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렇고 (세 살 버릇)
가끔 나 살아온 행적을 뒤지다 보면 거짓말의 달인 같기도 하고, 이중인격자의 표본 같기도 하고, 핑계, 두 얼굴, 무능력자......
그건 그렇고...
남에게 해주는 좋은 말 만큼, 즉 내가 뱉어낸 말처럼 살고 있나? 그냥 얼버무려, 대충 흐지부지...... 늘 “아니면 말고” 라는 식이지. 요즘 부쩍 추악해져가는 심신.
추스르자. 바로잡자.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바닥이 필요하다. 하루 내내 늘 정화하자. 내가 내게 욕 퍼붓는 일 없도록......
그럼 뭐부터 하면 되나? 그렇게 해왔어도 요 모양 요 꼴인데 뭘 더하나? 생긴 대로 살긴 싫고, 그렇다고 확! 바꿔 사는 것도 사기 치는 것 같고......
뭐 꿈? 희망? 놀고 있네. 꼭 그따위 말 뱉는 놈들이 배 까보면 구더기밖에 없더라. 그나마 종교로 세뇌 불가한 대가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내겐 중세를 벗어난 끝없는 상상력이 있잖은가. 토닥여본다.
그건 그렇고...
꼬박 이틀은 꿈적도 않고 누워있었다. 요즘 시체처럼 식음을 끊고 눕는 일이 잦아졌다. 2층 아저씨가 수도요금을 받으러 온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우편함 뒤지러 갔다 오다가 부엌문에 붙어있는 수도세 내라는 쪽지보고 알았다. 그래도 사람소리엔 후다닥 잘 깼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힘들다.
그건 그렇고...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이 속담을 믿는다. 나의 나쁜 습관이 현실 속에서 무심코 드러날 때 뜨끔뜨끔 놀라기 때문이다. 나는 저 세 살 버릇을 고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끔 세 살 때 버릇이 뭐가 있었나? 떠올리며 고민하는 덜떨어진 뇌들을 보며 유전자의 다양성은 과학도 못 푼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한 열흘 만에 설거지를 하는데 부엌바닥에 물이 안 빠진다. 그래서 봤더니 머리카락 한 움큼이 수챗구멍을 막고 있지 않나. 나날이 밝아지는 찬란한 마빡이 불쌍타. 그래도 아버지의 유산 아닌가. 스킨도 발라주며 문화재보호에 힘쓰자.
그건 그렇고...
며칠 전에 냉동고를 뒤적이다 생닭을 한 마리 발견했는데 “심봤다!” 외치며 솥에다 집어넣고 불을 댕겼다. 그랬으면 좀 살펴야지. 딴 짓하다가 삶은 닭이 군 닭이 돼버렸다. 너무하잖은가? 죽은 놈을 또 삶아 죽이고, 또 구워 죽이는 그런 잔악무도한 심성이 내게 있다니...... 그렇다. 나는 다시 마른 솥에 물을 붓고 쌀을 한 줌 넣고 또 죽였던 것이다. 다행히 누룽지 되기 전에 닭을 구출할 수 있었다. 문제는 타버린 재들을 어떻게 걷어 내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물을 조금 더 붓고 휘휘 저으니 재들이 둥둥 떴다. “역시 난 똑똑해!” 로 사이코드라마는 끝났다.
그건 그렇고...
취중이라 쓰는 게 귀찮다. 예전엔 이 “그건 그렇고...”로 연재를 한 번 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쓰다 보니 소재가 없더란 말이지.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것들이 소재였는데 사는 게 매일 똑같으니 내용이 그게 그거 거든. 하지만 나는 살아가는 시시콜콜한 것들이 불후의 명작들임을 안다. 모든 문학이 살아가는 이야기 아니던가. 간단히 말해 낚시 중이란 거다. 쓰다보면 걸리는, 마음을 툭! 치는 문장이 있으니 가져다 쓰면 될 것이다. 잡소리든 뭐든 쓰면 줄줄이 사탕인데 문제는 안 쓰니 문제란 거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세 살 버릇인 게다.
2008.10.29 05:27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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