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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거장
기차역을 향해 도심을 걷고 있다
열차 시간에 맞추어 가야만 한다
이 길을 같이 걷는 사람들은 그 어떠한 원망도 없었다
다들 의무인 양 운명인 양 같이 걸어왔다
보도블록 아래로 흐르는 묘한 기운
하나의 생명체로 역사를 쓰며 살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영혼들
어디서 왔는지 모른 체 심장 뛰다 가버린 내겐 의미 없는 박동들
그들의 숨소리에 보도블록 틈새로 흙이 튄다
도로를 모조리 뒤집어 일으켜 세우고 싶다
무엇을 위해 살다 갔는지 내가 왜 알아야 하는지 묻고 싶다
지친 사람들은 의자 보란 듯 대기실 바닥에 눕는다
굳은살과 주름들은 순박한 노동의 나날을 노래하고
십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옷가지들을 걸치고 있다
낡은 사진 속 학사모 쓴 자식들에게 입 맞추며 우는 할아버지
누군가를 기다리듯 대기실 문을 두리번거리며 애태우는 중년의 남성
도망치려다 묶여와 내동댕이쳐진 아이를 업은 엄마
차례로 화물칸에 올라타며 떠났고 내 앞에서 정원이 차버렸다
다음 열차까지 시간을 벌었다는 안도감도 잠시,
차표는 내게 답을 준다
지니고 있던 것은 번호표
내 이름은 없다
나 역시 무명의 영혼으로 가는가
화물열차 사라진 건너편 정거장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열차가 서서히 출발하고 있다
열차를 치장한 리본 조각들, 가지런한 가르마의 양복 가슴 금배지,
주변의 환한 미소들의 배웅, 역장은 수기로 실록을 쓰며,
관악대의 웅장한 소리를 뒤로 금속 마찰음도 없이 열차는 미끄러진다
저들을 위해 노동하다 끌려온 번호표들은
다들 의무인 양 운명인 양 화물칸에 올라탄다
이 정거장에 내려오면 그간 떠들었던 종착역을 묻지 않는다
꺼내 보고 싶다
저들의 심장도 붉은지
윤영환風磬 : 20060314 17:40 詩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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