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1 - 김병총
1. 백이열전 伯夷列傳
말세에는 누구나 이해를 다투었으나 백이(伯夷).숙제(叔齊)만은 한결같이 의(義)를 존중하여 나라를 양보하고 굶어죽어, 천하가 그를 칭송했다. 그래서 제1에 <백이열전>을 저술한다. <太史公自序>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河北省 盧龍縣에서 熱河省 朝陽縣에 이르렀음) 고죽 군(君)의 두 아들이다. 왕은 숙제를 후사(後嗣:후계자)로 세울 작정이었는데 왕이 갑자기 죽어 버렸다. 아우인 숙제는 형인 백이에게 슬며시 양위하려고 했다. "무슨 소리냐. 네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 아버님의 뜻이셨다!" "그렇지만......." 백이는 동생의 왕위를 확실히 해 줄 요량으로 슬며시 국외로 달아났다. 숙제 또한 왕위에 오르기가 싫었다. "큰형님이 싫다 하시니...... 군주의 덕을 지니신 작은 형님이 왕위에 오르시는 게 좋겠다." 할 수 없이 고죽국 사람들은 가운데 왕자를 왕으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숙제는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백이를 뒤쫓아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형님, 함께 갑시다." "너도 왕노릇 하기가 싫었구나." "형님보다 못한 제가 무슨 염치로 왕위에 오릅니까. 그런데, 지금 형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렵니까?" "글쎄, 서백 창(西伯 昌: 周의 文王)에게로 갈까 하는데…"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요?" "노인을 따뜻하게 모신다더라." "그것 하나만으로도 몸을 의탁해도 좋을 만한 인품이군요." 그런데 백이.숙제가 도착했을 즈음 서백은 죽어 버렸다. "어떡하지요? 그분의 아들에게 몸을 의탁하기에는 틀린 것 같습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저 보십시오. 부왕의 목주(木主: 位牌)를 받들어 수레에 싣고 동쪽 은(殷)의 주왕(紂王)을 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간청해 보자. 그게 우리들의 일이니까." 그래서 백이.숙제는 무왕(武王)에게 나아가 말고삐를 붙들고 간했다. "보십시오. 부왕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벌이려고 하십니까?" "뭐가 잘못 됐소?" "이것은 효(孝)가 아니지요. 더구나 신하의 몸으로 군주를 시살(弑殺)하려 하시니 인(仁)도 아니지요." "신하의 몸으로 군주를 시살한다고 말했소?" "주왕에 대해서는 신하지요. 아버지의 위패를 받들어 문왕(文王)으로 지칭한 것도, 스스로 무왕(武王)으로 지칭한 것도 바로 그대요. 원래의 왕은 은나라의 주왕뿐이오." "무엄하다!" 무왕의 좌우 신하들이 칼을 빼어 두 사람을 베려 했다. 이 때 태공망(太公望: 武王의 軍師인 呂尙)이 황급히 나섰다. "그냥 두어라. 출진을 앞두고 사람을 벰은 불길하다." "예에?" "더구나 그들은 의인(義人)이다 부축해 데려가라." 백이.숙제는 간신히 목숨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한편 무왕은 은나라의 난을 평정하니 천하가 그를 우러러보며 두려워하게 되었다. "형님, 이제 우린 어디로 가지요? 주(周)의 녹봉은 먹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수양산(首陽山: 山西省 永濟縣의 남쪽)으로나 가 볼까. 거기엔 고사리가 맛있다더라." "형님의 말뜻을 짐작하겠습니다." 그들은 수양산에 올라 숨어 살면서 한 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오늘도 서산(西山: 首陽山)에 올라 고사리를 캤네. 폭력을 없앤다며 폭력을 쓰고도 그 그릇됨을 그는 모른다네. 신농(神農)과 순(舜)과 우(禹)의 호시절은 절로 갔구나. 우린 이제 어디로 가지. 아아, 가자 죽음의 길로. 우리 목숨도 쇠잔했으니.
그들은 그렇게 해서 끝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무릇 학문하는 데는 설사 많은 서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나마 믿을 만한 서적은 육예(六藝: <詩經> <書經> <易經> <春秋> <禮記><樂記>)뿐이다. 신화(神話) 시대의 얘기여서 확실히 증언할 길은 없지만 그나마도 우.순(禹.舜) 시대의 사적(史蹟)을 통해 얼마만큼은 알 수 있다.
비슷한 얘기들은 또 있다. 요(堯)는 나이가 들자 그토록 무거운 자리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순에게 양위했다. 순도 우에게 양위할 때에는 악목(岳牧:官名.四岳.十二牧의 관리. 나중에 公.卿.제후가 됐음)의 추천을 들어 천거케 한 뒤 그나마도 믿지 못해 관직을 맡겨 수십 년 동안 시험한 후 비로소 정사(政事)를 맡겼다. 이야말로 천하는 중기(重器)이고 왕자(王者)는 대통(大統)이나 천하를 맡긴다는 게 어디 그토록 쉬운가. 요(堯)는 요대로 양위의 어려움이 있었다. 허유(許由)에게 양위하려 하자 물론 허유는 받지 않았다. "재능이 없는데 어찌 저에게 양위하려 하십니까." 스스로 부끄러워서 허유는 깊이 은둔해 버렸다. 더러운 말을 들었다 하여 냇가에서 귀를 씻고 있으려니까 친구이며 명사(名士)인 소부(巢夫)가 마침 소를 몰고 물 먹이려 다가왔다. 소부가 물었다. "자네 지금 뭣하고 있나?" "귀를 씻고 있는 걸 모르나." "왜?" "더러운 말을 들었기에 귀를 씻고 있는 중일세." "무슨 말을 들었길래." "요 임금께서 나더러 양위한다네." "아하, 그래. 정녕 더러운 말이군. 자네가 여기서 귀를 씻었으니 내 소한테도 물을 먹일 수가 없네. 계곡 위쪽으로 올라가 물을 먹이려네."
비슷한 얘기는 하(夏)나라 때 변수(卞隨)와 무광(務光)에게도 있었다. 그들은 역시 더러운 말을 들어 부끄러워하며 영수(潁水)에 투신 자살했다. 이를 두고 후세인들의 갑론을박이 부지기수로 많다. 우선 공자(孔子)의 말부터 들어보자. "백이.숙제는 불의를 혐오했지만 사람을 미워하진 않았다. 그것은 주왕의 악(惡)을 비유했으면서도 스스로 남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며 자신이 원망받지도 않았다. 이는 자신이 인덕(仁德)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하여 태사공는 일시(逸詩:<詩經>에 실려 있지 않은 詩)를 읽으며 공자의 설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백이.숙제의 마음에 원한이 없었을까에서부터 출발한다.
"천도(天道)는 공평무사하며 얼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들지요." "백이.숙제같이 청렴 고결하게 살다 간 사람이 굶어 죽었는데 그것이 공평무사인가요? 도척(盜척: 극악 무도한 전설적 인물)이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여 간(肝)을 회쳐 먹고 도당을 거느려 천하를 횡행하고서도 천수를 누리고 죽었는데 그렇다면 그가 인세(人世)에서 크나큰 덕행(德行)이라도 쌓았다는 얘깁니까." 그래도 공자는 잠자코 있자 다른 사람이 대든다. "도(道)를 벗어나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종신 안락하며 자손대대로 부귀가 영원하고, 그와 반대로 옳은 말을 할 때는 화를 당하니 그것도 천도입니까?" 그제서야 공자는 입을 연다. "도(道)란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끼리는 서로 상의하지 않느니라." "예에?" "백이.숙제가 청렴 고결하게 살다 죽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만큼 착한 사람은 많다." "그가 누구입니까." "내 70명의 고제(高弟: 3천 명 중 6藝에 통한 72人)도 있다." "그들이 누구인데요?" "학문을 좋아하는 안연(顔淵: 回)이 있었다. 쌀뒤주가 비어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끝내 굶어 죽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만일 부귀라는 것이 뜻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마부처럼 천한 직업이라도 나 역시 마다하진 않겠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도를 행하고 덕을 쌓겠다는 것이다. 안연의 경우도 그와 같다." "그건......!" "세상이 혼탁할 때라야 선비의 청렴이 드러난다. 마치 차가운 계절이 되어서야 상록수가 조락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건......!" "군자란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論語>의 <衛靈公編>). 백이.숙제도 이와 다름이 없다."
태사공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한(漢)의 가자(賈子: 賈선)은 탐욕한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의열(義烈)한 사람은 명예에 목숨을 걸며,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범용(凡庸)한 사람은 제 생명이나 탐하고 아낄뿐(服鳥賦)이라고 했다. 같은 종류의 광명은 서로 비춰 주며 같은 종류의 만물은 서로 구하고, 구름은 용을 따라 용솟음치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곧바로 일어난다. 이는 성인(聖人)이 나타나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것처럼(<易經>의 <繫辭傳>)백이.숙제가 현인이긴 하지만 비로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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