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무능에 철저하라 - 열어구
열어구가 제나라로 가다가 중도에서 돌아오던 중 백혼무인을 만났다. 백혼무인이 물었다. "어찌하여 벌써 돌아오느냐?" "저는 놀랐습니다." "무엇에 놀랐느냐?" "제가 열 군데의 주말에서 밥을 먹었는데, 다섯 주막에서 남보다 저에게 먼저 밥을 주었습니다." 백혼무인이 물었다. "그것이 왜 너를 놀라게 했느냐?" 열어구가 대답했다. "마을이 진실고 풀리지 않으면 얼굴도 따라서 빛을 이루어 밖으로 남의 마음을 누릅니다. 남들이 늙은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볍게 하여, 그 걱정하는 바를 어지럽게 한 것입니다. 주막하는 사람은 다만 밥과 국을 장사로 할 뿐, 다른 이익이 없습니다. 이익됨이 작고 권세가 그처럼 가벼운데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만승의 임금이겠습니까? 몸은 나라에 시달리고 지혜는 일에 다한다면 그는 장차 저에게 일을 맡겨 공을 바랄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웠습니다." 백혼무인이 말했다. "잘 보았다. 그러나 네가 이렇게 처신하면 남들이 장차 너를 붙들 것이다." 얼마 되지 않아 가보니 문 밖에 신발이 가득했다. 백혼무인은 북쪽을 보고 서서 지팡이에 턱을 괴고 잠시 있다가 말없이 나갔다. 빈자*가 열자에게 알리자 열자는 신을 들고 맨발로 달려와 대문에 이르러 말했다. "선생님께서 오셨으면서 어째서 약*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만두어라. 내가 전에 너에게 사람들이 장차 너를 붙들 거라고 했더니 과연 너를 붙들었구나. 남들이 너를 잡게 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너를 잡지 않도록 하지는 못한 것이다. 느낌이 있으면 반드시 너의 본성을 어지럽게 할 것이니 또한 말할 것이 없다. 너와 함께 노는 사람은 또 네게 말할 것이 없으며, 저들의 작은 말은 모두 사람을 해친다. 깨치게 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이 어찌 서로 친숙해지겠느냐? 공교로운 자는 수고롭고, 지혜로운 자는 근심한다. 무능한 자는 구하는 것 없이 배불리 먹고 마음대로 논다. 묶여 있지 않은 배와 같이 떠다니면서 텅 빈 채 마음대로 노는 것이다."
* 빈자 : 손님의 출입을 담당하는 사람. 문지기. * 약 : 원문은 약으로서, '약이 될 만한 좋은 가르침'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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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는 제나라 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중간에 되돌아오던 중 스승인 백혼무인과 마주치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이냐? 어째서 되돌아왔느냐?" "네, 실은 두려운 생각이 들어서……." 열자는 사정을 설명했다. "계기는 밥을 먹는 데서부터였습니다. 여행 도중 저는 몇 번인가 주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다른 손님을 밀쳐놓고 저의 주문부터 받으려고 했습니다. 두 번에 한 번 꼴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두려운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 "아마 제가 아직도 자부심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남이 보기에 달리 보였던 모양입니다. 먼저 온 손님들 중에는 노인도 있었는데, 제 풍채가 주인을 위압해서 노인을 보살펴주려는 마음을 잊게 했다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로 주막이란 보잘것없는 장사로서, 재산도 없고 세력도 없었습니다. 그런 밥집의 주인에게까지 저를 특별히 대우하려는 기분을 일으켰는데, 한 나라의 임금쯤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그가 내정과 외교에 골몰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엉뚱한 기대를 걸고 나를 맞아들여 국정을 맡긴 다음, 그 성과를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백혼무인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알겠다. 잘 생각했다. 하지만 네가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한, 어디를 가든지 세상 사람은 너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 얼마 후 백혼무인은 열자의 집을 찾아갔다. 방문 밖에는 찾아 온 손님들의 신발이 넘칠 지경이었다. 백혼무인은 지팡이에 기대고 잠시 서 있더니 그대로 가버리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열자는 황급히 방에서 뛰어나와 맨발로 대문 밖으로 달려나가 백혼무인을 붙들고 사정했다.
"선생님, 모처럼 저의 집까지 오셨으니 한 말씀이라도 부족한 점을 지적해주십시오." "듣기 싫다. 새삼 무슨 소리를 하겠느냐? 내가 분명히 말해주지 않았더냐? 네가 네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한, 세상 사람들이 너를 가만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네가 자진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네게는 남에게 신뢰받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한 것이다. 사람들이 너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네게 남의 눈데 잘 보이려는 틈이 있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그런 생각과 태도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해칠 뿐, 아첨하여 너를 병들게 할뿐이다. 자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남의 마음까지 어둡게 하고 만다. 이리하여 서로가 밑바닥 없는 진창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지혜와 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시달리게 할 뿐, 아무것도 얻는 것 없이 일생을 마친다. 그러나 무능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일체의 욕구에서 벗어나 배를 채우는 것에 만족하며, 마음 편한 생활을 즐기고 산다. 물결 따라 나부끼는 작은 배처럼 자신을 버리고 자유의 경지를 거닐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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