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10.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태양계의 작은 섬, 소행성
1792년, 보데라는 독일 사람이 당대 천문학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연구논문을 하나 발표했다. 그는 베를릴 천문대의 대장이었다. 그의 주장인즉 행성들은 그저 무질서하게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우주를 향해한다 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서야 상식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그의 주장은 상당한 지지를 얻어 보데의 법칙으로 정립되었다. 그런데 뒷날 이 법칙은 보데가 다른 사람에게서 도둑질한 것임이 과학자가들에 의해 밝혀졌다. 실제로 그 법칙의 핵심적인 내용을 처음 밝혀낸 사람은 뷔텐베르크에 살던 티티우스라는 무명의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베를린천문대의 보데에게 전했는데 보데가 그걸 슬쩍 가로채서 마치 자신의 연구성과인 양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뒤부터 보데의 법칙은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으로 개명되었다. 보데의 얌체짓을 놓고 보건대 늘 별을 쳐다보며 산다고 해서 마음이 별 같아지는 건 아닌가보다. 경위야 어쨌거나 티티우스-보데의 법칙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걸쳐 천문학자들 사이에 행성 찾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에선 내노라 하는 천문학자들이 '미지의 행성을 발견하기 위한 연맹'을 결성하기까지 했다.천문학자들은 특히, 다른 행성들에 견주어 굉장히 넓은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화성과 목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 집중적으로 망원경을 들이댔다. 티티우스-보데의 법칙 에 따르면 화성과 목성 사이에 분명히 아직 알려지지 않은 천체가 있을 법했던 것이다.
화성과 목성 사이의 우주 공간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천체를 발견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피아치였다. 그는 1801년에 지름이 992m에 불과한 아주 작은 행성을 발견하고 거기다 세레스라는, 자신의 고향인 시칠리아 섬의 수호신 이름을 붙여주었다. 세레스는 행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 소행성이라고 불렀다. 피아치의 발견에 이어서 1902년에는 팔라스가, 1804년엔 주노가 발견되었으며 이후 본격적인 소행성 탐사 시대가 개막되었다. 소행성들은 거의 대부분의 화성과 목성의 궤도 사이에 분포해 있다. 그래서 태양에서 5억km 떨어져 있는 그 우주 공간대를 소행성의 고향이라 일컫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소행성은 무려 4만 5천여 개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소행성들의 질량을 모두 합해도 지구질량을 모두 합해도 지구 질량의 1/500에 지나지 않는다. 제일 큰 세레스에서 작은 알갱이에 이르기까지 소행성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소행성은 행성이 부숴지면서 나온 찌꺼기들이다. 태초에 어떤 행성이 아직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폭발하면서 그 파편들이 태양계 곳곳으로 흩어진 것이다. 그래서 소행성은 태양계의 작은 섬이라 불린다. 이들 점점이 흩어진 섬들을 모자이크하면 하나의 행성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소행성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태양계의 기원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소행성의 개체발생 과정이 태양계의 계통발생 과정을 설명해 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작기는 하지만 소행성도 행성으로서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소행성은 대체로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회전하면서 일정한 궤도를 따라 우주 공간을 향해한다. 따라서 소행성에도 하루가 있고 1년이 있다. 행성의 하루는 대개 7∼10 시간이며, 1년은 지구 시간으로 환산하면 평균 5년이다. 궤도가 인접해 있는 소행성들은 이따금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그파편이 지구쪽으로 날아들기도 하는데 지상에 떨어진 소행성의 파편이 바로 운석이다.
대담무쌍한 소행성, 이카로스
소행성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트로이 소행성군과 아폴로 소행성군이다. 목성의 궤도선상에 운집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공전하는 15개의 소행성 무리를 트로이 소행성군이라 한다. 우주의 군도인 셈이다. 이 무리에 속한 소행성에는 모두 트로이 전쟁에 등장한 영웅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아킬레우스는 목성보다 서너 발자국 앞서 태양 주위를 돌며, 아킬레우스의 둘도 없는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는 목성보다 서너 발자국 뒤에서 돈다. 일부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목성이 거느린 20개의 위성들은 원래는 목성 주변을 맴돌던 트로이 소행성군의 식구였다고 한다. 그러다 양아버지인 목성의 강력한 인력에 끌려들어가 위성으로 입양되었다는 것이다. 태양계의 기원과 관련해서 특히 흥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폴로 소행성군은 금성보다 더 가까이 태양에 다가가는 일군의 소행성들을 가리킨다. 에로스, 아도니스, 헤르메스 같은 소행성이 이에 속한다. 아폴로 소행성군은 우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반란군이다. 공전 궤도를 놓고 볼 때 다른 행성, 그 가운데서도 지구와 충돌할 위험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만약 지름 10m짜리 소행성이 서울시 한 복판에 떨어질 경우 서울 시민 모두가 하늘나라로 가야 한다니 아폴로 소행성과의 충돌은 곧 지구의 종말을 의미한다. 천문학자들은 지름이 0.8km 이상 되는 아폴로 소행성들이 적어도 750개 정도는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구의 미래를 점치기 좋아하는 호사기들은 앞으로 100만년 동안 적어도 네 개의 아폴로 소행성들이 지구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그냥 흘려들어도 좋은 허황된 엄포만은 아니다. 1937년에 헤르메스가 80만 km를 사이에 두고 지구를 지나갔다. 지구와 헤르메스의 공전 주기를 따져 계산하면 최소 30만 km 안쪽까지도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30만 km라면 달까지의 거리보다 더 가까운 거리이다. 그런데 이렇게 위협적인 반란군에 속하는 또하나의 새로운 소행성이 1949년에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미국 팔로마 천문대의 월터바드였다. 멀리는 화성 궤도의 안쪽까지 거대한 타원형을 그리며 태양을 돌고 있는 이 소행성은 태양에 2천 8백 30만 km까지 바싹 다가간다. 지름 1.3km에 불과한 자그마한 몸으로, 혜성을 제외하고는 태양계의 그 어떤 행성보다 태양에 가까이 접근하는 이 대담무쌍한 소행성의 이름은 아카로스이다. 공전 주기가 409일인 이카로스는 한번 충돌과 종말의 공포 속에 몰아넣았다.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
이카로스는 장인 다이달로스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 섬에 살면서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미궁을 만든 바로 그 사람인데 원래는 아테네 사람이었다. 지상의 헤파이스토스라는 별명에 걸맞게 그는 건축과 목공, 철공에 두루 능해 돛과 수레, 도끼 등 사람들에게 요긴한 여러 가지 것들을 만들어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이 이를 어여삐 여겨 아크로폴리스 언덕 꼭대기에 높이 솟아 있는 자신의 신전 한 귀퉁이에다 다이달로스의 작업장을 내줄 정도였다. 그런데 다이달로스 밑에는 탈로스라는 도제가 한 명 있었다. 탈로스는 나이가 어려 아직 손재간은 스승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자연의 이치를 깨쳐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드는, 말하자면 격물치지의 능력은 오히려 스승을 앞질렀다. 그는 물고기 등뼈에 착안해 톱을 만들었고 바람개비가 도는 걸 보고 원을 그릴 수 있는 양각기(콤파스)를 고안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고 가히 그 앞날이 기대되었다. 새로운 것은 늘눈길을 끄는 법, 자연히 아테네 사람들의 눈길이 구관인 다이달로스보다 신인인 탈로스에게 더 자주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유일무이한 명성을 누리던 다이달로스의 가슴엔 불 같은 질투가 일었다.(다른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이런 마음보를 다이달로스의 질투 라고 한다. 모차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결국 다이달로스는 어느 날 탈로스를 신전 지붕 위로 데려가 밀어 버렸다. 아테나 여신은 이 사실을 알고 다이달로스를 아테네에서 쫓아냈다.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재주가 아까와서였다.
아테네에서 쫓겨난 다이달로스가 찾아든 곳이 바로 미노스 왕이 다스리던 크레타 섬이었다. 다이달로스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잇던 미노스는 왕가의 여자 노예를 다이달로스와 짝지워 줌으로써 이 재간꾼을 자신의 왕국에 눌러 앉혔다. 다이달로스는 이 크레타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카로스를 얻었다. 그런데 다이달로스는 뜻하지 아니한 사건에 휘말려 미노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의 황소와 사랑을 하여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은 바로 그 사건에 연류되었던 것이다. 시련에 눈이 먼 왕비에게 암소 가죽을 입히니 누가 보아도 살아 있는 암소 그대로였다. 왕비는 속이 빈 그 가짜 암소 속에 들어가 포세이돈의 황소에게 접근했고 급기야 괴물을 낳았다. 미노스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격분했다. 그러나 그는 홧김에 쓸곳 많은 재간꾼을 죽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노스는 결자해지의 원칙을 적용해 다이달로스에게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들게 했다. 다만 말 끝에 미노스는 이런 단서를 달았다.
만약 미궁에서 살아나오는 자가 있으면 너를 그 곳에 가둘 터이니 그리 알아라!
그러나 알다시피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미노타우스를 죽이고 미궁을 빠져나오게 된다. 체면이 말이아니게 된 미노스는 다이달로스뿐 아니라 그 아들 이카로스까지 함께 미궁에 가두어 버렸다.
이카로스의 비상과 추락
미노스는 다이달로스가 또 무슨 손재주를 부려 미궁을 탈출할까 우려하여 군사들로 하여금 미궁을 겹겹이 에워싸게 했고 그러고도 못 미더워 바다로 나가는 배까지 철저하게 수색하게 하였다. 다이달로스 부자는 꼼짝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여느 때처럼 아들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다가, 가슴이 답답하여 미궁의 제일 높은 곳, 바다쪽 절벽에 면한 첨탑에서 절망스레 바깥 세상을 내다보았다. 첨탑 위로 새떼들이 날아 올랐다. 그 중에 몇 마리는 창틀에 앉아 깃을 쪼기도 했다. 순간 섬광처럼 미노스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도가 떠올랐다.
하늘! 땅과 바다는 막았지만 하늘은 미노스도 막지 못하리라!
그날부터 다이달로스는 첨탑에 떨어진 새의 깃털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몫의 날개를 만들 수 있을 만큼 깃털이 모이자 다이달로스는 작업을 시작했다. 큰 깃은 옷에서 뽑아낸 실로 묶고 작은 깃은 미궁의 천정 모서리에서 긁어낸 밀랍으로 붙었다. 날개가 완성되자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를 데리고 첨탑으로 올라갔다. 아들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주고 나는 법을 가르친 뒤 다이달로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일렀다.
아들아, 너무 높게 날아서도 아니 되고 너무 낮게 날아서도 아니 된다. 너무 높이 날면 태양이 날개를 녹여 버릴 것이며 너무 낮게 날면 날개가 물에 젖게 된다. 반드시 내가 나는 높이만큼만 날아라.
아들을 먼저 허공으로 밀어 준 뒤 다이달로스도 바람에 몸을 실었다. 다이달로스는 아들보다 앞서 날며 아들이 제대로 날고 있는지 가끔씩 뒤돌아 보았다. 시킨 대로 잘 날고 있는 듯하여 다이달로스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델로스 섬을 지날 즈음이었다. 푸른 바다와 뭇 섬을 눈 아래로 굽어보며 하늘을 나는 기분에 도취되어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조금씩 고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아득히 비상하여 창공의 한 점이 되는가 싶은 순간, 이카로스는 추락하기 시작하였다. 태양이 날개를 이어붙인 밀랍을 녹여 버린 탓이었다. 추락은 비상보다 더 짧은, 찰나의 일이었다. 다이달로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땐 두어 개 가벼운 깃털만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내려다 보니 이카리아(이카로스의 바다) 위엔 그저 하얀 포말만이 무심히 동심원을 그리며 잦아들고 있었다.
추락하는 것들의 아름다운 날개
무엇이 이카로스를 높이 더 높이로 이끌었을까? 높이 더 높이 비상하여 이카로스는 무엇을 보았을까? 신화는 아무런 대답도 남기고 있지 않다. 다만 그 뒤로 인간 세상에서 이카로스의 비상을 당랑거철과 같은 격에 놓는 걸 보면 겁없이 아무 것에나 도전하지 말아라 라는 게 이카로스의 짧은 생을 통해 신들이인간에게 내리고자 했던 가르침인 듯하다. 우주 공간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한 점 티끌에 불과하면서도 그 어떤 행성보다 더 가까이 태양에 접근하는 소행성에 이카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도 거기에 연유한다. 같은 이유로 패기와 열정 하나로 재벌에의 꿈을 키웠던 70년대의 야심만만했던 몇몇 청년 기업가들을 사람들은 이카로스의 후예 이라 일컬었다. 빈민굴에서 태어나 흑인 해방운동의 지도자로 우뚝 선 말콤 엑스를 어떤 사람들은 검은 이카로스 라고 부른다. 이카로스처럼 그들은 모두 추락했다. 패기만만했던 청년 기업가들은 모두 파산했으며 말콤 엑스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사주한 괴한들의 기관총에 난사당해 죽었다. 태양을 향해 비상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비상은 늘 위험하고, 추락은 그저 깃털 몇 개와 허망한 물거품만으로 끝나는 것일까? 날개가 없는 것은 추락하지 않는다. 비상하려 들지도 않기 때문이다.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다. 추락이 두려워 비상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일러 새라고 할수 있을까?
우리에겐 모두 날개가 있다. 꿈과 이상이라는 그 날개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다. 비상하지 않는 삶, 그것은 배부른 돼지의 삶이지 인간의 삶은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이카로스들의 날개짓으로 여기까지 발전해 왔다. 신에겐 이카로스가 무모한 도전의 희생자일지 모르나 우리 인간에겐 그렇지 않다. 그는 이상을 향한 위대한 이륙의 표상이다. 사랑, 평등, 평화, 자유, 정의를 위해 고투하는 인간의 날개짓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한 비상 뒤에는 추락조차 아름답다. 땀흘려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가 지금은 창살 안에 갇혀 있는 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싸워가나 무엇으로 일어서나 끝모를 징역 마룻바닥에 허물어져 미친 듯 나는 통곡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알지 나는 나를 잘 알지 마지막 한 가닥 희망과 애착마저 툭, 끊어져 오직 홀로 남은 나 자신과 처절한 묵시의 투쟁 끝에 서면 나는 결국 죽음조차 의연하게 껴안을 수 있었지 시퍼런 슬픔의 심연 끝바닥에 다다르면 그래 나는 다시 서서히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야 허허로운 눈빛으로 다시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야
- <그리운 사람> 중에서
비상 뒤의 추락은 이렇듯 단단한 깨달으과 지혜, 겸손함을 남긴다. 그리하여 뒤이어 솟아오르는 이들의 이정표가 되며 심연으로부터의 새로운 비상을 기약한다.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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