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법의 정신 - 몽테스키외(Montesquieu, Charles, 1689~1755)
3권분립으로 유명한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다룬 핵심내용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정체에 대한 분류로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으로 분류하고, 그 활동원리를 각각 덕, 명예, 공포로 보았다. 두번째는 권력분립 이론으로 당시의 영국을 모델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으로 나눈 것이다. 셋째로 기후가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학설이다. 섬세하고 해학이 넘치면서도 강렬한 이책은 정치이론사와 법률사의 불후의고전이다.
생애와 작품활동
볼테르, 루소와 더불어 계몽시대의 3천재로 일컬어지는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의 3권분립론의 창시자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법관귀족 출신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에는 역사공부에 열중하였으나, 보르도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하여 보르도 고등법원의 평정관이 되었다. 이듬해 연구를 계속하기 위하여 1713년까지 파리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이국적인 것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듯하다. 그는 1713년 보르도로 돌아와 이듬해 법원의 평정관이 되었으며, 1715년에 잔과 결혼하여 애정과 존격의 반려자를 얻게 되었다. 이듬해 그는 백부의 뒤를 이어 법원장이 되었고, 그해에 학술원에 들어가 정치 내지 행정에 흥미를 가지고 활동하였으며, 물리학이라든가 생물학을 주로 연구하였다. 그러면서도 그가 처음으로 낸 중요한 작품은 당시의 유럽과 페르시아의 사호, 정치 풍속 등을 풍자적으로 논한 페르시아인의 편지 였다. 이 책은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나, 관변에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후 파리에 나가 많은 사람들과 사귀었으며, 1728년에는 프랑스 학술원에 들어가 불사의 40인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 법의 정신을 집필하기로 결심한 것은 이 무렵이다. 그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자. 곧 3년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 독일 등 유럽여행을 떠나, 각국의 제도와 관습을 둘러보았다. 특히 영국에 2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그곳의 법률,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많이 연구한 듯하다. 1731년 많은 자료를 가지고 라브레드에 돌아와, 그후부터 그곳에 자리잡고 20년동안에 걸쳐 법의 정신을 저술한다.
1734년에 로마의 흥망 원인론을 발표하였다. 이 책은 로마가 공화제로부터 제국을 거쳐 멸망하기까지의 과정을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 에 따라 논술한 것인데, 훗날 법의 정신의 자료가 된다. 1784년 제네바에서 익명으로 어머니 없이 낳은 자식 이라는 표어를 붙여 출판된 법의 정신은 굉장한 성공을 거두어, 출판된지 2년도 안되어 20판을 냈다고 한다. 법의 정신 은 일생 동안의 연구결과를 모은 것인데, 법률학의 고전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학, 정치학, 지리학 등의 고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법학연구에 처음으로 역사법학적, 비교법학적, 사회학적인 방법을 적용하여 법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3권분립론, 입헌군주론 등을 전개했다. 한편으로 그는 전제주의를 공격하면서, 법은 각국의 제반환경에 적합한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정치사상에 카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책에 대한 비난도 있어서, 그는 법의 정신의 보호를 쓰기도 했는데 한때는 금서로 취급된 일도 있었다. 몽테스키외의 사행활에 관하여 알려진 것은 극히 적은데, 이는 그가 작품 이외의 것이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귀족출신으로, 지극히 귀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자 재사 였다는 점은 확실하다.
시대적 배경과 계몽사상가
시대적 배경, 몽테스키외가 생존했던 당시는 '짐은 국가다'라고 호언하며 절대군주제를 확립하였던 루이 14세의 시대였다. 따라서 절대군주사사이 널리 퍼져 있던 시대였다. 그런데 루이 14세의 권력이 절정에 달하자 프로테스탄트를 중심으로 하여 각 분야에서 반감의 기운에 고조되었다. 여기에 프랑스에서도 정치적 자유주의 사상이 싹트게 되었는데, 이것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영국의 시민사회 사상이었다. 영국은 일찍이 산업혁명을 완성하여 근대의 자본주의적 사회형태를 이룩하고, 그에 맞는 시민사회의 철학을 마련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우선 프랑스의 계몽사상가들은 백과전서를 편찬하고 인간의 능력을 신장시킨 다음, 합리적인 정치력으로 그것을 공공의 복리에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의 자연법, 민주주권 또는 대의제 사상이 프랑스에 도입되어 프랑스의 합리주의적 경향으로 이론화, 일반화, 체계화되었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은 이러한 사상적 배경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계몽사상가, 18세기 계몽사상가들은 17세기의 지적 유산, 예컨대 베이컨과 데카르트, 시피노자, 특히 로크와 뉴턴의 사상 및 자연법, 자연권, 및 사회계약설을 널리 전달, 보급하였다. 그리하여 18세기는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더 뚜렷하게 권위와 전통에 대해서 회의를 나타낸 시기였다. 반면 인간이성의 능력을 확신하고 과학지식의 발달을 낙관하면서 인류문명의 진보를 기대하였던 시대였다. 계몽사상가들은 철학자가 아니라. 보급자, 혹은 평론가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반대중이 읽지 않는 고전 을 읽고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그 내용을 풀어 설며아였다. 그들은 일차적으로 문인이었으며, 자유기고가. 혹은 삼류문인 내지 저널리스트들이었다. 그들은 대중을 위해 글을 썼으며 사회악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창하는 계몽운동가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있어서의 행복의 성취를 믿었으며, 이성의 힘을 통해서 그것이 가능하고 주장하였다. 계몽사상가들은 영국의 선진학문과 발달된 과학을 프랑스에 도입해서 프랑스 또는 유럽에 보급했다. 이로인해 프랑스는 지적인 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있었다. 파리에서는 문인, 학자, 혹은 사상가들이 부유층 부인들의 살롱에 모여 재치있는 토론을 교환하였다. 살롱이란 주로 개인저택에서 열리는 저녁식사를 겸한 사교적 집회로서 거기서 사회비평뿐만 아니라 과학, 철학, 경제, 종교 등이 토론된다. 어떤 계몽사상가보다 전통에 항거하고 사회악을 과감히 비판한 사람은 파리 출신의 볼테르 였다. 그러나 그는 독자적인 정치이론이 없었던 반면, 귀족 출신 몽테스키외는 체계적인 정치이론가였다.
법의 정신의 내용
이 책은 총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자들에 따라 2분법, 3분법 등 내용상 구분이 각각 다른데, 여기서는 몽테스키위 자신이 선호한 6분법으로 분석해 본다.
1. 제1부(1-8편), 각 정체를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 으로 나누고 각 정체의 본성과 원리를 제시한다. 공화정이란 국민 전체 혹은 국민 일부가 주권을 갖는 정체이고, 군주정은 한 사람의 왕이 통치하지만 정해진 법에 의거해서 통치하는 정체이며, 전제정 은 통치자 자신의 뜻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는 정체를 말한다. 각 정체는 나름대로 본성을 갖는데, 특정한 공화국에서 사람들은 덕성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어떤 전제국가에서는 사람들이 공포심을 갖고 복종하는 본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처럼 각 정체는 제각기 덕, 명예, 공포가 그원리로 되어 있는데, 물론 그는 이중에서 공화제를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 제2부(9-13편), 정치적 자유의 실현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은 정체의 부패가 정치적 자유의 상실과 전체로의 타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가는 정치적 자유를 실현시킬 사명을 가진다. 여기서는 제각기 각 정체의 부패요인도 검토한다. 즉 군주제는 군주가 만사를 자기 손아귀에 넣고 국가를 수도로, 수도를 궁정으로, 궁정을 자기 한몸에 집중시키는 데서 방향을 잘못 잡게 된다 고 한다. 전제정체는 그 본질상 원리가 부패되고, 민주적 공화제는 단순히 사람들이 극단적인 평등정신을 가지고, 각자가 자기에게 명령할 사람으로 선택한 사람과 평등하게 되려고 할 때 그 원리는 부패한다 고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 처럼 어떠한 정체도 제각기 부패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이 위험을 회피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영국식의 3권분립주의인 것을 입증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제11편 6장, 영국의 헌제에 관하여 에 그 유명한 권력분립의 원리가 제시되어 있는데, 그의 견해를 직접 옮겨 본다.
각 국가에는 세 종류의 권력이 있는데 입법권-만민법에 속하는 집행권, 시민법에 속하는 집행권이 그것이다. 첫째의 권력에 의해 군주는 일시적 또는 항구적인 법률을 제정하고, 이미 정해진 법률을 수정 또는 폐지한다. 둘 의 권력에 의해 전쟁중니 당사자끼리 화해할 수 있고 전쟁을 선언할 수도 있다. 또한 외교관을 교환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침략을 예방한다. 세번째 권력에 의해 죄를 처벌하고 개인의 소송사건을 심판한다. 우리는 두번 것을 집행권 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를 재판권 이라 부른다
3. 제3부(제14-19편), 각 국의 법과 각국의 풍토와의 관계, 정치적 자유가 부정된 노예들에 관한 고찰이다. 그는 그 나라 토지의 성질이 법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치며 좋은 풍속이 있는 곳의 법은 간단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4. 제4부(제20-23편), 4부의 중심문제는 국가의 번영과 국부의 문제다. 상업과 법과의 관계에서 상업은 본질적으로 서로간의 거래를 통해 평화를 이끌어내는 역활을 담당하기도 하나, 상업의 결과로 인한 부는 사치와 낭비로 연결될 수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상업의 발전은 화폐의 사용을 권장하게 되는데, 화폐는 모든 상품의 가치를 대표하는 표시다. 4부 끝에서 당시 감소하고 있던 인구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5. 제5부(제24-26편), 5부의 중심문제는 종교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느 우선 기독교를 중심으로 고찰하고 있는데, 인간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각 민족이 가장 훌륭한 정치법과 시민법을 가질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종교는 대체로 법의 역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시민법은 사이비종교를 법규범을 통해 규제할 수 있고, 종교법은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가 잘못된 경우에 가하는 제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보다 실제적인 방법으로 그는 성직자들이 가진 재산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6. 제6부(제27-31편), 6부에서는 게르만에서 기원되어 게르만적인 자유를 갖춘 프랑스 군주제 생성사가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까지 추구된다. 제 29편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와 목적, 즉 법의 정신이 무엇이고, 이 정신을 어떻게 살려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쓴것은 오로지 내가 다음에 말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즉 중용 의 정신이 입법자의 정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선은 도덕적 선과 같이 언제나 두 극단 사이에 있다. 이렇게 법을 만드는 사람의 중용 의 정신이 법의 핵심적인 정신임을 밝혀놓고 나서 법이 갖추어야 할 특성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법은 우선 어린이 암기할 정도로 간단해야 하며 문제는 쉬워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해야 하며, 너무 정교해서도 안된다는점을 강조한고 있다.
정치사적 의의
실명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쓴 이 책이 제네바에서 출판되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서 미국 헌법을 비롯해 영국의 정치사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몽테스키외의 이론은 내부적 모순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는 노예제와 농노제를 비난하면서도, 유색인종이 인간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점은 부인한다. 그는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면서도 귀족의 특권과 관직의 세습을 받아들인다. 또한 단순하고 명백한 원리에 거슬러올라가 거기서 어떤 필연적인 결과를 연역하려고 하였음은 데카르트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반면에 영국사상의 영향을 받아 겸험주의적인 요소를 섞어 쓰고 있는 방법론상의 혼란을 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적 혼란은 오히려 이 책에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몽테시크외의 특색은 무엇보다도 다면적 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몽케스키외 속에는 고대인과 근대인이, 동시대인과 미래인이 함께 있다. 그리고 보수주의자, 귀조주의자, 민주주의자, 자연철학자, 합리주의자가 함께 있다고 할 만큼 다면적인 특색을 지닌 법의 정신 은 다종다양한 법률과 제도에 부여한 다면적 평가와 개혁지침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자신은 귀족 출신이었으나 전제주의를 열심히 비판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비판은 곧 이어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을 성취시킨 혁명사상을 배양하는 역사적 역활을 담당하였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기의 혁명가들은 이 사상을 사실상 절대군주제 비판의 무기로 원용했던 것이다. 그가 시민적 자유를 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건을 검토하고 권력분립의 사상을 만들어냈다는 유명한 사실은, 그로 하여금 공법원리의 건설자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 후세 입법정체의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다 나아가 미국 독립 운동의 이념적 지주가 되어 민주주의적 조직에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법의 정신을 서술함에 극서을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시간적으로 로마 이래의 역사적 배역을 기초로 하고 공간적 으로는 널리 여러 나라의 지세, 기후, 종교 기타 사회사상의 배경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비교법학이나 사회학, 역사철학에 미친 영향또한 지대하다. 흥미있는 것은 당시 그가 한국에 관하여 표현한, '한국의 남쪽 사람들은 북쪽 사람들보다 용감하지 못하다'라든가. 한국의 기후가 어떻다든가 라는 등의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