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백년 동안의 고독(Cien Anos de Soledad) - 마르케스(Gabridl G. Marquez, 1928~ )
이 작품은 <콜롬비아의 세르반테스>로 불려지는 마르케스가 <마콘도>라는 가공적인 땅을 무대로, 고독한 운명을 타고난 부엔디아 집안의 비극적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외세의 식민지배로 혼미한 라틴 아메리카 민주의 역사를 신비스러운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그려내고 있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특수한 사회구족 속에서 고질적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인들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탐색하고 있다.
독재정권, 미국과 맞서 싸운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28년 콜롬비아의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엄청난 폭우와 무더위가 번갈아 내습하는 이 마을은 <백년 동안의 고독>을 비롯한 그의 대부분 소설의 무대인 <마톤도>라는 가상 마을의 모델이 된다. 그는 8세까지 외조부의 슬하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들려준 외가 마을 과 아라카타카 마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 얽힌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이야기는 그의 소설의 든든한 밑천이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괴이한 용모와 억센 고집으로 부모의 속을 무척 썩였다. 그러므로 가족들 중에 누구 하나 그에게 애정을 품거나 귀여워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또한 집에 정을 붙일 수 없어서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갔다. 이때부터 그는 말할 수 없는 고생을 감당해야만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는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군인이 되어 전선에 나가 싸우기도 했다. 이러한 파란 많은 삶의 편력은 타고난 문학적 재질이 풍부한 그에게 무진장한 소재로 작용했다. 그는 보고타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후 기자가 되어 유럽에 잠시 체류했다가 그후 멕시코로 건너가 창작활동을 했고, 쿠바에서 혁명이 성공하자 쿠바로 건너가서 국영 통신사의 뉴욕 특파원이 되는 등 인생편력을 계속했다.
그가 문단에 뛰어들게 된 최초의 계기는 1947년 <세번째의 만남>을 쓰면서부터였다. 곧이어 1954년 친구의 권유로 콜롬비아 전국 단편소설 대회에 <토요일 하루 뒤>라는 작품으로 국가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1955년 <낙엽>이라는 작품을 발표하여 콜롬비아 문단이 30년 만에 수확한 일대 걸작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낙엽>은 침체기에 빠져 있던 콜롬비아 문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파리에 머물면서 창작에 전념하고 이듬해 콜롬비아로 귀국했다. 1958년은 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있는 해였다. 하나는 메르세데스 바르차와의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쿠바 혁명이었다. 이해 말에 일어난 쿠바 혁명에 고무받은 그는 좌파이념을 확고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인다. 한때 좌익이었던 수많은 문인들이 70년대 이후 우익으로 전향한 것과는 달리 그는 좌파이념과 카스트로정권에 대한 지지를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1961년에는 자신이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단편 <대령에게는 편지가 오지 않았다>를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는다. 다음해에 그는 파리 체류 때 써놓았던 <불행한 시간>을 발표하여 콜롬비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에소 문학상>을 받았다. 그위 오랜 성찰과 모색의 시간을 가진 그는 5년간 침묵 끝에 1967년에 <백년 동안의 고독>을 아르헨티나에서 출판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이 작품으로 1982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7년부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거주한 그는 75년에 독재자의 원형을 그린 소설 <족장의 가을>을 발표하고는 멕시코로 거쳐를 옮긴다. 그는 76년 쿠데타로 집권한 칠레의 피노체트가 권좌에 있는 한 더이상 소설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칠레 쿠데타의 빌미를 준 다국적 기업문제를 다루는 러셀 위원회, 정치와 사상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투옥된 사람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아베아스 재단 창설 등에 참여하고, 중남미 각국의 정치범과 실종자들을 위해 정력적인 활동을 한다.
1981년 4월 그는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는 소설을 출판하는 것이 칠레 민중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요지의 해명과 함께 소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를 출간하다. 노벨상 수상 이후 문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필력을 자랑했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선보인 내용과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3년 이후 스페인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면서 집필에 몰두하다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지난 92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폐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94년 초 <사랑과 또 다른 악마>를 내는 등 지금도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다.
마르케스의 작품세계
마르케스의 작가적 삶에서 두드러진 점은 그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의 독재 정권들과 그를 지원하는 미국에 맞서 때로는 글로, 때로는 행동으로 싸웠다.
소설의 정치화
그는 항상 소설작품은 모름지기 정치적 이유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소설의 정치화를 강조했다. 그런데 작품의 정치화에 대한 그의 소견은 후에 많은 작가들에게 잘못 인식되어 작품의 정치화는 곧 카스트로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의는 라틴 아메리카와 같이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한 지역에서는 가장 시대적 감각에 예민한 작가들이 지성에 바탕을 둔 사실주의를 지향함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성을 올바르게 의식하자는 데 있었다. 당시는 대낮에 도시 한복판에서 권총이 난사되고 밤에는 무서워 외출도 삼가야 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정치를 미화하는 정치관련 작품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과격한 국민성 때문에 무정부 상태의 콜롬비아 상황은 마르케스로 하여금 질서의 회복을 갈구하도록 만들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이러한 시도가 안타까울 정도로 부단하게 반복되고 있다.
역사서술의 문제점 형상화
그의 작품세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역사서술의 문제점을 극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역사는 흔히 정복자들에 의해 기술된다고 한다. 정복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역사를 기술한다는 의미다. 이런 과정에서 피정복자들의 입장은 당연히 왜곡하고 은페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역사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역사는 1492년 콜럼버스가 미국을 발견 한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침략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역사서술의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이 작품이다.
미국 바나나 회사에 맞서 파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계엄령이 선포되고 무려 3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정부군에 의해 학살된다. 정부관리들은 역광장에서 기관총으로 무참하게 살해된 노동자들의 시체를 한밤중에 화물차에 실어다가 멀리 바닷물 속에 수장해버린다. 그러나 정부와 다국적 기업의 계략으로 이 엄청난 사건은 그 진상이 철저하게 은폐되고 호도된다. 파업을 직접 주도했던 호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사건 직후 마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그는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아예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고 있거나 설령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진실과는 거리가 먼 한낱 권력을 장악한 지배계급이 조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역사가 미셀 푸코를 비롯하여 미국의 역사가인 헤이든 화이트, 영국의 역사가 조너선 클락 등이 주장하는 포스트 모던 역사이론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역사기술이란 소설과 같은 허구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독과 근친상간으로 이루어진 기문의 비극
마콘도 라는 가상의 마을을 무대로 고독을 숙명으로 타고난 한 집안의 백년 동안의 역사를 서술한 이 작품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누구든지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작품의 전개는 기상천외하고 환상적인 사실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환상적인 것 같지만 실은 환상속에서의 사실성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그의 사촌 여동생 우르슬라와의 근친상간적 결혼생활부터 시작된다. 그들은 집안 대대로 살던 고향을 버리고 사람들을 피해 남미의 처녀림 속에 마콘도 라는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고 살아간다. 이들 사이에는 큰아들 호세 아르카디오가 있었는데, 그는 몸집이 크고 여색을 좋아한 인물이다. 그들이 마콘도에 도착하여 편안한 생활을 할 무렵 차남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가 태어난다. 그의 예리한 눈은 형과 반대로 날카로웠고 성격 또한 내성적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원시적인 이 마을은 물질문명의 혜택을 잔뜩 누리고 변화한 도시로 발전했다가 무지개처럼 하루아침에 지상에서 사라져버린다. 이런 환상적인 무대에서 고독을 운명처럼 타고난 한 집안의 백년의 역사는 시작된다. 아버지 부엔디아 이래로 이 집안의 6대의 역사가 그려지는데, 그 속에서 줄거리를 잡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좀처럼 구별할 수 없고 그 변화의 폭도 매우 넓기 때문이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만큼 마르케스는 환상과 현실을 격리시키고 있는 벽을 제거하는데 무척 고심했다. 마르케스는 조부모가 들려주는 환상과 경이로 가득 찬 신비스러운 이야기의 세계에 흠뻑 젖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현실과 비현실, 사실과 환상이 독자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문학적인 경향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옛날 할머니의 이야기 덕분인 것이다. 즉, 그는 환상적인 작품에 역사적인 현실요소를 가미함으로써 특유의 제 3현실을 창조햇다. 예를 들면 작품 속에 나오는 바나나 농장의 참사극은 실제로는 13명이 죽은 사실을 그는 3천명으로 과장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과장에 대해서 마르케스는 백년 후에는 3천 명이라는 숫자가 역사적 숫자로 믿어지고 13명이라는 역사적 숫자는 믿기 어려운 환상적 숫자로 퇴색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창조적 행위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이루어진 제3의 현실은 독자의 개념적 세계를 환상적 세계로 대치시킨다. 바로 이러한 세계가 신비하고도 마술적인 세계라 할수 있다.
작가가 한 작품에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과거와 현재, 신화와 역사, 사실과 환상을 융합하는 기법의 활용에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어린 시절 그의 조부모가 집안과 마을의 내력을 들려줄 때 사용했던 옛날 이야기 방식이었다. 이처럼 합리주의 시각을 가진 서양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불합리하고 비이상적인 옛날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고급형식으로 격상 시킨 데에 그의 공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여타 중남미의 작가들도 더욱 가세하여 서양에서 도입한 소설 장르에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적 유산을 가미하여 본고장으로 역수출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제 중남미적 소설은 한계상황에 직면한 서구소설에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서구소설의 한계상황이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로부터 시작된 근대소설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그 위기를 맞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소수의 전문 독자만이 읽고 즐길 수 있는 난해하고 실험적인 소설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중성은 있으나 문학성은 떨어지는 대중소설이 양산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소설의 죽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마술적 사실주의 라고 규정되고 있는 마르케스의 소설세계에 희망을 건다. 마술적 사실주의 란 간단히 말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서술방식이다. 여기서는 실제 사건과 공상, 역사와 설화, 객관과 주관이 혼합된다. 소설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한 설화적 서술방식을 가미함으로써 대중성의 확보에도 성공한 그의 소설은 하나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아무튼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성을 아주 실감 있게 인식하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한 마르케스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그 분야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세계화시켰다면, 작가의 의식세계와 라틴 아메리카라는 실체가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사실성을 총정리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소설로써 그 대륙을 체계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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