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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 - 윤영환
한가지 계명만 아는 동그란 건반에
피를 담은 호스가 감겨있다
사정없이 찔러대는 두 개의 굵은 바늘이 만드는
동맥과 정맥의 하모니
짜릿한 피의 흐름은 엄지발가락을 돌아
다시 심장으로 올라오고
가끔 하늘을 향해 뻗치는 솜털들과
육신의 경련을 아랑곳하지 않는
저 기계의 냉정함에 몸을 내맡긴다
살아야 하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니까
힘겨운 네 시간에 이틀을 살고
이미 벌집이 된 팔을 들고 새벽바람 맞으며
모레도 기계 옆에 누워 네 시간을 온전히 바치겠지
살아야 하니까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하니까
이어폰에서 흐르는 맑은 피아도 소리에 눈을 감으면
또르르 눈물이 흐르고 지난날을 후회로 몰아넣는다
자신을 스스로 구속한 무딤에 무너진 나약한 육신
무심히 돌아가는 무정한 저 기계와
유기체로 보내는 네 시간은 억울하다
강제로 들어오는 저 피는 내가 보낸 피
하지만 돌아올 땐
광견병에 걸린 유기견에게 피를 받는 느낌이다
스스로 내어준 위대한 나의 자유는
저 호스를 따라 사정없이 흘러간다
스르르 지쳐 잠이 들 때
저 호스 어느 보이지 않는 곳에
누군가 구멍을 내준다면 고요히 참 잘 잘 텐데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약속을 누군가라도 해준다면
찰나를 행복으로 비겁하게 장식하며 마저 살리라
2023. 01.03 0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