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出戶, 知天下, 不窺爽,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시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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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일곱째 장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하늘 아래를 알고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길을 본다. 그것에 나가면 멀어지고, 그것을 알수록 적어진다. 이런 까닭에 성인은 다니지 않아도 알고, 드러내지 않아도 이름이 있고, 하지 않아도 이루어진다.
해석
현대에는 컴퓨터가 있어서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집안에서 세계의 일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노자가 이런 컴퓨터의 탄생을 예언한 것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있다. 그럼 노자가 한 말은 무엇이겠는가. 도대체 그 시대에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하늘 아래를 안다고 자부할 수가 있는가. 혹시 노자는 우주인이 아닐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옛과 지금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슬플때 울고, 기쁠 때 웃고, 괴로울 때 괴로워하고, 즐거울 때 즐거워하는 것은 매양 같다. 왜 괴로운가. 그 큰 이유는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되면 집밖을 나가지 않아도 세상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근심하고 기뻐하고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세상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세상이 나갈 방향도 알 수 있게 된다. 즉 집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법칙은 더 쉽다. 그것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 별의 움직임은 괴도가 있다. 이 괴도만 알면 하늘에 오늘 무슨 별자리가 뜰지를 알게 된다. 자연과 하나가 되면 하늘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창밖을 보지 않아도 오늘 어떤 별이 떳고, 하늘의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다.
이것은 대상의 파악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직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 아래를 알겠다고 돌아다니면 그 핵심에서 벗어나게되고, 하늘의 별자리를 알겠다고 우주의 별들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 더욱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대는 거울을 본 적이 있는가. 거울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보아라.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보라. 그의 눈을 삼십분 정도 들여도 보고 있어라. 그럼 무엇인가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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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문밖을 나가지 않고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며, 창밖을 내다보지 않고도 하늘의 이법을 알 수 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적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 수 있으며, 보지 않고도 이름 지울 수 있으며 작위 하지 않고도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주
유: 들창, 창, 창문. 천도: 하늘의 이법, 자연의 원리.
해
성인은 문밖에 나가지 않고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창틈으로 내다보는 일이 없어도 하늘의 이법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만물이 만물로서 그렇게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은 그것의 배후에 스며 있는 자연의 이법 때문이다. 성인은 이 자연의 이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 자연의 이법은 사물을 관찰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깨우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신비한 직관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가지 않고도 알고, 보지 않고도 이름지을 수 있으며, 하지 않고도 모든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원래 지식과 지혜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인간의 관심이 사물의 피상적 겉모습 쪽으로 쏠리면 쏠릴수록 참다운 지혜의 세계와는 담을 쌓게 된다는 것이 노자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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