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위험성 그리고 문학
- 이해를 돕기 위해 학술용어와 설명은 배제한다.
“이렇게 하면 편리하고 간단한데 왜 복잡하고 긴 시간을 일하지?”
라는 질문이 지금의 문명을 가져왔다. 그리고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매우 좋은 현상이라 웃을 일만은 아니다.
동전과 지폐가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신용카드도 스마트폰에 넣고 다닌다. 재래시장도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처리되고 시골 5일 장정도 구경을 가야, 천 원짜리를 볼 수 있다. 초기에 컴퓨터는 덤프트럭 몇 대의 크기였다. 그것도 여러 사람이 붙어 일했지만 워낙 느려터지고 고장이 많았다. 왜냐면 그 큰 컴퓨터를 채우는 부품이 많았고 전기가 있어야 했고 진공관 관리도 힘들고 과열되기 쉬워 부품이 타는 등 하나하나 사람 손이 필요했다. 이 큰 컴퓨터를 지금 노트북이 대신하고 그마저 스마트폰으로 들어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컴퓨터는 0과 1밖에 모른다. 그것이 숫자와 문자를 표기하고 우리가 시험 볼 때 쓰는 OMR카드 그리고 바코드가 등장하고 지금은 편의점만 가도 권총 같은 기계로 스마트폰을 스캔하면 몽땅 처리된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마저 작은 칩으로 몸으로 들어가거나 입는 형태로 나왔다. 스마트폰도 귀찮다는 뜻이다. TV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지하철을 타고 꺼내 펼쳐 신문을 보듯 방송을 본다. 이것도 허공에 TV를 띄우는 홀로그램으로 대체한다. 즉, TV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IT 기술의 끝은 과연 있을까? 영화 같은가?
영화 ‘인터스텔라’는 많은 이슈를 남겼다. 시공간을 다룬 영화 중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 상대성 이론을 정밀히 보여줬고 시간과 중력에 대한 개념을 깊게 심었다. 우주로 갔던 아버지가 지구로 돌아왔으나 아버지는 그대론데 딸이 많이 늙어 삶을 정리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건 차치하고 영화 도중 로봇이 나온다. 이것이 GPT다.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지능’이다. 여러분은 요즘 관공서나 은행, 보험사 같은 곳에 스마트폰으로 문의할 때 챗봇이 등장하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그 챗봇이 멍청해 보이고 원하는 답변이 없기에 아예 처음부터 사람이 받는 ARS를 이용한다. 이 챗봇이 진화를 시작했다. 관공서와 기업에 AS를 담당하던 직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챗GPT다. 스스로 생각하는 지능이다. 그간 인간이 만들어낸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습득했고 대학 졸업논문 따위는 표절을 피해 바로 출력한다.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도 알아듣고 법적 소송도 불사한다. 2035년을 예상한 영화 ‘아이로봇’을 보면 GPT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뒤집힌다. 이젠 생각하는 기계가 현실로 왔다. 더 이상 영화가 아니다.
이미 사법고시를 통과했고 의사면허 시험도 통과했다. 그것도 장학생으로. 인류 탄생 이후 인간이 만든 모든 문서를 가지고 있고 사진을 찍어 들이대면 문서로 해독한다. 프랑스 유명 대학의 물리 문제는 물론 핵융합 과정은 껌이다. 프로그래머들이 쓰는 개발 언어를 모조리 이해한다. 따라서 게임개발업체나 앱개발업체는 돈 들여 프로그래머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 이젠 로봇과 AI가 산업을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 편리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따라서 로봇과 GPT에 세금을 부과해 인류가 편하게 사는 법안이 모색되고 유럽연합에서는 GPT 관련 법안이 통과됐다. 약 120쪽 분량이다. 독일은 공론화 중이고 미국은 AI 법안이 상정 중이다. 주 내용은 GPT가 인간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 AI의 윤리, 저작권 문제 등 인간을 위주로 법안이 상정되고 있다. SF소설의 세계 최대 출판사에서 공모사업을 했는데 2020년대 들어 표절작이 갑자기 늘어난 것을 확인하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모네 풍으로 나를 그려달라고 하면 정확히 그려준다. 과연 원작자는 누구인가가 화두다.
문제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난도 질문을 해 테스트를 거치는 일이 과학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초반에 잘 대답하던 것이 점점 거짓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 파악의 목적은 거짓말은 단순 데이터 입력에 대한 최상의 답변을 낸 것인지 아니면 거짓말인 줄 알면서 한 것인지 판가름하는 일에 달려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GPT의 출현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답변을 피한다. 인간을 속이고 최상의 답변을 내는 것이다. 정부 정책이나 한 국가가 GPT에 의존할 때 파장은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옳은 길만 가지 않기 때문이다. 아예 정치를 GPT에 맡기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는가.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다. 매일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 늘 여당과 야당이 싸우고 집권당이 나라를 휘어잡는다. GPT가 전쟁을 일으킬 시 우리나라가 이길 확률을 99%로 내놓는다면 권력자는 어떤 선택을 할 것 같은가.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했다는 말이 뭐냐고 묻는 게 오늘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적 수준이다. 기자에게 포착된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1970년대를 사는 느낌이다. 좋은 것이라 믿고 무작정 각 분야에 이 GPT를 도입하는 일이 바른 일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법안도 없고 로봇에 관한 법률 지정이 시급하다. 그래서 무엇보다 역사, 윤리, 철학, 문학 등의 인문학 전문가를 불러 모으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지금 정부를 비롯해 기업들이 GPT를 도입하고 상용화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당신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당신만의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이것이 몸으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당신 것이라 확신하는가? “에이 설마 그럴 리야 있겠어?” 과도한 상상과 걱정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과거 상상도 못 한 것들이 출현해 그것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핵폭탄을 만들고 과학자들이 땅을 치며 후회하고 울었다는데 GPT를 만들어내고 후회는 할까?
글 속에 자연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말을 쓰는 건 인공이 아닌 자연스럽게 살고자 하는 내 지론이다. 그것만이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쉬운 지름길이다. 자연을 우습게 본 결과를 지금도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교통수단과 컴퓨터 그리고 컴퓨터가 들어가 있는 스마트폰을 빼면 고구려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본다. 불편했어도 모든 건 인간이 결정했다. 인간이 읽기 편하고 기분 좋아지는 글을 AI가 써대는데 문인이 필요할까? 인간의 능력은 초월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있다. 거짓말도 하잖은가. 인간 존재를 위협하는 특정 분야에 GPT를 폐기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그 편리한 걸 왜 폐기한다고 보는가. 급하면 공중전화 찾기가 바빴지, 전화기를 손에 들고 다닌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나? 우체통마저 사라졌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온다. 문학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있을까? 지금 알게 모르게 겪듯이 GPT는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억울해서 항의 전화를 해도 GPT가 거절한다면 전화를 끊어야만 한다. 지구의 존속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변이 인간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아직도 GPT가 우스워 보이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2023.03.30 10:21 윤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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