外黃:河南省).제양(濟陽: 山東省)은 흔적도 없어질 것이고, 숙서(宿胥:河南省)의 물목을 터놓으면 위의 허(虛: 河南省).돈구(頓丘: 河北省)는 물에 잠길 것이다. 내가 육지로 공격한다면 하내(河內)를 칠 것이고 수상으로 공격한다면 대량부터 격멸할 것이다'고 위협함으로써 위나라 역시 그렇다고 인정하고 진을 섬겼습니다." "......." "또 진의 안읍을 치려고 했을 때 제나라가 이것을 구원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송을 제나라에 맡기면서 이런 거짓말을 했습니다. '송왕이 무도하여 과인의 모습을 나무로 만들어 놓고 그 얼굴에다 화살을 쏜다고 하오. 과인의 나라가 송나라에서는 멀어 징벌하러 갈 수가 없으니 대왕께서 송나라를 깨뜨려 소유하신다면 과인이 직접 얻은 것과 같이 하겠소이다'라고 했지요. 그래놓고서도 안읍을 취하고 여극을 차단한 뒤 제가 송을 깨뜨린 죄를 제에게 문책했습니다. 게다가 진은 한나라를 치고 싶은데 천하 제후들이 구원해 주러 올까봐 이런 술수를 제후국들에 썼습니다. '제왕은 네 차례나 과인과 약속하고 네 차례나 과인을 속였소. 그리고 천하 제후들을 이꼴고 과인을 치려 한 바도 세 번이나 되오. 제나라가 있으면 진이 망하고 진나라가 있으려면 제가 망해야 하오. 제후국들이 제를 징벌해 주시오.' 그러나 진이 의양과 소곡을 차지하고 인(인).석(石: 모두 趙나라 땅)을 탈취한 뒤 이번에는 천하 제후들에게 제를 친 죄를 문책했습니다. 다시 위(魏)를 치고자 할 때도 초가 염려되어 남양(南陽: 舊韓地)를 초에 맡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인은 본시 한나라와 절교하려 했소이다. 만약 초가 균릉(均陵: 湖北省 均縣)을 깨고 맹애(맹애: 河南省)의 요새를 막아 한을 치는 게 적어도 초에 유리하다면 과인은 자신이 이것을 영유한 것이나 다름없게 생각하겠으니 한을 깨뜨려 주오'라고. 그러나 위가 동맹국인 초(楚)를 버리고 진과 화합하자 이번에는 맹애의 오새를 막는 것을 구실삼아 초를 문책했습니다." "......." "또 진나라가 위나라를 치다가 임중(林中: 魏의 땅. 河南省)에서 고전에 빠졌을 때 연.조가 위에 붙을 것을 염려하여 교동(膠東: 山東省 膠河이동)을 연에게 맡기고 제서(濟西)를 조에 맡겼는데, 위나라와 강화를 맺은 뒤에는 위나라 공자 연(延)을 인질로 잡고 서수(犀首: 舊魏將 公孫행)를 진의 행군에 합류시켜 그로 하여금 조를 치게 했습니다. 진군이 조와 싸워 초석(초石: 趙나라 땅)에서 패하고 양마(陽馬: 趙나라 땅)에서 패했을 때 위가 조를 도울까 염려해 섭(葉: 河南省 葉縣).채(蔡: 河南省 上蔡縣)를 위에 맡겼습니다. 그러나 조나라와 강화를 맺은 뒤에는 다시 위나라를 위협하여 약속해 준 섭과 채를 떼어주지 않았습니다. 패배하여 곤경에 빠졌을 때에는태후(太后: 秦 昭王의 母)의 아우 양후(穰候: 魏염)를 시켜 화친케 하고 이기고 난 뒤에는 외삼촌 양후와 태후의 모친 모두를 속였습니다. 연을 책할 때는 교동을 탈취한 것을 구실삼고 조를 책할 때는 제서를 탈취한 것을 구실 삼고 위를 책할 때는 섭.채를 탈취한 것을 구실삼고 초를 책할 때는 맹애의 요새를 막은 것을 구실삼고 제를 책할 때는 송을 깨뜨린 것을 구실삼았습니다." "듣고 보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나라구려." "진왕이 남을 책망하는 말은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아서 끝이 없게 했으며 군대를 움직일 때에는 짐승의 피를 빠는 등에처럼 악랄하여 모친도 외삼촌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정작 그러하오." "우나라 장군 용가(龍賈)와의 전투, 한과의 안문(岸門: 山西省 河津縣 남쪽) 전투, 위와의 봉릉 전투, 고상(高商)에서의 전투, 조나라 장군 조장(趙莊)과의 전투 증 진군이 죽인 3진(三晋: 韓.魏.趙)의 백성은 수백 만이 되고 지금 살아 있는 자라야 모두 진군과의 싸움에서 전사한 자들의 고아들입니다. 서하(西河) 밖의 상락(上락: 魏의 땅, 陝西省)의 땅, 삼천(三川: 韓의 땅, 河南省)의 땅 등 삼진의 땅으로 진에게 침략당한 땅이 그 절반이나 됩니다. 진나라의 화는 이토록이나 컸습니다. 그런데도 연나라나 조나라에서 진으로 드나드는 유세객 대부분이 다투어 진을 섬기자며 자기 군주를 꾀고 있으니 신이 두려워하는 바는 바로 그것입니다. 좌우지간 폐하께선 그런 진나라의 어디를 믿고 진으로 들어가시겠다 하십니까." "어떤 음모가 있음직하오. 초청에 응하지 않겠소." 그래서 연왕이 진으로 가는 일을 그만두었다. 소대는 연에서 다시 중용되었다. 연은 소진 때처럼 제후들에게 합종의 맹약을 맺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합종하는 자도 있었고 하지 않는 자도 있었다. 다만 천하는 이 일로 인해 소대의 합종책을 중히 여긴 것만은 사실이었더. 소대와 소려는 천수를 누렸으며 그 이름은 제후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소진의 형제 셋 모두는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그 이름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들의 변론술은 권모술수와 임기능변에 능한 것이었는데 소진은 반간(反間: 諜者)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게 되자 천하가 그를 조소하여 그의 술법을 배우기조차 꺼려 했다. 그런데다 세상에서 소진의 행적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설(異說)이 많아 다른 시대에서 발생한 일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으면 모조리 소진에게 끌어다 붙이곤 했다. 민간에서 몸을 일으켜 6국을 연결시키는 합종의 맹약을 맺게 한 그의 활약을 보면 소진은 지모가 대단히 뛰어난 인물로 추측된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그가 행한 사적을 늘어놓고 앞뒤 차례대로 서술함으로써 그가 유독 악평만 뒤집어쓰지 않도록 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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