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 ‘돌아이 3’이다. 그때는 성룡과 이소룡이 싸우면 누가 이기느냐가 심각한 토론 주제였는데 아무래도 이소룡이 근육도 멋있고 날래며 순식간에 나쁜 놈들을 해치우니 이소룡이 우세였던 것 같다. 술이나 먹고 비틀거리는 성룡의 익살취권은 멋있다기보다는 웃긴 쪽에 가까웠다. ‘돌아이’ 시리즈는 전영록이 주연했던 영화였고 입고 나온 옷도 이소룡의 유명한 노란색 트레이닝복이었다. 학교 앞 문구점 책받침도 이소룡 사진이 있는 것이 더 잘 팔렸다. 언젠가 ‘용쟁호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 속 한 장면의 브로마이드를 사서 집에 걸어 놨는데 엄니가 귀신같다면서 찢어 버린 적이 있었다. 결론은 없었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이소룡이 우세인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 쌍절곤도 한참 유행해서 팔꿈치나 이곳저곳이 멍투성이였다.
영웅 중심의 홍콩영화나 ‘장군의 아들’이 개봉하고 TV에선 조폭드라마가 유행하면서 영웅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줬다. 그런 흐름은 시들해졌고 사람들은 보다 자극적이고 상상력을 충분히 동원 시켜주는 영화들을 찾았다. 할리우드영화가 영화시장을 뒤흔들었지만 한국영화가 유명영화제에서 수상하는 횟수가 늘면서 한국영화에 대해 관심을 두기도 했다. 요즘은 영화들이 그게 그거고 억지로 감동을 찾으려는, 즉 관객이 스스로 감동을 안 해주면 미안할 정도의 영화들이 많다. 의미 없는 잔인함으로 자극을 주는 모호한 영화들도 보인다.
그건 그렇고,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발리우드가 보였다. 인도영화는 로망이다. 할리우드의 매트릭스나 반지의 제왕처럼 늘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다. 로맨스의 대표적인 예가 왕자와 공주 이야기다. 대부분 나쁜 놈(괴물, 악인, 마법사, 불을 뿜는 용)이 공주를 납치한다. 왕자는 공주를 구하기 위해 코딱지만 한 방패로 용의 불을 막으며 성탑에 갇혀 있는 공주를 구하고 뽀뽀하고 끝난다. 그 뒤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형식이다. 로망의 스토리가 대부분 이지경인 이유는 문자와 문자로 된 문학을 향유하는 계급층이 왕족, 귀족이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어가 그들을 만족시켜야 소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조선시대나 들어와야 서민계층에 문자가 보급 됐다. 시민혁명 등 민중의 힘이 왕권을 향하고 평등과 자유라는 개념이 확대 되면서 로맨스의 주인공들은 왕자나 공주 대신 천민이나 흔한 이웃들이 등장하게 된다. 춘향전, 홍길동전 등 지배계급에 대한 부조리를 고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불행을 정의로움으로 치유해주는 대리만족형 소설들은 천민이 쓴 것이아닌 양반이 쓴 것이다. 사형감이라 대부분 작자미상이다. 허균의 능지처참은 소설하나로 처해진 형벌은 아니지만 권력의 하향은 왕권위협이었다.
그건 그렇고,
구닥다리 스토리, 뻔한 이야기의 로망이 21세기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 슈퍼맨이나 아이언맨 등의 ‘맨’들, 아바타, 글래디에이터, 해리포터 등은 모두 로망이다. 할리우드는 이 로망을 철저하게 현대기술로 치장해서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런 영화는 우리가 영화가 상영되기 전부터 행복한 결말로 끝날 것을 알고 본다. 당연히 왕자는 공주를 구하고 행복하게 대대손손 잘 살아야하듯이 할리우드 흥행 주인공들은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악인을 물리쳐 인류평화에 기여하는 단순한 로망이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혹시나 어떻게 될까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이용한 상술이다. 이미 행복을 전제로 영화관에 입장하는 이유는 불안해하기 싫기 때문이다. 어차피 행복해지지만 그 과정에 나오는 액션과 무기들 특수촬영을 즐기기 위함이다.
주인공이 죽더라도 평화는 온다. 나 하나 목숨을 바쳐서라도 세계에 평화가 온다면 기꺼이 죽는 주인공을 보고 관객은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는다. 이미 죽을 것이 암시 되어 있고 언제 죽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는 어떻게 싸우며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며 어떻게 평화를 보장하는가가 주 내용이다.
근래엔 관객들이 고루한 내용이 아닌 색다른 이야기를 찾고 있고 이런 힘에 작은 독립영화가 성공하는 모습도 보인다. 영화시장에 자신만의 색으로 뛰어드는 감독들이 늘고 있지만 양적으로 작품이 많아지는 것과 질적으로 성공하는 건 다르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들 중 하나가 관객과 일치했을 때 흥행이 되며 요즘 관객이 무엇을 요구하는 지도 참고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발리우드 역시 로망이다. 난리 벚꽃 장을 치러도 끝에는 행복하게 끝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특이하게도 음악과 춤 그리고 노래가 들어간다. 갑자기 군무가 나오기도 하는데 얼마나 연습들을 했는지 그 많은 사람들의 동작이 군인과 같다. 인도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 뮤지컬에 있다. 그들의 정서, 전통예술, 미, 생활 속 문화의식이 두루 포함 된다. 지루하다면 지루한데 전 세계에서 그들만의 영화형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하고 싶다. 어떤 건 상영시간이 4시간 가까운 것도 있지만 대화나 플롯이 빠르게 진행 되서 졸리지는 않다. 여러 작품이 세계적으로 흥행됐고 이젠 할리우드가 직접 나서서 발리우드를 제작한다. 대여섯 편 본 것 같은데 아직 많이 남아있다. 옛날 홍콩영화처럼 어느 순간 질리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는데 중세 로망의 스토리는 수천 년 지난 오늘도 효과가 있잖은가?
그건 그렇고,
스릴러, 공포, 범죄, SF, 멜로, 드라마 등 많은 갈래가 있다. 요즘은 대부분 한 갈래가 아니라 여러 갈래를 섞어 만든다. 공포감도 주고 긴장, 사랑, 코미디까지 들어가다 보니 개념 없는 영화가 되기도 한다. 며칠 전 ‘이끼’라는 영화를 봤는데 만족스럽다. 그 뒤로 ‘윈터스 본(Winter's Bone)’을 봤는데 긴장감의 흐름이 이끼와 흡사하다. 영화가 끝나고 멍하니 생각하게 되는 건 중세 로망의 뻔한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결말이 궁금한 영화들이 영화 같고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추천하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는데 ‘블라인드 (Blind : 2007)'라는 영화다. 영화 전체가 뮤직비디오다. 선율과 영상이 잘 어우러진 말 그대로 작품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충격적인 결말 이후 참 사랑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 참 감동적인 영화다.
그건 그렇고,
영화든 소설이든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해도 다큐멘터리나 논픽션이 붙지 않는 한 허구를 전제로 한다. 소설에 대해 역사적 사실 관계를 따지는 모습은 보기 좋지 않다. 불과 1분전의 일도 정확히 영화로 소설로 구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다큐멘터리는 1분 1초를 계속 찍는 것이고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그나마(?) 적합하다. 왜냐하면 CCTV가 아닌 이상 다큐멘터리도 영화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보여주고 싶은 영상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잘 선택하고 즐기면 된다. 그러나 제작자가 아닌 독자나 관객이 한 갈래만 고집해서 탐미하려 한다면 문화영양이 결핍된다. 되도록 다양한 모습들 새로운 것들을 찾는 것이 내게도 좋고 많은 작가들에게도 좋다.
그건 그렇고,
이 주에 탈고 분량이 늘고 있다. 앞으로 좀처럼 글을 쓸 짬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문화를 소비할 시간은 될 것 같지만 만들 시간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소비는 쉬워도 작품을 만들어 내는 건 어렵고 많은 시간을 요하기 때문이다. 매달릴만한 여건이 안 된다. 그래서 요새 머리가 좀 복잡하다.
2010.11.27 15:16 윤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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