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6. 마음은 힘이 세다 -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1968년, 교육학 관련 학자들뿐만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결과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저 아이는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 이라는 기대를 하면 그런 기대를 받은 학생을 실제로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국민학교를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대상이 된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하류 계층에 속했으며 학생 수는 650명이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전학년에 걸쳐 능력별 반편성이 되어 있었는데 읽기 성적을 우수반, 보통반, 열등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등반에 속한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 형평이 아주 어려웠고 주로 멕시코계였다. 두 사람은 먼저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면서 고사와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의 목적을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라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계획된 거짓말이었다. 지능검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가 반에서 약 20퍼센트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냈다. 그리고는 이들의 명단을 교사들에게 돌리면서, 이번에 실시한 지능검사 결과,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학생들 이라고 알려주었다. 이것도 역시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꾸민 거짓말이다. 무작위로 뽑았으니 만큼 지능검사 결과와 명단에 오른 학생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연구자들의 말을 그대로 다 믿었다. 교사들로 하여금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게 성적이 크게 오를 것 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연구의 전제이자 핵심이었던 것이다.
8개월 뒤에 학생들은 앞서의 것과 똑같은 지능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 학생들과 점수는 앞서의 검사 결과에 비해 8.4점이 오른 반면 20퍼센트의 학생들, 즉 실험 집단의 점수는 12.2점이나 높아졌던 것이다. 일반 학생들의 평균점보다 3.8점이나 놓은 수치였다. 특히 학년별로는 1학년과 2학년에서 일반 학생과 실험 집단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으며 저소득 계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이러한 연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감은 실제로 성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기대 효과는 저학년 그리고 하류 계층 학생들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선생님들 앞에서 한결같지 않다는 느낌을 한 번쯤은 가지게 된다.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공연히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고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행동거지가 단정해진다. 꼭 선생님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친구에게는 굉장히 너그럽다가도 어떤 친구에게는 사납게 군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그리 되는 듯하다. 저 선생님은 나를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는 느낌이 들면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 앞에서는 늘 단정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말이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가 어쩌다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오면 꼭 그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하게 되는, 그런 식이다. 반대로 저 친구는 나를 참 의젓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그 친구 앞에서만큼은 더할 수 없이 의젓해진다.
그런 경험 법칙을 되살려 보면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의 성적을 실제로 향상시키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어렵잖게 이해할수 있다. 연구자의 의도를 모른 체 학생의 지능과 잠재 능력을 신뢰하게 된 교사는 그 학생에게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교사의 기대감과 신뢰는 눈빛과 말씨, 행동에 그대로 드러나고 학생은 그것을 느낀다. 설혹 그 학생이 당장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교사는 그 학생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실망치 않고 계속 격려하고 애정을 기울일 것이다. 그 학생에게 기대감을 가지기 전이라면 넌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할 일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큼 위안이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와 격려를 받는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신뢰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저학년과 멕시코계 학생들에게 그러한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저학년은 아직 자신의 학습 능력에 대한 판단(이를 학문적 자아 개념 이라 한다.)이 영글어 있지 않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이 아직 굳어지기 전이라 교사의 기대감에 따라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하기가 훨씬 수월한 조건 아래 있는 것이다. 또 계층적으로 가장 극빈한 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은 아마도 교사의 기대와 신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에 대해 체념하거나 부정적인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선생님의 신뢰와 애정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없는 힘도 쑥쑥 생겨나지 않겠는가.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연구는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검증한 것이었다.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이란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 행위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는 이론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피그말리온 효과 라고도 한다.
피그말리온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은총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에 사는 솜씨가 빼어난 조각가였다. 키도 작고 별로 잘생기지도 못한 피그말리온은 어쩐 일인지 여자는 멀리할수록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기엔 여자란 결점이 너무 많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했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여자의 입상을 조각했다.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조각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여자가 너무 얌전해서 그런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상아 처녀는 살아있는 인간 그대로였으며, 감히 어떤 여자도 가까이 와 견주어 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 완벽한 작품을 날마다 흡족한 눈으로 감상했다. 그러다 그만 상아 처녀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제 손으로 만든 조각임에도 그걸 깜빡 잊고 살아있는 여인에게 하듯 하루에도 몇 번씩 상아 처녀를 손끝으로 쓰다듬곤 했다. 해변에서 예쁜 조개껍질이나 조약돌이라도 주울라치면 얼른 상아 처녀에게 갖다 바쳤고 산에 들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도 한아름씩 꺾어다 처녀의 팔에 안겨 주었다. 앙증맞은 귀와 긴 목에다가는 빛나는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를 걸어두었다.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옷도 해 입혔고 급기야는 긴 의자에 폭신폭신한 요를 깔고 그 위에 상아 처녀를 눕혔다. 물론 머리맡에 부드러운 깃털로 만든 베개를 고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집을 들고 날 때마다 허리를 굽혀 상아 처녀에게 입맞춤을 하곤 했다. 그런데 키프로스 섬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이름 그대로 바다의 흰 거품(아프로스)에서 태어난 여신이었다. 흰 거품이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다 이윽고 여신을 빚어 조개껍질에 싣고 지중해의 한 섬에 내려다 놓으니 그 섬이 바로 키프로스였다. 아프로디테가 대지 위에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키프로스였던 것이다. 그 뒤로 키프로스 사람들은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세우고 해마다 큰 축제를 벌였다.
피그말리온이 상아 처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섬의 제일 큰 명절인 아프로디테 축제일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신전에 갖가지 제물을 갖다 바쳤고 신전에 피운 양 냄새가 온 섬에 진동했다. 피그말리온도 신전으로 가 제물을 바치고 여신을 경배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빌었다.
여신이시여, 바라건대 저에게 아내를 주소서......
그는 저 상아 처녀를 아내로 주소서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너무도 수줍어서 그렇게는 못하고 대신에 저 상아 처녀 같은 여성을 아내로 주소서 라고 조그맣게 덧붙었다. 기도를 마친 피그말리온은 집으로 돌아와 늘 하듯이 긴 의자 위로 몸을 구부리고 상아 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처녀의 입술에 온기가 감도는 게 아닌가. 놀란 피그말리온은 처녀의 몸을 쓰다듬어 보았다. 처녀의 몸은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피그말리온은 다시 한 번 처녀의 입술을 만져 보았다. 그러자 처녀가 두 눈을 뜨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피그말리온을 바라 보는 게 아닌가. 신전에 흠향하러 와 있던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순정을 어여삐 여겨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된 상아 처녀에게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둘 사이엔 아들 파포스가 태어났다. 아프로디테에게 봉헌된 키프로스의 파포스라는 도시는 바로 이 아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랑과 믿음의 힘
영국의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죠지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원용하여 5막짜리 희곡<피그말리온>을 남겼다. 주인공인 H. 히긴스는 음성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검증할 학문적 실험의 일환으로 가난한 소녀 일라이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일라이자는 런던의 거리에서 꽃을 팔아 살아가는 하류 계층의 소녀였다.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엉망진창인 발음과 사투리, 빈민층 언어를 교정해서 귀부인으로 변신시키고 애초의 목표대로 사교계의 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상아 처녀를 인간으로 변화시킨 피그말리온처럼. 그러나 그는 학문적 실험의 성공에 만족할 뿐 일라이자를 이성으로 대해 주지 안는다. 이에 실망하고 모욕감을 느낀 일라이자는 그의 곁을 떠나 버린다. 이들은 신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행복한 결말을 맺지는 못했다. 결말을 이렇게 처리한 것이야말로 날카로운 기지와 독설로 유명한 버나드 쇼다운 점이라는 평도 있다. 그런데 이 희곡은 정작 연극보다는 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1964년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로 제작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청순한 얼굴을 가진 배우 오드리 헵번이 일라이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에서는 끝 부분이 신화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으로 개작되었다. 히긴스가 일라이자를 가르치는 도중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희곡의 결말이 버나드 쇼다웠다면 해피에딩으로의 개작은 가장 헐리우드다운 것으라고 할 수 있다. 스타와 섹스, 그리고 해피엔딩이야 말로 헐리우드 영화를 떠받쳐 온 세 개의 기둥이라고 일컬어지니까.
피그말리온 효과는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의 힘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지성이면 감첨이라는 우리네 속담이 가리키는 바도 그것이다.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믿음은 그 사람 속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깨우고 흔들어 마침내는 활짝 꽃피게 한다. 요컨대 상아를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들 그것을 일컬어 사랑의 기적 이라고 한다. 친구나 부모, 선생님, 때로는 연인-최악의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 주는 피그말리온이 있기에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다. 빈곤과 범죄의 수렁에서 헤어나 새 사람이 되고, 불처의 병을 이겨내며, 온갖 시련을 헤쳐내고,, 인간 승리를 이룩한다. 셜리반니더라도 힘들고 외로울 때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날이 삶이 얼마나 따뜻해지겠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더듬어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내가 저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랑과 믿음은 반드시 전달되고, 그것이 간절하고 지극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정신, 의지, 마음, 영혼은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힘을 이야기하다 보니 얼른 떠오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이른바 플라시보효과 에 대한 이야기다. 플라시보란 가짜약을 말한다. 위장병 환자에게 새로 개발된 특별한 위장약이라고 속이고 영양제를 복용하게 하였더니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현저하게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시보 효과 라는 것인데 여러 가지 실험에서 이런 효과가 검증되었기 때문에 의약계에서는 치료를 목적으로 일부러 가짜약을 주기도 한다. 실질적인 약리작용은 없지만 환자의 정신을 안정시켜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새삼 마음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네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나 자신을 지극하게 사랑하고 믿어 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우리의 이런 마음을 알고 일찍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 주어라. 네가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해 주어라.
그렇다. 남을 사랑하고 믿어 주는 일, 지극하고 간절하기까지야 않더라도 그저 남들만큼 사랑하고 믿어 주는 일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가. 작고 하찮은 것, 못나고 힘없는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돌보고 감싸오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낮고 외로운 자리에 내려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 길이 참 시인의 길이하고 믿고 살아온 인자한 눈빛의 노시인도 그 어려움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조그만 시련에도 견디지 못하고 내 안의 사랑이 흔들려 괴로울 때 한 번씩 읽어보자.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힘을 주리라.
동해바다 -후포에서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후포는 울진 아래 있는 작은 어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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