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3장 서양사상
고백록(Confessions) -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 - 430)
루소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참회록과 함께 서양의 3대 참회록으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이 고백록은 그의 젊은 날의 지적 방황과 종교적 모색을 기록한 책이다. 즉 고백록은 중세 유럽이 기독교적인 사상의 틀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그 자신의 자서전이자, 한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는 어둠과 빛, 선과 악, 육체와 영혼의 처절한 갈등이 표현이라 할 수 있다.한 구도자가 보여주는 영계와의 대화가 오늘에 사는 우리의 메마른 영혼에 깊은 울림을 줄것이다.
생애와 작품활동
게르만 민족의 이동이 시작된 로마 말기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부철학의 집대성자로 스토아 학파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중세기독교 최대의 사상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그의 저서 고백록 속에 잘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 로마의 속국이던 북아프리카의 루미디아 지금의 알제리에서 세금징수관이자 마니교 신자인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시, 암송, 웅변 등에 소질을 보이기도했고, 독학으로 라틴문학, 특히 베르길리우스를 애독했으며 수사학에도 뛰어났다. 청년시절에는 타락한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19세 때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철학에 눈을 떴다. 그리하여 참지혜를 구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트교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의 소박한 문체나 카톨릭 교회의 보수성에 만족하지 못하여,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교의 합리주의에 이끌렸다. 그뒤 9년 이상 마니교를 접하면서 마니교적인 미학서 '미와 적합'을 썼다. 그러나 383년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 학파를 접하고 마니교를 결별했으며, 이듬해에는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 386년 플로티노스 등의 신플라톤주의 책을 읽고 불변의 빛을 보는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다. 또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그해에 크리스트교로 개종하였다.
개종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밀라노 교외의 산장에서 토론과 명상을 하면서 독어론 등 철학적 대화편을 저술하였다. 거기서 성서의 시편 제4편을 읽고 받은 감동은 그의 정신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388년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친구들과 수도원 생활을 하는 한편, 391년 히포의 주교 발레리우스의 요청에 따라 사제가 되었고, 396년 발레리우스가 죽자 히포 주교가 되었다. 민중들과의 접촉을 통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색은 성서의 문구 속에서 신의 말을 찾아내어 전달하려고 하는 해석학적인 방법을 취함으로써 더욱 깊어졌갔다. 397년 부터 고백록을 쓰기 시작하여 3년만에 끝내고, 400년경부터는 삼위일체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어 426년에는 신국론을 완성했다. 그는 34년간이나 주교직을 지켜나가면서 크리스트교 사상의 형성에도 큰 역활을 하였다. 430년 반달족이 히포를 공격하였는데 그로부터 3개월 후 76세를 읽로 사망하였으나, 반달족은 3개월동안 히포를 유린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도서관과 성당은 손대지 않았다 한다.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이 중세의 학문과 사상을 압도하여 철학이나 자연과학 등 기타 학문은 그 시녀역활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세신학의 발전의 주체세력은 파리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교수들이었으므로, 신학은 학교, 스콜라 사람들의 학문은 스콜라티스즘이란 명칭이 붙었다. 중세신학의 발전은 크게 2분될 수 있는데 1. 예수사후 8세기까지 신부들에 의해 발전된 교부철학과 2. 9세기에서 15세기까지 발전된 스콜라 철학을 들수 있다.
교부철학, 교부철학은 주로 크리스트 교의 정통교리를 하나로 체계화하여 교회의 권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그는 크리스트교의 신앙을 그리스의 이성으로 설명하기 위해 초월적인 이데아 사상을 강조한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믿기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다는 말로써 신앙과 이성의 타협을 시도하였다. 그의 크리스트교 사상이 잘 반영된 신국론에서 그는 신국, 즉 내세는 지상의 세속적 역사과정 속에 투영된 것으로서, 인간역사의 과정이 신의 섭리의 실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인간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신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교회는 인간구원을 위한 유일한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스콜라 철학, 스톨라 철학은 교회의 교리철학으로서 중세철학과 학문의 절정을 이룬 중세의 종합적 세계관이다. 대표자인 토마스아퀴나스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테렐스에 더 가까운 수정된 실제론을 주장하여, 보편적 존재는 영원불변의 실재성을 갖지만 본질로서 개체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최종적인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는 대표적 저술인 신학대전에서 스콜라 철학의 정수를 제시하였는데, 1. 자기를 부정하는 학설을 제시하고 2.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학설을 제시하며 3. 자기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고 4. 자기자신이 의존하는 논거를 제시하며 5. 최초에 지적한 이론을 논박하는 독특한 논리전개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관찰된 사실에 입각하지 않는 순수한 합리적인 인간사고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지적 성취를 이루었다.
고백록의 내용
저자가 46세때 지은 크리스트교로 개종하고 영세를 받은 지 12년 만에 과거의 생활을 반성하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한편, 외롭고 선한 신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전 13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1권에서 9권까지는 주로 어머니에 관한 내용이고, 10권은 자기반성을 담은 자서전적인 부분이며, 11-13권까지는 창세기 앞부분의 뜻을 밝히고 자기의 종교적 입장을 선명히 나타낸다. 제1권은 처음에 신을 찬미하여 하느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평안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영원한 평안을 구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뒤 유년, 소년기에 저지른 죄를 상기하여 화를 낸일, 시샘한일 학교에 들어가서도 노는데만 열중하여 학업에 태만했던 일들을 자책한다. 제 2권은 청년기에 들어가서 사랑하고 사랑받기만을 좋아하여 방탕한 생활에 몸을 맡긴 일을 후회한다. 제 3권에서는 카르타고로 유학하여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서도 도시의 휴혹에 빠져 연극에 열중하고 또한 불손한 연애관계를 가졌으며, 19세때에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철학적 욕구가 생겼으나 성서문체의 간소함과 철학적 내용의 빈약함에 실망한 나머지 당시 유행하던 마니교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제4권은 그로부터 9년 동안이나 마니교의 미혹에 빠져 있었고, 또한 점성술을 믿었으나 지기가 마니교로 유혹한 친구가 죽기 직전에 회개한 것을 보고 크게 감동했음을 말한다. 제 5권은 기대하고 있던 마니교의 유명한 학자 파우스투스를 만나자 실망하고, 소위 마니교의 합리적 세계관이라는 것도 실은 미숙한 청년의 상상을 만족시키는 거짓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열의를 잃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카르타고에서 로마로 건너가고, 다시 밀라노에서 변론술 교사가 되었으며,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사교를 버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제6권은 암부로시우스의 가르침을 따라 점점 카톨릭 신앙을 이해하게 됨에 따라, 바른 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다시 예전의 죄에 빠져서 끊임없이 죽음과 심판의 공포에 떨고 있었음을 탄식한다. 제7권은 성년기로 들어가. 마니교의 미망에서 해방되고서도 여전히 신을 형체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유의지가 죄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카톨릭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못했다. 또한 신플라톤 학파의 책을 읽고 비형체적인 것을 보는 눈이 열려서, 로고스의 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겸허함을 몰랐고, 그리스도가 신과 인간의 중개자임을 깨닫지 못하다가 성서, 특히 바울의 편지을 읽고 의문이 일소되었음을 말한다. 제8권은 이미 지적으로는 해결을 보았으며서도 낡은 습관에 사로잡혀서 쉽사리 결심하지 못했으나 모든 것을 버리고 신에게 몸을 바친 후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변화함에 따라 낡은 의지와 새 의지와의 투쟁이 최고조에 이른다. 마침내 '밀라노 정원에서 펴서 읽어라.' 라는 귀절의 아이들 노래소리를 하늘의 소리로 듣고 성서를 펼쳐서 읽은 후 회개한 과정을 말한다. 제9권은 교직에서 물러나 밀라노 교회의 한 산장에서 한가로이 지내면서 영세준비를 한 뒤 암부로시우스로부터 영세를 받고. 어머니와 같이 아프리카로 가려 했으나 티베리스 강 입구에서 어머니와 사별하게 되는데. 어머니 모니카의 일생이 가장 아름답게묘사된다. 자기 자식에 대한 배려와 감화가 절대적인 어머니로부터 젖과 함께 흡수한 신앙이 새로운 사람 을 길러낸 것이고, 그의 과거생활에 대한 고백이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끝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제10권은 집필 당시의 자기반성으로, 먼저 신과 복된 삶을 찾아 감각적인 것으로 부터 이성적인 것으로 올라가는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 본다.
제 11권은 '천지창조 이전에 신은 무엇을 하였는 가.'라는 의문은 도외시 하고, 현대철학에서도 특히 주목되고 있는 정밀한 시간론을 전개하고 있다. 제 12권은 태초에 창조된 천지는 무엇을 뜻하는가를 밝히고 있다. 제13권은 천지창조 가사를 비유적으로 해석하고, 신이 교회에서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는 일의 상징을 인정하고 신에게 영원한 안식을 구함으로써 고백을 끝맺는다.
종교사적 의의
그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어머니와 마니교를 신봉하는 아버지의 신앙적 갈등 속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의 방황 속에서 자신의 철학문제인 선과 악의 세계를 해결해보려고 하였으나 한계상황에 무딪치고, 마침내는 이성에 의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기보다는 먼저 믿고 알 수 있는 신앙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앙고백, 이처럼 아구스티누의 고백론은 그가 바깥 생활로부터 경험했던 모든 불안한 생활로 부터 해방된어 종교적인 평화와 확신으로 축복받기까지 솔직한 그의 체험담을 적은 기록이다. 일종의 자서전적인 본서는 시종일관 선하고 자비로운 하느님에게 과거에 지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완전하게 하느님에게로 돌아와서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조망하게 된 것이다.
신국론, 한편 그의 크리스트교 사상은 중세 사상 전개에 깊은 영향을 미친 신국론 에 잘나타나 있다. 이 책은 하늘나라와 땅의 나라를 설명한 것으로, 천국은 신국으로 부른다. 전 22권으로 분류된 신국은 제1권부터 10권까지는 주로 이교도에 대한 반박이고, 11권이하는 신국와 지국의 관계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역사적으로 서술했다. 신국의 일관된 내용은 인간역사의 과정이 신의 섭리임을 주장한 것으로, 교회를 통해 신국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교회는 인간구원의 유일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신국론 에 나타난 그의 사상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 사상 : 아구스투스는 그리스 사상 특히 플라톤사상 을 원용하여 크리스트교의 신앙을 설명한 점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다. 인간은 태어날 때 자유의지를 부여 받았는데, 이를 남용함으로써 원죄를 짓게 되었다는 원죄사상을 폈다. 그 예로,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따먹은 금단의 열매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을 들었는데, 일시에 무너지는 로마를 인간의 원죄의 결과로 보았다. 한편 아우구스투스의 신관은 전지 전능한 최고의 신이다. 인간이 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통해서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가장 가난한 신분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쫓아 사는 것만이 현세의 고통과 고난을 극복하고 현세적 승리를 이룬다는 구원사상 을 피력했다. 그의 윤리사상에 있어서는 믿음, 사랑, 소망 을 크리스트교의 3원덕으로 삼고, 플라톤의 4주덕 지혜, 용기, 절제, 정의를 조화시켜 7주덕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신은 오직 하나의 신의 3가지 모습이라는 '3위1체'설을 주장했다. 신국론 에 담긴 위와 같은 사상은 크리스트교의 세계관을 체계화 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고, 그의 또다른 저서 고백론은 신에 대한 감사와 찬송을 서술한 영혼의 책으로, 중세는 물론 근세에 와서도 영혼을 염려하는 내적 생활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어왔다. 이처럼 그의 체험에 바탕을둔 고백론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주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은 당신 품에서 휴식을 취할때까지 편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