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6. 오자서열전 伍子胥列傳
초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이 참소를 당했는데 그 화가 오사(伍奢)에게까지 미치고 아들 오상(伍尙)은 아버지를 구하려다가 잡힌 바 되었다. 아우 오원(伍員: 子胥)은 오(吳)로 망명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그래서 제6에 <오자서열전>을 저술한다. <太史公自序>
오원(伍員: 字는 子胥)은 초나라 사람이다. 부친은 오사, 형의 이름은 오상이다. 조상인 오거(伍擧)는 초의 장왕(莊王: B.C.613-591 在位) 때 직간(直諫)으로 잘 섬겨 이름 있는 가문이 되었다. 평왕(平王: B.C.528-516 在位)에게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은 건(建)이다. 평왕은 오사를 태부(太溥)로 삼고 비무기(費無忌)를 소부(少傅:輔佐官)로 삼았다. 무기는 태자 건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평왕은 무기를 시켜 진(秦)으로부터 태자비를 맞아 오게 했을 때였다. 진의 공주를 만나 본 무기의 생각은 갑자기 달라졌다. 공주가 초에 도착하기도 전에 무기는 말을 달려 평왕에게로 갔다. "대왕, 진의 공주는 절세의 미인이십니다!" "오, 그래? 내 며느리 될 여자가......"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왕께서 진의 공주를 왕비로 스스로 맞이하시고......." "무슨 그런 해괴망칙한 소리를 하는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깝습니다. 태자께야 다른 여자를 찾아 따로 비를 구하시면 되실 터이고......." "서둘 건 없다. 좌우지간 우선 만나 보기부터 하자." 진의 공주가 도착했다. 평왕이 만나 보니 무기의 말대로 과연 천하의 절색이었다. "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던고!" 평왕은 태자를 위해서는 다른 여인을 구해 주고 자신이 진의 공주를 차지해 버렸다. 무기는 평왕의 신임을 받아 태자를 떠나 평왕을 섬기게 되었다. 평왕은 진의 공주를 총애하여 아들 진(軫)을 낳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기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가만 있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왕이 죽고 나면 태자 건이 왕위에 오를 게 아닌가. 아내될 여자를 내가 아첨 떨어 어머니가 되게 했으니 필시 태자는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야. 내가 나중에 주살당하기 전에 미리 손을 써야지." 태자 건의 생모는 채(蔡)나라 공주였는데 평왕은 그녀를 총애하지 않았다. 때문에 덩달아 그 소생인 태자 건까지도 미워해서 변방인 성보(城父: 安黴省 豪縣 남동) 땅의 태수로 임명해 국경을 지키게 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무기는 왕에게 태자를 참소하기 시작했다. "대왕, 심히 염려되옵니다. 태자께옵서 전날 진나라 공주의 일 때문에 대왕을 몹시 원망하고 계시다 하옵니다. 아무쪼록 경계하십시오." 얼마가 지난 뒤 무기는 다시 왕께 태자를 참소했다. "심상치 않은 소문이 들리고 있습니다. 태자께옵서는 지금 성보 땅에 계시지 않습니까." "도대체 그게 어쨌다는 거냐?" 평왕은 역정을 냈다. "바깥의 제후들과 은밀한 교제를 취하고 계시다 하옵니다." "무어?" "대왕께선 모쪼록 태자께서 막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태자가 반역이라도 한다는 말이냐?" "두고 보십시오. 차제에 대자를 궁으로 부르시면 반역의 음모가 탄로난 줄 알고 틀림없이 태자는 도망칠 것입니다. 만일 지금 대왕께서 은밀히 태자를 제거하지 않으시면 크게 후회하실 일이 생길 것입니다." "네 말을 믿어 태자를 궁으로 불러 보자. 그리고 태자의 태부인 오사도 불러라. 그의 말도 들어 보자." "오사 역시 태자와 한떼거리이니 그 자도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편 무기는 은밀히 사람을 놓아 성보의 사마(司馬)인 분양(奮揚)에게 귀뜸하도록 했다. "대왕의 노여움을 사서 지금 자객이 태자를 죽이러 가니 사마께 귀띔해 어서 태자를 도망치게 해 드리도록 해라." 오사가 평왕 앞으로 불려왔다. "태부는 태자가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오사는 비무기가 평왕에게 태자를 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당당하게 말했다. "대왕, 대왕께서는 어찌 사람을 모함하는 소인배의 말만 들으시고 골육인 친자식을 의심하려 하십니까?" "결코 태자에게 모반의 뜻이 없다는 말이냐?" "제 목숨을 걸고 사실을 아뢸 따름입니다." 태자를 부르러 갔던 사자가 돌아왔다. "태자께옵서는 무슨 사유인지는 모르오나 멀리 몸을 피하신 듯합니다." "무어라고!" 비무기가 옆에서 재빨리 거들었다. "보십시오. 모반이 들통나 피하신 게 분명합니다." 평왕이 다시 사자에게 물었다. "그래, 태자는 어디로 도망쳤다더냐?" "소문에는 송(宋: 周 初期에 殷의 유민을 모아 河南省 商邱縣 일대에 세운 나라. B.C.286년에 齊에 망함)으로 가셨다 합니다." 평왕은 불같이 노했다. "태부도 한통속이다. 옥에 가두어라!" 비무기는 다시 평왕을 들쑤셨다. "대왕, 오사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둘 다 인물입니다. 그 아비를 죽이시려면 두 아들도 함께 제거하십시오. 오사가 태자의 모반에 연루되었다면 틀림없이 그 아들들도 반역에 연루되었을 것입니다." "태사도 달아났거늘 오사의 아들들이 과연 올까?" "오사를 인질로 잡고 아들들을 불러들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들이니까요." 그래서 평왕은 오사를 다시 불러들여 말했다. "너의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너를 살려 주겠다. 그러나 오지 않으면 너는 주살될 것이다." 오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불러 보십시오. 큰 아들 상(尙)은 성정이 어질어서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놈 원(員)은 참을성이 많고 고집이 세어 오지 않을지도모릅니다." 왕은 더 듣지 않고 사자를 보내 아비의 처지를 두 아들에게 말했다.
한편. "가야지." 오상은 간단하게 말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오원이 대꾸했다. "나는 가야겠네." "형님, 초왕이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우리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놈이 있으면 후환이 생길 걸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아버님을 볼모하여 거짓으로 우릴 부르는 겁니다." "알고 있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스스로 죽으러 갑니까. 어차피 세 부자를 죽일 작정으로 있는데 우리가 가서 모두가 죽음을 당하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유익 때문에 가고 안 가고가 아닐세. 아버님이 나를 불러 살기를 원하시는데 내가 가지 않음으로써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 걱정되어 가고자 할 따름이네." "아니 됩니다, 형님. 천하의 조소거리가 되는 두려움보다 원수 갚지 못하는 두려움이 더욱 큰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달아나거라. 내가 간다 해서 아버님의 목숨을 구할 수가 없다는 건 잘 안다. 그렇지만 그런 나를 이해해라. 너는 살아 남아서 큰일을 해 낼 것이다. 참을성이 많은 너는 반드시 복수를 이룰 것이다. 아버님의 치욕을 씻어 드릴 것이다." 오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자를 따라 초왕에게로 갔다. 그러나 오자서는 그 길로 도망쳐, 태자 건이 송나라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쪽으로 갔다. 오사는 옥중에서 작은아들 오자서가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초나라에서는 군신(君臣)간에 일대 병란(兵亂)이 일어나겠구나!"
오상이 초나라에 도착하자 즉시 오사는 큰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오자서가 송나라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화씨(華氏)의 반란(B.C.552년華氏.尙氏 등이 宋의 元公을 죽이려고 일으켰던 叛亂) 사건이 있었다. "우리가 있을 곳이 못 됩니다." 그래서 태자 건과 함께 정(鄭)나라로 갔다. 정에서는 그들을 후대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복수를 해야 합니다. 군사를 좀 빌려주십시오." "그렇지만 우리는 초나라와 원수될 형편이 못 됩니다." 그래서 오자서는 태자와 의논했다. "유람 가는 척 진(晋: 鄭.晋은 주나라 이래의 옛 國家. 鄭은 河南省新鄭縣 일대의 小國. 晋은 山西省에 있었는데 覇者인 文公 이래 華北의 强國이 되었고, 뒤에 韓.魏.趙의 세 나라로 분열되어 이것을 三晋이라 함)나라로 가서 그쪽 눈치를 보심이 어떨까요?" "이런 상황에선 그 방법밖에 없겠소." 그래서 오자서는 태자와 함께 진나라로 건너갔다.
진나라의 왕은 경공(頃公: B.C.525-512 在位)이었다. 태자와 오자서는 사정을 말하고 군사를 빌릴 것을 요청했다. 진에서도 섣불리 군사를 빌려줄 리가 없었다. 수십 차례의 조정 회의를 거친 뒤 태자와 오자서에게 통고하듯이 말했다. "좋소. 군사를 원하는 대로 빌려 드리리다. 그렇지만 우리도 위험부담을 안고 군사를 대여해 주는 상황이니 그만한 담보가 있어야 되겠는데요." "담보라는 게 저희들한테 있을 턱이 있습니까?"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태자께선 이미 정나라와 친한 사이가 아니겠소." "그렇지요." "그런데 어찌하여 정나라에서는 군사를 얻지 못했지요?" "......군사를 빌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러니까 우리 처지에서는 담보를 잡아야 되겠다는 거요." "대체 우리한테 무슨 담보물이 있지요?" "돌아가서 내응해 주시오." "예에?" "정나라에서는 태자를 믿고 있소." "그럴 테지요." "우리가 먼저 정나라로 쳐들어가겠소. 혼란을 틈타 쉽사리 정나라를 뒤집어 엎을 수 있을 듯하오." 태자가 머뭇거리고 있자 오자서가 얼른 나섰다. "좋습니다. 어떤 식으로 내응을 하지요?" "우리 군사를 그쪽으로 보내지요. 태자께서는 진나라 조정에 귀띔해 두시오. 빌린 군사가 당도했노라고......." 오자서가 태자에게 속삭였다. "약속하십시오." 경공은 다시 태자 건에게 다짐했다. "그게 담보요. 우리가 정나라를 멸망시키면 그대를 그 곳의 왕으로 봉하겠소." 달리 가타부타할 처지가 도무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러마고 약속했다. 태자와 오자서는 정나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사건이 생겼다. "가만 있자. 시종이란 놈이 이 비밀을 알고 있겠다. 기밀이 누설되는 순간 만사휴의다. 저놈의 입을 틀어막아야 되겠는데......." 태자 건은 단독으로 그렇게 판단하고 한밤을 틈타 정나라와의 맹약을 알고 있는 부하를 죽이기 위해 칼을 품고 자고 있는 방으로 스며들었다. 때마침 부하는 정나라 여자 하나를 유혹해 사랑을 나누고 있다가 주인이불의에 덮치러 왔음을 알았다. "무어? 죄없는 나를 죽여? 그렇다면 나에게도 생각이 있지!" 부하는 그 길로 뒷문으로 도망쳐서 정나라 정공(定公: B.C. 529-514在位)의 재상인 자산(子産)에게 그런 음모를 낱낱이 고해 바치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정나라에서는 펄쩍 뛰었다. 태자 일행을 용서할 리가 없었다.,건에게는 승(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다급합니다. 음모가 들통나 아버님인 태자께서는 정나라 관리들한테 붙들리셨다 합니다. 우리도 일단 몸을 피하지요!" 그래서 오자서는 승과 함께 달아났다. 정나라 관병들의 추격은 끈질겼다. 소관(昭關: 安徽省 含山縣 북쪽)에 이르렀을 때는 더 이상 함께 도망칠 처지가 못 되었다. "일단 여기서는 각각 도망칩시다. 오(吳)나라 쪽으로 향해 가십시오."
오자서는 혼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초상(肖像)이 그려진 얼굴이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며칠을 굶은 채 오자서는 낮밤을 잠을 제대로 못 자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이제는 기진맥진이다. 더구나 앞에는 장강(長江:揚子江)이 흐르고 뒤에는 추격병의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아, 내 운명도 여기서 끝나는구나!" 절망한 오자서는 장검을 빼어 마악 자결하려고 했다. "여보시오, 강을 건너겠소?" 갈대숲 쪽을 바라보니 늙은 어부 하나가 거룻배 위에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자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아, 이는 하늘의 도우심이다!" 오자서는 무사히 강을 건넌 뒤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주며 어부한테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 "살려 주신 은혜 백골난망입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으니 받아 주십시오. 백금의 값은 나갈 겁니다." 그러자 어부는 픽 웃기만 했다. "왜 그러십니까. 성의가 부족해서 그러십니까?" "여보시오, 나는 그대가 오자서인 것을 잘 아오." "녜에?" "그냥 가시오. 그 칼은 당신이 더욱 위급할 때에 목숨을 지켜줄 것이오." "그렇지만......." "초나라에서는 말이오. 오자서를 잡든가 목을 가져오면 조 오만 섬과 집규(執珪) 벼슬을 준다고 했소. 나에게 욕심이 있다면 백금 짜리밖에 안 되는 칼이 문제겠소." 오자서는 어부에게 백배사례한 뒤 길을 떠났다. 오나라는 먼 곳이었다. "그래도 살아 남아야 한다!" 오자서는 허기진 데다가 찬비를 맞아 병이 나서 길에 며칠씩 쓰러져 있기도 했다. 간신히 기력을 찾으면 걷고 또 걸어서 밥을 빌어 먹었다. 오자서는 천신만고 끝에 오나라에 도착했다. 오에서는 요(僚: B.C. 526-515在位)가 왕이었고, 공자 광(光)이 장군이었다. 오자서는 광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식객으로 있게 되었다. 초나라 국경에 종리(鐘離: 安徽省 鳳陽縣 동쪽)라는 마을과 오나라 국경에 비량지(卑梁氏)라는 마을이 있었다. 두 마을 모두 모두 양잠을 했는데 국경을 사이한 두 읍의 여자들이 뽕잎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다가 그만 국경 분쟁으로까지 싸움이 커지고 말았다. 오에서는 광이 초를 치러 나갔다. 광은 초의 종리와 거소(居巢: 安徽省巢縣 북동쪽)까지 함락시키고 돌아왔다. "광의 힘을 빌리면 초를 멸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한 오자서는 즉시 오의 요왕을 알현하고 간곡히 요청했다. "광 장군의 군세라면 능히 초나라를 토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광이 출정을 반대했다. "대왕, 그것은 불가합니다. 오자서의 생각은 전혀 다른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소?" "아시지 않습니까. 오자서의 부친과 형은 초나라에서 피살됐습니다. 절치부심하겠지요." "그러니까 초를 치라고 하는 건 자신의 원수갚음 때문이오?" "그렇습니다. 더구나 지금 초를 친대도 크게 승산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계획은 덮어 두오." 오자서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광의 생각은 다른 데에 있다. 대외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오왕 요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야심만 품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때를 기다리자는 게 낫지. 아니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광의 야심이 어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부추기자. 그렇게 하기 위해선......." 오자서의 수하 중에 전제(專諸)라는 천하의 칼잡이가 있었다. 그래서 전제를 광에게 추천했다. "장군, 전제를 수하에 두십시오." "그에게 무슨 특별한 재능이라도 있소?" "천하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특출한 검술가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객(刺客) 일을 시키면 식은 죽 먹기보다 훨씬 쉽게 해치울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전제를 나한테 추천하는 거요?" "혹시 장군께서 필요로 하실 듯해서......."
그 동안 태자의 아들 승도 무사히 오로 도망와 있었다. 오자서는 모른 척 승과 함께 초야에 묻혀 농사만 지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楚)의 형편도 변하고 있었다. 5년 후에 평왕이 죽은 것이다(B.C. 516). 평왕이 일찍이 태자 건의 부인이 될 뻔했던 진의 공주를 가로채어 왕비로 삼았고 그녀에게서 아들 진을 얻었었다. 왕이 죽고 진이 즉위하니 이가 곧 소왕(昭王: B.C. 515-489 在位)이다. 오왕 요는 초의 국상을 틈탔다. 초가 혼란한 틈을 타서 두 왕자를 출병케 해 초를 덮치도록 했다. "전제, 기회는 이 때다! 군사들이 모두 출동해 국내는 텅 비었다. 왕을 시해하라!" "실수 없이 해치우겠습니다." 광의 밀명을 받은 전제는 오왕 요를 암살했다. 공자(公子) 광이 즉시 즉위했으니 그가 곧 오왕 합려(闔廬: B.C. 514-496在位)다. 한편 초나라로 공격해 들어갔던 오의 두 왕자도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초의 군세도 만만치 않아 퇴로까지 차단당해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부왕의 시해 소식도 들려왔으므로 두 왕자는 병사를 이끌고 초에 항복하고 말았다. 초에서는 오의 두 왕자를 서(舒: 安徽省 舒城현) 땅에 봉했다. 합려가 왕위에 올라 뜻을 이루자 오자서를 불러 행인(행인: 외무대신)으로 삼았다. 새 왕이 등극한 초나라에서는 정쟁이 심했다. 대신인 극완(극宛)과 백주리(伯州리)가 주살되었다. 그 바람에 백주리의 손자 백비(伯비)가 오로 도망오자 오에서는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합려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병사를 일으켰다. 오자서와 백비를 함께 보내 초를 쳤으며 일찍이 오를 배반한 두 왕자까지 사로잡았다. "기세등등할 때 초의 도읍인 영까지 쓸어 버려라!" 오왕이 명령했으나 장군 손무가 간곡히 말렸다. "진퇴에는 모두 때가 있는 법입니다. 백성도 병사도 모두 지쳐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할 수 없이 회군하여 오로 돌아왔다. 이듬해에는 초의 여섯 군데의 땅과 첨현(첨縣: 舒의 南東과 곽山縣 북동)을 쳐서 얻는 데 만족했다. 5년에는 월(越: 中國人이 아닌 異民族이 세운 浙江省 일대의 나라. 월왕 句踐이 臥薪嘗膽하여 기어코 B.C. 473에 吳를 멸함)을 쳐서 깨뜨려 버렸다. 6년에는 초의 소왕이 왕자 낭와(囊瓦)를 시켜 오를 치게 했다. 이에 오자서가 마주 나가 예장(豫章: 江西省)에서 대파하고 여세를 몰아 거소까지 합병했다. 9년이 되어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를 불러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떻겠소? 전에는 초의 영을 쳐선 안 된다고 했는데." 손무가 대답했다. "백성은 원기 왕성하고 병사는 사기 충천합니다." 오자서가 나섰다. "초의 장군 낭와는 탐욕스러워 속국인 당(唐).채(蔡) 백성들이 모두 그를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초를 치기 전에 당과 채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인 후에 공격하면 훨씬 쉬울 듯합니다." "어떻게 말이오?" "사자를 비밀리에 보내어 연합군으로 치고 들어가지요." 오자서의 계략대로 당.채와 연합하여 한수(漢水)를 사이에 두고 초와 대치했다. 오왕의 아우 부개(夫槪)가 종군하기를 원했으나 왕이 듣지 않자 사병 5천을 이끌고 초의 장군 자상(子常)을 쳤다. 부개의 참전은 오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상이 정나라로 패퇴하자, 오는 승세를 타고 밀물처럼 초의 도읍 영으로 밀고 들어갔다. 오군은 초와 다섯 번의 접전 후 드디어 영을 점령했다. 기묘일(己卯日)에 초의 소왕이 도주하고 다음날인 경진일(庚辰日)에 오왕이 영에 입성했다. 소왕은 운몽(雲夢: 湖北省 天門縣 서쪽)으로 도망쳤다가 도둑떼들에 쫓겨 다시 운(운: 湖北省 安陸縣)으로 달아났다. 운의 운공(운公) 아우인 회(懷)가 형한테 불평했다.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소. 내가 그 아들놈을 죽이는 건 당연하지 않겠소!" "그렇지만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 "듣기 싫소!" 운공은 할 수 없이 소왕을 데리고 수(隋)로 피신했다. 오나라 군대가 수를 에워쌌다. "수나라 백성들은 잘 듣거라. 옛적 주(周)왕실의 자손으로 한천(漢川:漢水)유역에 살던 사람치고 초나라 손에 죽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도 초의 소왕을 보호하겠느냐!" 수나라 사람은 겁이 나서 소왕을 내주려 하자 왕자 기(기)가 나섰다. "대신 내가 죽겠소." 이에 수공(隋公)이 제안했다. "어떤 것이 유익한가 우선 점부터 쳐 보자." 그래서 점을 쳤더니 소왕을 넘겨 주는 일이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수는 오나라의 청을 거절했다. 일찍이 신포서(申包胥)는 오자서의 친구였다. 오자서가 달아나면서 그에게 외쳤다. "두고 봐라. 내 반드시 돌아와 초를 멸하리라!" 그 때 신포서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나는 기어코 초나라를 지켜 내겠다." 오군이 입성하여 소왕을 잡으려고 이잡듯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오자서가 소리질렀다. "평왕의 무덤부터 파헤쳐라! 그리고 그 시체를 내 앞으로 가져오라!" 오자서는 평왕의 시체에다 3백 번이나 태질을 하면서 분을 풀었다. 신포서가 오자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네의 복수라는 게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듣기로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한때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일단 하늘이 결정을 내리면 또한 사람을 깨뜨린다'고 했다네. 자네는 어차피 평왕의 신하로서 몸소 북면(北面: 臣下는 北面, 王은 南面)하여 왕을 섬겼네. 그런데 이제 와서 굳이 시체를 욕보이고 있으니 어찌 이보다 더 천도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리오. 오자서는 편지를 가져온 신포서의 사자한테 물었다. "내 친구는 어디에 있는가?" "두려워 산 속에 숨었습니다." "가서 전하게.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다급해서 천도를 따를 겨를이 없다'고!"
신포서는 진(秦)나라로 도망쳤다. 위급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으나 진에서는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신포서는 궁정 뜰에 꿇어 앉아 일곱 낮 일곱 밤을 통곡했다. 진의 애공(哀公)은 그를 불쌍히 여겼다. "비록 초나라가 무도하지만 이토록 훌륭한 신하가 있으니 지켜 주어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전차 5백 승(乘)을 보내 초나라를 도와 오나라를 쳤고, 직(稷)에서 크게 이겼다. 즈음에 오왕 합려는 소왕을 찾느라고 초나라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이 때 그의 아우 부개가 먼저 도망쳐 귀국해 들어와 왕위에 올라 버렸다. "그놈! 자상을 칠 적에도 내 명령을 듣지 않더니!" 합려는 군사를 몰아 서둘러 귀국했다. 부개의 군사는 합려를 버텨내지 못했다. 드디어 패주하여 초로 달아나 버렸다. 초의 소왕도 오에 내란이 일어난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둘러 영으로 들어가 군대를 수습하고 부개를 당계(堂谿: 河南省 遂平縣) 땅에 봉하여 당계씨(堂谿氏)라 했다. 그로부터 2년 후 합려는 태자 부차(夫差)를 시켜 초의 반(반: 江西省 반陽縣 동쪽)으로 반격하게 했다. 초에서는 오의 진격이 두려워서 도읍을 영에서 약(약: 湖北省 宣城縣 남동)으로 옮겨가 버렸다.
그 무렵 오자서와 손무는 한편으로 서쪽의 강국 초(楚)를 경계하면서 북의 제(齊).진(晋)을 위협하고 남쪽의 월인(越人)을 복속케 했다. 다시 4년 후에는 공자(孔子)가 노(魯)나라의 재상이 된다. 다시 5년 후에 오나라가 월나라로 쳐들어갔다. 월왕 구천(句踐)이 오를 맞아 고소(姑蘇:江西省 蘇州市)에서 쳐부수고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까지 입혔다. 작은 상처는 점점 커져서 합려는 죽게 되어 태자인 부차를 불러들였다. "너는 네 아비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를 잘 알겠지!"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자는 구천입니다." 그 날 저녁에 합려는 죽었다. 부차가 왕이 되자 백비를 태재(太宰:宰相)로 삼았다. 오는 2년 후 월을 부초(夫초: 蘇州 남서쪽)에서 깨쳤다. 월왕 구천은 남은 군사 6천 명을 이끌고 회계산(會稽山: 浙江省 紹興縣남동쪽)에 틀어박혔다. 구천은 대부 종(종)과 의논했다. "우리 힘으로는 오나라에 맞부딪칠 수는 없소. 훗날을 기약하며 항복하는 척 하고 싶은데 어떻소?"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대신, 오의 재상 백비가 탐욕스럽습니다. 두텁게 뇌물을 보낸 뒤 강화를 청해 보심이 어떨까요." "종 대부가 가시오. 월나라를 오에 바치고 나는 그의 신하가 되며 왕비를 그의 비첩(婢妾)으로 바치겠노라 말하시오." "너무나 비장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이 우리를 믿지 않소." 월왕이 그렇게 굽히고 들어오자 오왕 부차는 몹시 기뻐했다. 이 때 오자서가 나서서 간했다. "일시 곤고하여 굽히는 척하는 것 같습니다. 절대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오나라도 처지가 힘겹소. 월이 항복해 왔는데 받아주는 척하면 피차에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건 월왕의 사람됨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월왕의 성품이 어떻길래 그렇소?" "온갖 어려움도 참고 견디는 성품입니다." "신고를 이겨 내는 성품이야 그대에게도 있지 않소." "월을 지금 멸망시키지 않으면 후일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길 겁니다." 백비가 왕을 충분히 속삭거렸기 때문에 오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왕은 백비를 보내어 월과 강화했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제나라의 경공(景公)이 죽자 대신들의 세력다툼이 치열해졌다. 더구나 새 왕은 나이도 어린 데다 너무 유약했으므로 나라가 몹시 어지러웠다. "좋은 기회다! 즉시 군사를 북쪽으로 돌린다." 이 때도 오자서가 나서서 오왕의 제나라 침공을 말렸다. "제를 치기 전에 월을 경계하십시오." "아직도 월나라 타령이오?" "구천은 왕의 신분으로서 식탁에 한 가지 반찬으로 만족하며, 죽은 사람을 반드시 문상하고 병든 사람을 빠짐없이 위문합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전날에 하지 않던 짓을 하겠습니까." "그야 인정이 많은 인군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겠소." "장차 기회가 오면 그런 사람들을 요긴하게 쓰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구천의 속뜻을 다시 한번 가늠해 보십시오. 그가 죽지 않는 한 오는 반드시 그로부터 화를 입을 것입니다. 지금 오에 월이 있다는 것은 마치 사람의 뱃속에 고칠 병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만두시오." 오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다. 즉시 제군을 애릉(艾陵: 山東省 泰安縣 남동쪽)에서 대파하고 다시 추(鄒: 山東省 鄒縣一帶의 나라).노(魯)의 왕을 위협한 뒤 개선했다. 그 이후로는 오왕이 더욱 오자서의 계략을 소홀하게 여겼다. 4년이 다시 지나 오왕은 또다시 제나라를 치고 싶어했다. "이번에는 저희가 나서겠습니다." 뜻밖에도 구천이 제나라 공략을 자청했다. 오자서가 다시 나섰다. "제를 깨친다 해서 그걸 어디에 씁니까. 그나마의 땅이란 것도 황무지이며 자갈밭에 지나지 못합니다. 더구나 구천이 제 군사를 몰아나간다 하니 그 속마음이 몹시 의심스럽습니다.필시 힘을 기르는 군사 훈련이든가 오를 일시적으로 안심케 하는 거짓 행동일 것이 분명합니다. <서경(書經)>의 반경(盤庚: 殷을 부흥시킨 王)의 고(誥: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이르는 말)에, '시비를 일으키고도 겸손하지 못하면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라. 악의 씨를 결코 다른 고을로 번식치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상(商: 즉 殷)은 그것을 지켰기 때문에 흥했습니다. 원컨대 다시 한번 간청하오니 제를 버려 두시고 월을 먼저 처리하십시오." 그러나 오왕은 이번에도 오자서의 간언을 듣지 않았다.
자공(子貢: 孔子의 弟子)이 구천을 돕고 있었다. "아직도 월의 힘은 미약하오. 대신 제를 깨친 후 오왕에게 신임을 얻고 특히 재상 백비에게 더욱 많은 뇌물을 먹이시오." 오왕은 오자서의 계략을 쓰지 않아도 모든 일들이 생각대로 잘 되어 갔다. 그렇게 되자 오자서를 더욱 귀찮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대는 제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오시오. 이번에야말로 제를 완전히 멸망시킬 작정이니 그쪽 사정을 세밀히 염탐해 오시오." 오자서는 낙담했다. 그렇지만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면서 아들을 데리고 갔다. "아들아, 내가 오왕에게 수차례나 간했지만 끝내 한 가지도 듣지 않았다. 이제 오는 망한다. 오가 망할 때 너까지 망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서 오자서가 제로부터 돌아올 때에는 아들을 제의 포목(鮑牧: 鮑叔의 後孫)에게 맡기고 돌아왔다. 오자서는 귀국하자마자 병을 핑계대고 복명도 하지 않은 채 직위를 사퇴하고 집안에 들어 앉아 버렸다. 구천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은 백비는 오왕에게 월나라를 신뢰하도록 항상 꼬드겼다. 그렇게 만들자니 거추장스러운 인물은 오자서였다. 왕에게 참언했다. "오자서는 사람됨이 고집이 세며 사납고 온정도 없습니다. 남을 시기하는 데다 어떻게 하면 남을 해칠까 그것만 궁리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보십시오. 전날에 왕께서 제를 치려고 했을 때 오자서는 한사코 말렸지만 결국은 큰 성과를 거두지 않았습니까." "참, 그랬었지." "오자서는 그 때 자신의 계략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대왕을 원망했습니다." "그랬었소?" "월의 구천을 참언했다가 대왕께서 듣지 않으시자 꾀병을 구실로 복명도 하기 전에 직위를 사퇴했습니다. 이건 신하로서 무엄한 짓입니다." "그렇겠구려!" "국력을 총동원해 제를 치려는 마당에 그가 출병을 마다함은 곧 제나라와 은밀한 맹약을 맺고 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무언가 의심스러워 몰래 사람을 시켜 제로 사신갔을 때 미행토록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들을 데리고 가서 거기 포씨한테 맡기고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이게 모반의 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됐소! 그대의 충고가 없었더라도 난 벌써 그 자를 의심하고 있었소!" "그러시다면 한시바삐 대책을 강구하십시오!" 오왕은 즉시 사자를 시켜 촉루지검(촉鏤之劍)을 오자서에게 보냈다.
-그대는 이 검으로 자결하라!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아, 백비라는 간신이 나라를 망치려는데도 왕은 충신인 나를 죽이려는구나. 그대의 부친이 패자가 된 것은 모두 내 덕이다.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선왕(先王)과 다투지 않았더라면 그대는 태자가 될 수 없었다. 그대가 기왕에 왕위에 올라 오나라를 나누어 나에게 주려 했을 때에도 나는 도리어 그것을 받지 않았다. 아아, 그대는...... 지금 유신(諛臣: 아첨하는 신하)의 말만 듣고 장자(長者: 有德者)를 죽이려는가!"
그러고 나서 오자서는 자신의 가신(家臣)을 돌아보며 단단히 부탁했다. "반드시 내 무덤 위에다 가래나무(?)를 심어 주게. 오왕이 패사(敗死)해서 죽으면 그 나무로 관을 짜 시체를 넣어야 하니까.그리고 내 눈알을 빼어서 동문 위에 걸어 주게나. 월군이 쳐들어와서 오가 멸망하는 꼴을 꼭 보고 싶거든."
그런 후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오왕은 노기충천했다. "그 자의 시체를 가져오라! 말가죽 주머니에 넣어 장강(長江:揚子江)에다 처넣어라!"
오나라 사람들은 이를 애달피 여겨 오자서를 위하여 강가에 사당을 세우고 그 산을 서산(胥山: 즉 오자서의 산)이라 이름했다. 한편 제의 포씨가 도공(悼公 B.C. 488-485 在位)을 죽이고 양생(陽生)을 왕으로 세웠다. 오왕은 역신(逆臣)을 응징한다는 구실로 끝내 제나라로 쳐들어갔으나 오히려 패퇴하여 귀국했다. 그 후 2년이 지나 오왕은 노(魯).위(衛)의 왕을 불러 탁고(탁고: 安徽省 巢縣 북서)에서 회맹(會盟)했다. 이듬해에는 북쪽의 황지(黃池: 河南省 封丘縣 남쪽)에서 여러 제후들을 불러 모아 마치 자신이 주(周)나라 왕실을 받드는 주인인 척 설쳐댔다. 그러나 그런 짓거리들은 오나라가 피폐해졌음을 감추려는 허세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 틈에 드디어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를 습격해 들어왔다. 구천은 오의 태자를 죽이고 오군을 대파시켰다. "아아, 오자서의 말이 옳았구나!" 대경실색해서 귀국한 오왕은 사신을 보내 후한 예물로 월과 화평하려고 했다. 그러나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에 대한 전날의 수모를 용서하지 않았다. 9년 뒤에 오를 멸망시키고 부차를 목베어 죽였다. 재상 백비가 월왕 앞으로 끌려왔다. "더러운 놈, 충신을 참소해 죽이고 왕께 충성도 못한 자, 적국과 내통하며 뇌물까지 먹은 놈! 이런 자는 본보기로 요참해야 마땅하다!"
일찍이 오자서와 함께 오나라로 도망쳐 왔던 초의 태자 건의 아들 승이 초나라에 가 있었다. 오왕 부차 때 초의 혜왕(惠王: B.C. 488-432 在位)이 오나라로 피신해 가 있던 승을 불렀을 때 초의 섭공(葉公)이 말렸다. "원한이 있는 인물입니다. 승은 용맹한 데다, 살펴보니 결사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후환이 두렵습니다." "나하고 원수진 일은 없소." 혜왕은 끝내 섭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승은 초의 변읍인 연(연: 湖北省 宣城縣)을 봉읍받아 백공(白公)이라 불리고 있었다. 백공은 초나라로 돌아온 지 3년 만에 오자서가 오나라에서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백공은 정나라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었다. 부친인 초나라 태자 건이 정나라에서 피살되었기 때문이다. 초로 돌아온 지 5년 만이었다. 백공은 영윤(令尹)인 자서(子西)에게 정나라를 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힘이 있다면 출병해 보시지요." 자서(子西)는 허락했다. 백공으로서는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절치부심 군사를 길러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엉뚱한 사건이 생겼다. 진(晋)나라가 정나라로 쳐들어가자 정나라에서 초나라로 구원요청이 온 것이다. 멋보르는 혜왕은 자서를 시켜 정나라를 구원케 했다. "미안하게 됐소. 그대와의 약속보다 왕명이 더 소중하오." 한 마디의 말로 백공을 물리친 자서는 정나라로 가서 구원한 뒤 화평까지 맺고 돌아갔다. 백공은 화가 날 대로 났다. "일구이언(一口二言)하는 놈! 이제부터 내 원수는 정나라가 아니라 자서다!" 씩씩거리며 손수 칼을 갈고 잇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무엇에 그토록 화가 나셔서 몸소 칼을 갈고 계십니까?" "자서를 죽인다고 그런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자서는 코웃음쳤다. "애송이 같은 놈. 그 자는 병아라도 못 되고 아직 알(卵)이야. 제깐 게 칼을 갈아 본들 뭘 하겠어."
그로부터 4년 뒤였다. 부하 석걸(石乞)과 함께 조정으로 쳐들어간 백공 승은 재상 자서(子西)와 사마(司馬)인 자기(子기)를 덮쳐 죽였다. "내친 김에 혜왕도 죽이고 왕이 되십시오." "그래야겠지." 그러나 혜왕을 찾았으나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우습게도 석걸의 종자(어쩐 책에선 혜왕의 종자)인 굴고(屈固)가 그런 와중에서 혜왕을 고부(高府: 府庫)에서 찾아 업고 왕의 모친인 소부인(昭夫人)의 궁으로 피신했다.
전날 백공 승을 초나라로 들이지 말라고 간했던 섭공이 궁중의 변란 소식을 들었다. 섭공은 병사를 이끌고 가서 백공을 쳤다. 힘이 다한 백공는 산으로 도망하여 숨어 살다가 운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그 때 사로잡힌 석걸은 섭공 앞으로 끌려왔다. "그래, 백공의 시체는 어디에 있나?" "모른다." "대지 않으면 널 삶아 죽이겠다." "별수가 없지. 일이 성공했으면 대부가 됐을 걸 실패했으니 경(卿:대신)답게 죽어야지." "말하지 않겠단 말인가." "그래." 섭공은 석걸마저 죽인 후 혜왕을 찾아내어 다시 왕위에 오르게 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원한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독은 얼마나 무서운가.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된다. 하물려 같은 신하끼리임에랴..처음에 오자서가 부친 오사와 함께 죽었더라면 오자서는 하잘것 없는 땅강아지와 개미나 무엇이 달랐겠는가. 그러나 소의(小義)에 얽매이지 않고 대치(大恥)를 참고 씻어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참으로 비장한 일이다.
오자서는 장강에서 진퇴양난의 고통을 당했고 병들고 유리걸식하면서도 초의 도읍 영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오로지 은인자중하여 공명을 이루었다. 의열한 대장부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해 낼 수 있었겠는가.
그에 비해 백공 따위는 그가 왕이 되려는 야심마저 없었더라면 그의 공명도 책모(策謀)도 너무 보잘것 없어 이름 두 자 남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