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급해
분리수거 그물에 꽃꽂이 하듯 잘 꽂아진 막걸리 빈병이 한 이십여 개가 부엌문 앞 작은 골목에 있는데 며칠째 어떤 우라질 놈이 저걸 차고 가는 거요. 골목이래야 막다른 골목이고 대여섯 걸음이면 끝나는 골목인데 어떤 놈이 저걸 걷어차는지 궁금해 죽것더란 말요. 소리가 안 나는 걸 보면 은밀한 짓거리 같기도 하고 이웃들은 다들 좋은 분들이니 아닐 것이고 이틀째 골목에 널브러진 빈병 주워 담자니 울화통이 치미는 거요. 잠복을 해, 말어. 하다가 부스럭 소리를 듣고 잽싸고 조용하게 부엌문을 빵끗 열고 범인을 봤는디 고양이더란 말요. 뭐 어쩌것수. 근데 고양이가 막걸리를 좋아하나?
그건 그렇고...
회사를 예로 새로운 사업계획이나 업무가 기획되면 분위기가 싱숭생숭합니다. 갑자기 서류들이 밀려들고, 없던 서류양식들도 만들어야 하고, 신규업무를 담당할 사원들도 면접을 봐야 하고, 여러모로 뭔가 활력이 돋는 분위기 속에 허둥지둥하는 일이 생깁니다. 상부에서 지시는 떨어졌는데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오는 경우죠. 예전 상사였던 노부장님이 계셨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죠. 리스트를 만들고 가장 급히 처리해야 할 것들을 엄선해서 등급과 날짜를 기입하라 하셨죠. 1등급은 급히 서둘러야 하고 낮은 등급일수록 천천히 해도 되는 일들로 나누었고, 내 일정에 맞춰 업무종료 예정일을 써넣고 하나씩 처리하니 일사천리더란 말요.
살아가며 집을 장만하고 이사를 할 때나, 경조사가 벌어지거나, 뜬금 없는 소식에 내가 뭘 해야 할지 허둥댈 때도 차분히 넓게 보며 하나씩 행동에 옮기면 인상 쓸 일이나 예절머리 없다는 소리는 없을 겝니다.
요즘 이래저래 묶은 것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분류와 가짓수가 많아 자잘한 노동의 연속입니다. 몽땅 쓰레기통에 넣어버릴 수도 없고 시간은 오래 걸릴 듯하고... 쪽지도 사방팔방 책만 펼치면, 가방만 열면, 주머니만 뒤지면 곳곳에서 튀어 나오고, 포스트잇이랑 뒤엉켜 있는 지저분한 것들도 있고 개판이더란 말요. 평상시에 얼마나 정리하는 버릇이 없었으면 이지경이냔 말요. 건망증을 스스로 키우는 모습을 나를 통해 보게 되더란 거요.
그러나 깨달았으면 고치면 되는 거요. 급하게 고치면 부작용이 있으니 차근차근 고치면 되는 거요.
그건 그렇고...
요즘 잠을 설칩니다. 콜록거림도 잦고. 자다가 깨서는 두리번거리다 병든 달구새끼 마냥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드러눕고, 한 시간도 안 돼서 또 일어나고... 그러니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질 않아요. 잘 자는 것도 복이요. 신경 쓸 일은 많고 마음만 급해서 그러려니 하는 게죠.
혼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념 속에 그 소리와 그 냄새 그 푸름을 느끼고 싶은 지금이요.
그리움
나는 무엇을 그리워 하는가
어설픈 해변의 정취가 아닌
정작 보고 싶은 것은 나 아닌가
본다면
보고 난다면
어쩌겠는가
답을 바라지도 않으면서
답을 구하려는 어리석은 그리움 아니던가
아니,
이미 그 그리움의 답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무친다는 거짓부렁을 되씹지
어쩌겠는가
그립다는데.
2008.01.29 20:02 風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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