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제1부 서양 문학의 흐름과 고전
제1장 서양문학의 흐름과 고전
19세기 후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183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세계의 지배적인 문예사조는 사실주의 realism였다. 고전주의는 이제 완전히 후퇴하고 낭만주의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기세가 약화되었다. 꿈과 신비, 그리고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것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낭만주의자들의 태도는 현실 속에서 인간성찰을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첫째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의 지나친 감상에 대해 반대했다. 낭만주의의 지나친 상상력에 비하여 사실주의에서는 묘사의 정확성이 강조된다. 그리고 낭만주의가 현실을 도피하여 역사성과 과거를 중요시하는 데 비해 사실주의 당대의 현실을 취급한다. 그것은 오직 <지금 그리고 여기에> 현존하는 삶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 비록 한 작가가 취급하는 경험이 과거의 일이라해도 그것은 반드시 현재의 삶과 유기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을때만 가능하다. 둘째, 사실주의는 심리문제 또는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작가들은 인간행위의 상충하는 경향들을 상세히 분석했으며, 환경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의 투쟁을 충실하게 묘사했다. 문학작품은 이와 같은 깊은 사회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일종의 고발문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셋째, 사실주의 작가들은 대개 당시의 유행하는 과학이론 내지 철학이론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부작가들은 인간이 환경과 유전의 희생물이라는 <결정론>의 입장을 취하는가 하면, 다른 일부 작가들은 인간의 본성이 대체로 짐승과 같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동물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진화론>에 동조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일부 사람은 사회개혁의 정열에 불타서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악과 불평등을 규탄하는 작품을 썼다. 이처럼 이상주의적 낭만주의가 진실을 왜곡하고 현실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에 근거한 사실주의는 그것을 극복하고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현실과 그 안에 숨어 있는 진실을 문제삼았던 것이다. 한편 자연주의란 사실주의와의 구분이 분명치 않지만(동의어로 보기도 함) <사실주의의 한 강화된 형태>, 또는 <사실주의의 최후의 연장>으로 생각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자연주의에서는 인간은 환경과 유전법칙에 지배당하는 동물이라는 관념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있다.
프랑스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징조는 먼저 프랑스에서 나타났다. 특히 스탕달,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 등은 새로운 문학사조를 대변했으며 전세계적으로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인 스탕달은 사실주의의 작품인 <적과 흑>에서 주인공 쥘리앵 소랠이 가진 야심의 좌절과 옥중에서 성취되는 그의 내면적 구제를 통하여 역사를 통찰하는 작가의 리얼리즘과 그 역사를 넘어서는 낭만주의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발자크는 그의 모든 작품을 모은 <인간희극>에서 19세기 전반기 프랑스의 도시와 시골생활을 그렸다. 거기서 그는 주로 만년 부르주아 계급의 무식, 탐욕, 야비함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그의 소설은 인간행위의 숨은 동기를 노출시키고 상류사회의 매끈한 외관속에 숨겨진 부패를 폭로했다. 그중 <잃어버린 환상>은 나약한 성격의 젊은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통해 한 인간상을 인상 깊게 부각시키는 동시에 이미 자본주의 초기에 접어든 프랑스 왕정복고기의 사회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풍속소설의 하나다. 코르네유에서 라신에 이르는 동안 비극의 내적 논리가 발전되었다면 소설에 있어서의 내적 논리는 발자크에서 플로베르에 이르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플로베르는 자료조사를 중요시하는 사실주의자들의 최초의 스승이었다. 그의 걸작 <보바리 부인>은 인간타락에 대한 냉철한 분석으로 낭만주의적인 꿈과 일상적인 현실과의 괴리를 말함으로써 낭만주의 생활철학의 부적당함을 비판했다.
졸라에 의해 사실주의는 자연주의 naturalism 이라는 극단적인 표현형태로 발전되었다. 자연주의는 과학적 객관성을 주제에 적용하고 소설 속의 주인공을 마치 실험실의 동물처럼 다루려는 것이었다. 인간의 동작 하나하나가 유전이나 환경에 의해 숙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환경결정론>의 성격을 띤다. 자연주의 작가들은 당시의 과학발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젊은 시절에 가난에 쫓긴 졸라는 일반인과 사회정의에 대한 깊은 동정을 지니게 되었다. 그의 주제는 흔히 알콜 중독, 악성유전, 빈곤과 질병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둘러싼 것이었다. 세계역사에서 진실의 승리로 기록되는 <드레퓌스 사건>시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하고 진실규명에 앞장섰다. 졸라와 함께 자연주의자이자 플로베르의 조카인 모파상은 300편 이상의 단편과 6편의 장편을 통하여 인류의 미덕과 악덕을 다함께 묘사했다. 그는 인류에 대해 담담하고 냉소적인 태도를 지니면서 소설의 주인공을 풍자적인 기지로 묘사하는 한편, 그의 이야기를 칭찬이나 비난을 가미하지 않고 전개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문장을 구사한 지성적인 문인이었다. 그는 숙명론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인간 드라마의 희비를 성찰하고 인간의 과오를 관용하려 했다. 그러나 드레퓌스 사건 때는 졸라와 함께 투쟁하여 불의를 간과하지 않았다.
영국
이 시기는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기간(1837~1901)이다. 이 당시 영국은 생활수준이 급속히 향상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경제대국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사회윤리가 확립되고 고고한 도덕의식이 충만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정신을 잘 표현한 시인은 테니슨이다. 계관시인인 그는 영국인의 감상, 형식의 존중, 깊은 진지함, 자의식 등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 소설가인 디킨스의 작품에는 사회비판의식이 흐르고 있는데, 특히 중산층의 일상생활과 산업팽창의 지나친 사회악과 불의에 항거하는 개인들, 가난한 사람들의 투쟁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그의 <위대한 유산>은 여러 사회적 요인에 의해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를 문학적으로 보여주는 고전이다. 새커리는 영국의 상류계급을 탁월한 기지로 풍자했고, 크리스트교적 사회주의자인 킹슬리는 <올턴 록크> 등의 작품을 통해 노동계급에 동정하는 사회비평적 태도를 분명히 했다. 여류작가인 조지 엘리어트는 인간 감정 및 고통이 인간성에 미치는 효과 등에 대해 관통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작품인 <폭풍의 언덕>은 요크셔의 황야를 무대로 펼쳐지는 격정과 증오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작가들은 점점 사실주의적 경향을 뚜렷이 했다. 그중 가장 비관적인 소설가는 하디였다. 아름다운 남영국의 시골에서 산 그는 평생 동안 부정적인 인생관을 지녔으며, 그의 소설은 시골사람들의 전원생활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이고 있으나, 결국 인간이란 운명과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임을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 <테스>에서 테스라는 젊은 여인이 비정한 인간사회에 던져진 채 세파에 시달리며 겪어야 하는 고초는 독자들로 하여금 삶의 의미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독일
독일에서는 하우프트만의 드라마와 토마스 만의 소설에서 리얼리즘을 찾아볼 수 있다. 하우프트만의 사회극은 노동계급이 빈곤과 싸우는 과정이라든지 고용자에 의해 혹사당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토마스 만은 상징과 신화를 이용하여 현대인간의 정신상태를 조명하고 현대 서구문명을 상징적으로 비판했다. 대표작으로는 <마의 산>이 있다. 괴테와도 비교되는 켈러는 일찍이 유물론적 경향을 띠어 모든 낭만적 요소를 청산하고 이 지상에서 현실을 상대로 하는 문학을 건설했다. 그는 자전적 장편소설 <녹색 옷을 입은 하인리히>라는 교양소설을 남겼다. 그밖에 노르웨이 출신의 입센은 <인형의 집>에서 사랑 없는 결혼의 부도덕성을 공격하여 중산층에 큰 충격을 주었다.
미국
<여인의 초상>을 쓴 헨리 제임스는 인간동기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시도했고,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하월즈는 근대문학의 목적은 인간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졸라라는 칭호를 받았던 드라이저는 예술의 사회적 목적을 강조하고 예술과 도덕성을 완벽하게 일치시켰다.
러시아
19세기 초의 러시아의 작가 푸시킨은 러시아의 바이런이라고 일컬어지는 낭만주의 시인이었다. 그는 러시아 풍경미를 서정시로 묘사하고 민속담에서 시의 원천을 발견했다.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은 그는 소설을 쓰기도 했는데 그것은 사실상 러시아 최초의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푸시킨보다 약간 더 젊은 고골리는 <사신>이란 소설을 썼는데 러시아의 전원생활을 풍자한 것이었다. 위대한 러시아 문학은 19세기 중반 이후에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에 의해서 창조되어왔다. 이들의 작품경향은 사실주의라고 분명히 지칭할 수 없으며, 낭만주의, 사실주의, 이상주의가 융합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파리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 투르게네프는 서양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진 최초의 러시아 소설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은 과학적 사회이념을 가진 젊은 세대와 현상유지를 위한 낡은 세대 사이의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주인공은 허무주의자로서 사회의 전 질서가 아무런 가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심리소설의 대가였다. 28세에 혁명운동의 죄목으로 시베리아 탄광에서 6년의 중노동 생활을 했던 그는 나중에 빈곤과 가정불화, 그리고 간질병 등으로 고생했다. 그는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을 리얼리즘 수법으로 묘사했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영혼이 고통으로 정화된다는 깊은 신비주의적 신념을 표현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은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떨치게 했다. <전쟁과 평화>에서 1812년의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통해 러시아 사회를 묘사한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처럼 강력한 운명 앞에 나약한 인간상을 그렸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1870년대의 러시아 사회의 도덕적인 모럴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불륜적인 사랑과 그 비극적인 종말을 그리고 있다. 공산적 무정부주의자이며 소박한 생활을 예찬한 그는 <부활>에서는 더욱 더 사회복음적 설교를 하여 문명을 비난하고 단순소박한 육체노동을 권하고 있다.
19세기 말 상징주의
대부분의 문학유파가 그러하듯이 상징주의도 이전 문학운동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문예사조라 할 수 있다. 1890년대는 당시의 사실주의 시대의 버팀목이던 실증주의와 과학만능 사상이 흔들리면서 유럽은 일대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당시 유럽 각국에는 정신적 퇴폐와 염세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도덕과 신앙 및 기타 일체의 권위와 전통에 대하여 회의적이었고 찰나적인 향락으로 도피하는 풍조가 생겼다. 문학상 이 시기를 가리켜 <세기말>이라 하는데, 데카당스, 댄디즘, 탐미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는 자연주의 문학이 현실의 부정적인 측면 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인간성을 질식시켰던 것이다. 영혼의 세계를 상실해버린 고답파 시의 무감동성, 자아의 분열을 자초하는 세기말적 병리현상 등에서 야기되는 정신적 무정부 상태 속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은 새로운 모럴과 문학적 이상을 탐색했다. 소위 영혼의 초월적인 상태와 절대적인 이상세계에 대한 갈망을 이론으로 내세운 문예사조가 상징주의다. 상징주의는 예술의 순수성과 음악성, 즉 순수시의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문예사조로서, 시를 통해서 수정같이 아름답고 별처럼 고결한 영혼을 가꾸고자 했다. 이러한 상징주의는 특히 프랑스에서 강하게 일어났다.
프랑스
자타가 공인하는 상징주의의 선구자는 보들레르다. 그는 사상의 폭과 깊이에 있어서나 시의 형식적, 음악적 성과에 있어서 세계문학사에 근대시의 개화를 가능하게 해준 시인이다. 상징주의의 지침서이자 현대시의 모체가 된 그의 <악의 꽃>에는 <만물조웅>편이 있는데, 여기서 <자연은 하나의 신전>이라는 우주감각과 <향기와 빛과 울림이 서로 응답한다>는 공감각 시법을 노래했다. 보들레르를 선구자로 해서 프랑스 상징주의는 세 줄기의 계보를 형성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즉 보들레르를 정점으로 그 바로 밑에는 베를렌, 랭보, 말라르메의 세 위대한 시인이 위치한다. 베를렌은 보들레르가 지닌 시의 보고에서 주로 <감정>의 세계를 물려받아 완벽한 표현과 음악적인 서정시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랭보는 보들레르가 지닌 <감각>의 세계를 물려받아 언어의 주술성과 체계적인 환각을 시에 도입, 환상적인 시를 완성하여 후에 상징주의는 물론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으로 말라르메는 보들레르가 지닌 시적 가치 중에서 주로 <지성>의 영역을 물려받아 완벽한 절대의 세계를 추구하고 사상의 정제화와 언어의 순수화를 이룩해 지성적인 시를 완성시켜 본격적인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후로는 발레리와 클로델에게까지 시의 근본적인 젖줄을 대주었다.
영국
영국에서는 <런던 야경>의 작가 시먼스가 <문학에 있어서 상징주의 운동>을 통해서 상징주의를 소개했다. 이책을 통해 상징주의와 친밀해진 예이츠나 엘리어트는 상징주의의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이 인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을 내세웠다. 아울러 도덕적사회적 기준을 도외시한 순수한 아름다움의 추구를 강조했는데, 대표작으로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희곡 <살로메>가 있다.
독일
영미와 마찬가지로 독일문학도 프랑스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협의의 독일 상징주의는 1890년부터 약 20년간으로 간주된다. 심각한 현실과 현존재의 불행을 재현하는 자연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 앞 세대의 자연주의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던 젊은이들이 순수예술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전세대가 배격했던 꿈이나 상징을 문학의 대상으로 복귀시키고 예술 자체의 영역 안에서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창조하려 함으로써, 언어 그 자체를 더욱 중요시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그들은 새로운 시적 언어와 영적 자발성에 대한 찬미 등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러한 추구가 상징주의를 받아들이는 토양이 되었다. 독일의 상징주의는 비평가인 바르가 <자연주의의 극복>을 써서 상징주의를 소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한편 말라르메와의 정신적 접근과 니체의 사상적 감화 등을 통하여 독일적인 상징주의의 형식을 가장 명확하게 형성한 시인은 게오르게로서 그는 시집 <영혼의 1년>을 남겼다. 그리고 호프만슈탈의 <치인과 죽음>, 릴케의 <말테의 수기>등을 통해 상징주의는 본격화된다.
러시아
러시아의 상징주의는 1880년대의 전제 폭압정치에 대한 환멸, 나로드니키(인민주의)적 이상의 붕괴, 그리고 급속히 성장한 자본주의의 토양 위에서 일군의 시인들이 사실주의의 전통에 반발하면서 생겨났다. 이렇게 생겨난 러시아의 상징주의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러시아의 전후기 상징주의자들은 현실을 외면하고 주관적 자아 속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반사회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전기의 상징주의자들은 프랑스의 상징주의에서 영향을 받아 출발했지만 후기의 상징주의자들은 러시아 서정시의 전통의식에서 출발하여 솔로비요프의 시의 이미지와 철학적 이데아를 수용하여 주관적이고 종교적인 신비감을 자아냄으로써 어느 정도 구별된다. 문학사가들은 메레즈코프스키, 브류소프 등을 전기의 상징주의자들로, 벨르이, 이바노프, 블로크 등을 후기의 상징주의자들로 분류한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촉발된 러시아의 상징주의는 그 내면화 과정에서 러시아 철학과 종교적 영향을 받아들여 러시아 특유의 상징주의가 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상징주의는 내용의 미흡함과 지나친 개인주의에 매몰되어 급변하는 정치사회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고리키 등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비난을 받으면서 서서히 소멸되어 갔다.
20세기 현대문학
모더니즘
인류역사에서 20세기 전반기는 제 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인명살상과 엄청난 문명파괴 앞에 인류는 한결같이 고뇌했다. 이런 격동 속에서 문학도 심하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제1차 대전 기간 동안 문학가들은 인간성에 절망하여 침목하는 가운데 젊은 세대는 반역과 부정을 외치며 열심히 새로운 길을 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표현주의, 미래파,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인상주의, 이미지즘 등이 발생하고, 제2차 대전 후에는 실존주의가 풍미했다. 20세기 전반기의 이러한 모든 움직임을 모더니즘(modemism, 영미에서 주로 사용, 독일의 전위주의와 유사)이라 부르는데, 이는 19세기 사실주의, 자연주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20세기 전반기 문학운동의 총칭이다. 뒤에 나오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선 모던이라는 용어 자체가 전통적 가치와 그 표현기법을 거부하는 경향을 띤다. 또한 객체보다는 주체, 외적 경험보다는 내적 경험, 집단의식보다는 개인의식을,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이 모더니즘의 한 맹아가 된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우선 에즈라 파운드, 루이스, 로렌스, 엘리어트 등을 들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에서 로렌스는 대량학살에만 골몰하고 있는 현대문명의 원인을 산업화가 인간정신에 미친 영향에서 찾고자 했다. 그리고 전래의 소설계통을 배격하고 노동자 계급의 생활을 그린 자전적인 소설 <아들과 연인>에서 그는 신화와 상징에 주목하면서 개인과 집단의 재탄생이 인간적 노력과 정열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한다. 해박한 고전지식과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인 엘리어트는 <황무지>(1922)에서 현대문명의 질곡을 정신적 공허감과 삶의 소외에서 추적했다. 로렌스와 마찬가지로 엘리어트는 종래의 시전통을 배격하고 신화와 상징에 주목했다. 그러나 자기극복에 의해서 개인과 집단의 재탄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점에서 로렌스와 다른 견해를 표명했다.
로렌스와 엘리어트와는 달리 파운드와 루이스는 극단적인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다. 두 사람은 민주주의를 위선적인 것으로 격하시키면서 경제적이념적 조작이 현대사회의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파운드의 야심적이긴 하나 매우 난해한 <칸토스>와 루이스의 <메인 스트리트>는 그들의 대표작이다.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는 정신적 방황과 혼미를 거듭하면서도 주옥같이 아름다운 시와 글을 썼다.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소년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절실하게 묘사하면서 학생들의 창조적 개성이 엄격한 교육제도 아래서 희생되는 비극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한편 1차대전 직후인 1920년대의 문학사조는 냉소주의와 비극적 운명에 대한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의 대표적 작가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전쟁의 어리석음과 야비함을 표현했다. 포크너는 <음향과 분노>에서 미국 남부 콤슨 가의 붕괴를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의 영향을 받아 그 특유의 기법으로 그렸다. 우울한 로맨티시즘과 부와 권력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독일의 토마스 만은 <마의 산>에서 인간의 삶 속에 내재하는 죽음과 인간의 존재 등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깊이 파헤쳤다. 세계문학사에 <의식의 흐름>을 새겨넣은 대표적 모더니스트인 조이스는 자전적인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새로운 소설기법을 사용하여 주인공의 인생에 대한 도약과 그의 예술세계 창조를 향한 웅비를 잘 표현했고, 정신분석학의 깊은 영향을 받아 <율리시즈>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프랑스의 프루스트는 15년 동안 병실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는데, 여기서 그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시간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예술적 창조의 고뇌와 환희를 묘사했다. 베토벤을 흠모했고, 여성의 인류애적인 사랑에서 구원의 빛을 보여주었던 <매혹된 영혼>의 작가 로맹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에서 인간의 사랑이 인간들 사이의 불행을 제거하는 최상의 길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용의주도하게 묘사했다. 프라하의 유대인 카프카는 <성>에서 문이 굳게 단혀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헤매는 주인공 K를 통해 단순히 차별받는 유대인의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사회 속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가는 인간존재의 암울함을 고발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 현대문학은 새 국면에 들어섰다. 경제적인 대공황은 문학의 방법과 목적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경제적 붕괴와 파시즘과 전쟁의 위협 속에서 문인들은 창작활동을 통해 무엇인가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고자 했다. 사회고발적인 성격을 띤 문학은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나타나는데, 여기서 그는 현대사회 속에서 역경으로 내몰리는 빈곤한 농부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많은 사람들의 대의명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개인의 의미와 존엄을 찾는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펄벅의 <대지>, 미첼 여사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도 이 시기의 작품에 속한다. 1940년대에는 실존주의적 경향도 가세했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했던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르트르가 쓴 <구토>(1938)는 형이상학적 소설로, 사르트르 초기 실존주의의 단초를 보여주었다.
2차대전 후의 혼란하고 무질서한 정신적 풍토 위에 <부조리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기초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 했던 카뮈의 대표작 <페스트>는 페스트가 상징하는 악과 억압에 대해 인간의 집단적 반항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인간간의 연대감이 증대되고, 상호간의 공감만이 인류평화에 도달하게 할 수 있다는 카뮈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분명하게 담고 있다. 이 시기에 러시아의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의 몰락해가는 인텔리의 비극을 그린 <닥터 지바고>를 써서 <전쟁과 평화>에 필적하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의 반체제작가 솔제니친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 등을 써서 노벨상을 수상했다. 독일의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1959)에서 세 살 때 키 그대로라는 특이한 주인공의 눈을 통하여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소시민 계층의 몰락과정과 나치의 과거를 극복하지 못한 전후 서독사회를 형상화했다. 한편 위와 같은 모더니즘은 반지성적이고, 서양세계를 지배해왔던 이성이나 도덕보다는 정열과 의지를 더 중시했다. 그러나 <저항문화>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모더니즘도 점차 대학강단이나 도서관 또는 미술관과 같은 제도권으로 흡수됨으로써 이제 저항문화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채, 오히려 제도권 문화로 탈바꿈했다. 그리하여 리얼리즘은 물론 모더니즘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던 작가와 예술가들은 전자매체가 압도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다. 더이상 편협하고 폐쇄적인 모더니즘의 한계 안에서 안주할 수는 없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포스트 모더니즘(건축분야에서 처음 사용)의 기운이 태동했다.
포스트 모더니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0세기 후반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다원화되고 상대화된 가치관이 팽배해 있는 시기다. 또한 이 시대는 엄청난 물질적 풍요와 비참한 기근이 동시에 존재하며 심각한 환경파괴, 주체의 급속한 해체, 그리고 문화의 상품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시대상황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통일된 문화전통이나 예술사조를 언급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와중에서 1960년대 들어 구조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mism)이 등장한다. 구조주의는 프랑스에서 1960년대 초 실존주의의 뒤를 이어 나타난 현대사상의 한 조류로 그 범위는 매우 넓어서 철학, 문학, 민족학, 정신분석학 등 다방면에 걸친다. 이 사상의 특징은 인간과 자연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현상보다 그 배후에 있는 심측정인 구조를 밝혀내어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고 이 법칙을 근거로 다양한 현상을 파악하려 한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 구조주의는 창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순수문학 이론상의 사조이기 때문에 다른 문예사조와는 달리 구조주의 계열에 속하는 소설, 시 등의 문학작품이나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후기 산업사회의 문명에 대한 위기의식과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반발로 태동한 포스트 모더니즘은 절대성보다는 상대성을, 일원론보다는 다원론을, 독단주의보다는 관용주의를 그 속성으로 한다. 그러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모더니즘과의 관계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즉 <후기 모더니즘(부흥의 포스트 모더니즘)>과 <탈 모더니즘(저항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해야 한다.
<부흥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계승발전형태로 보고, 모더니즘이나 낭만주의와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반면 <저항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모더니즘에 대한 단절과 반작용으로 파악하고 있는 견해로, 모더니즘이나 낭만주의와는 새로운 문학사조를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반된 견해들로부터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일 뿐 아니라, 동시에 모더니즘의 논리적 계승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포스트 모더니즘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모더니즘의 기본입장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시키는 한편, 다른 측면에서는 모더니즘과 상충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이들 상호간의 공통점은 전통과의 단절, 불확정성 본절과 파편화, 반리얼리즘, 전위적 실험성,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재검토 등을 들 수 있고, 상호간의 차이점은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의 종식, 자아와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입장, 합리주의와 상대성에 대한 새로운 자각, 주변지역의 중심화 임의성과 우연성, 장르의 확산과 탈 장르화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뿌리를 둔 문학 조류이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 모더니즘 작품을 들면 윌리엄 비로스의 <익스터미네이터>, 노머스 핀천의 <V> <중력의 무지개>, 존 바드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 등이 있다.
이상으로 서양문학사를 거대한 흐름 속에서 조망해보았으나, 현재 이 순간에도 문학의 양상과 내용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와 실험을 계속되고 있다. 서양문학의 흐름을 정리하면서 신곽균, 최순목, 조한경, 김동규 님의 글을 많이 참고했음을 밝혀 둔다.
<참된 목표가 없으면 우리의 영혼은 그 열정을 그릇된 목표에 쏟는다.> (몽테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