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슬픈 열대(Tristes topiques) - 레비 스트로스(1908~2009 )
현대 인류학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레비 스트로스의 자서전으로 간주되는 이 저작은 철학으로부터 인류학으로 이행한 저자의 지적 여정이 담겨 있다. 이 저술은 저자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경험했던 원주민들에 관한 기록으로, 서구사회의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 브라질 인디언들의 풍속에 끼친 폐해를 다루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과 동시에 현대문명의 제반문제에 대한 의미 성찰의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프랑스 구조주의 창시자
현대 사상의 한 조류인 구조주의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레비 스트로스. 그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출생했다. 유태계 프랑스 인인 그의 부친은 베르사유 궁전에 근무하는 화가여서 레비 스트로스는 출생 직후 베르사유 궁전 부근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숙부도 화가였고 그의 조부는 베르사유의 유대교 율법선생으로 교회를 관리하고 있었으므로 어려서부터 교회의 벽화나 성화 등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영향은 '슬픈 열대'에서 카두베오 족이나 보로로 족의 신체장식이나 조각의 무늬를 분석함에 있어 놀랄 만한 심미안을 보여준다.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특히 1931년에는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23세로 합격하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934년 브라질의 상파울로 대학에서 사회철학을 강의했다. 여기에서 그는 생의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브라질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브라질의 원주민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아마존 강 유역의 원주민 사회를 답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1938년에는브라질 정부의 후원으로 브라질 내륙지방의 원주민 사회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이때 조사한 4개의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가 바로 '슬픈 열대'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프랑스로 귀국하여 영불간의 통역장교로 근무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하자 유태계 프랑스인이었던 그는 미국으로 탈출한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서 피난 온 교수와 과학자를 위해 신사회과학원을 설립했는데 그도 여기에 참여하여 학문의 폭을 넓혔다. 이 기간동안 그는 미국에 소장되어 있는 인류학 관계문헌을 모두 소화하고 저명한 인류학자들과도 친분을 맺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그가 소련에서 망명해 온 언어학자인 야콥슨을 만난 것이었다. 구조언어학의 대가였던 그로부터 구조언어학의 방법론을 습득했으며, 두 사람은 공동으로 '언어학과 인류학에 있어서의 구조적 분석'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1948년에는 파리로 돌아와 인류학 박물관의 부관장직을 맡게 되고, 다음해에 '친족의 기본구조'라는 방대한 저서를 출간하여 구조주의 방법을 결혼 및 친족체계에 적용했는데, 이 저서로 그는 인류학자로서의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이어서 '슬픈 열대(1955)', '구조인류학(1958)'을 저술한다.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사회인류학 연구실이 특별히 레비 스트로스를 위해 개설되었고, 그의 취임 강연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곳에서 그는 사회인류학을 강의하면서 그의 구조주의 방법을 두번째로 적용하기 위해 신화학의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2년에 출간된 '야성적 사고'는 그 난해성과 사르트르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으로 당시의 사상계에 던진 충격과 파문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음에 나타나는 '신화학'의 사상적 기초에 해당하는 하나의 전주곡이었다.
1964년부터 1971년에 걸쳐 그는 그의 지성과 화려한 천재성을 4권의 '신화학'에 담았다. 즉, 1964년에는 '신화학' 제1권인 '날 것과 익힌 것'을, 그리고 1971년에는 '벌거벗은 인간'이 출간되어 신화학의 전 체계가 완성되었다. 물론 이 저서에 담긴 내용과 분석방법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제1권인 '날 것과 익힌 것'에 주어진 인류학자의 최고 명예라 할 수 있는 바이킹 재단상 수상을 고려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이 업적이 얼마나 큰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것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구조주의와 레비 스트로스
레비 스트로스 하면 연상되는 구조주의는 프랑스에서 1960년대 초 실존주의의 뒤를 이어 나타난 현대사상의 한 조류로서, 그 범위는 매우 넓어서 철학문학민족학정신분석학 등 다방면에 걸친다.
구조주의
이 사상의 특징은 인간과 자연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현상보다 그 배후에 있는 심층적인 구조를 밝혀내여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고 이 법칙을 근거로 다양한 현상을 파악하여 한다. 아직 명확한 학파나 기준을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종래의 인간중심적 사고와 역사종교라는 개념을 파기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구조주의는 하나의 방법론을 넘어 세계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조주의의 창시자라 불리는 레비 스트로스를 통해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세 가지 만남
그는 그에게 구조주의에 관한 영감을 준 3가지 만남을 '슬픈 열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는 마르크스와의 만남이고, 둘째는 프로이트와의 만남이며, 셋째는 지질학과의 만남이다. 마르크스의 상하부 구조론은 모든 상부현상들의 밑바닥에는 그것들을 결정하는 하부구조 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프로이트의 심층심리학은 모든 의식현상 밑바닥에는 이를 지배하는 심층구조 '무의식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지질학은 지상의 표면 밑에는 보이지 않는 지층이 깔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셋은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각각 사회인간자연의 영역들에서 증명해주고 있다. 곧 모든 표면적인 현실은 더 근본적인 다른 하나의 현실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 따라서 참다운 진실은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밑바닥에 숨어 있다는 것, 그러므로 감추어져 있는 진실은 철저한 발굴작업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것 등이다. 지질학자가 그의 훈련된 눈으로 지표 밑바닥에 있는 기본구조를 꿰뚫고보듯이, 그는 인류학자이며 사회학자로서 인류문화와 사회현상의 표면을 뚫고 그 밑에 숨어 있는 근본구조 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의 도움
이와 같은 미지의 구조, 곧 다양한 표면현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이러한 미지의 구조가 실재한다는 것은 레비 스트로스의 생애를 결정한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의 학문적 과제는 이와 같은 미지의 구조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과제를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배운다. 특히 프라하 학파가 발전시킨 음운론의 방법과 그 성과에 그의 구조주의는 큰 도움을 받는데, 마치 핵물리학이 자연과학 전체를 위해서 혁명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음운론은 인간과학 전체를 위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그는 보았다.
원시인 연구로 서구문명 비판
'슬픈 열대'는 어떤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사상적 편력과 그 귀결이 집약되어 있는 하나의 입문서다. 이 책에서 그는 섬세한 관찰력을 독특한 문체로 표현하는 뛰어난 문학적 자질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1937~38년 사이에 그가 브라질 내륙에 살고 있던 4개의 원주민 부족, 즉 카두베오 족, 보로로 족, 남비쿠아라 족, 투피카외히브 족의 사회를 조사하여 기술한 일종의 민족지이자 기행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 책 속에는 자신이 민속학자가 된 경위로부터 자신의 사상편력에 이르기까지 자기 고백을 담아냈다. 그리하여 원주민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과 자신의 학문적 기초로 삼고 있는 구조주의 에까지 독자로 하여금 다가오도록 배려하고 있다. 먼저 그는 인류학자가 되는 과정에서 그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세 가지 만남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지질학을 들고 있다. 그에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모든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됨을 제시했고, 프로이트는 의식의 기저에서 무의식의 세계가 지배하고 있음을 밝혀주었으며, 지질학은 지표 밑에 존재하는 지층의 중요성을 인식시켜주었다. 결국 이 세 가지 학문은 모두가 참다운 이해란 어느 한 유형의 현실을 다른 유형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을 의미하며, 참된 현실이란 외형적으로 두드러진 현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피의 내부에 숨겨진 심층구조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진리란 우리의 탐색을 회피하여, 스스로를 은폐하려는 그 내밀성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입장은 체험과 실재 사이에 연속성을 추구하려는 현상학을 거부하며, 개인적 선입견들을 철학적 문제나 휴머니즘의 영역으로 승격시키려는 실존주의도 비판한다. 개인의 주체성보다는 보편적 구조를, 자유보다는 결정론적 과정을 중시하는 그는 후일 사르트르와의 필연적인 논쟁을 예고한다.
그가 주장하는 구조주의는 새로운 문명과 혹은 현대 문명비판론의 성격을 지닌다. 인간정신 (헤겔의 절대정신과 유사)이란 동일한 구조적 메커니즘을 통해서 작용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구조주의는 원시사회와 현대사회의 차이를 야만과 문명, 혹은 비논리와 논리로 대비시키지 않는다. 원시인들의 사고방식이 삶의 세계에 포함되는 모든 사실들을 총체적인 체계와 질서 속에서 추상화하는 것이라면, 문명적 사고는 특수한 몇 개의 영역들만을 구분하여 취급하는 제한적 결정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시사회를 야만적 혹은 미개적 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대인의 편견일 뿐이다. 비록 원시사회가 기술적으로는 낙후되었을지 모르나 나름대로의 합리성과 집단적 조화, 그리고 인간적 만족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레비 스트로스가 시사하듯이 원시인들은 과열된 동적 사회의 현대인이 누리지 못하는 인간적 교환과 종합의 재능을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원시사회란 단지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회일 뿐 결코 열등한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비스런 조화의 구조를 가진 원시사회가 현대문명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멸되어가는 열대의 원주민은 슬픈 것이다. 그리고 이 사라지는 실체를 탐구하도록 재촉받는 인류학자의 직업 또한 슬픈 것이다. 결국 저자는 역사가 인간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인도할 것이라는 환상을 거부한다. 그리하여 그는 실존주의자들이 가정하는 행위의 자유로운 주체자로서 인간이 갖게 되는 특권적 영역을 과대 평가하지 않는다. 인간은 죽었다 라고 외친 푸코의 절규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에도 메아리친다. 단지 그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역사적 진보라는 환상 속에서 노예적인 구속을 감수하는 비인간성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호소할 뿐이다.
이 같은 그의 태도에는 불교적 선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우주론적 체념이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일찍이 루소가 시도했던 이미 존재하지 않고 과거에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으며, 미래에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어떤 상태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불교와 마르크시즘의 융합을 모색하면서 다음과 같이 알듯 모를 듯한 독백을 우리에게 던져놓고 있다.
"인간을 그 첫번째 사슬로부터 해방시키는 마르크시즘의 비판과 그 해방을 완결시키는 불교도의 비판 사이에는 아무런 대립이나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그들은 동일한 과업을 상이한 수준에서 각각 행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는 인간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없이 끝날 것이다."
대륙문학의 기반 위에 영미학문 소화
레비 스트로스는 뒤르켐과 모스의 프랑스 사회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그 뒤에 독일의 사회철학인 마르크시즘과 당시 유행하던 프로이트에 접근했다. 이어 영국의 사회인류학과 미국의 문화인류학을 소화한 뒤에 남미 현지를 조사하고 현지감각을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프랑스와 독일로 대표되는 대륙학문의 기반 위에 영미계통의 학문을 소화하고 구조언어학의 방법을 도입하여 인류학에 구조주의를 창시한 것이었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적 시각에의한 학문적 업적은 크게 4분야로 요약할 수 있다. 친족제도 연구, 토테미즘 연구, 신화 연구, 철학적 공헌 등이 그것이다.
친족제도 연구
인류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영역이 친족연구로 '친족의 기본구조'에 그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 그의 구조주의는 언어현상과 원주민들간의 친족관계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과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구조주의의 시작이다. 그는 여기에서 종래의 민속학자들이 사용했던 생물학적, 개별주의적 관찰방법을 지양하고, 사회학적, 보편주의적 방법을 통해서 모든 친족관계의 기본구조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교환의 법칙 이다. 그는 모든 결혼제도의 공통적 기반을 교환으로 보고 씨족들 사이에 교환되는 사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근친상간의 금지는 인간의 가장 값진 존재를 다른 가족들과 교환함으로써 비로소 연결된 사회를 이룩하고 이 교환을 통해서 비로소 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토테미즘 연구
이처럼 그는 친족관계의 기본구조를 연구한 다음 토테미즘을 연구한다. 그는 토테미즘에 대한 인류학적인 검토를 한 후 토테미즘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지금까지 인류학자들이 설명한 그러한 현상들은 언제나 경멸적으로 설명하려는 문명인들의 버릇이 창조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특수하게 설명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미 특수하게 그 현상을 묘사하고 파악한다. 그에 의하면 토테미즘은 경멸적인 것이 아닌 자연과 문화라는 개념들이 일정한 형식으로 결합하여 생겨난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신화분석
그의 구조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방법이다. 구조주의 방법이 최종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표층 밑에 존재하는 심층구조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문화에 표층문화가 있고 그 밑에 하층문화가 있으며, 이 하층문화의 기충에 존재하는 기본구조는 문명인의 문화나 미개인의 문화와 같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문명과 미개를 망라한 모든 인간들이 갖는 기본구조는 같은 것이며, 이것을 규명하는 것이 인류학의 목적이고 이것을 위한 분석방법이 구조주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 인류의 공통분모인 기본구조를 분석하는 데 복잡한 문명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는 단순한 원시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유리하고, 원시사회에서도 잡다한 의례나 일상생활보다는 신화를 분석하는 것이 보다 가까운 길이라 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저자는 4권의 '신화학'을 저술한다. 이 4권의 신화는 모두 5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들로 제목과는 달리 남미 여러 부족의 신화를 총망라하여 신화 속에 감추어진 자연과 인간의 대립상,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갈등과 조화를 분석하여 인간의 심성에 있는 2항 대립적 기본구조를 확인한 것이었다.
서구철학 비판
그리고 저자는 서구의 편협한 철학을 맹렬히 공격했다. 이를테면 서구철학은 이성과 감정을 분리하고 다시 감정은 억제되어야 하며, 이성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양인이 무시하는 원주민은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킨 철학을 갖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을 조화시킨 철학을 가졌다.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원시민의 철학을 정돈하여 서구의 교만한 철학자를 공격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문명비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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